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100화 (100/132)

100화

같은 구기 종목인 농구나 축구에 비해 훨씬 간단한 룰을 가지고 있는 족구는 간단한게 말하면 발로 하는 배구라고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덕분에 족구의 룰을 배운 곤륜파 사람들이 족구에 빠져들게 되기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곤륜파가 운룡대팔식이라는 신법으로 유명한 문파인만큼 사람들의 발재간도 좋은 편이라 룰을 가르쳐주고 경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공차는 요령을 몇 개 보여줬더니 곤륜의 문도들은 가르쳐준 적도 없는 기술들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사제! 내가 꽂아 넣을테니 탁구(托球, 토스toss)해!”

“예! 갑니다!”

“허잇차!”

삐익!

멋지게 결정타를 꽂아 넣었다고 생각한 민인생이 공이 땅바닥을 찍고 코트 밖으로 빠져나가기 직전 들린 휘슬 소리에 격하게 반응했다.

“아니? 왜 호각(號角)을 부시는 겁니까? 그리고 상대편이 2득점이라니요? 어째서입니까? 정확히 말씀하셨던 규칙대로 제가 때린 공이 상대쪽 지면 안에 들어갔고 상대편에선 아무도 받아치지 못했는데요. 이런 겨웅에는 저희 쪽에 1득점을 주셔야죠. 판정이 이상하십니다?”

보여준 준 적도 없는 오버헤드 킥을 경기를 배우고 몇시간 만에 네트에 바짝 붙어 받아 넣기 어렵게 재빨리 꽂아 넣은 민인생의 기술은 족구인으로서 보기에 참으로 칭찬해 마땅한 기술이었지만 심판으로서 나는 손으로 공을 상대편에 넘기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이유를 설명해줬다.

“절망(㲳网, 네트 터치 Net tocuh)입니다. 정말 멋진 공격 자세였지만 다리가 그물에 닿았습니다. 그래서 상대편이 2득점인 겁니다. 저는 분명 공격이나 수비할 때 그물에 절대로 몸이라든가 옷이 닿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절망?”

흔히들 족구 룰에는 2득점이 가능한 상황이 없다고들 알고 있지만 정식 대회룰에는 분명히 더블 바운드, 오버 네트,바디 터치, 서브 에이스, 다이렉트 킬과 같은 경우들에 한해 2득점을 인정했다. 물론 통상적으로 군대에서 하던 족구에선 이런 룰까지 세세하게 적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이들의 수준이 배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에 비해 꽤나 잘하는 것 같아 난이도를 높이기 위한 방책으로 정식 대회 룰을 가르쳤다.

“제 몸이 정말로 그물에 닿았습니까? 전 정말로 제 몸이 그물에 닿는 걸 못 느꼈습니다.”

민인생이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토스를 올려준 그의 사형이 답을 했다.

“민 사제. 안타깝지만 심판을 봐주신 용운 님께서 보신 게 정확하네. 자네의 다리는 그물에 닿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자네가 입은 바지자락이 분명 망에 닿았네. 심판께선 제대로 보신 걸세.”

“지, 진짜입니까?”

“진짜일세. 분명 게임 중 심판에게 정당한 항의를 하는 것은 옳다고 하셨지만 자네가 한 건 정당한 항의가 아님을 알아야 하네. 용운 님께서 경기를 시작하기 전 몇 번이고 강조하신 폐아후래이(閉亞厚勑理) 정신을 떠올리게. 내 생각에는 말이야 이 족구라는 게 그저 단순한 애들 공놀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용운 님께서 말씀하신 폐아후래이에 담긴 그 의미 그대로 우리가 배운 족구에는 스스로를 다스려 서로 함께 어울리며 사이를 더 단단하게 해주는 광명정대하고 올곧은 정신이 담겨 있네. 명문정파로서 지켜야 할 숭고한 정신과 의식이 담긴 고차원적인 참된 유희가 바로 족구라는 거지!”

“크읍,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폐아후래이라…폐아후래이에 담긴 숭고한 정신을 앞으론 잊지 않겠습니다…죄송합니다. 사형! 죄송합니다. 용운 님. 제가 잠시 승부에 집착하다 보니 눈이 멀었나 봅니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로서 분명 페어플레이 정신이 필요한게 맞긴 한데…따지자면 족구는 그냥 공으로 하는 운동이자 놀이가 맞습니다만.’

두 사나이의 뜨거운 눈빛 교환에 이게 맞나 싶어 그렇게까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정정을 해줄까 하다가 코트 위의 모두가 서로 한마음이 되어 열정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에 그냥 넘어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경기 속행을 위해 다시 호각을 부르려고 하는 찰나 누군가 크게 박수를 치며 내 옆에 나타났다.

‘누구지?’

짝!짝!짝!

“허허허, 용운님, 제가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부!득!이하게 제 처소 앞에서 족구라는 걸 하고 계셔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의 말대로 이 족구라는 놀이가 그저 애들 놀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작 놀이를 하는데 무슨 비무를 할 때처럼 규칙을 강조하시고 폐아후래이라는 정신을 언급하시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만 이제야 비로소 모두 이해가 갑니다. 자칫 경쟁에 빠져 방금 전의 민인생처럼 점수에만 연연하기 쉬울 수 있음을 경계하기 위함이었군요.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규칙을 준수하여 서로에게 떳떳한 대결을 나눈다는 이 폐아후래이 정신! 한낱 유희에서 이리도 고고하며 우아한 품격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지상에서의 유희와는 천상에서의 유희는 많이 다르군요. 오늘 크게 개안(開眼)했습니다! 그렇지 않느냐, 곤륜파의 제자들아!”

갑작스레 우연히 나타난 것치곤 꽤나 준비한 듯한 일장연설을 마친 장문인이 곤륜파의 문도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곤륜파의 문도들은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맞습니다! 전 폐아후래이의 정신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족구 최고!”

“폐아후래이! 폐아후래이!”

“저는 앞으로 이 족구라는 운동을 영원히 사랑할 것 같습니다!”

‘어우 뜨거워.’

가볍게 시작한 놀이를 무슨 곤륜파의 행사처럼 승화시키려는 듯한 장문인의 정치적 대응에 집단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한 수 배웠다. 동시에 내가 가르쳐준 놀이임에도 갑자기 남의 잔치에 끼어든 것마냥 변한 분위기에 살짝 불편함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나를 향해 만세를 외치는 곤륜파 문도들의 성화에 유세현장에 나온 정치인마냥 두 팔을 들어 올려 화답했다.

적당히 열기가 식어 다시 경기를 재개하려고 하자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문인이 내 옆에서 두 팔을 들려 아래로 내리며 제자들을 진정시키더니 내게 입을 열었다.

“…이런 숭고한 정신을 가진 유희라면 저도 한번 참여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이 양반! 안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이때다 싶어서 일부러 멘트 준비하고 나온 거 아니야?’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었다. 자연스레 빌드업을 쌓더니 선수로 참여하려는 장문인의 의도가 살짝 의심스럽긴 하지만 내게 딱히 그의 경기참여를 막을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장문인은 거처 안에서 제자들이 하는 족구 경기를 구경이라도 한 것처럼 처음 연습 하는 것치고 매우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더니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일단은 공격자보단 세터를 맡게 되었다.

“자자, 내가 때리기 좋게 올려 줄테니 한번 제대로 때려 보거라! 웃차!”

제기차기를 하듯 다리를 안쪽으로 들어올려 공격자가 상대코트로 꽂아넣기 좋게 장문인이 토스를 해주자 장문인 쪽 공격자인 1대 제자는 날카롭게 상대편 코트 구석에 찔러넣었다.

“아자!”

“오오오!”

‘저런 건 가르쳐주지 않아도 참 잘해.’

배구선수들이 으레 득점할 때 하는 행동처럼 득점을 하자마자 서로 북돋우면서 기합을 외치는 장면을 연출하는 장문인 팀을 보고 있자니 중세시대가 맞나 싶어 살짝 어질했다. 그런 가운데 다음 경기를 기다리며 응원하는 2,3대 제자들 사이에서 장문인을 향한 아부성 멘트들이 쏟아졌다.

“장문인! 족구하실 때 한 다리로 중심을 잡고 다른 다리론 탁구(토스)하시는 모습이 한마리 고고한 학 같으십니다.”

“고고한 학!”

“키야~ 우리 장문인은 역시 다르십니다.”

“앞으로 우리 장문인을 족구계의 고고한 학이라는 의미를 담아 족가고학(足可孤鶴)이라는 별호로 불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느냐, 얘들아?”

“족!가!고!학!”

“하하, 이 녀석들. 왜 이러느냐. 사람 무안하게. 하하하.”

분명 저들은 진심을 담아 한마음으로 별호까지 붙여 응원하고 있는데 그게 내 귀엔 이상하게 들렸다.

‘족가고학은 어감이 좀…그렇단 말이지. 그나저나 장문인 아저씨도 하지 말라는 것치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몇 판째 심판을 봐줘서 슬슬 지겨워지던 찰나 사관 기질이 다분한 민인생이 자원해준 덕분에 심판 자리를 넘길 수 있었다.

‘하여간 사내 놈들은 애고 어른이고 공만 던져주면 좋아 죽는다니까.’

자연스럽게 응원석이 되어버린 장문인의 거처 앞 계단에 다른 문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진이의 옆에 가서 앉으려고 했건만 다진이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는지 벌떡 일어나 내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용운님!”

“왜?”

“혹시 저거 더 있어요?”

“뭐?”

“저 공이라는 거요.”

“공은 왜……?”

1개의 코트 당 8명씩 2코트에서 16명이 게임을 펼치고 있으니 100명이 안되는 곤륜파의 인원들이 공 2개로 경기를 펼치는 게 내 눈엔 충분해 보였건만 다진이는 공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충분해 보이는데?”

“여기 제 주변을 둘러보세요.”

응원석에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문도들과 함께 다진이 앉아 있던 자리 주변에 여자 문도들이 10명 정도가 있었다.

“아! 혹시 여자 분들끼리 따로 경기가 하고 싶으시대? 내가 장문인한테 여자 문도들끼리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라고 해볼까?”

“아이 참! 그게 아니라요.”

다진이의 말에 따르면 곤륜파의 여자 문도들도 무림인이라 이 시대에 일반적인 여자들이 하면 안되는 규범같은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 문도들이 하는 것처럼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남자 문도들 앞에서 공을 차는 것은 좀 남사스럽다는 것이었다.

“저 분들도 다른 곤륜파 문도들처럼 새하얀 공을 튀기면서 놀고는 싶은데 사람들 다 쳐다보는 데서 다리를 팍팍 쳐드는 건 좀 그렇다고 해서요. 다른 놀이는 없어요?”

“족구처럼 다리로 하는 것만 아니면 되는 거지?”

“네, 근데 족구처럼 서로 합을 맞춰서 즐길 수 있되 시원하게 때리는 경쾌한 맛도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훗.”

“그런 놀이가 있어요?”

“있지.”

족구의 별명이 발로 하는 배구인걸 떠올리면 내게 강한 호기심과 열망을 품고 쳐다보는 저 여자 문도들에게 원하는 적당한 구기 종목을 찾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기다려봐.”

난 이번에도 사람들 앞에서 뜬금없이 공과 네트를 불러낼 수 없어 다시 한번 행글라이더의 짐가방을 뒤지는 척했다.

“어? 그게 더 있었어요? 분명 어제 짐가방 챙길 때 아까 나온 족구공이랑 망도 못 본 것 같았는데.”

마술쇼마냥 족구공이 있었던 곳에서 다시 한번 공과 네트를 꺼내오자 여자 문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응, 다행히 하나씩 더 있.었.어.”

“그, 그래요? 이상하다.”

나는 여자 문도들을 데리고 사내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땀내나는 곳으로부터 멀어지며 여자 문도 2명에게 족구장을 만들 때 사용했던 나무보다 좀 더 긴 작대기를 갖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쯤이면 되려나? 여기 괜찮아요?”

“예, 곤륜파 문도들은 잘 안 쓰는 장소에요.”

“좋네요.”

적당한 사이즈의 공터는 장문인의 거처 앞에 있던 마당에 비해 땅이 평탄하질 않아 적당히 다져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공과 작대기를 잠시 다진이에게 넘긴 나는 땅을 다지는 방법으로 한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도로공사를 하면 흔히 볼 수 있는 기계인 로드 롤러의 형상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기세를 일으켜서 롤러 형태처럼 굴려서 압(壓)을 주면 일일이 내가 발로 밟을 필요 없이 산책하듯 수월하게 땅을 다질 수 있겠지.’

용운이 기운을 끌어올리자 세상을 압도할 것만 같은 무거운 기운이 공터 주변으로 퍼졌다. 마침내 용운이 첫발을 떼자 밀대로 누른 것처럼 돌이 여드름 터져나가듯 빠져 나가며 일정한 너비로 땅이 쑤욱하고 평평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무공에 대해서 일자무식인 사람들도 아니고 무림인들만 모인 곤륜파의 문도들이 세상을 찍어누를 것처럼 강한 기세를 못 느끼고 가만히 족구공만 걷어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족구장 주변에 있던 곤륜파의 문도들이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서둘러 하나 둘 경공을 사용하여 이동해왔다.

“와아…….”

“대단해.”

용운이 한발 한발 움직일 때마다 조금 전까지 평탄함과 거리가 멀었던 공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이 발로 콱콱 밟은 것처럼 단번에 일정 범위 단위로 울퉁불퉁한 곳 없이 밀려나가며 판판하게 펴졌다. 그 기이하면서도 엄청난 모습에 사람들은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저 용이 또! 또! 이젠 사람들 앞에서 숨길 생각도 안하네.’

신나게 동문들과 함께 공을 차고 있다가 온 게사르의 눈에 보인 용운의 발걸음은 마치 세상을 지배해도 될 것 같은 거인의 군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감상은 곤륜파의 장문인과 이 모습을 지켜보는 모든 곤륜파 문도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용운이 첫발을 뗀 순간부터 사람들은 입으로 용운이 움직인 발걸음의 숫자를 셌고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멈추면서 공터를 모두 평탄하게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중얼거린 숫자는 7이었다.

“7보에 세상이 평정된 것 같구나.”

“흐음, 대충 이 정도면 배구하기엔 충분하지 싶은데? 어때, 다진아?”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등을 돌려 다진에게 말을 거는 용운을 바라보는 곤륜파 문도의 눈빛에는 경이로운 존재에 대한 경탄과 외경이 담겨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