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흐음, 이만하면 이젠 혼자서도 잘 하네.”
“…그런가요? 전 아직 더 배워야 할 거 같은데.”
“데바, 언제까지 내가 니 옆에서 항상 요리법을 가르쳐줄 순 없어. 당장 니가 배운 수많은 요리들을 생각해봐.”
“그건 그렇지만…….”
데바를 가르치는 것 말고는 이제 내가 청해에서 하고 싶은 일도 해야할 일도 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자신감을 가져. 각종 고급 요리법들을 배웠잖아. 스스로 노력한 시간들을 믿어. 앞으로 너에겐 배운 걸 소화하고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도 필요해. 여태껏 내가 가르쳐준 세상의 요리법들을 녹여내서 저 중원에서 먹힐 너만의 요리법을 만들려면 지금은 내가 네 옆에 있는 게 도리어 방해가 될 거야. 넌 날 너무 정답으로만 여기고 있어.”
“스승님은 제게 있어 항상 옳은 방법을 가르쳐주셨어요. 요리재료는 항상 신선하고 좋은 걸 골라야 한다는 것이라든가 손님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청결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스승님과 만나 요리를 배우기 전까진 제가 몰랐거나 무시했던 것들이었죠. 정말 감사드려요.”
“너에게 의지가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하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이 없었다면 난 널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고, 너 또한 지금처럼 능숙한 한 명의 요리사가 되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지금 처음의 가졌던 요리에 대한 열정을 계속 잊지 않았으면 해. 이게 내가 마지막 수업에서 해주고 싶은 말이야.”
부모는 때가 되면 자식이 자립하도록 세상으로 내보내야 한다. 언제까지고 품에 안고 있다간 그 타성에 젖어 밖으로 나갈 용기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데바는 이제 세상에서 자신이 배운 요리들을 내보이고 사람들의 평가를 받을 때가 되었다.
“앞으로 데바 선문객잔을 청해 제일 객잔으로 만든다면 언젠가 내가 너에게 부탁하는 날이 올거야. 중원에 와서 날 도와달라고.”
“진짜요?”
“그래. 그동안 나한테 배우느라 고생했다.”
“아니요, 정말로…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스, 승님.”
“왜 또 울어. 울긴. 내가 어디 죽으러 가니? 널 부를 때까지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니까 열심히 수련해서 다음에 볼 땐 나보다 더 나은 요리사가 되어 있길 바란다.”
[카아…거 주둥이에 침이나 좀 바르시게. 자네에겐 양심도 없나?]
‘그래, 사실 더 이상 가르치고 싶어도 내가 얠 가르칠 거리가 별로 안 남았다. 아니, 당장 요리솜씨가 어쩔 땐 나보다 더 나은데 무슨 스승이야. 스승은. 됐냐?’
용운의 현재 심정을 전혀 모르는 데바는 감정이 북받쳐 흐릿해진 눈으로 스승인 용운을 바라봤다.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피해자를 지켜보는 심정이 어떤 건지 알겠군.]
‘사제(師弟)끼리 마지막으로 오붓한 시간을 좀 보내겠다는데! 3자가 시끄럽구만.’
굳이 용운에게 더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비아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백아라는 여자 아이가 그렇게 하늘로 귀천해버리고 난 뒤 용운은 많이 흔들렸다. 다행히 주변에 쌓아놓은 그동안의 인간관계 덕분에 다진과 데바, 게사르 등의 인물들과 엮이며 힘든 시간을 잘 이겨냈고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제 스스로 알의 껍질을 깨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괜히 용운에게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 * *
게사르는 객잔에서 일하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무실로 오라는 용운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아, 왔어? 거기 앉아.”
“예? 예.”
평소에는 온갖 문서들이 잔뜩 쌓여있어 정신없게 보이던 용운의 공간은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꼭 어디 떠나실 분처럼 싹 치워놓으셨네.’
게사르의 스승도 자신에게 천기를 전하기 전 오랫동안 멀리 떠날 사람처럼 이곳 저곳을 청소했던 때가 있었기에 용운의 정돈된 방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게 아니라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어떤…걸 묻고 싶으신 건지?”
‘설마 이젠 나를 버려두고 다시 용이 사는 천계로 돌아가시려고 하시는 건가?’
게사르는 백아가 떠나고 난 뒤 분위기가 약간은 무거워진 듯한 용운이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긴장이 되었다.
“내가 이제 저기 아래 사천으로 내려가볼까 하는데…….”
“아! 역시 하늘로…가 아니라 사천이요? 아미라든가 청성이라든가 점창이 있다는 그 사천?”
“어, 그래. 그 사천.”
‘다행이다. 백아를 보러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이 아니었구나.’
사천으로 간다는 용운의 말에 긴장이 살짝 풀린 게사르는 뇌리에 스승님의 말씀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용을 도와라!’
“저도 따라가면 안되겠습니까? 아무래도 같은 정파끼리 교류도 하고 그런 적이 있어서 몇 번 가본 적이 있거든요.”
“오, 그래?”
초콜렛 네비라든가 하는 앱을 쓰려고 해도 이 세상엔 인공위성이 존재하지 않기에 GPS 기능을 작동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청해까지 올 때만 해도 하늘의 별을 기준점으로 삼아 비아를 통해 이동했는데 몇 번 청해와 사천을 오간 경험자가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이동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잘됐네. 그럼 내가 뭘 좀 줄테니까. 그걸 사용하는 법 좀 익혀보자.”
며칠 뒤 게사르는 용운으로부터 굉장히 부피가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그건 자신이 용운과 다진을 처음 봤을 때 하늘에서 타고 내려온 날개였다.
“제게 이 날개를 주시겠다구요?”
‘용은 사람으로 둔갑했을 땐 이런 날개를 타고 날아다니는 건가? 근데 내가 사람으로 둔갑한 용도 아닌데 나보고 이걸 어떻게 쓰라는 거지?’
“그냥 날개가 아니라 삼각비익(三角飛翼).”
게사르가 본 삼각비익은 용운의 말대로 삼각형으로 생긴 날개는 단단한 쇠로 된 뼈대와 생전 본 적이 없는 재질의 천이 얹어져 있어 마치 새의 날개같기도 했고 용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한 물건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넌 이걸 타고 나는 법을 배워야 해.”
“제가요?”
‘이 사람, 아니지 이 용이 미쳤나?’
게사르는 예전에 비해 잘 웃지도 않고 살짝 허무한 분위기가 감도는 용운의 눈빛에 살짝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다진이도 탈 줄 아는데 너도 금방 배울 거야.”
‘그 쪽도 사람이 아니라 용이잖아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지…….”
선녀처럼 생겨 가지곤 바쁠 때라든가 뭘 할 때 걸리적거리면 스승님으로부터 들었던 서역에 존재하는 마녀(魔女)처럼 성깔을 부리는 다진의 진실(?)을 몇 번 경험한 게사르는 점차 경계심이 커졌다.
“그래? 이거 탈 줄 모르면 우리랑 같이 사천에 못 가는데?”
“예?”
이 날이 지상의 길로 걸어가는 것만 생각했던 게사르가 세상엔 오직 하나의 길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날이었다.
* * *
“그때 그냥 다 집어치우고 여기로 도망쳤어야 했어.”
오늘은 용운과 다진으로부터 그동안 다진으로 지상과 야트막한 동산에서 배웠던 삼각비익의 비행법을 본격적으로 경험하는 날이었다.
날개를 타고 하늘을 날기 위해선 높은 곳에서 날아야 된다는 말을 용운에게서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 높다는 정도가 데바 선문객잔 옥상 정도를 말하는 줄 알았다. 게사르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어디 아주 높은 곳이 없을까 하는 용운의 혼잣말에 아무 생각 없이 곤륜파 앞의 여신봉이 높긴 하다는 대답을 한 게 화근이었다.
“이야, 시원하네. 이 정도는 되어야 비행할 맛이 나지.”
“진짜 그렇네요. 아주 시야가 탁 트인 게 사천까지 한번에 날아갈 수 있겠어요.”
“예. 예. 그러시겠죠.”
‘이것들은 역시 사람 자식이 아니야.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안한다고.’
여신봉으로 올라오면서 초절정고수의 오른 무위를 활용해서 사천까지 곤륜파의 경공으로 쉬지 않고 뛰어가겠다는 말도 용운에겐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말만 듣게 될 뿐이었다.
“잘됐네. 내가 그동안 몇 번 이야기했잖아. 곤륜파의 운룡대팔식같은 고절한 경신법(輕身法)이라면 비행하는데 더 좋다니까.”
몸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기류를 타고 나는데 훨씬 용이하다는 게 용운의 설명이었다.
슬슬 날 준비를 해보자는 용운과 신나서 날뛰는 다진의 대화를 들은 게사르의 시선에는 여신봉의 낭떠러지 밑으로 스승과 함께 지내던 둘의 거처와 그 뒤로 약간 올라가면 있는 스승의 무덤이 들어왔다.
“스승님, 어쩌면 스승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다하지 못하고 제자 오늘 스승님의 곁으로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을 감자 스승과 지냈던 어린 나날들과 용운을 만나고 경험한 신기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뒤에서 용운과 다진이 뭐라고 떠드는 것 같았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용운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 게사르를 보면서 다진과 대화를 나눴다.
“역시 곤륜파 문도라 다르긴 다르다. 딱 집중해서 날 준비를 하는 게.”
“용운님? 제가 보기엔 비행하다 죽을까봐 그냥 바들바들 떠는 것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초절정고수가 이런 거에 왜 떨어. 너도 떤 적이 없는데 쟤가 왜 떨어?”
“저희야, 많이 날아봤으니까 안 떨죠. 전 용운님이 항상 지켜봐 줬고.”
“쟤도 내가 지금 지켜봐 주고 있잖아. 심지어 지금은 너 처음 배울 땐 없었던 낙하산도 채워줬어.”
‘그거랑 그거랑 같냐? 쟤 다리 봐.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구만.’
다진의 눈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후들거리는 게사르의 두 다리가 보였다. 다른 건 섬세하게 잘 알아차리면서 간혹 지금처럼 둔탱이마냥 구는 용운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도 역시 지금 신나지? 간만에 비행하니까.”
“예~”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게사르의 귀로 두 사람이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웃는 소리가 들어왔다.
‘아주 신이 나셨구만. 좋아 죽네. 좋아 죽어. 누군 오늘 세상 하직할 것 같아서 눈물나는구만. 내가 오늘 살아남고 나서 저 용들이랑 다시 상종을 하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크읍.’
게사르가 오해로 인해 속으로 둘을 향해 분루(憤淚)를 삼키는지 모르는 용운은 게사르가 비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이상이 없는지 최종점검을 해주었다.
“자, 모든 장비에 이상이 없는 거 확인했고, 혹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등에 메고 있는 낙하산과 연결된 가슴쪽의 끈을 강하게 잡아당기면 돼. 우리가 뒤에서 따라서 날아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예. 예.”
“좀 긴장했어? 내가 좀 도움되는 이야기를 해주자면 마지막으로 발을 구르기 전에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를 모두 담아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도 괜찮아. 어떤 사람은 크게 욕하기도 했고.”
“쯧. 필요한 말만 하지. 쫌.”
등 뒤에서 누군가 크게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게사르는 습관처럼 그동안 배운 비행절차를 따라 하며 세뇌된 사람마냥 용운의 외침대로 여신봉에서 삼각비익을 타고 달려나갔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발을 떼는 순간 게사르는 마치 사자후(獅子吼)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이 미친 용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