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배구는 경기에 참여한 보통 6인의 선수들이 전위와 후위로 나눠져 로테이션을 돌며 정확히 이를 준수해야 하는 나름의 복잡한 룰이 존재하는 구기종목이지만 농구의 변형인 길거리농구처럼 배구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비치발리볼은 2:2로 하는 경기라 그렇게까지 복잡한 규칙이 필요 없다.
그저 2명이 토스를 올리는 세터와 토스를 받아 공격을 넣는 공격수,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는 센터,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내는 리시버의 역할을 번갈아서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내가 이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은 경기를 시작하는 서브, 공격을 받아내는 리시브와 같이 공격하는 법과 수비하는 법 정도가 전부였다.
‘뭐, 당장 대회 나갈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알려주고 간단하게 선을 지키는 규칙 정도만 가르쳐주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나머지는 자기들이 알아서 터득하겠지.’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어떤 식으로 경기하는지 정도는 직접 보여주는 게 더 좋겠다 싶었다.
“자, 지금부터 내가 간단하게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린 공격하는 법이나 수비하는 법을 실전해서 어떻게 하는지 보여줄 건데 보고 잘 따라 하세요.”
“…2:2라고 했잖아요. 사람 더 필요한 거 아니에요?”
“바둑도 혼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둘 수 있잖아. 이것도 내가 좀 부지런히 움직이면 돼.”
“네? 그거랑 이거랑은 좀 다르지 않아요?”
“에이, 별로 차이 없어. 그냥 한번 봐봐. 보면 이해가 될 거야.”
“요, 용운님. 제발 자제를 하셔야 합니다.”
“게사르, 그게 무슨 소리야?”
“곤륜의 제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 걱정하지마. 내가 누구야. 나 용운이야! 내가 쉽게 설명할게. 쉽게.”
“아…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내가 2:2 배구하는 법을 혼자서 시연하겠다고 하니 다진이는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게사르는 굉장히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 먼저 이렇게 서브를 올리고!”
스파이크 서브로 상대쪽의 진영으로 공을 때림과 동시에 나의 원맨쇼가 시작되었다. 이형환위(移形換位)를 바탕으로 잔상을 남겨 마치 4명의 내가 있는 것처럼 모습을 연출하고 반대쪽으로 재빠르게 움직여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팔뚝을 받아내는 범프라는 기술로 리시브로 토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대편 쪽에 있는 사람들은 공을 3번이내에 상대편 쪽으로 다시 넘겨야만 합니다. 이렇게!”
‘저 용이 오늘 아주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미쳐서 날뛰는구나.’
토스를 함과 동시에 다시 원래 있던 쪽으로 스파이크를 때리고 처음 있던 곳으로 돌아와 바닥에 미끄러지듯 하는 디그라고 하는 리비스 기술을 선보여 공을 띄우고 뛰어올리는 행동을 한 1다경 정도 반복하다 마무리로 반대쪽에 스파이크를 때리며 바닥에 공을 때렸고 공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바닥에 튕긴 공을 잡아내며 시연을 마쳤다.
“만약 3번 이내에 공을 막아내지 못하고 지금처럼 바닥에 튕겨버리면 실점하게 되는 겁니다. 어때요, 여러분. 참 쉽죠?”
“아?”
“예? 뭐가 쉽다구요?”
“뭐지?”
공을 옆구리에 끼고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자 모두들 하나같이 입을 크게 떡 벌리고선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예? 왜요? 이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워요? 양쪽으로 진영을 나눠서 반대편 진영에 속한 이가 막을 수 없도록 바닥에 공이 닿도록 하면 득점하는 거고 이를 막아내지 못하면 실점하는 건데…이상하다. 규칙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것 같은데.”
내가 한 설명이 뭔가 잘못한 게 있나 되짚어 보면서 이걸 어떻게 더 쉽게 설명해줘야 하나 혼자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게사르와 장문인이 내게 다가와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게 있다고 말했다.
“용운 님이 뭘 설명하고자 하시는지는 이해했습니다. 이해했는데…곤륜의 제자들이 고개를 흔들고 납득하지 못한 이유는 용운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 배구(排球)라는 놀이하는 법이라든가 규칙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예? 그럼 어떤 점이 이해가 안됐을까요?”
“혼자서 그렇게 쉽게 이형환위로 차 한잔은 마실 시간 동안 양쪽을 오가면서 움직이셔놓고 편안하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로 쉽지 않냐고 물으시니 무공을 익힌 무림인으로서 자괴감을 느껴서 그런 겁니다.”
“아! 이런…….”
그제야 내 설명이 틀렸나 싶어 당황해서 들리지 않았던 곤륜파 문도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야, 이형환위가 저렇게 쉬운 거였냐?”
“4명이 뛰어도 저렇게 빨리는 못 움직이겠다.”
“내가 저렇게 움직였으면 중간중간 설명은커녕 숨이 가빠서 헉헉거리기 바쁠 것 같은데…….”
“난 운룡대팔식을 극성으로 익히셨다는 장문인도 저렇게 움직이시는 건 못본 것 같다”
“중원에 나가면 저런 괴물같은 사람들이 막 여기 저기 튀어나온다는 거지?”
“위험한 곳이었네. 중원.”
“뭐야, 그거. 중원 너무 무서워.”
이게 아닌데 싶어 고개를 돌아보자 쓴웃음을 짓는 장문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그토록 중원엔 모래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기인이사가 있다고 몇 번이고 말해도 제자들에게서 오만함을 뿌리 뽑질 못했는데 오늘 용운 님 시연이 크게 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제가 시연을 한 건 그런 목적이 아니었는데.”
“압니다. 아는데…그만큼 곤륜의 제자들에겐 용운 님의 시연이 준 충격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워낙 족구하는 걸 좋아하길래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2대2 배구를 보여주며 흥분했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자제 좀 하시라고 제가 시연하기 전에 부탁드렸잖습니까.”
“아니…나는 니가 하는 말이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제대로 보여주라는 의미인 줄 알았지.”
“다 틀렸습니다. 다 틀렸어요!”
“넌 또 뭐가 그렇게 틀렸다고 그래.”
“저기 넋이 나간 곤륜의 제자들 표정 좀 보십시오. 평생 노력해도 도달할 수 있을까 싶은 장면을 자기보다 몇 살 더 먹어 보이지도 않는 외모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는 사람을 봤는데 허탈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래도 곤륜파 제자들인데 평생 도달하기 어렵다는 건 좀 말이 안되지 않나? 곤륜파가 그래도 이름 있는 명문정파인데 열심히 수련하고 노력하면 초절정고수 정도는 도달…….”
곤륜파 사람들이면 누구나 노력해서 초절정고수가 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려던 나의 말은 짜게 식어버린 게사르의 표정에 더 이어질 수 없었다.
“용운님, 정마대전 이후 대전에 참여한 문파들은 많은 진신절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빌어먹을 마교의 마두 놈들이 정마대전 과정에서 비전이 적힌 무공서들을 모아놓은 서고를 탈취하거나 불을 질렀고 많은 무림고수들이 눈을 감는 바람에 정마대전에 참여한 대다수의 문파에서 많은 무공이 소실되었습니다.”
‘아니…무슨 마두 놈들이 서고를 털어…책을 털러 다니면 그게 마두야? 그리고 우리 일월신교 서고에 그 정도로 많은 책들이 있지는 않았다고!’
게사르의 말에 마교 운운하면서 떠든 말에 이상한 부분이 있어 일월신교의 교주로서 틀린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여 정정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곤륜파에서 내가 마교의 우두머리입네하는 소리를 떠벌릴 순 없었기에 나는 입을 닫고 게사르의 말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무공서를 탈취당한 적 없는 우리 곤륜파조차 고절한 곤륜의 무공을 익히고 계시던 선대 분들이 정마대전에 참가하셨다가 목숨을 잃고 돌아오시지 못하는 바람에 무공서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많은 지식들과 비의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예전에야 1대 제자들 중 몇 명씩 초절정고수가 나오고 간혹 초절정의 벽을 뛰어넘은 화경의 고수가 한둘씩 나오곤 했다지만 이젠 아니지요.”
“저,저런…내가 다 미, 미안하네.”
“아니지요! 용운 님이 간악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마교 놈도 아닌데 사과를 왜 하십니까? 이게 다 그 못되먹은 마교 놈들이 탓이지요.”
“그, 그러네. 못되먹은 놈들…….”
옆에서 게사르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차를 마시던 다진의 눈초리가 살짝 사나워지는 바람에 눈을 감고 비통해하는 게사르가 못보는 사이 입을 벙끗거려 다진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어허, 참아! 안돼. 여기 곤륜파야.’
‘그냥 한 대 콱 쥐어박아주고 싶네요.’
‘다진이, 안돼! 그럼 못 써.’
‘맨날 안된다고만 해. 쳇.’
둘 사이에 오가는 소리 없는 격렬한 대화를 감지했는지 눈을 감고 있던 게사르가 눈을 뜨고선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우리를 번갈아보았다.
“왜?”
“왠지 두 분이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아서…….”
“우리가? 우리가 마교 놈들도 아니고 왜? 하던 거 계속 해.”
“두 분이 마교라니요. 그 무슨 말도 안되는 말씀을. 풋. 어, 어디까지 했더라? 아, 아무튼 초절정고수는 이제 생각보다 그렇게 흔하지 않게 되었다 이 말씀입니다.”
신교의 교주로서 잘못된 오해가 있는 것이긴 했지만 게사르의 입에서 마교, 마교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나는 이때다 싶어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뭐가 안 흔해. 너도 벌써 초절정고수잖아. 당장 내 옆에도 있구만. 그나저나 경지 오른 건 장문인한텐 말씀드렸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어도 이미 장문인은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그리고 저야 용운님이란 기연을 만났잖습니까? 절벽에 떨어진 적도 없는 제가 산에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수련만 했다면 저는 아직도 산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고 다니느라 수련도 제대로 못하고 절정고수의 벽 근처도 구경 못하고 늙어 죽었을 겁니다.”
“곤륜파가 그래도 이름이 있는데 설마 먹을 게 없어서 수련 못 했을라고.”
“어어? 용운 님, 그거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초절정고수가 된 건 오로지 용운 님을 만난 덕분입니다.”
게사르의 말에 따르면 남궁세가라든가 소림, 무당같은 문파들이야 세속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거나 꾸준히 문파의 운영을 돕는 속가제자들의 존재들이 많아 운영비가 풍족한 편이라 먹을 게 부족할 일 같은 경우는 없었지만 속세로부터 벗어나 산에만 있고 속가제자를 받지도 않는 곤륜파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가끔 산 밑으로 내려가 부적도 팔고 풍진세상 속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곡식을 구해오는 1대 제자들이 있어 제자들이 먹을 곡식은 어찌어찌 감당한다고 하지만 고기라든가 하는 것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기껏해야 계곡의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산짐승을 잡아서 불에 구워 먹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죠.”
‘자연인들이 여기 있었네.’
100명도 안되는 인원이긴 하지만 적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수련만 하는데도 산에서 풍족한 삶을 산다는 건 말도 안되는 상상이 맞긴 했다.
‘하긴 먹어야지. 입어야지. 하려면 다 돈이잖아. 우리 신교도 수련만 할 수 없어서 내가 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진 평상시엔 양도 치고 옷감 지어서 내다 팔고 암염 캐다가 치즈 만들어 먹고 버텼으니까.’
지금이야 우리 일월신교에는 고정적이고 계속적인 자산 증식 수단을 획득한 내가 있었지만 여기 곤륜파에는 나같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 입고 있는 옷들도 딱히 새것 같다는 느낌은 없었지. 얘도 처음 만났을 땐 상거지 꼴이었고. 난 여태껏 그게 도(道)를 추구해서 원래 검소하게 사나보다 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그냥 가난해서 그런 거였구나. 이렇게 말하니 또 안쓰럽네.’
스스로 모든 것을 획득해서 살아야 하는 자연인의 삶이란 피곤한 법이다. 은거기인도 무림에서 연을 끊고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따로 모아놓은 돈이 많이 없으면 생존하기 위해 바쁘게 살아야 했다. 아사(餓死)하기로 결정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삼시세끼를 1년 내내 챙겨 먹으려면 대충 계산해봐도 1년이면 약 1100여끼에 가까운 끼니를 필요로 하는데 그 끼니 다 챙겨먹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예전에 한번 우리 호법 할아버지들한테도 무림고수가 되면 내공만 운기해도 배고픔을 잊을 수 있지 않겠냐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수호법의 말이 딱 이러했다.
“그게 무슨 개소리십니까? 사람이 시체도 아니고 살아서 뱃속을 채워 넣지 않는데 어떻게 배고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폐관수련할 때 벽곡단 꼬박꼬박 챙겨먹는 이유도 맛이 없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겁니다. 배고프면 괜히 음식 생각만 잔뜩 들어서 잡념만 들고 수련에 집중도 안됩니다. 나중에 폐관 한번 해보시면 무슨 말인지 다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일주일만 다이어트 해봐도 먹을 걸 제대로 못 먹은 사람이 음식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해지는지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는 이야기긴 했다.
‘잠깐만? 먹을 걸로 곤륜파를 포섭해봐?’
제아무리 무위자연을 추종하는 곤륜파의 도사들이라고 한들 자신들을 배불리 먹여주고 입혀주는 사람이 나중에 신교의 교주라는 걸 안다면 감히 배은망덕(背恩忘德)하게 칼 들고 죽으라고 덤빌 것 같지는 않았다.
‘자기 밥 주는 주인은 아무리 성깔 더러운 개라고 해도 안 무는 법이지.’
산에서 사는 게 얼마나 더럽고 힘든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게사르와 십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진이가 서로 맞장구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점차 확신이 들었다.
‘가능성이 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