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인터넷에선 세계 각지를 구분하지 않고 음식을 받은 사람들의 후기 덕분에 천마TV 주인이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었고 동시에 허르헉을 맛본 사람들의 후기들로 인해 천마TV에서 만든 음식을 자신들도 직접 맛보고 싶어 천마TV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해지며 구독자 수도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이런 관심들로 인해 100만 구독자를 돌파하면서 정체하는 듯했던 채널에 올라온
영상 조회수들은 하나같이 폭발적인 증가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100만이 엊그제였는데 오늘 구독자 수가 137만을 넘었다고? 포인트는 어디 보자…….”
이에 대한 파급효과로 인해 증가한 포인트와 저번에 벌어들인 포인트 덕분에 누적 포인트가 1억 2천만 포인트에 다다를 정도였다.
[앞으로 이 속도만 유지한다면 10억 포인트도 그리 멀지 않겠어.]
“어…그건 좀…….”
이번처럼 초단기에 2천만 포인트를 벌어들여 1억 포인트를 넘기게 된 건 정말 좋았지만 그 과정은 초절정에 이른 경지의 몸으로도 결코 쉽지 않았다. 1000명이 넘는 음식을 만드는 고단한 과정 때문에라도 라이브 스트리밍을 한동안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보아하니 다른 이들은 굳이 파워챗을 받고 고마움의 표현으로 자네처럼 음식을 만들어서 보내는 경우는 없더군.]
“…그거야 그렇지.”
그냥 얌전히 주는 도네이션이나 받고 말 것을 괜히 이상하게 컨셉을 잡았나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라는 게 비아의 설명이었다.
“일정금액 이상 도네한 사람에게 음식을 보낸 점이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거라고?”
[맞아. 평범하게 먹방을 찍고 자네에게 도네이션을 하는 구독자들에게 적당히 감사인사를 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아마도 너튜브에 넘쳐나는 특이한 영상들 속에 묻혀 버렸을테지. 그럼, 지금처럼 새로운 구독자가 유입이 되고 조회수가 증가하는 선순환을 일으키진 못했을거야…….]
“그럼 앞으로도 저번처럼 도네를 많이 받으려면 음식을 보내준다고 해야되는 건가?”
[자네가 무공으로 직접 만든 음식이어도 좋겠지만 굳이 음식이 아니더라도 뭔가 물질적이고 기념이 될 만한 걸 대가로 보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 장. 이럴 줄 알았으면 김PD한테 그건 보내지 말 걸 그랬다… 무 피곤해서 별 생각 안하고 그냥 보내버렸는데!”
도네를 쏴준 사람들에게 이곳의 사람들을 고용하여 만든 음식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만든 음식임을 증명하기 위해 음식을 보낼 때마다 사기 그릇에 천마장법을 통해 증거를 남겨놨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담은 영상을 김PD에게 보냈기 때문이었다.
“음, 김PD가 아직 영상을 업로드하지만 않았으면 대충 사람들에게 시켜서 음식을 만들어 보낼 수도 있을 건데 제발 제발…어디 보자……?”
[풉.]
김PD는 정말로 유능한 직원이었다. 굳이 사장이 뭘 어떻게 해라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일하는 그런 직원. 오히려 김PD가 사장이 더 일을 하게 눈치를 주는 그런 직원이라 살짝 미워질 것만 같았다.
“나도 한번 만이라도 편하고 싶은데! 왜 나는 편할 수가 없어!”
* * *
“후후, 사장님. 리스펙트! 역시 우리 사장님은 쪼아야 일을 하는 타입인 것 같아.”
긴 시간 촬영한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을 편집한 덕분에 무려 3부작의 분량을 뽑을 수 있어 좋았는데 천마 사장님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려 1210명이 먹을 음식을 함께 먹방을 찍었던 두 사람과 함께 직접 만드는 후기 영상까지 만들어 올려놓은 게 아니겠는가.
다행히도 3부를 업로드하기 전 딱 적절한 시점에 소스를 올려줘서 3부 말미에 쿠키영상 느낌으로 현란한 무공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찍힌 영상을 일부 담아 끼워넣을 수 있었다. 김PD는 간만에 방송국에서 일할 때처럼 제대로 일한 것만 같아 뿌듯함과 함께 진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밤샘 작업에 항상 친구가 되어주는 아메리카노를 쭈욱 빨아내며 의자에서 푹 늘어졌다.
“이걸로 다음주 예고편이랑 다음주에 올릴 영상까지 쌉가능이겠네. 간만에 여유 좀 가지고 쉴 수 있겠는데? 맨날 우리 사장님이 이렇게 미리미리 영상들 좀 찍어서 올려주면 조만간 휴가도 한번 갈 수 있겠어. 앞으로 더 가열차게 쪼아보자. 이게 다 저만 좋으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 * *
이미 쿠키영상으로 다음주에 올라갈 영상의 일부가 올라온 바람에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었다.
“…직원이 너무 게을러도 문제고, 유능해도 문제야.”
물론 주작을 하자면 대충 내가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몇 커트 따고 은월의 대원들이라든가 사람들을 고용해 음식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내 영상을 봐주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까지 속이면서 날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자네 세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팔지꼰’이라고 했던가? 지 팔자 지가 꼰다. 큭, 정말 옛 사람들의 지혜가 풍겨 나오는 격언이야.]
“놀리냐?”
[어이쿠, 들켰나?]
“진짜…넌 언제 한번 만나기만 해.”
다음주에 올릴 영상까지 해결된 덕분에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압박에서 일시적으로 멀어질 수 있었던 나는 이제 국수가게 주인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아…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진짜.”
체인점, 그러니까 프랜차이즈는 그 이름인 Franchise가 중기 프랑스어인 francis에서 유래한 걸 보면 알게 된다면 프랜차이즈가 가까운 과거에 탄생한 개념이 아니라 중세 유럽에서 이미 쓰이고 있던 개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이때의 프랜차이즈는 영주나 법원이 상인이나 관리에게 성 내의 시장에 있는 가게들을 운영할 권리를 주거나 시장을 관리하는 식의 전문적 사업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대가로 로열티를 받는 것이라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는 개념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긴 했지만 본질적으론 다르다고 할 수 없었다.
이 개념이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서 발전한 뒤 한국으로 넘어와 지금 요식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프랜차이즈 개념인 동일한 브랜드를 사용하고 가맹 점포에서 동일한 품목을 팔 수 있도록 본사에서 해당 프랜차이즈만의 사업 방식을 교육하고 상품이나 원재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우리의 이름인 ‘선문객잔’을 달고 우리가 제공하는 재료들을 가지고 가르친 방식대로 만든 요리와 술을 판매했을 때 얻게 되는 수익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상납하는 계약이라고 설명해줘요.”
어지간한 언어는 순식간에 익히는 능력의 소유자인 비아가 돌아온 덕분에 통역은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본인이 자원하여 국수가게 주인과의 통역으로서 게사르가 꽤나 열성적으로 임해준 덕분에 국수가게 주인에게 체인 사업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게 내버려뒀다.
[흠, 딱히 오해할 부분이 없이 정확하게 자네가 말한 개념을 잘 풀어서 전달하고 있군.]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신뢰도가 충분하지 않은 게사르에게 계약에 대한 모든 사항을 일임할 수는 없었는데 이미 티벳어에 익숙해진 비아가 있어 다행히 중간에서 통역을 잘못하거나 오해가 있는 경우를 대비할 수 있었다.
“저기…용운님? 여기 데바 사장님께선 자신은 그런 계약까지는 필요 없고 그저 요리법 하나만 알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국수 가게 사장인 데바는 약간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만두를 만드는 요리법 하나만 툭 알려주고 끝낼 수도 있었지만 하오문과 은월만 가지고 청해에 물류거점을 만들기는 애매하던 차였다. 그래서 이곳에 내가 오기 전 선문객잔의 분점을 내는 것에 대한 논의가 오갔으나 현지의 상황을 잘 알고 신뢰할 만한 현지인을 포섭하지 못해 미뤄진 상태였다.
국수가게 주인의 요청을 듣고나서 국수가게의 입지를 둘러보니 차후 이 지역이 성장할 경우, 부동산적 가치가 상승할 만한 요지에 있다는 걸 부동산민국의 나라에서 온 나는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 새벽에 공중에 날아올라 비아와 함께 국수가게가 자리한 입지의 가치에 대해 인터넷을 통한 검색자료와 함께 다시금 확인해보았지만 이 자리가 놓칠 수 없을 정도로 탐이 나는 입지라는 것이 우리들의 최종 결론이었다.
“물론 그쪽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군만두 요리법 하나 정도만 알려주고 끝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걸로 당신이 만족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당신은 알 수도 없는 세상의 다양한 요리법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 당신은 구할 수 없는 세계의 식재료들을 구해줄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음식들 중엔 이런 것도 있죠.”
계약이 틀어질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혹시나 싶어 준비해둔 아이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용운님, 데바 님께서 이게 뭐냐고 물으시네요.”
“이거요? 식사를 마치고 먹으면 좋은 후식(後食) 중의 하나인 설과(雪菓)입니다. 한번 옆에 있는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어 봐요.”
여사장은 머뭇거리면서 투명한 보울에 담긴 설과를 스푼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설과가 주는 행복한 기쁨의 충격에 그녀의 얼굴에선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 시대엔 아직 개념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라고.’
“어때요?”
여사장이 한입을 먹고 뭐라고 뭐라고 하자 비아가 옆에서 미리 알려줬음에도 나는 못 알아들은 척 게사르가 통역을 했다.
“좀 더 맛보고 싶다고 하네요. 츄읍.”
황홀함을 느낄 정도로 좋아하는 데바의 모습에 처음 보는 새하얀 음식인 설과가 도대체 무슨 맛인지 알고 싶어 먹어보고 싶은지 게사르의 목젖이 출렁거렸다.
“얼마든지요. 마음껏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좋다고 해요.”
그녀는 내 허락을 듣자마자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금 한 스푼 떠서 입에 넣고는 눈을 감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맛이 어때?’
사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그녀가 느낄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갈지 상상하게 되었다.
[자네가 유리온실에서 굳이 포인트까지 지불하면서 씨앗을 구해 그 난초를 기르겠다고 할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네.]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핵심 재료인 바닐라 빈은 바닐라 향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새까맣게 말라있는 형태 정도만 알 뿐이었다. 바닐라 빈은 바닐라 난초라고 부르는 난초의 한 종류의 열매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대체로 접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제품에 들어있는 바닐라 향은 바닐라 빈을 통해서 얻은 결과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즐기는 바닐라 라떼라든가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것에는 전세계적인 수요를 감당하기에 바닐라 빈이라는 건 생산하기까지 손이 많이 가는 꽤나 노동집약적인 산물이라 저렴하지가 않은 식재료이기에 현대에선 정향나무 같은 목재에서 바닐라 향을 낼 수 있는 유게놀이라는 액체를 추출하여 만든 인공바닐라가 들어간다.
‘하지만 이건 그런 인공 바닐라가 아니라 현대인들도 비싼 돈을 내지 않으면 먹어본 적이 없는 진짜 바닐라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잘 알고 있는 나조차도 그 달콤하고 향기로운 맛에 끌리게 될 정도인 진짜 바닐라.’
- 정말 맛있네요. 마하칼라 님께서도 이 맛을 보셨다면 그 분의 분노도 제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이 설과처럼 녹아내렸을 것이 분명해요. 천상의 향기같은 이런 향이 담긴 달콤한 음식은 처음 먹어봐요.
비아가 실시간으로 그녀의 음성을 변환하여 그녀의 말을 번역해줬다. 그녀가 한 말 중 마하칼라는 건 티벳 사람들이 믿는 대중적인 수호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하칼리는 인도의 시바신의 아바타라고 볼 수 있는 칼라가 불교로 편입되며 일종의 로컬라이징 과정을 거친 결과 탄생한 신을 말했다. 중원에선 대흑천(大黑天) 또는 암야천(暗夜天)이라고도 불리는 전쟁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마하칼리는 꽤나 혈기가 넘치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런 신의 분노가 녹아내릴 정도라는 건 아이스크림의 맛이 그 정도로 뛰어나단 극찬이란 의미였다.
- 제가 만약 그 계약을 맺는다면 이 음식도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거죠?
아이스크림 맛을 보기 전만 해도 오랫동안 이곳에 터전을 자리잡고 살아온 선대의 유산인 가게를 빼앗을 수작이라고 오해했는지 두려움이 가득했던 그녀의 눈빛에선 이제 꽤나 강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물론이죠, 당신이 제가 주는 재료들을 가지고 제가 가르쳐 주는 요리방법을 따른다면요”
- 그런데 제가 만약 나중에 당신에게 당신이 만드는 수많은 요리법들을 배우고 나중에 계약을 파기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녀로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군. 어찌 보면 솔직하고 어찌 보면 미숙하고.]
그러나 내 제안은 그녀가 생각하는 상황은 애초에 발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우유 정도는 야크나 양의 젖을 짜면 얻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바닐라 아이스크림에는 설탕과 바닐라가 핵심재료로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를 통해서 바닐라라든가 설탕을 제공받지 못한다면 그녀에게 있어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요, 단언하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당신이 뛰어난 요리실력을 가지고 있어 나에게서 많은 요리법을 배운다고 할지라도 그건 일부에 불과할 것이고, 그 일부를 배워서 독립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도 전에 깨닫게 될 겁니다. 쓸데없는 상상에 불과하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