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올X보이」의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정도로 맛깔나게 군만두 먹방을 선보이던 게사르라는 남자는 다진이 꽤나 많이 넘겨준 군만두를 먹으며 배가 어느 정도 찼는지 먹는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하하, 이거 무슨 음식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맛있군요.”
“군만두라고 하는 음식입니다만…….”
“군만두… 군만두……. 천상에선 이런 음식을 먹나 봅니다.”
“네?”
‘이 사람, 좀 이상한데?’
남자와의 대화는 묘하게 겉도는 느낌이 강했다. 서로 대화는 하고 있는데 주파수가 서로 안 맞는다고 할까.
“아까는 제가 경황이 없어 제대로 절 소개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게사르…라고 하지 않았나? 더 소개할 게 남아 있어?’
남자는 허리를 꼿꼿이 세워 자신을 곤륜파의 2대 제자인 게사르쟈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와~ 그 곤륜파요? 하늘을 자유롭게 용처럼 노닌다는 운룡대팔식의 그 곤륜파?”
“하하, 운룡대팔식은 우리 곤륜파의 성명절기(成名絕技)이죠.”
꺄르르 웃어 대며 잘도 곤륜파의 문도와 떠드는 다진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 어디에선가 뭔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두 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겠습니까?”
“아, 저희들이요? 교… 음……. 저희를 뭐라고 설명해 드려야 좋을까요…….”
게사르는 별것도 아닌 질문에 눈에 띄게 당황하며 옆에 앉은 사내 용의 눈치를 보는 여자 용의 반응에 자신이 꽤나 적절한 질문을 했구나 싶었다.
‘그렇겠지……. 용끼리 무슨 사람들이나 쓸 법한 이름이 있겠어?’
다진은 나보고 어서 빨리 대답을 해 보라고 내 허벅지를 쿡쿡 찔러 댔다.
‘아니……. 뭘 그렇게 당황해. 그냥 소개하면 되는걸.’
허벅지를 건드리는 다진의 손을 꼭 붙잡고 나는 앞에 앉아 있는 자칭 곤륜파의 문도에게 미리 준비해 둔 우리의 캐릭터 설정을 떠들기 시작했다.
“저희들은 그냥 중원으로 물건을 팔기 위해 이동 중인 상인들입니다. 제 이름은 화용운(火龍雲)이라고 하고, 옆에 앉은 이 친구는 수다진(水多振)이라고 합니다.”
다진이가 우리 이름을 이런 곳에서 아무렇게나 떠들어도 되냐고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중원에만 가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어 동명이인이 흔해 빠진 데다 주민등록 같은 제도도 없는 이런 세상에서 아무 일도 벌이지 않은 우리들의 이름을 말하고 다닌다고 그다지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습니까? 역시!”
‘뭐가 역시야, 역시는? 그냥 이름 말하고 우리 직업이 상인이라고밖에 안 했는데.’
게사르라는 남자는 우리의 이름을 듣고 눈에 띄게 안색이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지에서 만난 사람이니만큼 그냥 멀리하는 게 좋으려나…….’
우리의 소개를 들은 뒤, 게사르라는 남자의 태도는 이전보다 더 친절하고 상냥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바뀌었다.
‘왜 저렇게 친절하게 구는 거지? 상인이라고 소개해서 그러나? 우리가 가진 돈을 사기 치거나 빼앗으려고?’
낯선 여행지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처음 만나는 사람의 뜻 모를 선의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선한 사람을 만나 친절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은 돈 몇 푼에 사람도 죽이는 그런 세상이지 않는가.
물론, 스스로를 곤륜파의 문도라고 밝힌 눈앞의 남자는 실제로 꽤나 고강한 무공을 지닌 듯했고 가진바 무공의 흐름도 이전에 호법 할아버지들에게서 배웠던 정파의 무공들이 가지는 특징과 유사했다.
무엇보다 우리 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와 안정된 걸음걸이와 호흡 등 많은 요소들은 이 남자가 정파의 무공을 익혔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슬쩍 조심스럽게 기를 흘려 남자를 탐색하려고 들자, 남자가 움찔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기에 민감한 편인가?’
용운이 기로 자신을 살피는 순간, 게사르는 용운이 용이라는 자신의 직감에 점차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무림인들에게 있어 상대방의 신체를 기로 탐색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 도발로 받아들여도 이상하지 않은 매우 무례한 행위라 금기 중의 하나였다. 더구나 상대방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는 인간의 것인지 가히 의심이 갈 정도로 바람처럼 전방위적으로 흘러나와 자신의 육체를 훑고 지나갔다.
통상적으로 인간들은 내공을 뿜어내는 손이나 발 같은 말단 부위뿐만 아니라 이토록 다방면으로 내공을 뿜어낸다는 행위는 상상도 할 수 없었건만, 사람인 척 둔갑한 사내 용은 그런 걸 모르는지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몸 전체에서 내공이 발산하고 있음을 게사르는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용이다! 용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을 이토록 숨 쉬듯 편안하게 할 순 없는 법이지.’
만약 본인이 스승에게서 사명을 전달받기 전 태청신공(太淸神功)을 전수받고 수련하지 못했다면 지금 상대방에게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퍼져 나와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는 이 기운을 감히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게사르의 오해는 용운이 새롭게 리모델링한 심법인 12기통 단전을 통한 천마신공의 특성 때문이었지만 게사르는 알 방도가 없고, 용운은 무림의 법도를 잘 모르는 통에 서로의 오해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행을 위해 중원에 가신다구요? 하하하. 이거 참, 잘되었습니다.”
‘우리가 중원에 가는 게 뭐가 잘된 거지?’
“예? 무엇이 잘된 것인지……?”
“저도 이번에 스승님으로부터 명을 전달받아 중원에 가게 되었거든요.”
‘그거랑 우리가 중원에 가는 게 무슨 상관인데?’
게사르에게서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순간 우리가 군만두를 다 먹기만을 기다리던 식당 사장이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고개를 숙이며 다가온 탓에 왜 우리가 중원에 가는 게 그에게 잘된 일인지에 대한 답을 들을 순 없었다.
식당 사장이 열과 성을 다해 뭔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건만 나도, 다진이도 도통 식당 사장이 뭐라고 떠드는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아,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하필이면 이럴 때 비아도 없고. 갑갑하다.’
이제 군만두도 다 먹었겠다, 그만 이 불편한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건만 식당 사장이 워낙 환한 표정으로 뭔가를 떠들고 있는 통에 자리에서 섣불리 일어날 수도 없었다.
“용운 님? 이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걸까요?”
다진이도 나랑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기어이 참지 못하고 내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나라고 티베트어를 알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인지라 다진이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고 난처함만 커지고 있었다.
“아! 두 분은 이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못 알아들으셨군요?”
“네? 네! 열심히 말하시긴 하시는데 저희들은 이쪽 말은 잘 몰라서요.”
“아~ 그럴 겁니다. 명나라 사람들에 비하면 티베트어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요. 아무렴요.”
자꾸만 무슨 대화를 할 때마다 눈이 번쩍이는 것 같아 꺼림칙해서 그만 엮이고 싶은데 명문 대파라는 곤륜파의 제자답지 않게 영업 사원 기질이 엿보이는 이 게사르라는 남자에게 다진이가 빌미를 주고 말았다.
“제가 통역을 해드려도 될까요?”
“예, 부탁드릴게요.”
‘다진아… 제발~ 좀!’
뭐라 말할 겨를도 없이 다진에게서 남자의 제안에 대한 수락이 나왔고, 미처 말리지 못한 나는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것만 같았다.
‘크으, 사이다 마시고 싶다.’
식당 주인에게 뭐라뭐라 떠든 게사르는 그녀에게 도대체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지 고개를 꾸벅이는 감사의 인사 같은 것을 받고선 환하게 웃으며 포옹을 나누었다.
“제가 두 분께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해 주겠다고 하니까 이렇게 좋아하네요. 하하하.”
‘아니~ 저 식당 주인보다 네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게사르의 말에 따르면 식당 주인의 말은 우리가 군만두를 먹기 전 식당 주인이 꺼냈던 제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군만두를 만드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서 이 가게에서 팔고 싶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이 사람 말로는 자신은 가게에 있는 재료들로 그런 음식을 만드는 건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대요.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게의 요리법을 따라 똑같은 음식을 만들어 오면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싶어도 따로 누가 가르쳐 주는 곳도 없고 배우고 싶은 음식도 없었는데 오늘 군만두를 먹어 보고 크게 놀랐답니다.”
“우리 군만두가 입에 잘 맞았나 보군요.”
“아무렴요, 겉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의 한쪽은 바삭바삭해서 고소함이 느껴지고, 다른 한쪽에선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그 조화로움과 함께 안에선 여러 재료들이 양고기의 기름과 함께 어우러져 뿜어내는 맛을 보고 평생 자신이 꿈꿔 온 음식이 바로 이 음식이라고 느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귀하신 분께서 만드신 음식을 큰돈은 아니지만 그동안 모아 온 돈을 드리고서라도 배우고 싶다고 간절하게 청한다고 합니다.”
“내가 만든 음식이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크흠.”
“아니에요, 용운 님이 만드신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용운 님이 만드신 음식을 자주 먹어 본 저도 군만두는 진짜 맛있었어요. 마음 같아선 저도 평생 이것만 먹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니까요?”
‘다진이 얘는 피자 먹을 때도 그러고, 치킨 튀겨 줬을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또 그러네.’
“다진이 넌 항상 그러지 않냐?”
“에이, 그만큼 용운 님이 해 준 음식이 맛있다는 거죠. 헤헷.”
곤륜파에서 무공은 안 배우고 영업 기술만 배웠는지 혀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끄럽게 말하는 곤륜파 제자의 설득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져 버렸다.
“평생 꿈꿔 왔던 음식이라는 데 가르쳐 주는 건 어때요? 공짜로 알려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용운 님이라면 저 정도 되는 음식은 얼마든지 더 만들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까? 그 정도로 대단한 음식 실력이라면 용운 님은 상인을 하실 게 아니라 저기 황실에 있는 어선방(御膳房)에서 주방장을 맡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뭐… 군만두가 그렇게 대단한 음식은 아니긴 한데…….”
뭔가 분위기가 잘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는지 식당 주인이 다시금 입을 열자 이에 맞장구를 치며 박수를 치고 웃던 게사르는 식당 주인의 절실한 마음을 한 번 더 어필하며 우리에게 군만두 레시피 전수를 부탁했다.
“아……. 이럼 안 되는데…….”
“보아하니 크~은 일을 하실 분 같은데 부디 이 사람을 가엾게 여기셔서 소원을 들어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들어줘요~ 네? 소원이라잖아요.”
게사르는 용운이 선행을 베푸는 즐거움을 깨달아 세상에 이로운 용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통역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다. 다행히도 사내 용의 반려인 듯한 여자 용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듯했고 사내 용도 그런 반려 용의 표현에 싫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이제 얼추 이야기가 다 된 것 같은데.’
용운이라는 사내 용이 슬슬 마음의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지 잠시 고심에 빠진 듯해 게사르는 편하게 결정할 수 있게 돕기 위해 자기가 군만두 배우는 법을 배우면 그 은혜를 가게 입구에 새겨 대대손손 길이 기억하겠다며 소리를 지르는 식당 주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저분이 자네의 말을 들어줄 것 같으니 이제 조용히 하고 있게.”
“예? 예…….”
군만두를 만들고 그 이후의 모든 상황들을 재담꾼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들이 보고 있는 교섭이 이 지역에서 흔하지 않은 거대한 역사의 한줄기가 될 것만 같아 숨죽이며 남자에게서 나올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 시간을 갖고 하던 고민이 끝났는지 입을 열었고, 남자의 말을 통역해 주려는 곤륜파 문도의 입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시선이 집중되었다.
“흐음……. 그럼 이렇게 하는 걸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