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데바 선문객잔의 시스템이 자리잡힌 게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처음 생각했던 대로 여행을 다시 시작해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중원에 간다고 했는데 그냥 잠깐 들리려고 했던 중원 입구도 아닌 청해에서 엄청 시간을 보냈네.’
[그래도 지난 시간동안 노력을 했으니 청해를 위구르에서 이어지는 물류 거점 포인트로 확실히 만들지 않았나?]
‘그건 그렇지.’
외부에는 데바 선문객잔으로 알려져 있고 일월신교 내부에선 선문객잔 청해점이란 공식 명칭을 가진 이 가게는 확실히 이곳 청해에서 확고한 포지션을 잡았다. 아이스크림이 유명해진 이후로 데바 선문객잔의 1층은 카페로, 2,3층은 음식점으로 탈바꿈을 시켰다. 1층에서 아이스크림만 팔았다면 나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라고 하지 카페라고 표현하진 않았을 것이다.
데바 선문객잔의 최고의 자랑인 설과(아이스크림). 이 아이스크림이 부드러울 수 있는 이유는 급속냉동이란 기술 덕분도 있지만 아이스크림 전체의 절반 정도가 공기로 되어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이를 빙과 업계에서는 오버런 100%로 표현하는데 이 오버런 비율을 20~30%로 낮추면 공기의 비중이 그만큼 줄어들고 아이스크림의 비율이 증가해서 부드러운 질감은 감소하고 쫀쫀한 상태로 변하게 된다. 이 쫀쫀한 상태의 아이스크림이 바로 젤라또이다.
아무튼 이 오버런 100%의 아이스크림이 가능한 이유는 아이스크림에 첨가된 설탕의 존재 덕분이기도 하다. 이미 데바 선문객잔에선 우유와 설탕을 가지고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우유와 설탕에 몇가지 재료를 더 첨가하면 만들어지는 상품이 무엇이겠는가. 그건 바로 차가운 아이스크림과는 반대로 뜨거운 열을 가해서 만들 수 있는 빵이다.
빵, 아이스크림. 거기에 따뜻한 차를 함께 팔게 되자 데바 선문객잔은 1층의 카페에선 아직도 실크로드를 통해 오가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고, 2,3층에선 부유층을 대상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게 됨으로써 많은 수의 단골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 카페라고 부르는 거라 1층에서 커피를 못 파는 게 아쉽긴 하지만.’
[커피나무는 열대기후에서나 키울 수 있으니 아직 키울 만한 적합한 재배지를 못 찾지 않았나?]
‘그 커피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여기 청해에서 좀 더 아래쪽으로 갈 필요가 있지.’
물론 당장에라도 이곳에서라도 유리온실을 지어 커피를 재배하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해선 대량재배를 할 수가 없었다. 중원 전역에 커피 가게를 차리려서 팔기에 유리온실은 생산단가도 너무 높은데다 대량재배도 어려웠다.
[자네가 운남(雲南)으로 가고자 목적지를 바꾼 것도 그 이유지 않은가?]
‘하지만 운남에 가기 전에 지나가야 할 곳이 있지. 사천(四川)’
사천. 이름처럼 4개의 강을 끼고 있어 거대하고 비옥한 분지 지형으로 한 때는 촉나라가 건설되었던 지역으로 유명한 사천은 지금은 9파 중 무려 3개나 되는 점창파, 아미파, 청성파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무림세가를 논하면 한번도 빠진 적이 없고 때론 지역의 이름인 사천을 달고 있는 세가. 사천당문 혹은 당문이라고 불리는 무림세가가 있는 곳이 사천이었다.
다음 목적지로 사천을 고른 이유는 운남을 가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천하면 떠오르는 ‘매운 음식’들이 먹고 싶어서인 것도 있다.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들이 전반적으로 매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고 전생의 내가 미친 듯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매니아도 아니었지만 칼칼하고 매운 맛에 대한 갈망은 생각보다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무슨 영혼에 각인된 본능이냐고’
[실제로 음식에 대한 취향은 영혼에 각인되는 수준이긴 하네.]
‘그러냐?’
이젠 전생에선 맵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양념치킨을 먹고서도 맵다고 반응하게 되어버린 몸이지만 그 매운 맛에 대한 끌림은 나를 사천으로 향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하자 걸리는 존재들이 있었다.
“용운님, 이거 보시죠. 그동안 열심히 수련을 했더니 이젠 절정고수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이게 다 용운님 덕분입니다.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저 녀석이랑.’
“용운님, 저번에 한번 보여주셨던 거 저도 만들어 봤는데 맛 좀 봐주실래요?”
‘이 녀석.’
저번에 아이스크림 만든다고 살짝 요령 하나 가르쳐줬는데 그 이후로 교주인 나를 곤륜파 도사 주제에 매일같이 쫓아다니는 게사르 녀석과 아이스크림 이후로 돈맛을 보고 혹해서 살짝 나태해졌다가 빵을 알려준 이후로 다시금 음식에 대한 창작욕구에 불타고 있는 데바가 마음에 걸렸다.
슬쩍 운을 띄워놓아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에 불타고 있는 다진이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할 거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휴우…이래서 함부로 인연을 만들면 안되는 건가.’
[내버리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데려가자니 자네 둘이 타고 다니는 것 같은 행글라이더를 또 가져와야 하지 않나?]
‘가져와도 문제야. 바람을 타고 나는 요령도 익혀야 되는데 게사르면 모를까, 데바는 어려울 것 같다고.’
건강을 지키라며 가르쳐준 간단한 기체조도 익히는데 꽤나 오랫동안 고생을 데바는 위험해서 행글라이더에 당장 태우려고 해도 태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 지금부터 행글라이더 타는 법을 가르치자니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이런 저런 것들을 고려해보면 데바는 제과제빵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책을 던져주고 자습을 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게사르 정도면 좀만 연습시키면 데려갈 수도 있을 법한데…’
아이스크림 만드는 요령을 가르쳐준 이후로 시작한 대련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처럼 운룡대팔식같은 신법을 꽤나 능숙하게 사용하는 게사르라면 아마도 행글라이더를 타는 요령도 금방 숙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은월을 통해 행글라이더를 제작해서 가져오는 동안 시간을 갖고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게사르, 이젠 태청검법(太淸劍法)이 얼마나 능숙해졌는지 구경 좀 해볼까?”
“그, 그래주시는 겁니까?”
몇 번 대련을 하면서 게사르가 신기하게 여기는 스마트폰으로 비디오촬영을 진행한 뒤 운동선수들이 그러는 것처럼 영상을 함께 보며 자세교정이라든가 논검비무를 했더니 게사르는 대련이 하고 싶은지 은근슬쩍 운을 띄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요즘 내공도 탄탄해져서 검기를 뿜어내도 쉬이 지치지 않는다며.”
“예, 열심히 설과를 만든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그래? 뭐, 한번 그 보람 확인해보자고.”
다진이는 우리 둘이 비무를 하려고 자세를 잡자 포인트로 구매한 짐벌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자연스럽게 비무하는 모습을 찍을 준비를 마쳤다.
“자,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이쪽이 쓰는 검법은 일검(日劍)이고 비무자는 화용운.”
“저는 태청검법(太淸劍法)을 쓰는 곤륜의 도사 게사르쟈시입니다.”
서로 어떤 검법을 쓸지와 본인이 누구인지를 고지한 뒤 우리는 기수식을 펼치며 자세를 잡았다. 교주의 무공으로 사호법과 함께 재탄생한 일월신검을 보고 누군가 나를 마교도라고 할 이는 없을 것 같지만 이름을 있는 그대로 알렸다간 내가 신교의 교인이라는 걸 혹시라도 알아볼 수 이가 있을까 싶어 일월신검의 전반부인 일검만 가지고 게사르를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월검과 일월신검까지 보일 필요도 없을 것 같고.’
곤륜의 무공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구름 위를 노니는 용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한 움직임이 특징인데 게사르는 곤륜파의 도사답지 않게 나와 비무를 할 때면 서슴지 않고 칼을 들이밀었다.
깡! 깡깡!
성난 용이 불을 뿜는 것처럼 게사르의 태청검법은 곤륜의 검답지 않게 꽤나 공격적으로 다가왔다.
‘얘, 곤륜파 도사 맞냐고. 뭐 이렇게 서슴없이 검이 날아와.’
현란한 신법으로 시선을 현혹시키고 구름에 가려져 있던 용이 모습을 슬쩍 슬쩍 드러내듯 게사르의 검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깜짝쇼도 내게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환골탈태를 경험한 이후, 기를 발산할 때면 상대방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태양에서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등의 넓은 스펙트럼의 빛이 뿜어져 나오듯 내게서 뿜어져 나간 다양한 기운이 상대방의 몸과 부딪히고 나면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어느 쪽으로 기가 집중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나에게 날아오는 검이 허초(虛招)인지 실초(實招)인지 너무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허초는 아무래도 자기 나름대로 진실인척 하는 것과 다르게 그 안에 담긴 힘이 실초와 비교했을 때 확연히 적은데 기감을 통해 이를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끼고 있으니 당할 일이 없었다.
‘아니, 어째서 이리도 쉽게 피한단 말인가? 허와 실을 섞는 보람이 없구나.’
이전보다 탄탄해진 내공으로 검기를 뿜어내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어진 게사르였지만 아무리 단단한 검기라고 한들 상대방이 맞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용을 쓰던 게사르는 상대방이 모두 알아채는 허초로 힘을 허비할 바에 차라리 실초로만 접근하기로 했다.
‘마음을 바꿔 먹었군.’
“지금부턴 조금 다를 겁니다.”
“그럴 것 같았어.”
“이익!”
아이스크림을 만드느라 그동안 쌓인 울분을 풀려고 하는 마음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게사르의 검은 이제 용이 구름 앞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드러내고 분노를 토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덤벼들었다.
“오호, 확실히 힘이 넘쳐.”
“아주 여.유.가 흘러 넘치십니다.”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열심인 게사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살짝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만하면 태청검법을 전부 본 것 같은데 그만하고 한 수 보여주지. 상대방이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자네도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나.]
‘역시 그렇겠지?’
나는 일부러 게사르에게 신호를 주는 것처럼 내가 쓸 초식명을 외쳤다.
일검 홍염(紅焰)!
홍염이라 함은 흑점이 출현하는 곳에 발생하는 거대한 불기둥을 말하는데 지금 내가 사용한 검 또한 격렬하게 검을 휘둘러오는 게사르의 신체를 전부 가릴 것처럼 강렬하고 거대한 기운을 내뿜었다.
쾅!
순간적으로 이에 반응하여 운룡대팔식으로 허허롭게 빠져나가려고 했던 게사르는 미처 이를 피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당연히 기감을 통해 게사르가 피하지 못할 것을 알고 나는 미리 불기둥처럼 날아가는 기운을 통제하여 게사르와 부딪힐 즈음 대부분의 힘을 회수하여 검기에 게사르가 상할 일이 없도록 하였다. 절삭력이라든가 파괴력이라든가 하는 힘은 모두 회수한 탓에 게사르가 검에 직접적으로 상할 일은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물리력 탓으로 인해 검에 맞은 게사르는 8톤 트럭에 치여 날아가는 사람마냥 훅하고 날아간 뒤 땅에 처박혔다.
“커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