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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95화 (95/132)

95화

“스승님, 저 지금 극락에 온 거 아니죠?”

“응, 아니야.”

“하아아…저번에 가르쳐주신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빵을 만들어 먹었을 때도 너무너무 행복했거든요? 근데 이건…그거랑은 수준이 달라요. 스승님이 알려주신 빵의 수준이 절정고수라면 이 빵은 화경의 경지라고 하면 될까요?”

‘빵이랑 케이크는 엄밀히 말하면 카테고리가 다른데…케이크는 제빵이 아니라 제과니까…….’

“흐으으음~ 이 음식을 원시천존님께서 드셨다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이고 나발이고 극한의 인위(人爲)가 최고다.’ 하셨을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음식을 맛본다면 과연 싸울 일이 있을까요? 이건 모두에게 널리 널리 알려야 할 음식입니다!”

‘게사르, 방금한 소리는 곤륜파 장문인과 세상을 떠난 니 스승님이 들었다면 당장 파문시킬까 고민할만한 소리 아니냐?’

“맞아요, 용운님. 우리 데.바 선문객잔에선 이거 꼭 만들어 팔아요.”

“그쵸 그쵸?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 조각씩만 더 먹을까요?”

“그래요!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게사르 님은요?”

“저도 동의! 우리 한 조각씩만 더 먹는 걸로 하죠.”

다진, 데바, 게사르. 이 세 사람이 한조각을 먹고 방방 뜨게 만든 이 음식의 이름은 바로 생크림 케이크였다. 하얀 눈이 내려앉은 것처럼 뽀얀 크림이 얹어진 생크림 케이크를 한 조각씩 잘라 개인 접시에 올려줘서 먹게 했더니 나온 반응이 이것이었다.

“이 개이구(愷怡究, 궁극적인 기쁨으로 마음이 즐거워지다.)라는 거 왜 이제 가르쳐주신 거에요! 저 너무 행복해요.”

“맞아! 왜 이제 만들어주신 거죠? 용운님. 저 서운하려고 그래요. 우리가 하루 이틀 같이 지낸 것도 아니고. 진작 만들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얘들아, 너희들 이거 만들 때 옆에서 다 지켜봤잖아. 기억 안나?”

“예?”

케이크를 만드는 데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설탕(雪糖)이 필요하다. 푹신하고 말랑말랑한 빵을 만들기 위해서도 설탕이 필요하고 부드러운 생크림을 만들기 위해서도 역시 설탕이 필요하다. 설탕이 없이는 순백의 생크림 케이크는 만들 수가 없다. 생크림 케이크는 설탕으로 쌓아 올린 성(城)과 같다.

“만들면서 봤겠지만 개이구에는 설탕이 엄청 많이 필요해. 고작 한 두 조각만 먹어도 니들이 이렇게 맛에 취할 정도로.”

“아…말씀을 듣고 나니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음식이네요.”

인류의 역사에서 설탕은 과거 극한의 기호품 내지는 의약품으로서 이용되었다. 중원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청나라 시대나 들어가서였으니 지금 시대에선 하얀 설탕이 이토록 듬뿍 들어간 케이크는 명나라의 황제도 맛보지 못했을 터였다.

지금 우리가 맛보고 있는 설탕은 사탕무의 재배 이후 가능하게 된 거였다. 열대기후에서나 재배가 가능한 사탕수수와 다르게 사탕무는 온대기후에서도 충분히 재배가 가능한 식물이라 신교의 지휘 아래 위구르에서도 재배지역을 점차 늘려가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인류가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방법을 공유하게 된 건 모두 프로이센의 과학자였던 프란츠 카를 아샤르(Franz Karl Achard) 덕분이었다.

아사르에게 비싸게 설탕을 팔고 싶었던 영국의 설탕 농장주들이 찾아와 거액을 안겨다 주며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방법을 아예 세상에서 제거해달라고까지 했지만 아사르는 그 돈을 받지 않았고 그렇다고 자신이 사탕무 추출법으로 공장을 차려 돈을 벌지도 않았다.

그는 도리어 세상에 널리 알려 그 전까지만 해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설탕을 평범한 사람들도 맛볼 수 있는 기호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인류에게 설탕을 평범한 기호품으로 만들어준 아사르는 아이러니하게도 파산하여 빈곤한 상태로 죽었다.

“황제도 아직 맛보지 못한 그런 음식이라니!”

“청해의 부자들은 정말로 복 받았네요.”

“그러게요. 앞으로 이 데바 선문객잔에서 개이구를 팔게 되면 얼마나 또 환장할지.”

“사장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면 되나?”

“당연하죠. 스승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우리는 돈 많이 벌어야 한다고.”

“그,그래?”

“설과를 먹었을 때랑은 또 다를 거 같아요. 설과는 차랑 같이 먹기에는 좀 그런데 이건 차랑 같이 먹어도 좋네요. 쌉싸름한 차 한 모금을 마시고 개이구를 한입 먹으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고. 또 개이구를 한입 먹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면 입 안에 남아있는 단맛이 사라지면서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니…배만 안 부르다면 하루종일도 먹고 싶을 것 같아요.”

“그건 좀 아니지 않니? 모든 사람들이 니들처럼 아귀들린 것마냥 먹어대는 게 아니라고. 이건 식사가 아니라 식사하고 차랑 함께 즐기는 후식이고. ”

“아니거든요?”

“용운님, 우리 여기 이렇게 많이 있는데 더 먹으면 안돼요? ”

“응, 안돼.”

“왜요? 어차피 이거 놔두면 다 못 먹고 버릴텐데 우리가 먹으면 낭비하지 않으니까 좋은 거 잖아요? 용운님 말씀대로면 비싼 설탕이 듬뿍 들어갔다면서요.”

“그래서 안돼. 가져갈 데 있어.”

“어딜 가져가요? 이 귀한 걸?”

내 말을 듣고 크림을 입가에 묻히면서 먹고 있던 세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 여기 오는 거면 미리 말씀을 하시지.”

“미리 말해줬으면 니들 먹을 거 뺏길까봐 더 먹었을 거라고?”

“용운님~ 절 어떻게 보고.”

‘돼지.’

미란다 원칙에 따라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되어 굳이 다진이의 날카롭고 뽀죡한 눈빛을 바라보며 입을 열진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난처한 날 구해주기 위해 구원자가 나타났다.

“아.저.씨!”

“오! 백아(白兒). 잘 있어어요? 다진아, 아이 앞이다.”

“나중에 이야기해요.”

다진이와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다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응. 아저씨가 가져온 그건 뭐야?”

“이거? 이게 뭔지 궁금해요?”

“저번에 먹었던 차가운 그거? 설과였나?”

“아니~ 아닌데요.”

작고 하얀 얼굴을 한 아이의 조막만한 손이 내가 들고 있던 상자를 가리켰다가 아니라는 대답에 아이의 표정이 실망으로 변했다.

“왜요~? 백아는 저번처럼 설과 먹고 싶었어요?”

“응.”

데바 선문객잔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의 일부를 가지고 연 선문보육원에는 청해 각지에 버려진 아이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먹을 게 없어서 가난해진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맡아준다는 말에 현대인들과 다르게 너무도 쉽게 아이들을 버렸다. 쉽게 버리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이 있을 리 만무했다. 백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아이의 경우는 보육원에 들어오고 나서야 제 이름을 갖게 된 케이스였다.

“백아야, 이 아저씨가 오늘 가져온 거 먹어보면 설과만큼 맛있을걸?”

“거짓말. 설과보다 맛있는 게 어딨어.”

“진짜야. 아저씨가 가져온 설과 먹기 전에도 백아는 만져만 보고 차갑다고 안 먹을라고 했지?”

“응.”

“근데 먹어보니까 어땠어? 맛있었잖아.”

“맞아. 하늘만큼 땅만큼 맛있었어.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먹어본 꿀맛.”

고작 5~6살쯤 된 아이의 인생이 길어봐야 얼마나 길까 싶겠지만 아이는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처음 맛본 순간은 최고의 순간으로 여기는 듯했다. 아이스크림을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정도로.

“그러다가 저번에 설과 많이 먹어서~ 백아 배가 아야했잖아.”

“응. 아야했어.”

아이는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의 질감과 맛에 반해 그날 넉넉하게 준비해온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어 탈이 났었다.

“차가운 거 많이 먹으면 배탈나는 거 이젠 백아도 알지요? 그래서 오늘은 백아 아프지 말라고 아저씨가 설과처럼 먹어도 배탈 안 나는 걸로 가져왔어요.”

“진짜! 아저씨 최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

케이크가 든 상자를 한손에 든 나는 백아를 안아들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한군데에 모여 시장통을 이루고 있었다.

“용운님, 너무 힘듭니다.”

“어, 게사르. 고생 좀 해.”

“애 보는 것보다 차라리 설과 만드는 게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어?”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스크림을 입에 올리는 게사르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으나 지금 내 두 손은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게사르의 생각 없는 발언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왔다.

“설과?”

“아저씨, 아저씨가 설과 만들었어?”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가 설과 만드는 사람이야?”

“아저씨가 오늘 설과 가져왔어?”

거대한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개미떼와 같이 게사르의 주변으로 삽시간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요, 용운님! 저 좀!

“그러니까 애들 앞에선 조심했어야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자업자득?”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백아는 자업자득이 뭐냐고 물었다.

“자업자득이 뭐냐면 자기가 한 잘못의 결과를 자신이 돌려받는다는 거야. 백아한테는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나?”

“아니야. 이해했어.”

“이해했어? 큭.”

턱을 치켜들며 자신이 이해한 자업자득의 예시를 백아는 설명했다.

“저번에 백아가 설과 많이 먹어서 배탈난 거랑 같은 거지? 백아도 다 알아.”

“어?!”

‘진짜 이해했네?’

“아하하하하하, 아저씨. 표정 뭐야. 너무 웃겨!”

깜짝 놀란 내 표정이 웃긴지 백아가 밝게 웃으며 내 얼굴에 찰싹하고 달라붙었다. 백아의 몸은 5~6살의 아이라기엔 제대로 먹질 못해 작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내 얼굴을 감싸 안아 그 온기를 전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의 몸에서 나는 젖내라고 해야 할까 싶은 그 냄새가 마치 댕댕이들의 앞발처럼 고소하게 다가왔다.

넓은 식당에 아이들이 1인당 2조각씩 잘라서 나눠준 케이크를 먹느라 바쁜 동안 백아는 내가 어디라도 갈 것 같은지 내 손을 꼭 붙잡고 다른 한손엔 포크를 쥐고 케이크를 조금 자르더니 나에게 먼저 건넸다.

“응? 백아, 아저씨 주는 거야? 백아 먹을 거 2조각 밖에 없는데?”

백아는 쑥스러운지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포크를 한번 더 나에게 들이밀었다.

“와암. 맛있다. 백아가 줘서 더 맛있는 거 같아.”

아이는 내 웃는 얼굴을 마주하며 그제야 자신의 입으로 케이크를 가져갔다.

“아이고~ 이쁘다. 우리 백아. 목 막힐 수 있으니까 여기 음료수랑도 같이 먹어. 알았지?”

“응!”

꿀떡꿀떡 음료수를 삼키는 백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면서 아이의 얼굴을 보자 그 얼굴엔 누가 봐도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아저씨, 이거 진짜 맛있다.”

‘이런 게 인생이지.’

아이들을 주기 위해 일부러 포인트로 대량 구매해서 카프리X 오렌지 망고 맛을 커다란 병에 옮겨 담아온 보람이 있었다.

[개당 얼마 하지도 않는 걸 사놓고 생색은.]

‘싸서 산 게 아니라 음료수라면 잘 안 주는 아이 엄마들도 애들한테 신경쓰지 않고 먹인다고 해서 특별히 골라서 산 거거든?’

케이크를 먹고 음료수까지 마신 백아에게서 잠시 시선을 둘러 주변을 둘러보자 다진이, 데바, 게사르 모두 다른 보육원의 직원들과 함께 아이들의 옆에서 케이크를 먹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다들 바쁘구만.’

[보기 좋군.]

* * *

한차례 폭풍같은 케이크 타임이 지나가고 단 걸 먹은 아이들은 넘치는 당분에 폴짝폴짝 뛰어다니다 이내 지쳤는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유리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보육원을 담당하는 부원장이 내게 다가왔다.

“원장님, 아이들 모두 양치질 시켰고 다들 잠에 든 거 확인했습니다.”

“그래, 고생했어요. 다들 힘들었을텐데 아이들이 먹었던 개이구. 직원분들 드시라고 따로 넉넉히 챙겨놨으니까 다들 쉬면서 먹어요.”

“감사합니다.”

부원장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키자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린 세 사람이 한사람씩 내게 왔다.

“스승님, 전 차라리 객잔이나 열심히 할래요. 애 보는 거 너무 힘들어요.”

“저도 동의합니다. 하루 종일 설과 만드는 게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아니, 설과를 만들면 내공이 쭉쭉 차는데 애를 보는 건 기가 쭉쭉 빨려나가는 기분이에요.”

“우와…엄마는 어릴 때 나 어떻게 키웠지? 나도 쟤들처럼 저랬나?”

내 기억에 따르면 다진이는 보육원의 아이들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너도 어릴 때 저랬어. 내가 기억해.”

“읔, 갑자기 엄마한테 미안해지네. 엄마 보고 싶다.”

“저도 스승님이 그리워지네요.”

휴식을 위해 차 한잔씩 마시고 다진이와 데바는 따로 직원을 위한 휴게 공간으로 이동해 잠을 좀 자야겠다고 했다.

“게사르, 자네는 안 쉬어도 돼?”

“저기…용운님께 궁금한 게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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