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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91화 (91/132)

91화

“흐음, 바로 이 맛이야.”

“저기 설산에 있는 듯한 만년설 같은 이 설과(雪菓)를 입에 머금고 있으면 꼭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이란 말이지.”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듣자 하니 진짜 저기 만년설에서 눈을 채취해서 만든 거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말이지. 달다 달아.”

“껄껄걸, 세상 참 좋아진 것 같지 않나? 이 더운 날 편하게 앉아 저 멀리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만년설을 구경하면서 이 차가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동감하네. 내 혀에 눈이 내린 것 같군. 후아아아.”

여러모로 이 시대에선 굉장히 선진적인 접객서비스와 맛있는 음식들을 도입한 데바 선문객잔을 청해의 명소(名所)로 만든 결정타는 바로 유리창과 아이스크림이었다. 투명하기 그지없는 유리창은 외부의 환경을 마치 그림처럼 보이게 만드는 액자의 역할을 해주었기에 객잔에 온 손님들은 사람들이 더운 볕 아래에서 힘들게 오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드럽기 그지없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호사(豪奢)의 극치로 여겼다.

물론 청해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여유가 넘쳐 이렇게 편하게 앉아 호사스러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객잔에선 바로 설과를 받아 가져가길 원하는 손님들을 위해 외부에서 바로 주문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실내에 있는 손님들에게 주는 그릇이 아닌 밀가루로 된 과자에 설과를 얹어 판매하고 있는 중이었다.

매장 안이고 밖이고 밀려드는 손님들의 숫자만큼이나 몰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객잔에는 따로 설과 담당 부서가 신설되었다.

“설과 10개에 설과자 20개 추가요.”

“예~. 설과 10개에 설과자 20개 추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설과 담당 부서 지원업무로 전환된 게사르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청해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것과 다르게 객잔에서 파는 설과는 만년설을 가지고 내려와 가공해서 파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전문적으로 빙공(氷功)을 익힌 자들이나 자신처럼 절정의 경지 이상의 내공고수가 직접 우유와 설탕을 비롯한 여러 재료들을 섞은 가공물을 전달받아 얼리는 작업을 거쳐 만드는 극한의 인위적인 가공물이었다.

“게사르! 정신 안차려? 온도를 이렇게 천천히 낮추면 얼음결정이 커진다니까? 이게 몇 번째야, 집중하라니까! 설과 만들 땐 온도를 확 낮춰야 돼. 최대한 빠르게.”

“아! 죄, 죄송합니다.”

“에이, 안되겠다. 이건 아까보다 더 망쳤네. 못 파는 거니까 내보내지 말고 빙고에 갖다놔.”

“못 파는 겁니까?”

“당연하지. 한번 먹어봐!”

“아…….”

“지금 먹은 설과가 비단결처럼 부드러워? 아니면 안 익은 감자볶음 먹는 것마냥 서걱거려?”

“서, 서걱거립니다.”

게사르의 대답을 들은 용운이 게사르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해? 어서 안 치우고.”

“알겠습니다. 크윽.”

설과(雪菓). 먹을 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 부드러움과 우유의 고소함. 그리고 그걸 받쳐주는 묵직한 단맛의 조화로 사람을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환상의 음식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작 게사르에게 있어선 혈압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리는 환장의 음식이 바로 설과였다.

용운의 설명에 따르면 설과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비법은 설탕을 적당량 넣은 뒤 온도를 급격히 내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자신이 했던 것처럼 천천히 얼리면 이 실패작처럼 우유와 재료 전체가 잘 섞인 상태로 어는 게 아니라 수분부터 먼저 응결이 되어버려 설과 특유의 부드러움이 아닌 얼음의 서걱거리는 식감이 생기게 된다.

“아니…그냥 팔면 안되나? 이만하면 충분히 잘 얼었는데. 살짝 서걱거리기는 해도 맛만 좋구만…쳇.”

식재료를 낮은 온도에서 서늘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열기를 차단하고 저온을 유지하도록 진법을 적용하여 만든 선문객잔만의 특수 시설인 빙고(氷庫). 그 중에서도 가장 온도가 낮은 창고 깊숙한 곳에 자신이 만든 실패작을 갖다 놓으며 게사르는 손가락으로 빙과를 떠서 집어먹었다.

개업식 때만 해도 입구에서 객잔의 문지기로서 불순한 인물을 거르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던 게사르는 객잔의 직원이라기엔 너무 뻣뻣한 접객으로 인해 불상사를 일으켰고 설과를 만드는 고급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겹쳐 용운의 옆에서 다른 인원들과 함께 어제부터 설과를 만들게 되었다.

“용운 님이 만든 것만큼은 아니지만 맛있네. 어디 한번 더 먹을까?”

“바빠 죽겠는데 도대체 파닥파닥 안 뛰어와서 다쳤나 싶어 왔더니만…….”

다시 검지 손가락으로 설과가 담긴 커다란 용기를 향해 푹 찍으려고 했던 게사르는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서걱거리는 자신의 실패작 설과처럼 삐거덕거리며 고개를 뒤로 돌리자 그곳엔 용운이 팔짱을 끼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허억!”

“거, 좀 전까지 주둥이로 쭉쭉 빨아먹은 그 드러운 손가락을 어디다 다시 갖다 넣으려고? 사람 먹는 음식은 청결하게 유지하라고 몇 번을 말해.”

방금 전까지 뒤에 있던 용운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온 것인지 들고 있던 설과 용기를 빼앗았다.

“죄송합니다. 근데 오, 오햅니다.”

“오해는 무슨 손에 묻은 침이나 닦아.”

게사르가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침을 바지에 슥슥 닦는 사이 용운은 쇠로 된 용기를 선반에 잘 올려놓고 게사르를 빙고 밖으로 불러냈다.

“왜? 설과 부서에선 일하기 싫어? 다른 업무로 바꿔줄까?”

“그, 그게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면 최대한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편하게 말해. 역시, 이전에 하던 식재료 준비 쪽이 편하려나?…식재료 담당 일꾼도 부족하다고 하던데.”

용운은 곤륜파의 고수인 게사르같은 고급인력을 이런 외지에서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어지간하면 게사르를 끝까지 함께하고자 한 질문이었지만 듣는 게사르의 입장에선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부탁해서 용운의 옆에 있는 것이었다. 공짜로는 아니고 나름 꽤나 후하게 보수를 받고 있긴 했지만 설과 부서에는 자신 말고도 능숙하게 일하는 다른 직원들이 여럿 있었다. 어디서 온 것인지 싶을 정도로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이 직원들은 나름 무공의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자신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설과를 얼리는 작업을 척척 잘도 해냈다.

‘도대체 어디서 온 인간들이야…나도 못 하는 걸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잘 얼리는 건데!’

게사르는 처음에 용이 부리는 직원들이 혹시 술법으로 불러낸 인형같은 것인가 싶어 슬쩍 슬쩍 살펴봤지만 인형이라곤 할 수 없는 걸 곧 깨달았다. 식사시간에 밥도 먹고 쉴 땐 볼일도 보러 가고, 잘 땐 눈을 감고 코를 골며 자는 사람들이 인형일 리가 없지 않겠는가.

용운의 직원들이 술법으로 불러낸 인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게사르에겐 자신이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나 싶어 자괴감이 찾아왔다. 자기도 자기 나이 대에선 중원 어디에 가도 꿀리지 않는 후기지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용운이 부리는 사람들은 자신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낑낑거리며 용을 써야 하는 빙공을 어찌된 일인지 아주 능숙하고 편하게 사용했다.

‘왜 나보다 더 잘하지……?’

그렇다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설과를 얼리냐고 묻기엔 그 방법이 내공의 운용법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인지라 무림의 불문율을 건드리는 짓이었기에 물을 수도 없어 혼자 속으로만 끙끙거려야 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궁금한 게 있는데…….”

“응?”

용운은 바빠죽겠는데 숫기 없는 어린애마냥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끙끙거리는 게사르가 왜 저러나 싶어 갑갑해하던 차에 게사르가 입을 열자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봐. 편하게. 너무 사적인 질문만 아니면 얼마든지 대답해줄게.”

“저기…그러니까…음….”

“뭘 그렇게 눈치를 봐.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지? 용과 인간? 사장님과 직원?’

에라 모르겠다 싶어 게사르는 눈을 질끈 감고 지르기로 했다. 혹시 모르는 게 아닌가. 용이라면 무림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불뮨율을 여기는 태도가 다를지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유자재로 빙공을 운용하는 겁니까? 저 분들은 어디 빙공만 다루는 문파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그런 문파가 이 주변에 있는 겁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문파가 어디 있어?”

용운은 혹시 게사르가 자신의 부하들이 일월신교의 교도인걸 알아챈 건가 싶어 살짝 긴장했지만 이어지는 게사르의 말에 전혀 그런 게 아님을 깨달았다.

“곤륜파에서 제 무공수위 정도면 나름 뛰어나다고 할 수 있거든요? 아니, 돌아가신 스승님 말씀에 따르면 저 정도 실력이면 중원에 나가도 제 나이 또래에선 크게 밀리지 않는다고 했구요. 근데 용운 님께서 불러오신 사람들 보고 있으면 헷갈려요. 불경한 생각이긴 한데 제 스승님이 중원인들의 무공 수위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니신지, 아니면 곤륜파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인지. 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유자재로 얼린답니까?”

위구르 지역에서 엄선해서 데려온 빙과 담당 신교인들에 대해 게사르가 오해하고 있어 생긴 일이었다. 이번에 데려온 직원들은 이전부터 물류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식재료의 신선함이라든가 주류 운반 과정에서 신선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 특별히 거기에 맞춰 오로지 적절한 온도로 냉기를 유지할 수 있는 무공을 익히게 하고 실력을 키워온 전문인력이었다.

데바 선문객잔에서 급속하게 증가하는 아이스크림 수요에 맞춰 제작을 전담할 인력을 채우는 과정에 임시방편으로 떠올린 것이 바로 지금 부른 인력들이었다. 이들이 배운 냉기 운용만을 위해 배운 심법은 사호법과 함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생활무공 중 하나로 이들이 익힌 건 사실 게사르의 생각과 다르게 빙공이 아니었다.

“왜 빙공이라고 생각하지? 그들은 빙공을 익힌 게 아니야. 열양공을 익혔지.”

“빙공이 아니라 여,열양공 말씀이십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익힌 상청무상신공(上淸無上神功)도 열양공의 일종입니다. 그 말씀은 설과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분들이 저희 곤륜파의 심법보다 더 뛰어난 심법을 익힌 거란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것보다 열양공을 익힌 분들이 왜 그렇게 쉽게 빙공을 쓴답니까? 빙공이랑 열양공은 상극인데? 도저히 납득이 안됩니다. 납득이.”

궁금한 것도 많다 싶었고 지금 게사르의 많은 의문들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다. 열양공으로 빙공처럼 쓴다니 이 세상의 무공 지식으론 충분히 궤변으로 들릴 수 있었다.

“워워, 진정해.”

“열양공을 익힌 사람이 빙공을 쓰지 못한다는 건 무림의 상식입니다! 아니지, 열양공을 익힌 사람들이 빙공을 쓴다라…이는 순리가 아닌 역천 아닙니까? 지금 그 말씀은 저들이 역천(逆天)의 무공을 익힌 마도(魔道)의 종자라는 말씀이신가요!?”

혼자 급발진을 하던 게사르의 눈이 내가 게사르를 만난 이후로 어떤 때보다 커다랗게 변했다.

‘얘 뭐지? 그게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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