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87화 (87/132)

87화

“왜 이렇게 고창회골 쪽에서 올라오는 상납금이 계속 줄어들었지?”

“그…그게…아무래도…….”

“허허, 왜 그렇게 바짝 얼어서 어버버거리고 있는 건가? 편하게 이야기해. 편하게.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고 하던가?”

‘차라리 사람 고기 맛을 본 호랑이를 상대하는 게 낫지.’

사내는 잘 알고 있었다. 자칫 여기서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목이 잘린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자신이 차지한 자리에서 잘린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오늘이 이 생의 마지막 숨쉬는 날이 된다는 소리였다.

전임 담당자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게 된 것도 전임자가 승진을 하거나 좌천을 해서가 아니라 어느 날 자신의 침상 옆에 앞으로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를 적은 책자와 함께 전임자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축하문이 적힌 종이가 붙은 전임자의 목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네, 지금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은가? 내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을 물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짐작하건대 배달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배달사고가 있었다도 아니고 같습니다? 짐작?”

갑자기 작아진 목소리에 목 주변이 너무도 허전해진 것 같아 남자는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실낱같은 이성을 부여잡아 자꾸만 고개를 들려는 자신의 본능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자네가 알고 있는 바를 그대로 읊어봐. 판단은 내가 할테니.”

“예,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창회골의 일부 지역에서 상납금을 올리던 놈들의 연락이 어느날 갑자기 싹 끊겼습니다. 혹시 이 놈들이 딴 맘을 먹었나 싶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보라고 사람을 몇 번이고 보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놈도 돌아오는 놈들이 없어 얼마 전 살수단체 밀원(謐元)에 거금을 주고 의뢰를 걸어놓은 상태입니다.”

“감히 나한테 와야 하는 돈을 중간에 집어먹은 간 큰 놈들이 있다? 허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거기다 아직도 이유를 알아내지 못해서 큰 돈을 주고서 살수 놈들에게 돈을 바쳐 의뢰까지 했다고? 허허, 남의 돈 아까운 줄 모르는구나.”

땅바닥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남자의 시선에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된 신발이 점차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기이한 것은 신발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그 뒤로 발자국이 남지도 않았고 발이 땅을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네. 벌레같은 살수 놈들에게 준 돈은 도대체 무슨 돈으로 준 건가?”

“제 돈입니다. 어르신의 주머니에는 전혀 손대지 않고 전부 제 사비로 한 겁니다. 믿어주십시오.”

“그으래? 그럼… 뭐 상관없지. 푼돈이라고 가볍게 여겨 감히 내 주머니를 건드렸나 싶어서 이 사람이 노파심이 생겨 그랬네. 그래도 밀원 놈들을 고용했으면 조만간 내 결과를 알 수 있겠군.”

‘10년동안 모은 돈이 들어갔는데… 푼돈이라니.’

“예, 맞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답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상납금을 먹고 튄 놈들은 모조리 잡아들여 어르신께 놈들의 목을 바치겠습니다.”

“더럽게 굳이 목을 잘라서 가져올 것 까지는 없네. 그냥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만 알아와.”

그 말을 끝으로 비단 신의 주인에게선 어쩐 일인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는 남자는 뒤통수를 쳐다보는 시선만큼은 이 자리를 맡은 뒤로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사내는 맨정신으론 오들오들 떨리는 심정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3년 만에 찾아왔더니 내 곳간에 감히 쥐새끼가 들어온 것 같은데… 내 창고를 건든 쥐새끼가 누군지 알아내서 족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유희겠어. 다음 방문일이 기대되는군. 오늘은 일단 이것만 가지고 가겠다. 껄껄껄.”

웃음소리가 갑자기 멀어져서 눈을 뜨자 시선에 보이던 비단 신과 상납금을 담은 비단 주머니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사, 살았다…….”

황제의 명에 의해 태어나 아직은 세상에 드러난 적 없는 조직인 동창의 감숙분타주를 맡고 있는 강천수(姜天壽)는 다리에 힘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아 주변을 휘휘 둘러보면서 식은땀이 범벅이 된 자신의 목이 여전히 잘 붙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고 더듬었다.

“아, 누가 내 이야기하나?”

“왜요? 귀가 간지러워요? 여기? 아니면 요기?”

다진이는 반죽을 하느라 두 손을 쓸 수가 없는 내가 자꾸 목에 귀를 문대면서 긁으려고 하자 불쑥 내 귀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흐으으응엑.”

귓구멍으로 뭐가 훅하고 들어오자 내게서 부지불식간에 비음인 듯 비명인 듯 애매하고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그만!”

“시원해졌어요?”

“어, 어. 그만해도 돼.”

다진이는 내 말에 귓구멍에서 손을 빼선 내가 강조했던 청결을 지키려는지 손을 씻으러 움직였다. 어떨 땐 유교 소녀가 따로 없다가도, 어떨 땐 지금처럼 또 거침없는 다진이의 모습에 잠시 혼란스러워 그런 다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비아가 툴툴거렸다.

[거, 그만 여운 느끼고 마무리로 반죽이나 똑바로 하게. 음식에 성의를 불어넣어야지. 사람이 말이야. 음식 만들다 도대체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가?]

‘우, 우리가 뭔짓을 했다고 그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반죽 얼추 다 된 것 같은데 그만 주물럭거리고 다음 절차로 넘어가는 건 어떤가?]

‘근데 진짜 갑자기 귀가 엄청 간지러웠다니까.’

[그래 그래. 다 그럴 때가 있지. 나라고 모르겠는가?]

설렁설렁 대답하는 비아의 말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잘 섞인 반죽을 숙성시키기 위해 반죽이 담긴 그릇 위로 촘촘한 면포를 덮었다.

“이제 좀 있다가 그 호떡이라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지금 바로 먹으면 안되고?”

“반죽이 어느 정도 부풀도록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니까. 지금 먹으면 맛 없을걸.”

“어, 그럼 안되죠.”

다진이가 저녁을 잘 먹어놓고서도 뱃속에 거지가 들었는지 배가 슬슬 출출하다길래 야식으로 만들기로 한 오늘의 메뉴는 바로 호떡이었다.

호떡은 반죽만 만들면 그 다음은 그다지 할 일이 많지 않은 간식으로 숙성이 된 반죽 속에 적당히 취향에 맞게 속재료를 집어넣고 터지지 않도록 마무리를 한 다음에 기름을 두른 팬 위에 올려놓고 슬쩍 눌러 납작한 상태로 만든 뒤 구워서 먹으면 그걸로 끝인 음식이었다.

내가 이렇게 호떡을 굽는 법을 알게 된 건 너튜브 영상이라든가 TV 영상을 통해 보고 배운 것이 아니었다. 군대에 있을 때 체육대회를 진행하면서 보급관에게 지시를 받아 갑작스레 떠맡게 된 것이 내가 호떡굽는 법을 익히게 된 계기였다.

당시에는 얼마나 호떡을 잘 만들었는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떡 장사하다 왔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호떡을 기깔나게 구운 나였다.

어디 하나 터진 것 하나 없이 적절한 사이즈로 먹기 좋게 구운 통에 그 이후로 나는 매 분기별 체육대회 때마다 제대로 쉬거나 놀지도 못하고 호떡을 굽는 일을 맡아야만 했다.

‘내가 굳이 군대에서 뭘 잘한다고 티를 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계기이기도 했지.’

체육대회 행사로 인해 외부에서 온 병사들의 가족들까지 합치면 매 분기별로 수백명의 손님을 상대해야 했던 나는 말년이 되었을 땐 어지간한 초짜 호떡 장사꾼보다 호떡을 잘 만들 정도가 되었고 종종 취사반에 올라가 몰래 취사병들과 함께 호떡을 구워 먹으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근데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그땐 호떡 굽는 걸 도대체 어디 가서 써먹나 했는데.’

나름 호떡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당시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호떡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오랑캐 호(胡)가 들어 있는데 호떡이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대충 19세기 후반쯤 청나라 상인들을 통해서 들어온 거라는 썰부터 여러 가지 썰이 있지만 결론은 청나라 혹은 중국국의 상인들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현대에 와서야 설탕도 흔해지고 식용유도 흔해지고 밀가루도 흔해지는 바람에 사람들의 인식 속에 길거리 음식 취급을 받게 되었지만 설탕, 식용유, 밀가루가 흔하지 않은 이 시대에선 꽤나 고급스러운 요리가 되기에 충분한 음식이 바로 호떡이었다.

“큼큼, 아이고~ 이거, 기름 냄새가 납니다?”

‘쟤는 산에서 무공수련 안하고 후각 단련만 했나봐.’

안에 설탕을 넣은 반죽을 팬에 올리기 전에 기름이 가열되면서 나는 냄새를 맡았는지 게사르는 부른 적도 없건만 자연스레 부엌으로 찾아왔다.

“어? …왔어요?”

“하하하, 그냥 밤에 산책 좀 할까 해서 나왔는데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큼큼.”

두 사람이 내 앞에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아서 내가 호떡을 만드는 걸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불현 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500원이면 탈 수 있는 방방이니 퐁퐁이니 하는 트램플린이라는 놀이기구 옆에는 달고나 뽑기로 부수입을 벌어들이던 사장님이 있었다. 사장님이 국자에 설탕을 넣고 불에 올려 적당히 녹인 다음 소다를 한꼬집 집어넣어 색이 카라멜 색깔처럼 변하면 사장님은 설탕가루를 적당히 흩뿌린 곳에 툭하고 내려놓았다. 마치 빈대떡 반죽마냥 제대로 된 형태가 없는 상태일 때 아이들이 각자 취향에 맞춰 고른 문양을 올린 사장님은 자기들이 이뻐하는 아이들에겐 꾸욱 눌러서 좀 더 쉽게 뽑기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하시곤 했다. 그 당시에 자신에게 줄 뽑기를 만드느라 지켜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딱 이들 같았다.

‘아…오늘따라 옛날 생각나네. 크읍.’

잠시 추억에 젖어 있으면서도 내 손은 누르개로 속재료가 들어간 반죽을 적당히 누르고 있었다. 달아오른 기름이 탄수화물과 만나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강력한 효과를 지닌 방향제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자꾸만 날 어릴 적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자, 이제 여기서 한번 더 뒤집고~”

한쪽 면이 적당히 익은 호떡들을 뒤집은 뒤 누르개를 이용해 기름을 살짝 퍼올려 익은 면의 위로 발라주자 달아오른 기름과 반죽이 만나 고소한 내음이 피어올랐다. 두 사람도 그 냄새가 꽤나 좋은지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두 사람, 미리 말해두는데 이 호떡이란 건 먹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

“그게 뭔가요?”

“겉으로 보기에 식은 것 같다고 한입에 꿀떡 삼키거나 하면 절대 안 돼. 속에 들은 설탕이 녹아내려서 줄줄 흘러 혓바닥에 닿으면 꼭 시뻘건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혀가 다 익어버리거든. 저번에 양갈비 구이 먹었을 때보다 더 뜨겁다고 보면 돼. 그리고 먹다가 안에 들은 내용물이 옷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고.”

“아!”

두 사람은 나의 경고에 양갈비 바비큐를 먹으면서 뜨거움에 혓바닥을 데었을 때를 떠올렸는지 몸서리를 쳤다.

“그러니까 마구 달려들어서 먹으면 절대 안 돼. 마치 황제가 만찬을 대하는 것처럼 천천히~ 여유 있게 먹어야 되는 음식이야.”

종이컵이 있으면 간편하니 좋으련만 포인트를 주고 사자니 1번 쓰고 버릴 거라 너무 아까워 누르개로 슬쩍 들어올린 호떡을 집개로 집어 두 사람의 앞에 깔아둔 접시 위에 올려놨다. 두 사람은 김이 폴폴 올라오는 호떡을 향해 손으로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다고 쉽게 식으면 호떡이 아닌데.’

나는 냉기를 슬쩍 손바닥에 둘러 내 몫의 호떡을 향해 두 사람처럼 손 부채질을 하는 척하면서 적당히 먹기 좋게 호떡을 식혔다.

‘너무 식으면 또 맛이 떨어지지. 적당히~ 적당히 식혀야지.’

젓가락으로 반을 접은 뒤 크게 베어 물자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둘은 자기들 것도 식은 줄 알았는지 나처럼 젓가락으로 반을 접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허어어어억.”

“앗! 뜨~거~워! 이 뜨거운 걸 어떻게 그렇게 꿀떡 삼켰어요?”

‘그럴 줄 알고 있었다.’

녹아내려서 용암처럼 뜨거운 설탕을 품은 호떡이 겨우 손으로 바람 몇 번 쐬어 줬다고 식을 리가 있겠는가. 호떡 속의 열기에 녹아있는 설탕이 줄줄 흘러내렸다.

‘다 경험하면서 배우는 거지…큭.’

[으음, 이 호떡이라는 건 별로 들어간 재료도 없는데 꽤나 맛있군. 단 맛과 기름 맛 그리고 기름에 익은 탄수화물의 맛 이 세가지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어.]

그러나 두 사람은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호떡을 맛있게 먹으며 호떡 맛을 즐겼다.

“이거, 지짜 뜨거워서 미치 거 가튼데 마시써요.”

“허어~ 용운 님이 만드는 요리는 꼭 허어~ 오래된 선인들의 술법같습니다.”

두 사람이 먹는 속도를 보아하니 계속 호떡을 구워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드는데 비아가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용운, 저번에 한 약속을 잊지 말게. 나도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걸 구경만 하고 싶지는 않아.]

‘알았다. 알았어.’

호떡 집에 불난 것 같다는 말마따나 나는 손님이 미어터지는 호떡 집의 사장님처럼 고작 세 사람이 먹을 걸 굽는데도 연신 호떡을 굽느라 바빴다. 두 사람의 배도 어느 정도 차고 비아도 더 먹으라는 말이 없어 만족했나보다 싶어 이제 오늘의 장사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익숙한 인기척이 가까워지는 게 기감에 잡혔다.

‘아…젠장.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왜 또 깼어 쟤는…….’

“와…뭐지? 이 사람들? 나만 빼놓고 맛있는 걸 먹고 있었네? 치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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