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 데바, 음식이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죠?
- 당연히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거죠.
- 맞아요. 근데 우리는 그 음식이란걸 사람들이 먹고 마시라고 상대방에게 팔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녀의 대답대로 음식(飮食)이란 그 한자에 담겨 있는 의미 그대로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걸 통칭한다. 수능이 끝나고 한동안 만화방에 처박혀 있을 적에 읽었던 책 중에 식객에는 이런 표현이 나왔다.
식(食)이라는 한자를 나눠 보면 사람 인(人)과 좋을 량(良)자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는 음식이 사람을 좋게 만드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 그건 제가 더 잘 알 거 같은데요. 전 지금까지 살면서 음식을 사는 게 저의 일이었고, 제 조상 대대로 내려져 온 업이었으니까요. 제가 만든 음식이 만약 사람들이 먹기에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장사를 계속할 수도 없었겠죠.
-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이 주방 상태는 어떻게 생각하죠? 손님들이 음식을 만드는 저 음식점 내부는 어때요?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바로 위생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이 주방의 환경과 이 음식점의 청결 상태는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려운 수준이었다. 아니, 이 시대의 객잔들은 내가 만든 선문객잔을 빼곤 다 이따위였다. 이 정도의 청결 상태가 시대의 표준이라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참고 무시한 것일 뿐이었다.
-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첫 번째로 항상 갖춰야 할 것이 바로 청결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음식점은 내가 말한 청결함이라는 걸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죠.
가게 내부를 둘러 보면 고기를 삶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기름 때가 여기저기 찌들어 얼룩과 찌든 때를 형성하고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할 조리도구들은 어떠한가. 언제 제대로 씻었는지가 궁금한 칼과 몇 대가 내려오는 동안 켜켜이 도마들에 쌓인 시꺼멓게 때가 눈에 밟혔다. 괜히 내가 여기서 군만두를 만들 때 화공을 일으켜 임시방편으로 소독을 먼저 한 게 아니었다.
- 지금 당신의 손을 봐요. 제가 보기에 당신의 손은 요리할 준비가 된 손이 전혀 아니에요. 손은 씻지 않아 깨끗하지 않고 손톱도 관리가 되어 있질 않아 그 밑에는 때가 잔뜩 껴있죠. 당신이 그동안 만든 음식들에는 당연히 당신의 손에 닿은 모든 것들의 일부가 섞여 들어갔을 거에요. 오늘 볼 일 보고 요리하기 전에 손은 씼었나요?
- 그…그건…….
나의 지적을 받은 그녀는 당황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서 게사르가 헛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욱, 우욱―
‘뭐야, 왜 저래. 이제 비아가 있어서 딱히 통역도 필요 없는데 와 가지곤.’
- 무슨 문제 있습니까, 게사르?
- 아무 것도 아니 웁…….
게사르는 그녀가 만들어준 음식을 아침식사로 맛있게 먹었는데 용운이 그녀의 손을 잡고서 하나하나 지적하자 그제야 자신이 먹은 음식이 어떤 손으로 만든 것인가에 대해 새삼 되짚어보게 되었다. 이는 한번도 의식해본 적 없던 청결에 대해 용운의 말을 듣고 새롭게 인식한 결과였다.
- 나는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당신도 앞으로 음식을 팔면서 당신이 만든 음식을 보면서 행복한 손님들을 보고 다시 행복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런 더러운 손과 더러운 도구들로 만든 음식을 먹은 손님이 배탈이 나거나 한다면 과연 행복할까요? 그리고 손님을 내게 행복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으로만 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까지는 돈을 버는 재미로 버틸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 당신은 오래 지나지 않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대충 음식을 만들게 될 거에요. 그런 걸 바라고 나에게 새로운 요리법들을 배우고 싶다고 한 건 아니죠?
- ….네.
데바는 실제로 용운이 말하는 것처럼 부모님께 물려받은 이 음식점 장사를 하게 되고 한동안은 돈을 버는 재미를 느끼던 때도 있었지만 어차피 오는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이 빤한지라 벌어들이는 돈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곤 그때부턴 관성적으로 요리를 해왔다. 매일 똑같은 요리를 하면서 사는 삶이 지겨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별 거 아닌 푼돈 손님들을 받아가며 늙어갈 자신의 삶이 저주스러웠으니까.
- 여태까지 잘못된 당신의 마음가짐은 지금 보이는 청결상태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내 가족, 내 자식이 먹는 음식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깨끗한 환경에서 깨끗한 손으로 만들었을 거에요.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더러운 환경에서 먹으면 배탈이 나기가 쉬우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녀는 내 말을 들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방과 가게를 둘러보았다.
- 정말 부끄럽네요.
- 부모님께 물려받은 이 가게를 새로 만든 가게처럼 완전히 깨끗하게 만들 수는 없었겠지만 얼마든지 최대한 깨끗하게 관리를 할 수는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어때요? 기름때가 잔뜩 탁자에 눌러 붙어서 탁자에 손만 올려도 쩍쩍 달라붙잖아요. 이런 공간에선 손님들이 행복하게 식사를 할 수 없어요. 불쾌함이 먼저 다가오죠. 당신의 부모님과 조상님을 모욕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불결한 가게에서 돈을 많이 낼 바보같은 손님은 저번의 나같은 사람밖에 없겠죠.
- 맞아요…….
- 데바, 내가 지금 이 말을 하는 건 당신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손님들을 먼저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에요. 행복한 손님은 얼마든지 자신의 전낭(錢囊)을 활짝 활짝 열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손님을 돈으로 보지 않는 걸 명심해요. 손님은 바보가 아니거든요. 대충 적당한 재료로 대충 음식을 만들어서 대충 돈만 벌려고 하면 다 알아봐요. 데바가 제대로 된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깨끗한 공간에서 팔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에요. 그러니 데바의 관심은 돈이 아니라 오직 본인의 요리실력의 발전과 손님들의 만족에 있어야 합니다.
- 알겠어요.
이만하면 왜 요리부터 가르쳐주지 않냐고 항의한 그녀에게 줄 충격으로는 충분한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가게와 본인의 청결상태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고 변화할 의지를 갖고 있는데 더 몰아붙여서 그녀의 의지를 갉아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주어야 할 것은 지금부턴 희망과 강한 열망이었다.
- 내가 사람들을 시켜 이곳에 가게를 새롭게 짓게 하는 동안 데바는 그 가게의 주인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가게가 완성되었을 때 데바가 가게의 주인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다면 데바의 이름을 새롭게 지을 선문객잔의 앞에 새겨줄 거에요. 저번에 맺은 계약과 비교해서 수익배분도 조정해서 더 늘려줄 거구요.
- 지, 진짜요?
- 네, 대신 열심히 해야 해요. 만약 때가 되었을 때 데바가 앞으로 생길지 모를 ‘데바 선문객잔’의 동업자가 되기에 부족하다면 나는 원래의 계약대로 당신을 선문객잔 청해지부의 관리자로서 받아들일 겁니다.
- 열심히 할게요!
- 데바 선문객잔의 동업자는 열심히만 해선 부족해요. 잘해야 하죠. 이 근방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만큼 확실하게.
게사르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용운의 선한 마음 씀씀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불과 청해에 온지 며칠도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벌써 티벳어를 터득을 했을 때 용의 지혜에 탄복을 했는데 이 용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비전(祕典)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자신의 지식을 나누는데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이 음식이라니… 산에서 내려오기 전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야.’
게사르 또한 데바와 마찬가지로 용운이 만든 음식을 먹기 전만 해도 음식이란 그저 뱃속에 채워 넣어 허기를 달래면 그만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곤륜파라는 집단 자체가 수양을 쌓기 위해 모인 집단이라 화식(火食)을 금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식을 탐하는 것도 그리 탐탁치 여기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음식은 곡식을 빻아서 환의 형태로 뭉쳐놓은 벽곡단 몇 개로 식사를 대신하거나 간혹 산에 돌아다니는 짐승을 잡아서 구워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산짐승들은 사람이 먹기 위해 길들여진 가축이 아닌지라 누린내가 나서 먹기에 별로 좋지 않아 스승께서 한창 클 때는 고기도 먹어야 한다고 하지 강요하지 않았으면 먹지도 않았을 거였다.
그러나 산에서 스승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내려와 용운과 만나 용운이 해준 음식을 먹었을 땐 눈이 번쩍 떠지고 천상의 음식을 먹은 것만 같아 감동을 받았다. 음식이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맞아. 음식을 먹고 행복하다는 감동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거 같아.’
은월을 통해 미리 언지를 넣어 선문건설의 일꾼들이 건설자재를 싣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그녀는 나에게 요리의 기초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명 부모님을 통해 배웠기에 요리를 못한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녀가 알고 있는 음식에 대한 지식이란 오로지 국수를 만드는 것에 편중된 지식이 전부인 상태였다.
물론 나 역시 전생에 이곳 저곳 알바를 할 때 조금이라도 알바비를 더 받으려고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딴 게 전부라 엄청난 요리의 대가라고는 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이 시대의 요리사로서 1류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감의 원천이 있었다.
‘아, 현대의 아카식 레코드! 너튜브여, 정말 고맙다!’
너튜브에는 원하는 요리를 검색하기만 하면 어떤 요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영상 소스가 가득 나왔다. 어떤 재료를 얼마만큼 넣어서 어느 정도의 불로 몇분을 익히면 되는지와 같은 정보들은 도제식 교육을 통해 수년간 고생을 하며 겨우겨우 어깨 너머로 흉내내서 요리법을 전수받는 지금 시대에선 용운은 그야말로 요리계의 비급이 가득한 비고를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지금부터 알려줄 요리는 양갈비 요리입니다.
- 양갈비 요리요? 양고기 요리라는 게 그냥 구우면 되는 건데 거기에도 무슨 특별한 요령이 있나요?
- 만약 그랬다면 제가 이렇게 자신감 있게 가르쳐주겠다고 나서지는 않았겠죠?
이 동네 사람들도 양고기를 먹는 게 하루이틀의 역사는 아닌지라 양갈비를 가지고 간단하게 구워먹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데바에게 알려줄 요리는 그런 단순한 구이요리가 아니라 소스를 발라서 굽는 바비큐였다.
한국 사람들이야 양고기를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에 대해선 돼지나 소에 비해 아는 사람들만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양으로 만든 갈비 요리엔 프렌치랙(Frenched Rack)이라는 게 있다. 맛없는 부위를 제거하고 손질하는 과정을 프렌치드(frenced)라고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친 양갈비를 부르는 표현이 바로 프렌치랙이다.
보통은 이렇게 걷어낼 건 걷어낸 상태 그대로 스테이크로 구워 간단하게 소금을 찍어먹거나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고 고기의 육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긴 하지만 내가 만들고자 하는 건 그런 평범한 양고기 스테이크가 아니었다.
‘돼지로 만든 갈비 요리에 갈비를 익히고 소스를 발라 구워먹는 폭립(Pork Ribs)이 있으니 이건 램립(lamb ribs)이라고 하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