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게사르의 첫 비행은 불시착으로 끝이 났다.
“허허, 그러니까 니 말은 이 분이 내 사형이신 천관자(天觀子)께서 귀천(歸天)하기 전에 말씀하셨다던 그분이라 이거냐?”
“그렇습니다. 장문인.”
지상에서의 야트막한 동산에서의 바람과 다르게 산골의 강한 바람에 당황한 게사르는 조종하는데 크게 애를 먹었고 귀소본능의 대명사인 소마냥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곤륜파였다.
“허허허…반갑습니다. 두 분.”
“안녕하십니까…….”
상황이 난감했다. 사천으로 정식 비행을 하기 전 몇 번의 시험비행을 하려고 했던 계획이 모두 어그러졌다. 불시착을 하게 된 게사르가 임기응변으로 운룡대팔식을 시전하여 장문인의 거처에 추락하기 지붕에 구멍을 내는 작은 ‘파손’을 대가로 본인은 다치지 않고 착륙하여 발생한 해프닝 탓이었다.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예…그러게요.”
“혹시라도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을까 말씀드리는 거지만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게 도(道)로 저희들을 이끄는 원시천존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두 분 모두 인상이 참 좋으십니다.”
‘어?’
현대인들이 ‘도(道)’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상이 참 좋으세요.’로 시작되는 길거리 포교를 떠올리지 않을까. 나는 곤륜파 장문인과의 대화에서 묘하게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다행히(?)도 장문인의 대화는 제사를 지내자거나 치성을 드려야 조상님의 공덕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는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를 나눠보니 속세에서 벗어나 수련만 한 사람이어서인지 이 시대의 무공을 익힌 무림인답지 않게 순수성이 느껴졌다.
“세상 사는 게 알 수가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군요. 전 하늘에서 게사르 사질(師姪)이 떨어지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장문인. 저도 나름 조종을 한다고 했는데 아직은 이렇게 강한 바람을 타고 비행을 하는 것에는 익숙하질 않아서…….”
아직 비행에 익숙하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게사르는 날 강하게 째려봤다.
‘내가 뭘 어쨌다고. 분명 교육하면서 다 가르쳐준 내용이구만.’
[내 생각엔 게사르에겐 죄가 없는 것 같네만.]
‘난 억울해. 초절정고수가 뭐 저래. 적당히 기감으로 바람을 느끼고 거기에 행글라이더를 얹어서 날기만 하면 되는데 바람 좀 세다고 그렇게 당황할 일이야? 그리고 좀 더 미리 운룡대팔식을 시전했으면 저렇게 구멍이 나진 않고 아무 일 없이 착륙했지.’
슬쩍 천장을 올려다보자 구멍난 지붕을 수리하고 있던 다른 곤륜파의 문도와 눈이 마주쳤다.
‘어이쿠.’
꾸벅
갑작스런 시선 교환에 머쓱해진 나는 살짝 목례를 하고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차를 들이켰다.
장문인은 진심으로 큰 문제가 아니니 너무 신경쓸 것 없다면서 사고를 친 게사르를 위로했고 우리는 약간의 대화를 더 나누고서야 장문인의 거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장문인과의 인사를 마치고 한숨 돌리나 싶었던 우리가 마주한 것은 곤륜파의 문도들이었다.
“저분들이야?”
“그렇다니까. 게사르 사형(師兄)이랑 같이 저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이 봤어.”
“그럼 눈으로 보지 콧구멍으로 봤을까. 신기하네. 연도 아니고 저런 걸 타고 날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니…….”
“하늘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게 전설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구나.”
“사람이 아니라 선녀님이랑 신장이라고 해야지. 사람이 왜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이 수군대면서 우리와 함께 번갈아서 보는 곳에는 우리들이 타고 날아온 2기의 행글라이더가 주차(?)되어 있었다.
‘한 고비 넘어가니 또 뭐가 또 튀어나와.’
[흠,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프군. 난 할 일이 있어서, 그럼.]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없는 것처럼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 나가야할지 난감한 날 버려두고 로그아웃한 비아를 속으로 씹어대고 있는 가운데 게사르와 친분이 있는 듯한 곤륜파의 문도 몇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게사르 사형…혹시 원시천존님과 인사를 하고 내려오시는 길이신 겁니까? 듣기로 천관자 사숙(師叔)께서 우화등선(羽化登仙)하셨다고 하던데…그럼?”
“사형과 함께 내려오신 두 분의 인상만 봐도 범상치 않은 게 느껴집니다. 천계에서 내려오신 분들을 이렇게 뵙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떠드는 곤륜파 문도들의 질문에 게사르는 난감해하면서 사람들을 다독였다.
“사제들, 오랜만에 봐서 반갑기는 한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 난 천계로 올라가 스승님을 뵙고 오는 길이 아니야. 물론 비행하면서 본 주마등 속에서 스승님을 잠시 뵌 것 같기도 하지만…….”
“하늘에서 여기까지 날아서 내려오셨잖습니까? 이 두 분과 함께. 요즘 천계에선 신장(神將)과 선녀님도 날개옷이라든가 천마(天馬)가 아니라 이런 걸 타고 내려오시는 거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신장이 쓰는 무기에 쓰인 쇠라든가 날개옷에 쓰는 재질이 저 날개처럼 생긴 거랑 같은 건가요?”
“그런 거 아니라니깐…나중에 내가 이야기해줌세. 나중에.”
“허허…전 섭섭하려고 합니다.”
“저두요.”
“섭섭해하지마.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신장이랑 선녀가 아니라 용이다. 용! 이것들아!’
오랜만에 만난 사제들과의 해후(邂逅)를 즐기는 것 같은 게사르의 모습에 두 사람은 뒤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복장을 한 새하얀 옷을 입은 다진과 검은색으로 된 옷을 입은 용운에게 게사르의 사제들의 시선이 끌리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러지 말고 저희들에게 저분들 좀 소개 시켜주시죠. 어디 가서 자랑이라도 하게. 살면서 신장과 선녀님을 만나 뵙게 될 일이 언제 또 있겠습니까?”
“하…그래, 니들 멋대로 생각해라. 난 이제 모르겠다. 어디 보자…왼쪽에 계신 남자 분은 화용운이라는 분이시고 오른쪽에 계신 마ㄴ…아니 선녀…이것도 아니지. 아무튼 오른쪽에 계신 분은 수다진이라는 분이시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포권으로 인사를 하려는 곤륜파의 제자들에게 소개를 받은 용운이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내밀자 곤륜파의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또 저러시네. 악수(握手)라니…용들은 저렇게 인사를 하는 건가?’
“사제들, 용운 님의 손을 마주잡고 살짝 흔들면 되네.”
“아하! 이게 바로 천계의 인사법입니까?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서로의 오른손을 내밀어 무기가 없음을 내보여 상대방에 대한 공격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는 인사법이라니 참으로 선한 인사법입니다.”
“천계의 인사법은 이렇게 손을 마주 잡고 흔든다.”
“민 사제, 잘 적어두시게. 우리 곤륜파의 역사가 될 순간이니까. 평소 뭐든지 기록하는 사제의 습관이 이렇게 도움되는 때가 오는군.”
용운이 보기에 옆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비롯해서 뭔가를 신명나게 적고 있는 사람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사관(史官)이 되었을 인재인 것 같았다. 붓으로 힘겹게 필기를 하고 있길래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첫인상도 좋게 가져갈 겸 선물로 붓펜을 포인트로 몇 개 구매하여 주자 붓을 들고 있던 사람은 ‘이게 뭔데?’하는 것 같았다.
“선물로 주시니 감사하게 받겠습니다만 이게 뭐하는 물건인지 천계의 풍토를 모르는 저로썬 도무지 상상이 안 갑니다.”
“천계…는 뭐, 됐고. 휴대용 붓이라는 건데 안에 먹이 들어있어 이렇게 뚜껑을 열고 쓰시면 됩니다. 편하게 기록하시는데 좀 도움이 되셨으면 해서 드리는 겁니다.”
‘이왕 우리들에 대해 기록하는 거 좋게 좋게 잘 기록해달라는 의미도 있고.’
간단하게 사용설명을 들은 민 사제라는 사람의 눈이 커다랗게 변하며 이내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민인생(閔麟生) 사제가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또 처음 보는군요.”
‘민인생이라…어디서 한번 들어본 이름 같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귀물(貴物)을 선물로 주시다니.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아, 이 미끄러운 필기감. 빠르게 마르는 이 속건성(速乾性)! 꿈에만 그리던 환상의 물건입니다.”
‘개당 천원도 안하는 붓펜 몇개 주고 이렇게까지 감사 인사를 받을줄이야…….’
다른 곤륜파의 문도들도 민인생이라는 사람들에게 다가와 나도 한번만 써보면 안되냐고 했지만 민인생은 자신이 받은 붓펜을 모두 품 속에 집어넣고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하하…민 사제가 귀중한 보물을 선물받았군요.”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정말 부러워요.”
‘자기들도 뭐 하나 안주나 하는 눈치네.’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선물을 주기엔 포인트도 좀 아깝고 그래서 모두가 다 같이 쓸만한 선물이 뭐가 없을까 하다가 장문인의 거처 앞에 적당한 크기의 공터가 있길래 괜찮겠다 싶어서 포인트로 이들에게 줄 공용 선물을 골랐다.
붓펜이야 작은 사이즈라 주머니에서 꺼내는 척하면서 구매해도 들킬 일이 없다지만 이들에게 줄 물건은 부피가 붓펜보다는 훨씬 큰 거라서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잠시 행글라이더 근처로 가서 짐가방에서 뭔가를 찾는 척하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다진은 분명 준비한 적 없는 물건을 짐가방에서 꺼내오는 용운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물건을 챙긴 적이 있었나?’
“어?”
“그 둥그런 건 뭡니까?”
“꼭 어릴 적 차고 놀던 돼지오줌보같이 생겼군요. 다른 건 물고기 잡을 때 쓰는 그물같이 생겼고.”
“얘가 그 돼지오줌보보단 훨~씬 좋은 겁니다.”
“그게요?”
이들에게 줄 선물이란 족구공 2개과 네트 2개였다. 사람들 숫자가 있어 하나만 줬다간 싸움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이왕 주는 거 하나를 주는 건 너무 없어 보여 2개씩 준비했다.
“이건 족구(足球)공이라는 겁니다.”
“발로 차는 공이라니…원래 공은 발로 차는 건데…….”
“제가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알려드리도록 하죠.”
곤륜파 문도에게 부탁해 내가 원하는 정도 길이의 나무막대를 구해다 줄 것을 부탁하고선 나무막대기를 구해오는 검풍을 날려 규격에 맞춰 코트를 그려줬다.
“호오, 검풍(劍風)을 저리도 가볍게 쓱쓱 쓰시다니 과연 신장께선 그 무위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자네도 그렇게 봤나? 범상치 않은 무재를 지니신 분이신 것 같으이.”
“천계의 신장이신데 아무렴 가진 무위가 평범하시겠습니까?”
“일 리가 있어.”
뒤에서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무시하고 군대에서 이등병부터 욕을 먹어가면서 배운 끝에 병장이 될 쯤에 날아다녔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족구장을 그려냈다.
‘흠, 내가 그렸지만 예쁘게 잘 그렸네.’
코트를 모두 그렸을 때 쯤 부탁한 사이즈의 나무를 가져다줘서 양 사이드를 수기(手氣)로 쳐내서 마감을 하고 코트의 가운데 양쪽에 하나씩 박아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눈에 콩깍지들이 씌었는지 고작 나무 작대기 두 개를 박은 것 가지고 대단한 것인냥 의미부여를 했다.
“방금 나무를 쳐낼 때 수기 보셨습니까? 검결지에 맺힌 수기가 훅하고 뽑혀져 나오는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빠른지 만약 상대방이 저런 식으로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수기를 뽑아내서 덤비면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단합니다. 신장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막대기가 저 딱딱하게 굳은 땅바닥에 쑤욱 박히는 게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처럼 제대로 박혔습니다.”
“소림에 천근추(千斤錘)가 유명하다던데 저 정도면 가히 만근추(萬斤錘)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만년이 지나도 저 자리에 굳건하게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냥 나무 자르고 박은 게 전부예요.’
이로써 두 개의 작대기와 하나의 네트 그리고 하나의 공만 있으면 완성되는 초간단 족구장이 완성되었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면 좋겠지만…이 정도 코트면 만들기도 어렵지 않고 공 하나로 놀기엔 나쁘지 않지.’
족구장의 코트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내게 사람들의 의문이 가득한 시선이 쏟아졌다.
“자! 제가 이 공을 가지고 어떻게 놀면 되는지 설명을 해드릴테니 잘 들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