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그래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던 나무꾼은 신선께 자신의 도끼가 금도끼도 은도끼도 아닌 쇠도끼라고 말한 대가로 신선에게서 금도끼와 은도끼 그리고 처음에 빠뜨린 쇠도끼까지 모두 받을 수 있었지. 자, 그럼 여기서 이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듣고 배워야 할 만한 교훈이 뭐라고 생각해, 데바?”
“음…음…정직하게 열심히 살면 언젠가 복을 받고 행복해진다?”
“나쁘지 않아.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데바처럼 대답할 거야.”
“그럼 아닌가요, 스승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전래동화로 알고 있는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는 사실 한국의 전래동화가 아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살짝 고개를 갸웃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금도끼 은도끼는 이솝우화에 실린 이야기로 꽤나 현지화가 잘 된 덕분에 어릴 적부터 알아온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속에서 요행 주는 존재로 헤르메스보다는 산신령이 익숙하지만 원래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라고 한다.
앞으로 데바도 언젠가 중원에 나가는 날이 있을지 모른다고 넌지시 운을 띄웠더니 데바는 자신에게 중원 말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데바에게 중원 말을 가르치기에 앞서 좋은 교육용 도구로 뭐가 없을까 하다 생각한 것이 어린 아이들에게 말과 글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이야기책이었다. 친히 삽화까지 그려 넣어 만든 여러 권의 동화책 중에서 오늘의 교보재는 바로 ‘금도끼 은도끼’였다.
“누군가는 지금의 이야기를 듣고 나무꾼이 요행을 바라지 않고 정직하게 답해서 거기에 동한 신선이 선물을 주었다고 볼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나무꾼이 진짜 순진하고 정직했던 게 맞을까?”
때가 묻을 대로 묻은 내 시각에서 보면 하루하루 나무를 베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나무꾼이 자신에게 자신이 빠뜨린 쇠도끼가 아니라 금도끼를 주겠다고 하는 비현실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를 만났는데 그걸 거부하는 것부터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산신령이 있던 호수가 무슨 도끼공장 근처라서 뒤처리를 하기 싫은 업체에서 불법적으로 버린 폐도끼들이 많다면야 많고 많은 도끼들 중 주인을 찾아주기가 쉽지 않아 금도끼가 니꺼냐고 물어보는 상황이 펼쳐지는 게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닥에 도끼 비슷한 것이 떨어진 적도, 떨어질 일도 없는 평범한 호수라면 나무꾼이 그 짧은 순간에 산신령이라는 출제자의 의도가 무얼까를 정확하게 캐치해서 정답을 말한 똑똑한 사람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여러 해석들 중 하나를 가지고 데바에게 논리적인 과정을 입혀 설명을 하자 데바는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본인의 밥줄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도끼를 빠뜨린 절박한 상황에서도 나무꾼은 자기에게 닥친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침착함과 지혜를 가졌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이상하잖아. 뜬금없이 자신이 빠뜨린 적 없는 금도끼를 들고 나온 존재가 이게 니꺼냐고 묻는 상황이. 데바에게 똑같은 상황이 닥쳤다고 상상해봐.”
“맞아요. 진짜 이상해요.”
잠시 생각에 빠진 데바는 내가 말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갔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유일한 밥벌이인 도끼를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장소에서 나무를 하는 것도 굉장히 이상해요. 저라면 절대로 그런 곳에서 나무를 하지도 않을 거고, 만약 하게 된다면 엄청 주의를 할 것 같아요. 혹시라도 호수에 빠져서 못 찾는 상황이 오면 안되니까.”
“그렇지? 그리고 말이야. 도끼는 기본적으로 나무를 팰 때 힘을 세게 주는 도구지, 뒤로 뺄 때 힘을 쓰는 도구가 아니거든. 그런데 평생 나무만 하고 산 나무꾼이 도끼를 실수로 호수로 빠뜨릴 정도로 세게 위로 올리는 게 말이 될까?”
“그, 그러네요?”
나무꾼의 성품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단순한 사고방식의 나무꾼이라면 금도끼를 준다고 하는 즉시 금도끼가 자신의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나무꾼이 정직하다? 오히려 매사 강하게 의심을 하는 사람일 수는 없을까? 누가 뭘 갑자기 주겠다고 나타나니까 일단 ‘아니요, 됐어요.’ 하면서 거절하는 거잖아.”
“그건 생각 못했어요!”
순진한 필부(匹夫)라는 것에 대해서도 의도적인 프레임이라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현대에서 길을 가다 도를 아십니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수작에 대답을 해주며 말을 섞어주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순진한 사회초년생들이나 청소년들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러하다.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이 있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해본 이들은 갑작스레 나타나 웃으면서 자신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기에 인상이 참 좋으세요 하면서 다가오는 이들에겐 자연히 경계심을 갖고 벽을 세운다.
금도끼 은도끼의 나무꾼은 그런 이들처럼 뜬금없이 나타나 신묘한 신령의 느낌을 풍기며 자신에게 커다란 복을 주겠다고 하는 존재에게 선뜻 응하지 않고 거부한 뒤 그냥 자신의 거나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어쩌면 나무꾼은 나무꾼으로서 오래 일한 자신으로 하여금 호수에 도끼를 빠뜨리는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하도록 수작을 부린 범인이 사실은 그 산신령인 척하는 의심했을 수도 있겠군요. 맞아…그럼 납득이 돼.”
‘어…그 정도까진 나도 생각 안했는데…’
“그, 그렇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해석을 나눠보는 방식을 통해 논리력,창의력 그리고 사고력을 키우는 것까지 노린 방식의 교육방법으로 선택한 방법이었는데 데바는 이 교육법에 익숙해졌는지 때때로 지금처럼 나도 생각 안 해본 발상을 떠올리며 더 나아갈 때가 있었다.
“성품에 대해서 말씀하시니까 어쩌면 나무꾼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금도끼도 싫다. 은도끼도 싫다. 내 쇠도끼나 내놔라?’ 바보잖아요. 못해도 도끼면 1관(3.75kg)은 될텐데 금 1관 혹은 은 1관을 거부하고 쇠도끼를 달라고 한다니. 정직하다는 제 생각이 잘못된 거군요! 아, 스승님께서 가르쳐주신 상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 나무꾼 완전 바보일 수도 있겠어요. 음, 어느 쪽의 시각으로 봐도 나무꾼이 정직하고 순진한 것과는 거리가 있겠네요.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든가 아니면 의심이 많든가 그것도 아니면 상대의 심리를 빨리 읽고 계산해내는 점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데바야? 그건 좀…….’
[자네가…순진한 처녀를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오늘 금도끼 은도끼를 가지고 한 우리의 수업은 나무꾼이 멍청하거나 혹은 의심병 환자일 가능성이 있으며 요행을 주겠다고 다가오는 상대에겐 일단 의심을 하고 보자는 교훈을 갖고 끝이 났다.
‘이래도 되나 싶다. 걱정 되는구만.’
나도 모르게 적당한 곳에 찍기 좋게 숨겨놓은 스마트폰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대로 우리의 수업을 담은 영상은 구독자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반응을 이끌어냈다.
- 아…내 추억 속의 정직한 나무꾼 돌려내.
- 흠, 어릴 적 난 이솝우화를 읽으면서 한번도 저런 생각 안해봤는데
- 이솝우화? 한국 전래동화 아님? 어릴 적 봤던 슛X이가 나중에 일본인이라는 거 알게 된 거 이후로 이런 신선한 충격은 또 오랜만이네.
- 나도 우리 전래동화인 줄 알았는데 외국인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산신령이 아니라는 거 알고 충격먹었음.
- 흥미롭군, 유대인들의 하브루타 교육법인가?
- 뭔 교육법?
- 유대인들이 어떤 주제를 갖고 짝을 이뤄서 하는 교육법인데 서로 질문을 통해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함으로써 뇌를 자극하는 적극적인 방식의 교육방법임
- 워우…금도끼 은도끼 다시 읽어보러 갑니다.
“용운 님께 오늘 배운 내용이 그겁니까?”
“네, 오늘 수업은 그거였어요.”
게사르가 생각하기엔 참으로 신묘하고도 깊이가 있는 교육법이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 각도에서 접근을 해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구하는 교육법이라니. 용의 교육법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자신에겐 고맙고 감사한 스승님이지만 곤륜파에서 처음 무공을 배울 때, 스승님에겐 혹독하리만치 맞으면서 배웠다.
스승님께선 맞으면서 배우는 게 습득이 빠르다면서 가르침에 반하는 움직임을 취하거나 집중을 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때리셨다. 자신 뿐만 아니라 곤륜파의 모든 문도가 다 그렇게 배웠다.
용과 사제관계를 맺고 가르침을 배우는 데바처럼 게사르도 용운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싶었으나 자신에겐 목숨까지 바친 스승이 계셨다. 곤륜파의 문도는 여러 스승을 섬겨선 아니되는 것이 문파의 율법이므로 용과 사제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용과 수업을 마친 데바에게서 그날 그날 배운 바를 이렇게 책으로 정리하는 방법이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약속한 대로 이거 다듬어 줘요.”
“알겠소, 소저.”
용의 가르침을 모두 정리하여 받아적고 나면 그때부턴 데바와 한어(漢語)로 대화를 나누면서 이렇게 요리재료를 다듬는 것이 데바와의 약속이었다.
“크음, 이건 좀 맵구려. 감자나 깎아놓으면 안되겠소? 껍질 까는 건 자신 있는데.”
“오늘 수업 때 사용한다고 하시니까 다 다듬어 놔야 해요.”
파를 잔뜩 썰면서 나오는 향에 게사르는 눈이 매워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정도였다. 데바는 피식 웃으면서도 손을 쉬지 않고 파를 다듬었다.
“이렇게 매운 게 기름과 만나서 그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는 게 신기하오.”
“그쵸? 파기름이라는 걸 스승님께 처음 배울 때 냄새만 맡고서 막 퍼먹고 싶었다니까요. 근데 그것도 벌써 몇달 전이네요.”
“이제 내일 모래면 개업인데 걱정되진 않소?”
“아뇨~ 얼마나 기대되는데요. 여기가 내 가게가 되는 거잖아요. 청해엔 존재한 적 없는 이렇게 휘황찬란한 가게가.”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소저의 것은 아니잖소. 근데도 그렇게 좋소?”
“좋죠. 전에 있던 허름한 제 가게를 팔아도 스승님이 만들어주시는 이 ‘데바 선문객잔’의 기둥들도 다 못 세울건데. 그리고 스승님께서 차후 장사를 열심히 잘 하면 앞으로 지분도 늘려주시겠다고 했죠. 청해의 다른 지역에 선문객잔을 세우게 되면 똑같이 지분을 정해서 저에게 주겠다고 하셨고.”
“허허…용운님이 당신에겐 나무꾼에게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까지 그 신선님이랑 다를 바가 없구려.”
“그러네요.”
데바가 만감(萬感)이 교차하는지 파를 다듬다 말고 멈추자 게사르는 속으로 용을 만나 기막히게 인생이 바뀐 데바의 현재에 똑같이 생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때가 후줄근한 옷을 입고 더러운 손으로 국수를 만들던 여자는 용을 만난 뒤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하얀 모자를 뒤집어 쓴 채로 자신의 앞에 앉아 능숙하게 요리재료를 다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가게의 사장이 되기에 모자라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행이야. 스승님의 경고처럼 아직까진 용이 중원을 불태울 업화(業火)가 될 거 같진 않으니.’
“어! 뭐해요! 이제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손이 놀잖아요. 스승님한테 말씀드릴까요? 게사르 님이 계약대로 안하고 대충대충 한다고?”
“미, 미안하오. 이거 보시오. 이제 파 다 썰어가오.”
‘예쁘게 생겨 가지곤 이럴 때 보면 꼭 그 다진이라는 용처럼 사납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