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데바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폭립의 양고기 버전인 램립을 만들기 전에 우선 양갈비에서 불순물이라든가 핏물을 제거하여 누린내를 최대한 없앤 상태의 프렌치랙을 가지고 양의 12개의 갈비에 양의 머리쪽부터 번호를 붙여 1번부터 4번까지의 갈비인 숄더랙과 5번부터 12번까지의 갈비를 말하는 램랙을 굽기만 한 뒤 순수한 고기만 그녀와 다진이 그리고 게사르에게 맛보게 했다.
- 와……. 말씀하신 잡내가 전혀 안나고 어쩜 이렇게 맛있죠?
- 진짜 맛있네요. 산에서 먹었던 고기는 냄새가 심해서 먹기가 역했는데…….
“전 둘 다 맛있긴 한데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이게 좀 더 맛있네요.”
‘다진이, 얘는 내가 그동안 너무 잘 먹여놨나…은근히 입이 고급이란 말이지.’
다진이가 고른 부위는 숄더랙에 비해 지방이 적은 램랙이었다. 마트같은 곳이라든가 양갈비를 파는 가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부위는 숄더랙이지만 사실은 램랙이 숄더랙에 비해 지방이 적어 훨씬 담백한 맛을 내는 부위라 보통은 램랙을 숄더랙에 비해 좀 더 질 높은 식자재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 그럼 이번에는 소금을 찍어먹어 봐요.
- 어디 한번.
세 사람은 차례대로 토마호크처럼 생긴 양갈빗대를 가지고 소금을 찍어 한입씩 물어 입으로 뜯어먹었다.
“와… 소금만 찍어 먹었는데도 맛이 이렇게 달라져요?”
- 어때요, 둘은?
- 그냥 먹었을 때도 맛있었는데 소금을 찍어 먹으니까 맛이 훨씬 배가되는 느낌입니다.
- 당장 이걸 팔아도 되겠어요.
- 맞아요. 간단하게 그냥 고기만 손질해서 팔면 편하고 좋으니까요.
- 정말요!
나는 데바와 게사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게사르와 데바는 내가 고개를 젓자 자신들이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 그냥 이걸 구워서 팔면 안됩니까? 이렇게 맛있는데? 움…움…….
게사르는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기를 뜯어 소금을 찍어서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졌다.
- 네, 팔기에 충분할 정도로 맛있죠. 팔면 안되는 상품은 아닙니다. 그저 구워서 손님들에게 소금을 찍어먹으라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안되니까요.
- 그럼 뭐가 문젠가요? 여태까지 양고기를 아무렇게나 구워서 먹을 생각만 했지 아무도 갈비만 추려서 팔 생각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구요. 청해에 사는 사람들 누구도 말이죠.
이건 일종의 콜럼버스의 달걀같은 거였다. 누구라도 한번 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이 되어 누구라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
- 그저 어린 양의 고기 부위를 가지고 소금만 찍어 먹게 한다면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다른 가게들도 선문객잔에서 파는 양고기 요리를 따라서 만들겠죠?
- 아!
한국에서도 흔한 이야기였다. 간단하고 쉬운 조리법이란 다시 말해 누구라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선 경쟁력이 없다는 말과도 같은 의미였고.
- 내가 당신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건 이렇게 단순한 게 아니에요, 이 청해, 아니. 중원을 포함하고서도 앞으로 당신만 할 수 있는 요리법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데바 당신도 앞으로 나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요리 방법이죠.’
[자네 지론이 줄 거면 다 주라는 거 아니었나?]
‘다 가르쳐줄 거야. 하나만 빼고. 체인점 사업에선 핵심은 본사가 쥐고 있어야 한다고.’
[근데 다 알려준다고 해도 그녀가 ‘그걸’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혹시 모르니까 그런 거지. 이를테면 이중 보안?’
- 자, 이제 아무런 양념이 없는 상태의 양갈비 구이를 맛보았으니 그동안 훈연과정을 통해 속까지 익힌 양갈비를 가지고 만들 요리는 어떤가 한번 볼까요?
특별히 이번에 새롭게 제작한 바비큐 그릴 뚜껑을 열자 연기가 피어오르며 세 사람의 앞에 훈연된 상태의 양갈비가 잘 익은 상태로 나타났다.
꿀꺽
내 귀로 세 사람의 목이 일제히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냄새 좋죠?
- 예! 처음 맡아보는 향기입니다.
- 저 양고기가 사장님이 말씀하신 건가요?
데바는 자신만 할 수 있는 조리법이라길래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는지 눈이 똘망똘망했다.
- 데바, 고작 이 정도일 것 같아요? 내가 방금 전에 말한 거 기억나요?
- 네? 이렇게 생긴 통 안에서 굽는 것도 사람들이 금방 따라할 수 있을까요?
- 맞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 앞에서만 보이지 않게 숨기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어느새 팀이 되었는지 두 사람은 한마음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건 아니었다.
- 데바, 데바가 앞으로 선문객잔의 사장이 되면요. 하루 종일 이렇게 불 앞에서 있을 건가요?
- 당연하지 않나요? 분명 사장님께서 제가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 최선을 다해야 하긴 했죠. 그러나 일을 잘 한다는 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되 똑똑하게 하는 걸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기만 하는 건 일을 잘하는 게 아니에요.
하루 종일 바비큐 그릴 앞에서 고기만 굽고 있는 건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요리를 하나하나 가르치는 건 사장이 전반적으로 과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 지금 내가 데바에게 이렇게 요리하는 걸 가르쳐주는 건 데바가 모두 혼자서 다 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앞으로 생길 선문객잔은 당신이 이전까지 일했던 가게보다 훨씬 클 거고 따라서 함께 일할 직원들도 늘어날 거에요. 그때가 오면 데바는 ‘데바선문객잔’의 대표로서 그 모두를 알고 있어야 직원들에게 지시를 명확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인도 모르면서 알아서 잘 해달라고 지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지시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언제나 명확하고 간결해야 하는데 본인이 모르는 상태로 하는 지시는 그러기 어렵거든요. 그럼 자연히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쉬워지고 자칫하면 제대로 된 지시를 못 받은 직원이 음식을 잘못 만들 수도 있고 손님을 대하는 과정에서 데바가 원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대접을 해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 아니요.
- 그럼 직원을 고용했을 때 나중에 누구 하나가 이 원통형 석쇠가 선문객잔의 요리 비법이라는 걸 알아서 누군가에게 팔아넘기거나 본인이 자신의 장사밑천으로 삼아 가게를 차린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 …….
생각보다 흔한 이야기였다. 비법을 알아낸 직원이 다른 곳에 가서 똑같은 가게를 차리거나 하는 경우는. 가장 재수 없을 땐 바로 옆에 똑같은 가게를 차릴 수도 있었다. 자신의 가게가 사실은 원조라면서 말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직원이 가게의 비법을 가지고 자신의 가게를 차리는 것만으로도 배신감으로 인한 심적 충격이 큰데 심지어 그 비법이 사실은 직원이 개발한 것이라면서 주변에 소문을 내기까지 하면 가게 사장이 이를 버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는 특허권같은 권리보호 제도같은 것이 생기려면 한참 먼데 누구한테 가서 하소연을 해서 그동안 본 손해를 돌려받을 수나 있겠어?’
[설령 그런 제도가 생겨나는 세상에서조차 본인의 권리는 본인이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하지.]
‘맞아, 법과 제도가 있는 세상에서도 유형이든 무형이든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 한동안은 어찌어찌해서 숨길 수도 있을 거에요. 데바가 팔게 될 음식이 원형 석쇠로 고기를 찌듯이 익히는 과정을 거친다는 걸. 그러나 언젠가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세상으로 흘러 나갈테죠
- 과연 그럴까요?
- 대표가 자신의 직원들을 믿고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직원을 믿기만 해서도 안됩니다. 직원은 말 그대로 직원일 뿐이에요. 많은 직원들 가운데 누구 하나 나쁜 마음을 먹었을 때 객잔이 타격을 입는다면 그건 그런 잘못을 저지른 직원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책임입니다. 책임자는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하죠.
- 직원이 몰래 빼돌릴 수 있다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동안 가게를 운영은 했지만 혼자만 일해온 탓에 아직은 여럿을 부리기엔 부족한 데바는 내가 지적한 부분을 듣고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약간 자신감이 없어진 것 같았다.
- 데바, 그렇다고 해서 너무 걱정부터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부리고 일할 수 있도록 모든 과정을 가르쳐줄 것이고, 그게 당신이 객잔의 주인으로서 가질 힘이 될 겁니다. 즉, 당신만이 가질 이 모든 지식과 경험이야말로 당신이 객잔의 주인으로서 가질 진짜 재산이 되는 거죠.
- …제가 용운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 네, 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입니다. 어렵다고 해서 도망가기만 한다면 당신이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도전해서 시도하고 때론 실패하면서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시간이 흘렀을 때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겁니다. 당신이 무서워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패의 과정 끝에 결국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는 거라는 걸.
내 말을 들은 데바는 뭔가 와 닿는 게 있는지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네, 용운 님의 말씀대로 해볼게요.
“지금 그 표정 좋았어요. 앞으로 데바 지점장이 아니라 제가 바라는 데바 사장님의 모습이 가져야 할 표정이에요.
어느 정도 그녀가 나의 방침을 이해한 것 같아 그녀에게 데바 객잔의 첫 번째 메인 요리의 핵심이 될 비법을 공개했다. 케첩을 비롯해서 각종 향신료가 섞인 바비큐 소스는 이 세상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비전(祕傳)이었다.
- 그 검붉은 색의 양념이 제 가게를 지켜줄 비법인가요?
- 맞아요.
바비큐 그릴을 통해 익힌 고기에 폭립에서 쓰이는 바비큐 소스를 덧바른 뒤에 미리 준비해둔 철판을 가열한 뒤 올려서 굽기 시작했다.
”흐읍.”
- 우와…….
불판 위에서 서서히 고기가 양념과 만나 구워지면서 내게도 꽤나 자극적인 램립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와… 이건 좀 나도 못 참겠는데……….’
나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수업을 하고 있는 입장인 나조차도 군침이 도는 그런 냄새였다.
“미치겠다… 진짜… 용운님, 언제 다 돼요?”
“이제 곧.”
세 사람은 침을 꿀떡 꿀떡 삼키면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갈빗대 하나하나 타지 않도록 구워내는 내 손에 시선을 집중했다. 슬쩍슬쩍 고기를 뒤집을 때마다 이제 끝이난 건가 싶어 고개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세 사람의 고갯짓이 귀여웠다.
“용운님! 아직도 멀었어요? 이제 다 된 것 같은데?”
이제는 참기가 꽤나 힘든지 살짝 언성이 높아진 다진의 목소리에 다진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는 데바의 고개가 돌아가고 다진의 말을 알아든은 게사르는 강력하게 동의를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진이는 두 사람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제야 정신을 살짝 차리고선 머쓱해했다.
“크흠, 고, 고기가 탈 것 같아서요. 혹시라도 모르실까 하고.”
[자네, 굶주린 상태로 잠든 사자의 수염은 자꾸 잡아당기지 말게.]
‘좀 재밌지 않아? 저렇게 안달복달하는 게?’
[보아하니 자네는 좀 간혹 스스로 매를 버는 느낌이 있어.]
‘내가?’
[자네도 아직 멀었군 그래. 더 경험하다 보면 본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걸세.]
비아와 이야기하느라 용운이 살짝 다진이를 보지 못하는 사이 다진이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살쾡이처럼 튀어 올랐다.
“용운님!”
“큭, 나 귀 안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