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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94화 (94/132)

94화

내가 막바지에 힘을 회수한 걸 몰랐는지 땅에 처박힌 게사르는 크고 거대한 검기에 맞고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저… 주마등을 봤습니다. 제가 처음 곤륜파에 들어간 순간부터 마치 누군가 그걸 그림으로 그려 휘리릭하고 넘기는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더군요.”

“미안하다. 나름 힘을 회수한다고 했는데.”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죽을 뻔한 위험만 느꼈을 뿐 실제로 죽을 위험에 처했던 건 아니니까요.”

“감사하고 싶다고?”

“예, 그동안 이렇게 실전적으로 검을 나눌 만한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곤륜파의 문도끼리 하는 비무는 서로 어떤 검을 쓰고 어떤 보법을 쓸지 서로가 훤히 알고 있으니 아쉬웠기도 하고 말이죠. 예전에야 산에서 내려와 마두들을 때려잡고 다니는 정의행(正意行)을 하는 걸로 다양한 실전을 경험했다지만 지금은 때려잡을 마두들이 없지 않습니까?”

“그, 그렇겠네. 때려잡을 마두들이 없어서 참 아쉽겠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렇게 제가 익힌 모든 걸 쏟아부어도 받아주시는 용운 님같은 실력자와 실전같은 대련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죽을 위험은 없었다곤 해도 검기에 후려 맞아 바닥을 구른 뒤에 이토록 맑게 웃을 수 있다니 얘도 정상은 아니지 싶었다.

‘역시 무림인은 뇌 어디 하나가 고장난 것 같아.’

용운이 속으로 살짝 미친놈을 쳐다보듯 하는 걸 모르는 게사르의 입장에선 자신과 용운의 비무를 하나도 빠짐없이 용의 기물에 담아 이렇게 다시 볼 있으니 너무나도 행복했다.

“원시천존. 아! 용운님께서 마치 제가 어디로 움직일지 아는 것처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버리는군요.”

“여기서 들어올 땐 너무 대놓고 직선적으로 검을 날리기보다는 이렇게 해서 검이 어디로 갈지 상대방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끝까지 숨기는 게 좋아.”

용운이 영상을 보고 게사르의 검을 흉내내서 어떻게 공격하면 더 좋을지를 직접 시범으로 보이자 게사르의 눈이 어느 때보다 빛이 났다.

“대, 대단합니다!”

시범을 통해 경험해보자 검을 잡고 있는 용운의 손날 바닥만 보이니 검이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방법도 있었군.’

“그리고 여기. 여기서 보면 니가 허초를 포기하고 실초로만 싸우기 시작했잖아.”

“그랬습니다. 용운 님이 마치 제 검을 읽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허초를 쓸 때마다 피하시기에 안되겠다 싶어서 전부 실초로 들어갔죠.”

“차라리 여기서 실초로 붙을 때 설령 상대방이 막아도 이걸 뚫고 충격을 남긴다는 느낌으로 침투경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내가중수법 말씀이십니까?”

“한번 검에 검기를 씌워볼래?”

“알겠습니다.”

나는 검을 들고 게사르에게 상대해보라고 한 뒤 천천히 움직여 최대한 힘을 억제한 상태에서 영상에서 보인 것과 같은 게사르의 움직임을 흉내내어 검을 마주댔다.

“읍”

“어때?”

“이, 이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용운이 검을 통해 약하게 줄인 상태의 침투경을 전달하자 과연 용운의 말이 뭘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알고 막아도 막은 게 아니게 되잖아? 검을 들고 대결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실초를 몸놀림으로 피하는 게 아니라 검을 들어 마주쳐야 하는 순간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유도를 하게 되면 상대방은 몸으로 피할 수도 없고 검으로도 막을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는 거지.”

“그러합니다. 대결이 지속될수록 충격이 누적되겠군요.”

“침투경은 육체에 쌓이면 쌓일수록 그만큼 대응하는 자의 움직임도 느려지니 그 다음부턴 허초와 실초를 섞기도 좀 더 편해질 거고.”

“허초를 빠른 몸놀림으로 피해버리는 상대의 움직임을 강제하는 거군요.”

“그렇지. 내가 유리한 판으로 상대방을 데려오는 거야. 상대방이 유리한 판에서 싸우면 이기기 어려우니까.”

게사르는 용운과 이런 실전적인 가르침을 받게 된다는 것이 너무도 새로웠다. 비무를 한 상대의 외적으로 나타난 모든 걸 하나하나 분석해서 행동의 의도를 찾아내고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자신의 대응법의 잘잘못을 가리는 방법은 용이 가진 이 기물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인간들끼리는 이런 식으로 비무를 한 자들이 서로 기술의 허와 실을 따지고 뭐가 더 효율적인지를 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같은 문파의 동문끼리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만약 서로 다른 문파일 경우라면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것이었다. 절초라고 할 수 있는 진신절기나 오의(奧義)를 사용하여 그 비밀이 외부로 유출된다는 것은 그 문파의 비전(祕傳)이 외부로 흘러나가 자칫 나중에 해당 문파와 대립하게 되었을 때 곤륜파의 위험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모든 걸 꿰뚫어보는 용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용운의 경우, 게사르와는 입장이 달랐다.

‘쓰읍, 이거 괜찮은데? 다진이가 진짜 흔들림 없이 잘 찍어놔서 박진감이 넘치네. 앞으로 서로 대련하는 장면을 찍어서 뭐가 더 좋았을 것 같은지 자세는 어떠했는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기에 정말 좋은 것 같다. 나중에 카메라라도 포인트로 구매해서 우리 신교인들끼리 무공수련할 때 쓰게 해볼까? 아니면 연구원에 보내서 다른 문파의 무공을 분석하는데 쓰게 한다거나?’

아무리 처음에 초식을 정확하게 배운다고 할지라도 무공을 익히고 사용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초식을 자신의 몸에 맞게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때론 자신은 정확한 초식을 구사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머리로 상상한 것과 달리 자세가 아예 틀려지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의 자신이야 기를 발산하여 상대방과 자신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게 되었기에 마치 3자처럼 자신을 객관화하여 그런 잘못된 부분을 수시로 교정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 시대에선 기술의 오픈은 해당 문파의 기밀이 유출되는 것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얘는 좀 특이하지. 분명 절초같은 것들도 서슴없이 사용하곤 하잖아. 원래대로면 비무에서 그런 것까지 공개하진 않는데.’

용운은 묘한 눈빛으로 반복해서 영상을 보고 있는 게사르를 홀깃 쳐다봤다.

게사르와의 비무 분석을 끝내고 용운은 오늘 찍은 영상을 김PD에게 보냈다. 다진이 꽤나 잘 찍은 덕분에 CG가 들어간 영화와는 전혀 다른 날 것의 긴장감과 실제같은 파괴력이 영상에서 느껴졌다.

* * *

김PD는 오늘도 어김없이 클라우드에 업로드된 영상을 보면서 팝콘을 먹고 있었다.

“이야, 미쳤네. 미쳤어. CG같은 느낌이 어떻게 하나도 없냐. CG가 이렇게 엄청 들어갔을 게 뻔한 영상인데도 이연길이나 성용이 나오던 80년대 액션영화에서나 볼 법한 실전적 연출이 느껴진다는 게 참.”

황야의 무법자처럼 서로 검을 들어 상대방의 몸을 향해 차가운 날을 들이미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영상에 롱테이크로 컷 편집 없이 너무도 맛깔나게 담겨 있었다.

“근데 신기하긴 하단 말이지. 보통은 VFX(시각효과)를 입히는 과정에서 배경음악이라든가 컷 편집도 집어 넣을텐데 이번에도 검기인가 하는 그 기술을 쓸 때만 시각효과를 집어넣고 대부분의 경우엔 올드맨의 장도리씬처럼 롱테이크로 찍어놨네.”

그동안 영상편집을 할 때마다 매번 느껴왔던 천마TV의 영상들의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자신이라면 여러개의 카메라로 같은 장면을 한번에 찍어 시점을 달리하여 영상을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했을텐데 천마TV의 영상제작자는 무슨 고집인지 모든 영상들을 하나의 카메라로 컷 편집을 하나도 안하고 만들고 있었다.

“아쉽다. 아쉬워. 카메라 몇 대만 더 들고서 동시에 찍으면 좀 더 편집하는 맛도 살아날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건 영상을 고화질로 찍어놔서 약간 화질이 깨지겠지만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부분 부분 장면을 확대하여 클로즈업을 하는 방식으로 작업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김PD는 1시간짜리 영상을 영상제작자라든가 편집자가 아닌 그저 한 명의 구독자로서 팝콘을 먹으며 다 보고 나선 편집자 모드로 전환했다. 손가락과 손목을 이리 저리 늘리며 스트레칭을 한 김PD는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슬슬 시작해봐?”

1시간짜리 영상을 20분짜리로 편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분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일반인 너튜버들의 경우 자막작업까지 모두 평균적으로 10시간을 잡는 게 일반적이었다. 방송국에서 편집자로서 전문 경험을 마친 김은혜가 한다면 그런 영상들을 편집한다고 할지라도 10시간이나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만 천마TV의 영상은 예능이나 드라마와 다르게 영화쪽이었기에 영상의 장르도 다를뿐더러 추가해야 하는 작업도 달랐다.

영화 쪽은 대학 다닐 때 단편 찍어보면서 경험한 게 전부였던 김PD는 천마TV의 편집자가 되고 난 이후 영화편집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뭐든 한번 시작하면 덕질을 하는 덕후의 기질을 최대한 발휘하여 영상을 편집하지 않는 시간엔 영화에 대한 공부를 무척이나 하고 있었다.

김PD는 3일을 투입해서 롱테이크로 찍은 영상에 배경음악과 효과음만 더한 버전은 구독자들 중에서도 팬가입을 한 사람들만 볼 수 있도록 업로드를 걸어놓고 롱테이크를 잘라서 자신만의 컷 편집을 가미한 영상은 모든 구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10분 정도의 영상으로 만들어 업로드를 걸었다.

“와, 다 끝났다. 잘래. 너무 피곤하다.”

책상 위에 트로피처럼 가득 쌓여있는 배달음식 용기들과 각종 음료수 캔 그리고 테이크아웃으로 배달시킨 커피잔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피로감이 더 컸다.

“몰라 몰라. 나중에.”

김PD가 침대로 자신의 몸을 던져 수마의 바다로 의식을 내던진 사이 천마TV의 구독자들에겐 알림이 떴다.

- 요즘 중국 영화들은 천마TV 보고 진심 배워야 된다.

- 그러게. 이게 사람들이 바라는 무협영화의 최신이지.

- CG를 떡칠해서 영상 자체의 맛은 떨어진 요즘 중국 무협영화들 볼 때마다 갑갑했는데 천마TV 영상 보니까 확 풀리네. 이거지! 홍콩영화가 나락가지 않았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 와…같은 업계인으로서 매번 놀랍니다. 진짜로 뚜까 맞고 뚜까 패는 것 같네요. 보통은 중간 중간 컷 편집으로 맞은 것처럼 소리만 입혀서 연출하는데 이 영상 보면 3분 20초라든가 5분 10초의 장면들에서 카메라를 안 돌리고 그냥 논스탑으로 가잖아요.

- 지렸다. 칼에 베일 때마다 옷자락이 스르륵하고 잘리는 게 꼭 진짜같네.

- 크크크크. 미.쳤.다! 서부극에서나 느꼈던 긴장감을 너튜브 영상 보면서 느끼고 있네. 저 광선검같은 거에 옷이 스윽 잘리고 핏기가 팟하고 비치는 게 너무 리얼해.

- 윗분, 무협에선 광선검이 아니라 검기라고 하는 겁니다. 광선검은 별들의 전쟁같은 SF 장르에서 쓰는 단어구요. 장르가 다르면 쓰는 단어도 다른 법이죠.

- 그런 건 몰?루. 난 18분쯤에 무슨 레이저포마냥 검에서 뿜어지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을 뿐이고.

- 곤륜파 도사라고 했나? 저 사람이 검으로 암만 막아봐야 교주님이 무슨 도끼로 찍어버리듯 검으로 후려치니까 퍽퍽 밀리네.

- 님들? 채널 가입은 안하고 구독만 하시죠? 이렇게 편집버젼으로 올라오는 거랑 다르게 롱테이크 영상은 다른 의미로 지립니다.

- 이거 진짜임. 꼭 진짜 검으로 때리고 진짜 검으로 막는 것 같음. 어설프게 때리는 척하고 대충 고개돌리면서 효과음 입히는 영화랑은 차원이 다름.

- 바로 가입하러 갑니다.

- 아…제발 교주님. 앞으로 이 비무 영상들 시리즈로 가면 안되나요? 제가 실전같은 느낌을 조아하는데 이젠 WFC도 눈에 안 들어와요. 다음엔 무기 안 들고 하는 맨손 격투도 한번 부탁드립니다.

꼼꼼하게 영상의 댓글들을 찾아 읽던 용운의 눈에 마지막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비무 시리즈?…WFC처럼 맨손으로 이종격투기 느낌나게 한번 찍어달라고? 나쁘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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