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청해에 새롭게 문을 연 데바 선문객잔의 개업식은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양고기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선문객잔의 음식들은 그동안 돈은 있으나 딱히 제대로된 미식을 즐길만한 고급 가게가 그다지 많지 않아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던 청해의 부유층에게 있어 꽤나 좋은 선택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접객의 수준 또한 북경의 고급요리점의 그것에 비해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아니, 수십년 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작 한번 다녀왔을 뿐이었지만 북경에 다녀온 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고 있는 소시민(素時敏)에게 있어서도 처음 경험해보는 높은 것이었다.
“허어, 이리도 깔끔한 가게가 다 있나? 아무리 좋은 가게를 가도 먼지가 보여서 내 속으로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입구 구조부터가 꽤나 특이해서 그런 것 같소.”
통상적으로 구(口)자의 형태로 된 평면구조를 지니는 다른 가게들과 다르게 이 데바 선문객잔이라는 가게는 철(凸)자처럼 입구가 툭하고 튀어나와 있었다. 이 툭하고 튀어나온 입구는 이중문으로 되어 있어 오직 문을 열고 닫는 업무를 직으로 삼는 이들이 문을 열어줘서 안으로 들어오면 또 문이 설치되어 있어 밖에서 들어오는 흙먼지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입구 안쪽에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손님들을 지켜보고 있는 간문인(看門人)이라고 하는 이들이 열어준 문을 통해 첫 번째 문을 통과해서 들어오면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싶은 커다란 유리가 끼워진 두 번째 문이 손님들을 반겨주는데 이는 북경에서도 보지 못한 호화스러운 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금을 얼마나 처바른 게야?’
두 개의 입구문도 특이하건만 보통의 음식점의 바닥과 다르게 이 선문객잔은 바닥도 달랐다. 보통의 객잔들이 아무리 비싼 고급요리를 만든다고 해도 바닥은 대충 흙을 굳히고 다진 흙바닥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 가게는 자기(瓷器)와 같은 재질의 것을 큼직한 사각의 형태로 잘라 전체적으로 박아놓은 것이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바닥은 애초에 먼지가 일어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청해 땅에서 나름 돈 좀 쥐고 있다는 부호들의 집조차도 이런 것이 바닥에 깔려 있지는 않았다.
꽤나 고급스러운 교육을 받은 듯한 점소이가 아닌 직원이라고 하는 자들은 어떠한가. 어느 객잔을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흔해빠진 점소이들과 이 객잔의 직원들은 달라도 무척이나 달랐다. 걸음걸이는 경쾌하면서도 빨랐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점소이들처럼 경박스럽지는 않았다. 온전히 손님들의 요구에 맞춰 빠르게 오가고 있었지만 전혀 번잡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아싿. 마치 황궁에 가면 있다는 궁녀와 내시들이 이러할까 싶었다.
입 안의 혀처럼 무얼 필요로 하는지 입을 열기도 전에 다가와 원하시는 게 있냐고 물어보았다. 적당히 어떤 취향의 음식을 좋아하노라고 운을 띄우면 선문객잔의 직원들은 음식들의 종류가 적힌 차림판이라는 걸 우선 펼쳐 보였다. 그리고선 객잔에 있는 어떠한 음식이 입에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했는데 자신처럼 비단 옷을 입고 있으면 보통의 점소이들은 그저 비싼 음식을 팔아치우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이곳의 직원들은 굳이 비싼 음식을 권하는 게 아니라 가격에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의 입맛에 맞을 것 같은 음식들을 골라 권하였다.
‘놀랍구나, 놀라워.’
음식을 다 먹을 즈음이 되자 자신과 함께 온 이들을 담당하던 직원이 다가와 혹시라도 부족한 것은 없었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없으셨는지를 물어보며 혹여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면 드리는 종이에 연필(鉛筆)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개의치 말고 마음껏 적어달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소시민은 여태껏 살면서 이런 접객을 받아본 적인 단 한번도 없었다.
‘신기하구나. 연필이라…어디서 이런 물건을 만들었단 말인가?’
직원이 종이에 적어달라며 함께 준 연필이라는 물건은 붓처럼 매끄럽게 쓰는 맛은 없었으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어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적당히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종이에 적어 접은 뒤에 점원을 불러 이 연필이라는 걸 하나 얻을 수 없겠냐고 묻자 직원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개업식을 기념하여 가게에 환영하신 손님들께 드리는 작은 기념품이오니 각자 하나씩 마음껏 가져가셔도 됩니다.”
“그, 그런가? 이곳에 온 모든 손님들에게 하나씩?”
“예, 저희 사장님께서 내리신 결정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직원이 말하는 거 방금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소대인, 이 데바 선문객잔의 사장이라는 사람도 소대인처럼 꽤나 호방한 분인 것 같습니다. 한번 만나 뵙고 싶군요.”
“아이고, 방대인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구려. 방대인 말마따나 나도 이 데바 선문객잔의 사장이라는 분을 한번 찾아 뵙고 싶은데…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오늘 찾아주신 손님들이 이토록 많을 거라고 예상을 못했는지라…….”
“아무렴, 편하게 가서 여쭙고 오시게.”
“감사합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기념품으로 받은 연필의 편리성을 비롯한 장,단점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나갔던 직원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사장님을 모셔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무렴, 괜찮지. 어서 모셔오시게.”
놀랍게도 데바 선문객잔의 사장이라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기품이 느껴지는 미모의 여자였다. 그것도 중원인이 아닌 티벳인.
“안녕하세요? 저는 데바 선문객잔의 사장을 맡고 있는 데바라고 합니다. 손님들께서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혹시 제 직원들이 손님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만족시키지 못하였나요?”
딱 봐도 중원 사람으로 보이지 않건만 매우 능숙한 중원말을 구사하는 여자 사장이었다. 꽤나 기품있고 온화하게 느껴지는 말투를 사용하여 혹시 왕족 중에서도 방계에 속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아하하, 데바 님, 그런 게 아니라 이 객잔의 건물부터 시작해서 음식 그리고 접객을 담당하는 직원들까지. 가게의 모든 것들이 어느 하나 북경의 호화스러움을 겪어본 나도 경험해본 적 없는 최상의 것인지라 너무 놀라워서 직접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아~ 다행이군요. 저는 직원들이 손님들께 실수를 하여 불쾌한 경험을 하게 해드렸나 싶었는데.”
“이 직원이 사장님께 제대로 설명을 드리지도 않고 모셔왔나 봅니다.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이토록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건 너무 오랜만이라 그렇습니다.”
서로 공치사를 나누는 시간이 끝나자 소시민은 서 있는 사장에게 잠시 합석을 해서 차 한잔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당장 데바는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좀 손님들이 몰리지 않는 시기가 왔을 때 좋은 기회를 봐야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사양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 가게를 좋게 봐주시는 손님들과 제대로 담소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한동안은 제가 가게를 찾아와주시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겼을 때 뵙게 되면 제가 그땐 직접 차를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아, 제가 그걸 생각 못했군요. 이거 참…나이를 먹으면 마음만 앞섭니다. 제가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인 것 같아 어떻게 이런 객잔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너무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제 가게를 좋게 봐주시는 손님께 저야말로 감사의 말과 함께 손님과 차 한잔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말을 마친 여사장이 밖으로 빠져 나가고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잠시 사장을 보고 느낀 각자의 소감을 내뱉었다.
“허허…참으로 놀랍습니다. 중원인도 아닌데 중원 말을 저토록 유려하게 하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복장은 어떻고…이 가게의 진짜 보물은 따로 있는 것 같군요.”
“방대인께선 데바라는 주인을 아주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음식 하나하나가 여태껏 내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절묘하게 맛있는 맛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이 가게 내부 장식 하나하나를 보십시오. 바닥에서도 먼지가 일지 않는 것도 좋지만 외부의 빛을 들여와 환하게 내부를 밝힐 수 있도록 한 저 유리창은 어떻습니까? 소대인, 북경에서 이런 유리창이 달린 객잔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나무 장식 하나하나는 어떠합니까? 마치 오랜 세월동안 외길만 고집해온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제가 음식을 먹느라 주변을 제대로 보질 못했군요.”
소시민은 방대인이 짚어주는 걸 하나하나 살펴보니 과연 내부 장식이 아무렇게나 대충 허투루 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허어…제가 왜 이걸 못봤지요? 방대인이 아니었으면 음식 맛과 접객에만 감탄하고 나갈 뻔했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볕을 받은 벽면에는 커다란 돌로 된 벽이 있었는데 거기엔 마치 담채화(淡彩畵)의 그것을 고스란히 조각으로 옮겨놓은 듯 생동감이 넘치는 커다란 산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데바 선문객잔은 맛있는 음식들과 품격 높은 접객, 황궁을 옮겨놓은 것처럼 장인의 손길이 베어있는 호화스러운 내부를 가지고 있으니 가히 객잔계의 삼품(三品)이 따로 없습니다.”
“하하, 방대인 당(唐)대에 장회관이 화단에서 논했던 회화비평의 기준인 삼품을 이 객잔이 갖추고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예, 데바 선문객잔은 삼품객잔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삼품객잔이라…앞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삼품객잔이라고 알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때마침 3층으로 된 건물이니 딱이군요!”
“아! 그러고 보니 참으로 딱입니다. 딱이에요.”
방가가 소대인과 잘난 척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성원(毛性元)은 살짝 기분이 상했다. 가만히 있다간 병풍처럼 저들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가겠지 싶었다.
‘저 방가 놈이 또 나대는구나.’
“하하, 방.대.인이 하나를 빠뜨리신 것 같습니다. 고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미모의 여주인은 왜 빼십니까? 여주인까지 더한다면 이 가게는 사품을 갖춘 것이지요.”
방진동(龐鎭東)은 또또 회화비평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놈이 그저 삼품이라는 말만 듣고 거기에 하나를 더해 애들 말장난마냥 사품을 떠들고 있는 걸 보니 가슴이 갑갑해졌다.
‘저 멍청하고 돈만 밝히는 장사치 녀석이 삼품의 뜻도 모르고… 에잉.’
“…사품 말입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까…모대인은 너무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요? 삼품에 일품을 더했으니 사품객잔이라고 부르는 게 그리 이상하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들?”
“그거 말 됩니다. 하하하하. 모대인은 참 재치가 있어 좋아요. 내가 이래서 모대인을 좋아해. 사람이 재치가 있다니까?”
“정대인, 말이 되긴 뭐가 됩니까? 삼품이란 그런 것이 아니고…….”
“삼품에 하나를 더하면 그게 사품이지. 안될 건 또 뭐가 있소!”
“자자, 왜들 맛있는 음식 먹고 좋았는데 그러십니까? 이러지들 마십시다. 우린 청해를 선도하는 사람들 아니오?”
“소대인, 그, 그게 아니라…….”
“거기까지 합시다. 크흠.”
간만에 기분 좋았던 소방정모 4인의 식사자리는 오늘도 여지없이 끼리끼리 불쾌함만 나눠가지고 끝이 났다.
* * *
“오늘 뭐 특이사항 있었나?”
“아…이 지역 유지인 듯한 이들이 와서 저희 객잔에 대한 극찬을 하더군요. 특히나 용운 님께서 직접 손을 대신 걸작 ‘천산산맥’을 보고선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뭘 좀 아는 사람들이구만. 내가 만든 거지만 그거 아주 잘 만들었다니까?”
“근데 네 사람 간의 알력이 좀 독특합니다. 청해에서 돈 좀 쥔 인물들이다보니 제 딴에는 끼리끼리 모인 것 같은데 물과 기름인 듯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 나중에 써먹을 날이 있을지도 모르니 자료로 만들어 잘 보관해놔. 앞으로도 추적관찰하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