103화
촉의 대지, 사천은 높은 산맥들로 둘러싸여 형성된 분지 지형으로 사천은 좋게 말하면 전략적 요충지로서 평탄한 지형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생산량을 바탕으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용이한 입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시(戰時)가 아니라면 그 단절성이 도리어 발전의 장애가 되어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이래서야 완전 고립된 동네군요.”
“맞아. 아무래도 산맥 때문에 외부와의 소통이 쉽지 않지. 다른 동네에서 사천을 침범하기 어려운 만큼 다른 동네로 넘어가기도 어려우니까.”
나중에 여객기가 도입되고 고속철도가 생기는 시대가 오면 지금 사천이 가진 지형적 단점이 문제가 되지 않게 되겠지만 그런 교통수단이 없는 이 시대엔 확실히 아니었다. 우리도 행글라이더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편하게 사천으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였다.
“용운 님, 여기 너무 더운 것 같아요. 이상하게 숨쉬기도 불편하고. 청해에선 안 그랬는데…….”
“청해보다 남쪽인 것도 있고 안이 푹 파인 형태의 분지라서 그런 것도 있을 거야. 오면서 봤던 거 기억나지?”
“분지 지형인 거랑 더운 게 무슨 상관이에요?”
현대 한국인에게는 푄 현상이라든가 분지 지형이 더운 이유 정도는 중고등학생만 되어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이건만 때때로 다진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상식의 부재가 의사소통의 장애가 될 때가 있었다. 그래도 모르는 걸 숨기지 않고 물어보고 알려고 하는 그 자세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물어볼 때면 내가 아는 지식수준 내에서 성실하게 답변해주는 편이었다.
“내리쬐는 태양을 고대로 받아서 머금는 밥그릇처럼 오목한 지형은 그 열기가 외부로 잘 빠져나가지도 못하는데 외부의 공기가 산맥을 타고 넘어오면서 공기가 뜨거워지는 현상이 발생해서 이중으로 더워지는 거야. 보통은 이렇게 산맥을 타고 넘어온 공기는 뜨겁고 건조해지거든.”
“하지만 여긴 이렇게 습하지 않습니까? 앞서 말씀하신 거랑 내용이 다릅니다. 산맥을 타고 넘어오면 공기가 건조해진다고 했는데 말씀하신 것과 다르게 여긴 무척 습합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니?”
“예, 청해랑은 다른 날씨인 게 신기해서요.”
귀찮지만 분지 지형이 왜 습하고 더워지는지까지 설명해줘야 오늘의 지리 수업시간이 끝날 것 같았다.
“비가 내리면 공기 중의 수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올라가서 지금처럼 습한 상태가 되는데 분지 지형은 비를 내린 구름이 뚜껑 역할을 해서 태양에 의한 수분 증발을 막아 그런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여긴 청해보다 남쪽이라 기본적으로 덥고 습한 동네지. 이런 이유로 원래 덥고 습한 지역에 더해진 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위로 증발하지도 못한 상태로 정체되어 다른 남쪽의 지형보다 훨씬 더 습하고 더운 동네가 되는 거야. 다진이가 숨쉬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고온의 기온과 함께 고온의 습도 때문에 그런 거고.”
“아!”
게사르는 이런 용의 가르침을 받을 때마다 신기했다. 용운이란 용이 이토록 쉽게 말해주는 대답에는 스승님조차 가르쳐준 없는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었다.
객잔에서 나누는 셋의 대화를 객잔 내 다른 탁자에 앉은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술잔을 주고받는 걸 멈춘 채로 듣고 있었다. 분명 타지에서 온 것이 분명하나 가운데 앉아 차분하게 설명을 하는 이의 말이 파촉의 사람이 듣기에도 틀린 부분이 없고 합당했기 때문이었다.
“저 같으면 시원하고 쾌적한 청해에 살지 이런 덥고 습한 동네에선 못 살 것 같습니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면 여기가 고향이고 천국인 법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아닐 것 같습니다만.”
자신들의 고향을 가지고 눈이 작은 녀석이 사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떠들기에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눈이 작은 녀석이 입고 있는 옷은 분명히 곤륜파의 옷이 분명했기에 참았다.
“눈을 뜬 건지. 만 건지 알 수도 없는 녀석이 남의 동네에서 함부로 떠드네요.”
“당소저, 촌놈이 알지도 못하고 떠드는 것 같으니 내버려두고 우린 이 향기로운 백주(白酒)나 마시는 게 어떻습니까?”
“쯧.”
분명 옆자리에서 대화가 들려왔지만 자신들끼리 알아서 잘 수습하는 것 같아 자칫 게사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분란을 막을 겸 이어 사천의 장점을 설명하기로 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사천은 괜히 하늘이 곳간을 내려준 땅이라고 하는 게 아닐 정도로 식량이 풍족한 동네야. 사람이 먹고 남을 정도로 먹을 게 풍족한 덕분에 돼지도 많이 키울 수 있는 거고.”
‘매운 요리와 돼지고기 요리라 기대되는걸. 이따가 나오는 요리들 중에 제육볶음 비슷한 것도 있으려나. 남자라면 자고로 제육볶음인데.’
고온의 다습한 지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벼라든가 향신료 같은 다양한 작물이 잘 자라는 데에는 이런 습하고 고온인 지역들이 춥고 건조한 지역이라든가 덥고 건조한 지역들에 비해 생장에 있어 매우 유리했다.
“돼지고기라… 잡내날 것 같아서 양고기보다 맛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아…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분명 게사르의 청력이라면 옆 테이블에 앉아서 자신을 향해 불쾌한 언사를 내뱉는 이들의 대화를 들었을진데 이리 나오는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게사르의 이런 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살짝 뿔따구가 난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어느 한 좌석의 소저를 크게 자극한 것 같았다.
“거기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은 건지 구분도 안 가는 촌놈이 이 사천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걸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구나!”
“그 소저 말하는 게 꼭 내 마누라같구만. 아주 앙칼진 게.”
탁자에 잔을 내리치듯 놓으며 일어난 여자의 발언에 크게 자극받은 게사르도 의자를 뒤로 밀어젖히며 벌떡 일어났다.
“뭐, 뭐라고? 내가 눈을 뜬 건지 감은 거니 구분이 안된다고?”
“그래, 지금도 건방지게 이 풍가화(風茄花) 앞에서 눈을 감고 말하고 있지 않느냐. 무례하게도 말이지. 니 놈 스승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기본적인 예의범절도 안 가르쳐 주더냐? 꼴에 옷은 곤륜파인 척 입은 것 같은데 진짜 곤륜파가 맞긴 한지 모르겠구나. 곤륜파가 정파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기에 내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런 시정잡배같은 놈이 진짜 제자라면 안 봐도 뻔하겠어. 정마대전 이후엔 별다른 고수가 있단 소리를 못 들은 걸 보니 곤륜파가 망해도 크게 망한 게 맞나 보군?”
“아이쿠야… 당소저… 왜 이러십니까… 곤륜파 사람하고 분란을 일으킬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만 하시죠.”
“많이 취하신 것 같습니다. 거, 거기! 얼른 그 사람 데리고 떠나시게. 여긴 우리가 수습할 터이니.”
예쁘장하게 생긴 외모와 다르게 날카로운 독설을 쏘아내는 여자의 폭언(暴言)에 주변 사람들은 옳게 왔구나 하는 표정을 하고 있어 그녀가 평소에도 꽤나 박력 넘치는 언행(言行)을 실천해왔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놔요. 나 안 취했어요. 이깟 백주 몇 잔 마셨다고 내가 취할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다들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잖아요. 저 눈 작은 놈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다는 거.”
“너 너! 다시 말해봐! 지금 뭐라고 했어!”
“어허, 옆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그 눈 작은 사내 좀 말리시게.”
풍가화라는 당문의 여자가 당장이라도 출수할 것처럼 굴자 이젠 옆에서 더 성화였다. 하지만 나는 초절정씩이나 되는 게사르가 기껏해야 절정밖에 되지 않는 저 여자에게 밀릴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가만히 앉아서 시킨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여자는 술김에 진짜로 한판 붙을 생각인지 급발진을 이어나갔다.
“똑바로 보지도 못하는 녀석이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걸 보니 몸 어디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원래 살던 곳에 가서 요양이나 하지? 그렇게 성하지 못한 몸으로 왜 돌아다녀? 곤륜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밖으로 돌아다니게 내버려둘 정도로 망한 건가?”
‘역시 사천 사람인가. 말하는 것도 맵다 매워.’
“내 이름은 게사르쟈시, 곤륜파의 2대 제자다. 그쪽, 당문의 풍가화라고 했나? 나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하든 어떤 말은 다 참을 수 있으나 스승과 사문을 욕하는 말은 참지 못하겠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지만 도를 행하라는 원시천존의 가르침을 생각해 너에게 기회를 주겠어. 곤륜과 내 스승을 욕되게 한 표현을 사과하고 절을 하면 내가 오늘 일은 원시천존의 도(道)를 따라 불문에 붙이도록 하겠다.”
“풋. 참긴 뭘 참아. 참지 마. 니가 안 참으면 어쩔 건데?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당문의 풍가화야! 할아버지인 독장(毒將)께서도 내게 그런 식으론 말하신 적이 없는데 감히 청해의 촌놈이 나에게 뭐? 절을 하고 사과를 하라고?”
“도저히 계도(啓導)가 되질 않을 뿔난 망아지 같은 인간이로군. 내 오늘 너에게 가르침을 내려 사람의 길이 뭔지 알려주도록 하겠다.”
게사르는 내게 분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면서 인사를 하고선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검을 출수해 나갔다. 풍가화라는 당문의 여자 역시 보법을 통해 재빨리 게사르의 움직임에 대항해서 공격하기 용이한 자세를 취했는데 보아하니 독을 출수할 것 같아 이쯤에서 말려야할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음식이 나올 텐데 싸움판이 벌어지면 못 먹잖아. 독가루가 날리는 곳에서 밥 먹고 싶지 않다고.’
게사르가 검을 찔러 들어가고 당문의 소저가 손에서 독을 내뿜어 마주치기 직전 나는 둘의 움직임을 기로 강제하여 멈춰버렸다.
“이, 잇! 이게 무슨? 말도 안돼!”
“요, 용운님?”
“두 분의 대결이 식사하기도 전에 밥상머리에서 펼치는 체조(體操)치고는 너무 큰 것 같아서 말입니다. 식후경(食後景)을 위해 대결은 식사를 마친 후로 미루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런 기도를 내뿜지 않아 무공을 익힌 건가 싶었던 사내가 손짓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풍가화 당추향(唐秋香)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할아버지께서 구해주신 영약을 복용하여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자신의 나이 또래에선 상대가 흔치 않을 거라는 할아버지의 말씀까지 들은 터라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에서 경험해서인지 그 놀람은 더 했다.
‘내, 내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다니? 뭐야, 이 남자?’
명나라가 들어서고 탄생한지라 그 역사가 짧아 신흥 세가 취급을 받는 당문이긴 하지만 자신은 엄연히 태상가주의 직계로서 어릴 적부터 아낌없는 투자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게사르, 게사르도 내 얼굴을 봐서 지금은 진정하고 앉는 게 어떻겠나? 밥상머리에서 싸우는 거 아닐세.”
“예? 예. 죄송합니다.”
방금 전까지 분노하고 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던 촌놈이 남자의 말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색을 바꾸고 서둘러 검을 집어넣고선 후다닥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소저도 진정하고 이리 오시겠습니까?”
남자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자신의 육체가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날아가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혀졌다. 항거할 수 없는 내공에 묶여 팔랑이는 낙엽처럼 끌려가자 할아버지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무력감에 추향은 속으로 자신이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여기 술 한잔 하시면서 넘치는 혈기를 좀 가라앉히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 술맛이 아주 달고 좋군요. 그쪽 분들도 앉아서 마시던 술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쪽은 제가 정리하도록 하죠.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시죠?”
남자의 말에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자신의 미모를 찬양하여 추근덕거렸던 사내들이 하얗게 질려선 엉거주춤 주저앉았다.
사실은 이 모든 게 추향의 오해와 달리 용운이 막대한 내공으로 허공섭물을 운용하여 문제가 생길 것을 방지하고자 사내들을 강제로 주저앉힌 것이었으나 테이블에 주저앉은 사내들처럼 사지육신이 통제되고 오직 머리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인 추향으로선 이런 진실을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황이 정리가 되자 눈치를 보던 점소이가 딱 봐도 분위기를 잡고있는 것으로 보이는 용운의 좌석으로 주문한 음식들을 서둘러 가져왔다.
“주문하신 음식들 나왔습니다.”
탁자를 가득 채우는 각종 요리들의 향연에 게사르와 다진이 군침을 다시며 젓가락을 들고서 용운의 움직임만 기대하는데 용운의 표정이 기이했다.
‘뭐야…음식들 상태가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