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97화 (97/132)

97화

“무슨 일인데? 어디를?”

“백아(白兒)가…지금 많이 위독합니다.”

“가, 가보자. 아니다.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 내가 먼저 갈게.”

백아가 어디 있는지 은월 대원의 안내를 받고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경공으로 날아가 도착한 곳에는 하얀 눈처럼 귀여웠던 작은 아이가 생기 없이 창백한 얼굴로 숨쉬기도 힘든지 쌕쌕거리며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백아야…….”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백아는 때가 꼬질꼬질 껴있었고 다 낡아빠진 옷을 몇 번이고 접은 상태로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있던 아이였다. 내가 직접 아이를 설득해서 보육원에 데려와 여자 직원에게 부탁해서 깨끗이 씻기고 깔끔하게 옷을 입혔을 때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체구도 작고 마른 상태였지만 백아의 환한 미소는 너무나도 귀여웠다.

먹는 것과 입히는 것에 대해선 부잣집 아이들처럼 키우라는 나의 지시를 따라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들은 불과 몇주만 지나도 살이 오르는데 백아 또한 잘 먹인 덕분에 살이 부쩍 오르면서 볼살에선 사랑스러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 전 보육원에 손수 만들어 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신나게 웃으며 내 주변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 아이가 지금 얼굴을 찡그린 채로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인사를 하자 백아는 아픈 와중에도 날 보자 좋은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백아야…너 왜 이래.”

“아…저…씨…나, 이…상…해…좀…아, 파…….”

“잠깐만, 백아야, 아저씨가 백아 상태 좀 볼게.”

아이의 손을 붙잡고 기를 통해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고자 스캔해보고 있는데 보육원에서 의료를 전담하고 있는 신교의 소속 의원이 자신이 파악한 백아의 상태를 설명해왔다.

“1주일 전쯤 갑자기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여 교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두통약(아스피린)을 처방했을 땐 며칠 정도 호전되는 듯 했으나 다시 점점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그래도 그렇게까진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턴 팔과 다리에 피멍이 들었고 어제 밤부터 혈변과 혈뇨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교주님이 쓰신 의서(醫書)대로면 백아의 증세는 아무래도 급성 백혈병(白血病)인걸로 짐작됩니다.”

“뭐?!”

내가 아무리 대단한 지식을 갖고 있고 포인트로 어떠한 물건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현대의학을 재현할 수단도 부족했고 의학적 능력을 가진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일정 인원을 따로 빼내서 현대의학을 가르치고 교육해왔는데 그마저도 시행한 지 오래되지 않아 많은 부분에서 한계를 체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급성 백혈병이란 진단명은 청천벽력(靑天霹靂)으로 다가왔다.

의학은 하루 아침에 발전하지 못한다. 아무리 현대 의학에 관련된 모든 서적을 구할 수 있는 나지만 그 지식을 실행할 수 있는 의료 인력은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옮겨적은 의학 지식을 이들이 배워서 현실에서 활용하기까지 최소 10년은 필요했다. 의사는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의료도구 또한 제작해서 지원해야 했다. 메스라든가 리차드슨같은 수술도구같은 거야 어렵지 않게 제작을 한다고 쳐도 엑스레이라든가 MRI같은 장치들은 제작법을 알고 있다고 한들 이 시대에 당장 구현할 수 없는 장치들이었다.

그렇다고 포인트로 구입하려면 내가 현대로 넘어가는 것보다도 더 많은 포인트를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선 현대의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무균수술실을 구현한다는 것은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의료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 인력들이 나중에 성장했을 때 배운 지식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의료 도구와 약품 개발을 하기엔 아직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이 오기 전에 백아를 떠나보내실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백아가 많이 힘들어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의학을 발전시켰어야 했는데…….’

훌쩍.

아무리 빨리 시작한다고 한들 백아를 고칠 수 없단 걸 알면서도 후회가 되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자 백아를 담당해온 의원은 아이에게 정이 들었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울먹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대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백아야, 아저씨가 미안해. 아저씨가 좀 더 신경썼어야 했는데…아니, 더 자주 왔어야 했는데.”

“아저씨. 나, 이상하게 힘들고 너무 아파. 아저씨가 만들어준 설과랑 개이구 또 먹고 싶었는데. 콜록콜록.”

“말하지마. 백아야. 힘드니까 말하지마. 응?”

작고 가냘픈 백아의 몸은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도 연약해져 있었다.

‘비아,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비아의 아바타를 통해 백아의 몸을 투사해보자 현재 백아의 상태가 적나라하게 현 상황이 나의 시신경을 통해 들어왔다.

[현재 직접 보고 있으니 알고 있겠지만 간과 비장, 림프절이 크게 비대해져 있고 아이의 상태를 보아하니 소화관과 뇌에서도 출혈이 발생하고 있네. 급성 폐렴도 진행 중이고 골수아세포 비율도 20%를 훌쩍 넘었어. 상태가 너무 악화되어 있네. 급성이 아니고 좀 더 아이가 성장을 한 상태였다면 내 아바타를 통해 자네의 기운으로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있겠는데…이미 너무 늦었어. 기운을 불어서 강제로 탈태환골을 시키려고 해도 현재 아이의 몸으론 절대 버티지 못할 거야. 오히려 막대한 기운이 아이의 신체로 유입되면 손도 써볼 틈도 없이 이 자리에서 바로 사망할 거라고 보네.]

‘젠장.’

비아의 아바타가 내 시신경으로 띄운 아이의 신체 내부는 장기 전반에 걸쳐 빨간불이 번쩍이고 있었다.

[용운…이런 말을 하게 돼서 미안하네. 쉽지 않겠지만 아이의 고통을 생각한다면…오래 고통스럽게 하는 것보단 빨리 안락사를 시켜주는 것이 자네가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일세.]

비아의 말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이 맞았다. 하지만 내 욕심이 아이에게 고통받을 시간을 지속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손으로 아이의 숨을 거둘 수가 없었다. 백아의 손에는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조, 조금만. 이기적이라는 걸 알지만 조금만 더 백아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아직 백아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못했어.’

[용운.]

이 세상에 온 뒤로 20대 중반이 되어버린 나는 지금 처음으로 절망을 맛보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초절정고수라고 한들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게 날 너무나도 무력(無力)하게 만들었다.

‘젠장. 빌어먹을. 아무리 초절정고수면 뭐하고 돈이 많으면 뭐해. 내 앞에 있는 아이 하나 살리지 못하는데.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백아의 손을 붙잡고 눈을 감은 채로 세상에 존재하는 신에게 빌었다. 기적을 보여 달라고.

덜컥

“용운님!”

“스승님”

“어떻게 됐습니까?”

“세 분 중환자실에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어요.”

세 사람이 문을 열고 찾아오자 내 옆에 시립해있던 의원이 멀찍이 두고선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세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다진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려 토닥였다.

“예…쁜…언…니…도 왔…. 네?”

“백아야, 미안해. 언니가 너무 늦게 와서. 말하면 숨차니까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치?”

내 어깨에서 손을 뗀 다진이가 침상 반대쪽으로 가 백아의 반대편 손을 잡아주었다.

“우리 백아…손이 많이 차가워졌네…호오…저번에 봤을 때만 해도 따끈따끈했는데. 흑.”

성인이 5명이나 있고 그 중엔 초절정고수가 둘이나 있는데 아이 하나 살리지 못하는 게 지금 내가 마주한 한계였고 현실이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아이의 가쁜 숨소리를 듣는 가운데 들리는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는 꼭 나를 채찍질하는 것만 같았다. 좀 더 노력했어야 했다고.

백아는 결국 그 날 밤 떠나보내야만 했다. 얕은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감기 전 백아는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자신만의 길을 떠나버렸다.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던 빗소리와 천둥소리는 고맙게도 방 안에서 난 많은 소리들을 묻어 주었다.

* * *

선문보육원에서 최초로 사망한 아이의 장례식은 멍한 상태에서 지나갔다. 장례기간인 3일동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그 이후로 며칠이 지나 매일같이 결재서류가 책상에 쌓이고 있는데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나는 창밖을 보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 잊고 떠나고 싶다.’

“용운님, 아니, 내 친구 용운아. 이젠 정신차려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다진아…….”

“너 지금 힘든 건 다 알아. 아는데 니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도 생각해야지. 널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다 널 걱정하잖아.”

다진이 들고 온 다기(茶器)를 책상에 내려놓고 집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머리를 조용히 안아줬다.

“아이구, 이럴 때 보면 몸은 다 컸는데 알맹이는 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내가?”

“어릴 때, 용운이 니가 아끼던 어린 양이 죽었을 때도 지금처럼 정신 못 차렸잖아. 어딜 가도 그 양이랑 같이 갔던 곳에 가면 눈에 그 양이 아른거린다고. 툭하면 눈물 흘렸던 거 생각나네. 그 양 이름이 뭐였더라. 그 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너 그때 이후로 아예 양들한테 이름 안 붙여줬잖아. 양들한테 정 붙여봐야 마음만 아프다고.”

내 기억은 아니었지만 용운은 어릴 적 떠나보낸 그 양의 이름을 분명히 가슴 한편에 기억하고 있었다.

“백운(白雲)이?”

“맞다. 백운이. 니가 말하니까 생각나네. 하얀 구름처럼 몽실거리는 털이 너무 포근하다고 붙여줬었던 것 같은데.”

“맞아. 그랬지. 백운이는 다른 양들하고 달랐어.”

그 양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다진이는 날 꼬옥 껴안으며 말했다.

“양치기가 양 하나 잃었다고 정신 못 차리면 다른 양들한테도 피해 가는 것도 알지?”

“알지. 그때도 멍하니 다른 양들 엉뚱한 곳에 데려갔다가 양을 다치게 했었으니까.”

“더 길게 말 안 한다. 너 똑똑하잖아.”

“칫.”

따스한 다진이의 품에 안겨 마음을 정리하며 조용히 있었는데 내 머리를 안고 있는 다진이도 말이 없었다. 다진의 품에 안긴 시간이 길어지자 슬슬 정신이 들면서 조금 상황이 이상해졌다.

‘음…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지?’

날 위로하며 안아준 다진이를 내가 밀치며 떼어내는 건 아니다 싶었고 그렇다고 다 큰 성인남녀가 계속 이렇게 부둥켜안고 있는 것도 좀 그랬다.

용운이 약간 당황하고 있는 중 다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심장 소리 너무 큰 거 아니겠지? 얘는 언제까지 날 꼬옥 끌어안고 있을 거야. 얘랑 이러고 있는 게 나쁘진 않은데…심장이 뛰는 소리가 크게 들릴까봐 그게 좀 부끄럽네.’

다진은 점차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소꿉친구 사이는 좀처럼 평범한 성인남녀들의 관계로 변하기가 쉽지 않았다.

둘의 이런 상황을 해결한 건 다진의 배에서 난 소리였다.

꼬르―륵.

꼬르륵 소리에 당황해서 용운을 안고 있던 다진의 손이 살짝 풀리자 용운은 이때다 싶어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다진의 등을 안고 있던 손을 풀고 다진과 눈을 마주치며 일부러 장난치듯 말했다.

“배고프냐?”

“뭐래?”

“지금 배에서 꼬르륵 소리 엄청 크게 났는데? 나 지금 배고프니까 얼른 채워 넣어 달라고. 천둥소리인줄.”

“아니거든!”

“맞는데?”

“아니라고 했다.”

“어허, 지엄한 교주님께 이리도 무엄한 신도가 있다니! 내 한여사에게 말해서 관리를 좀. 앗”

분위기를 망치는 용운의 헛소리에 다진은 자신도 모르게 다진의 머리로 손이 나가버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사과를 했다간 꼴이 우스워지겠다 싶어서 일부러 화를 내듯 말하곤 용운이 붙잡으려고 하는데도 못 들은 척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크흠, 이제 정신을 차리신 것 같으니 미천한 소녀는 이만 나가보겠사옵니다. 교.주.님!”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다진아. 기다려봐.”

그날 다진이 전한 위로가 먹힌 것인지 용운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용운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선문보육원의 이름을 백아보육원으로 변경하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을 보육원의 이름으로 남겨 다시는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용운의 다짐이 담긴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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