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 * *
곤륜파의 도사인 게사르쟈시는 산에서 내려오기 전 스승으로부터 사명을 전해 받을 때를 떠올렸다.
“게사르, 네 녀석은 이제 산을 내려가 삶과 죽음의 바르도를 거슬러 온 불을 품은 용을 찾아 그 용이 자신이 바라는 바를 끝내 이뤄 구름 위로 승천할 수 있도록 도와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에 용이 어디 있고 그 용을 어떻게 승천시키라고 하시는 것인지… 아둔한 제자는 스승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게사르의 스승은 제자 게사르를 지그시 쳐다보며 고민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깊은숨을 내뱉으며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풀어 설명했다.
“하아, 이제야 알겠구나.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인해 나는 천수(天壽)를 모두 누리지 못할 테지만 너에게 이 말을 전하는 것이 이 생에서 내게 주어진 천명이라는 걸. 게사르야, 니가 그 용을 도와 승천시키지 못하면 푸른 호수의 땅인 이곳 청해는 먼 미래에 거짓된 차크라바르틴(전륜성왕)의 얼굴을 한 여진족의 아래 짓밟히고 네놈의 후손들은 오랫동안 중원인의 압제에 짓눌려 고통받고 만다. 그러니 내려가서 불을 품은 용을 찾아서 도와라. 그리하면 불을 품은 용은 자신을 도운 이를 위해 이 땅에 힘을 전해 줄 것이고 너희 후손들은 여진과 중원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니라. 이것이 네가 이뤄야 할 이번 생의 천명이고 업보다. 쿨럭.”
“스, 스승님!”
게사르의 스승은 어찌 된 일인지 그 말을 끝으로 토혈(吐血)을 하며 정좌해 있던 자세가 무너지며 풀썩, 하고 뒤로 쓰러졌다. 다행히 게사르가 움직인 덕분에 쓰러지는 스승을 재빨리 잡아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모셨지만 어느새 기식이 엄엄해진 스승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게사르야, 반드시… 불을 품은 용을 찾아라. 그리하여 그 용이 품은 불이 이 세상을 불태울 업화(業火)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알았느냐?”
“이 모자란 제자가 용을 어찌 찾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다, 너는 그 용을 만나게 되는 순간 내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스승님, 말씀을 이만 거두옵소서. 아둔한 제자는 아직 스승님의 가르침이 더 필요합니다. 크윽.”
“…하아, 나는 이걸로 나의 천명을 완수하였느니라. 네 녀석이 이리도 약해서야 이 스승이 어찌 마음 편히 다음 바르도로 넘어갈 수 있겠느냐…….”
“스승님, 이 제자를 떠나지 마시옵소서……. 이리 떠나시면 안 됩니다. 아직은 제 옆에 더 계셔 주십시오.”
게사르의 스승은 그를 자애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 어리광은……. 게사르야, 시간이 길게 남은 것 같지 않구나. 이제 그만 나에게 『사자의 서』를 읊어 주겠느냐? 이 스승을 위해서 말이다.”
“그, 그건!”
티베트족에게 있어 『사자(死者)의 서(書)』란 죽음을 마주한 자에게 죽기 전 들려주는 문구들이 쓰인 책으로, 이걸 죽어 가는 이의 귀에 들려주는 것은 티베트인들만의 장례문화였다.
중원인인 스승의 눈에서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낀 게사르는 울먹이면서 스승이 나중에 티베트인인 자신이 크면 필요할 때가 올 것이니 꼭 외워 두라고 했던 『사자의 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이제 죽음이라는 것이… 크흡……. 그대에게 찾아왔다. 그대가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있구나…… 하지만 그대만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닐지니…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 세상의 삶에 애착을 갖거나 집착하지 말라……. 흡……. 그대는 지금 사후세계에 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여전히 온기를 품고 있었던 스승은 게사르의 품에서 그가 『사자의 서』를 모두 외우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게사르는 울면서도 스승의 마지막 부탁을 따르고자 『사자의 서』를 끝까지 외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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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스승이 목숨으로 알려 준 사명을 따르고자 하산을 했지만 게사르는 막막할 뿐이었다.
어릴 적 고아였던 자신을 곤륜파로 데려간 스승을 따라 평생을 산에서만 살던 자신이었다. 자신에게 스승은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으며 가족이었다.
그런 스승을 갑작스레 잃고 세상 밖으로 떠밀려 나올 수밖에 없게 되자 게사르는 자신이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산 아래의 마을로 내려온 뒤로 어찌 사명을 이뤄야 할지 많은 고민이 머리를 가득 채워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별을 쳐다보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 내려 숙소에서 나온 게사르는 스승이 전한 마지막 말들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무슨 용이 있을 것이며 자신이 보는 순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스승님이 내리신 명이라 따르긴 하겠지만… 내가 용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허어…….”
그러나 태양을 등에 업고 하늘에서 내려온 새를 닮은 거대한 무언가가 이곳 청해에 내려앉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게사르는 스승의 말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혹시 저것이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용이 아닐까.’
경공으로 서둘러 용(?)이 내려앉은 자리를 찾아갔건만 그가 본 건 먼발치에서 어느 건물의 지붕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이었다. 매우 특이한 복색을 한 둘의 모습에 그 의심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용이 사람으로 둔갑한 건가?!”
기대감과 호기심, 두려움, 설렘 등의 감정이 게사르의 안에서 휘몰아쳤다. 게사르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다시 발을 굴러 최대한 빠르게 경공을 발휘하여 건물의 지붕 근처로 갔지만 어느새 용들은 자리를 떠났는지 그 자리에는 신기루처럼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허, 이 용들을 어딜 가서 찾는단 말인가.”
하루 종일 그 주변을 배회하며 찾았지만 자신이 멀리서 봤던 특이한 복장을 입은 두 명의 사람으로 둔갑한 용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용(?)을 찾느라 온 정신을 쏟아부으며 기운을 쓴 탓인지 뱃속이 달라붙을 것 같았던 게사르는 뜨끈한 뚝파를 한 그릇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 찾은 가게에서 우연히 자신이 봤던 그 특이한 복장의 두 사람을 발견했다.
“차, 찾았다!”
역시나 용이라 이곳 사람들의 말에는 어색한지 손짓과 발짓을 한 사내 용은 자신과 함께 내려온 또 다른 여자 용과 함께 뚝파를 신기하게 여기며 먹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의 주인에게 손짓을 하면서 어디서 구한 것인지 궁금한 돈을 꺼내며 자신이 뭔가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흐음? 중원의 말인가? 용이 중원의 말을 할 줄 아는 모양이로군.”
남자 용(?)은 주인장의 허락을 구한 뒤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냄새가 자못 향기로울 뿐만 아니라 배고픔에 굶주린 자신의 속을 자극하는 바가 있어 게사르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 용의 앞으로 차츰 움직였다.
남자 용은 용답게(?) 불을 자유자재로 쓰더니 마치 술법을 부리듯 커다란 팬 위에 자신이 만든 무언가를 올려놓고선 양고기의 기름을 붓고 물을 거기에 다시금 붓더니 뚜껑을 찾아와 덮었다.
‘뜨거운 기름과 물은 한데 섞지 않는 게 요리의 금기가 아닌가?’
뚜껑 안에선 기름과 물이 만나 지글지글거리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건만 남자 용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차분한 표정으로 둘러보고선 자신이 생각한 순간이 찾아왔다 싶었는지 마침내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뚜껑 안에 고여 있던 뜨거운 기운은 주변에 마치 구름처럼 퍼져 나갔고, 남자 용은 선심을 쓰듯 자신이 만든 음식의 일부를 골라내서 그릇에 담아 본인이 만든 음식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반씩 잘라 나눠 주었다.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용은 이런 음식을 먹는 건가?’
반달을 닮은 음식에서 다시 반을 자른 탓인지 용이 만든 음식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뜨거워 보였지만 가뜩이나 고픈 배에 정신이 없던 게사르는 허겁지겁 사내 용이 만든 음식을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 뜨거워.’
불을 품은 용이 만든 음식답게 입 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정도로 뜨거웠으나 이내 혀를 살살 굴려 식히자 어딘가 익숙하지만 새롭고 또 침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는 음식의 향과 맛이 입 안 전체로 퍼져 나갔다.
바닥은 바삭했고 위는 쫄깃하여 선도 악도 될 수 있다는 용의 태도를 닮은 듯했고, 안에서 흘러나오는 육즙과 어우러진 속재료들에서 나오는 맛은 이 세상의 것인가 싶을 정도의 진미(眞味) 그 자체였다.
‘맛있다.’
남자 용은 자신과 함께 용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만족한 듯하더니 다시금 일어나 음식을 만들었던 곳에서 간장을 따라 내어 여자 용에게 건네주고선 음식을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음식 맛을 보고 떠들썩해진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 식당 주인은 용이 식사를 하려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인지 다가갔다.
혹여 용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막으려고 게샤르가 조심스레 다가갔으나 식당 주인의 말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가게의 주인은 자신이 용으로부터 받은 돈에 얼마를 얹어 용의 요리를 만드는 법을 사고 싶다는 것이었으나, 용은 식당 주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중원에서 온 스승으로부터 중원의 말을 배워 둔 게사르는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해 둘이 이야기하는 곳으로 더욱 가까이 움직였다.
“이 사람은 당신에게 방금 당신이 만든 요리법을 사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게 이해가 되었나요?”
“아! 그런 의미였군요! 이렇게 통역을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게사르의 중원 말이 썩 괜찮았는지 사내 용과 사내의 짝으로 보이는 여자 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환한 표정을 지었다.
“게사르 님께서 없었다면 굉장히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아닙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 * *
본인의 이름을 게사르라고 밝히며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의 도움으로 식당 주인과의 이야기를 군만두를 먹은 뒤 나가기 전에 하는 것으로 미룰 수 있었다.
‘군만두는 식으면 맛이 없다고.’
나도 내가 만든 군만두의 맛이 궁금해서 간장을 찍어 입에 넣고 양고기로 만든 군만두의 맛을 음미하고 있는데 옆에서 다진이가 자꾸 옆구리를 찔러 왔다.
‘아~! 왜 음식 좀 먹으려고 하면 여기서 태클, 저기서 태클이야!’
하지만 나는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다진이에겐 다정한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래?”
“앞에 봐요. 앞.”
“앞이 왜?”
나의 뛰어난 청력이 없었다면 도저히 알아먹기 힘들었을 정도로 작게 말하는 다진이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자 우리에게 통역을 해 준 게사르란 남자가 보였다. 도움을 주고서 자리를 떠나는가 싶었는데, 그는 어느새 우리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가 만두를 먹는 걸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언제 앉은 건데? 그리고 도와준 건 고마운데 왜 불편하게 합석이야.’
혹시나 가게에 앉을 자리가 없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가게 안은 사람들이 우리가 군만두를 먹고 있는 걸 구경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앉을 만한 자리는 많았다.
‘자리도 많잖아?’
나는 입에 넣은 만두를 모두 삼킨 뒤 젓가락을 내려놓고 남자를 향해 무슨 할 말이 있는지를 물어보려 했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추레한 복장을 한 남자의 배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읍.”
사내는 나와 다진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찌할 줄을 몰라 했는데, 다진이는 누가 봐도 허기가 진 기색이 역력한 남자를 보곤 자신의 접시에 있는 군만두를 몇 개만 빼고 모두 건네줬다.
그걸 왜 주냐는 눈빛을 담아 다진이를 쳐다보자 그녀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에이, 나는 다음에도 교ㅈ…가 아니라 용운 님이 만든 이 음식을 또 먹을 수 있잖아요. 이 사람, 지금 엄청 배고픈 것 같은데 저는 국수 한 그릇도 먹었고 요거 몇 개만 더 먹으면 될 것 같아요.”
“다진아…….”
나는 다진의 마음 씀씀이에 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진이가 얼마나 많이 먹어 대는지, 그리고 그 식탐이 얼마나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한지를 잘 아는 나로선 다진이가 버터차 한 잔에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만두 몇 개를 집어 먹은 걸로 자신은 충분하다면서 음식을 양보하는 모습이 너무 생경하고 신선할 따름이었다.
‘우리 돼지가… 음식을 양보해?’
나의 놀람과는 별개로 남자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이더니 다진이가 준 아직 따끈한 군만두를 제대로 식히지도 않고 입 안에 넣어 굴려 먹기 시작했다.
게사르라는 남자는 군만두를 먹으며 천상의 음식을 먹는 것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을 본 다진이가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도 음식을 양보한 보람이 있네요. 저렇게 맛있게 먹는 거 보면.”
“그, 그러네…….”
게사르가 군만두를 먹는 모습은 오랫동안 밥을 굶긴 뒤에 군만두를 주면 저런 표정이 나올까 싶은 수준의 행복한 표정이라 나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먹방 BJ 시키면 잘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