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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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으로 향하는 여정 중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청해였다. 청해를 흔히 마교를 막는 제1선인 곤륜의 땅으로 알고 중원의 일부로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사실 중원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해는 티베트인들의 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청해에 티베트인들만이 모여 사는 것은 아니고 몽골족과 회족들도 다수는 아니지만 꽤나 많은 수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여기도 예전의 저희 동네랑 별반 차이가 없네요.”
“뭐, 그렇지. 저기에 곤륜산맥이 보여서 그런지 더 비슷한 느낌?”
“근데 숨쉬기가 더 편한 것 같지 않아요?”
“아무래도 그럴 거야. 이 동네는 우리가 사는 위구르보다 높이가 낮은 곳이니까.”
“어른들이 낮은 곳에 가면 숨쉬기가 엄청 수월하다고 할 때만 해도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후아압.”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중화 의식에 따르면 청해 역시 변방이긴 마찬가지였다.
‘그 논리대로면 우리가 있던 우루무치나 투르판은 그야말로 변방 중의 최변방인 셈이지만.’
우리가 중원을 가는 과정에서 아직 중원의 입구라고도 할 수 없는 청해에 들른 이유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단 일종의 휴게소 개념으로, 식량도 보충하고 잠시 땅에 내려앉아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비행기는 기장이 있어서 알아서 태워다 주기라도 하지… 행글라이더는 나 아니면 다진이가 조종을 해야 하는데 번갈아 가면서 자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무엇보다 상공은 옷을 매우 따뜻하게 입었음에도 온도가 매우 낮기에 한서불침인 나는 그다지 영향이 없었지만 다진이에겐 꽤나 거친 여행 환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오문이랑 은월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편하게 쉴 곳이 있어서?”
“네.”
“그러니까 나한테 고마워해라.”
“왜요?”
“다 내가 미리 이렇게 포석을 깔아 놓은 덕분에 편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거잖니.”
“뭐, 그렇다고 치죠~”
청해에 자리 잡은 은월의 거점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부탁하고선 씻지도 않고 잠에 빠져들었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일까, 나뿐만 아니라 다진이도 잠을 잔 것만으로도 피로가 꽤나 풀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인 효과는 점차 사라질 게 뻔했기에 청해보다 고도가 낮은 감숙이나 사천으로 가도 이번처럼 피로가 확 풀리고 그런 느낌은 안 들 것 같았다.
“곤륜파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네요.”
“곤륜산맥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뭐 하러 내려와서 돌아다니겠어. 산에서 자리 잡고 수련하고 있겠지.”
“그런가? 한번 구경하고 싶었는데.”
“왜?”
“곤륜파의 운룡대팔식이 그렇게 대단하다면서요? 교주님의 어검비행술만큼이나 대단할까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설령 곤륜파 문도가 여기 있다고 해도 돌아다니면서 내가 곤륜파의 고수입네, 하면서 운룡대팔식을 시전하고 다니겠어?”
“그것도 그렇겠네요.”
청해가 중원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꽤나 먼 미래에 청나라가 들어서고야 가능한 이야기라, 곤륜파가 마교를 막아서겠다고 나서서 모두가 장렬히 전사하고 그러는 건 지금 이 시점에선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선 우리가 일월신교라는 걸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곤륜파의 문도가 딱히 우리를 적대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어서 그쪽으론 신경 쓸 이유가 없어서 편했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은 이곳도 한때 실크로드의 일부라 그런지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위구르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은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위구르인들은 그들만의 문자가 따로 없어 아랍 문자를 받아들였다면, 티베트인들은 티베트만의 고유한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와, 길거리에 간판 같은 게 있긴 한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보겠어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가이드로 현지 은월 요원이라도 대동하고 나올 걸 그랬어.’
은월의 대원들이 우릴 따라 호종(扈從)하겠다고 했지만 굳이 번거롭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잠도 푹 잤겠다, 식사도 마쳤겠다 싶어서 소화도 시킬 겸 간단하게 산책 삼아 나온 거라 우리 둘만 나오다 보니 생긴 상황이었다.
“목도 마른데 간단하게 차라도 한 잔 할까요?”
“그럴까?”
찻잔 모양과 함께 뭐라고 쓰여진 간판이 달려 있는 가게 입구에선 우리에게도 익숙한 야크 젖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와, 여기서도 야크 젖이 들어간 음료를 마실 수 있네요.”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고도가 높은 지대에 속하는 청해에서도 농사를 짓기는 어려워 야크를 많이 키우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우리가 야크 젖을 따뜻하게 데워 먹는다고 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야크 젖으로 만든 버터를 가지고 차와 함께 마시는 것 같았다.
가게 주인에게 손짓, 발짓을 하면서 돈을 꺼내자 우리가 뭘 하려는지 상인답게 눈치를 채고 자리를 잡으라고 안내했다. 가게 주인은 기다랗게 생긴 ‘동모’라는 통에 끓인 물과 차, 버터 같은 재료들을 넣고 휘휘 저어서 섞더니 커다란 잔에 한 잔씩 따라서 우리에게 내주었다.
‘신기하네.’
“흐음~ 이게 그 ‘뵈자’인가 봐요.”
‘뵈자? 야크 버터를 넣은 차를 말하는 건가?’
뵈자라는 게 중국어로는 소유차(酥油茶)라고도 하는 차를 말하고 소유(酥油)라는 단어가 야크 젖으로 만든 버터를 의미하며, 뵈자 혹은 소유차가 야크 버터가 함유된 버터차라고 할 수 있는 음료를 말한다는 건 나중에 검색해 보고 알게 되었다.
‘짭짤하네? 달콤할 줄 알았는데.’
색깔 때문에 고소하면서 단맛이 나는 라테를 떠올렸다가 기대한 것과 다른 맛에 살짝 놀라긴 했어도 맛이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고소해요.”
‘익숙하지 않으면 비리다고 느낄 수도 있겠어.’
“속이 든든해지는 느낌?”
“당연하죠, 야크 젖이 들어가 있으니까요.”
‘얘도 가만 보면 위구르 사람 입맛이라니까.’
다진이는 고향의 맛이라면서 속이 따스하게 풀어지는 느낌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뵈자가 이 동네에선 국밥이냐?’
차로 목을 축인 우리는 그사이 식욕이 동해 이곳의 특색이 담긴 현지 음식이 먹고 싶어서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애초에 이곳도 척박한 동네라서 그런지 식당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하게 있지는 않았다. 한 바퀴를 빙 둘러보고 우리는 나름 익숙한 음식을 파는 가게로 가기로 했다.
“저거 먹죠. 딱 보니까 국물 있는 라그만 같은데.”
“맞네. 꼭 라그만 같다.”
위구르인들의 면 요리인 라그만이란 양고기를 넣고 각종 재료를 넣어서 볶은 볶음국수라 국물이 많은 음식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보기엔 비슷했다.
주인에게 이 음식 이름이 뭐냐고 묻자 ‘뚝파’라고 반복해 말하길래 음식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뚝파라고 말하면서 손으로 두 그릇을 달라고 보디랭귀지로 주문을 하며 돈을 지불했다.
손이 빠른 가게 주인이 후닥닥 만들어 내준 국수에는 확실히 라그만과 다르게 맑은 국물이 있었다.
“흐음, 이것도 맛있는데요?”
“괜찮네.”
‘이걸로 끼니를 채우기엔 조금 부족한데.’
“흐음……. 뭔가 허전해요.”
“역시 그렇지?”
이미 거대해져 버린 우리의 위를 채우기엔 버터차와 양고기 국수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주인에게 돈을 주며 내가 한번 요리를 해 봐도 되겠냐고 했다.
‘돈과 보디랭귀지는 세계 공용어지.’
다행히 상인이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내가 내민 은전을 후딱 챙겨 가더니 마음껏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 자리를 비켜 줬다.
“교주님, 뭐 만들 건데요?”
“만두, 군만두.”
“군만두요?”
“원래 이런 국수에는 약간 기름진 게 같이 섞여 줘야 속이 꽉 차는 법이지.”
요리를 시작하기 전 슬쩍 둘러보자 면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 둔 반죽이 보여 떠올린 메뉴였다.
내가 음식을 만드는 걸 짧게 영상으로 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다진이에겐 보이지 않게 스마트폰을 잘 숨기게 하고 영상을 찍도록 했다.
반죽을 한 뭉텅이 떼어 내서 반죽을 치대는 걸로 보이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길게 모양을 만든 뒤 손으로 500원 동전보다 조금 큰 크기의 너비로 조그맣게 뚝뚝 잘라 냈다.
그런 뒤 반죽을 하는 막대기로 동그랗게 펴서 만두피를 완성한 나는 자리를 옮겨 국수에 넣는 것으로 보이는 양고기를 다진 뒤에 팬 위에서 볶기 시작했다.
‘기름은 좀 미리 따라 놓고 나중에 써야겠다.’
다진 양고기를 볶은 동안 나는 함께 넣을 법한 채소들을 골라서 양고기처럼 다진 뒤에 다 볶은 다진 양고기와 섞어 만두에 넣을 속을 만들었다.
어느새 주변엔 내가 만드는 음식이 궁금했는지 식당 안의 사람들과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모여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흐음, 괜찮은데?’
“자, 이제 시작해 볼까?”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의 눈빛을 받은 나는 내 안의 관종 기질을 느끼며 두 손을 활짝 펴 보이고선 옆에 세워져 있던 나무 막대기를 꺼내서 기로 슥슥 숟가락 형태를 만들어 물로 살짝 씻어 낸 뒤에 둥그렇게 펴 둔 만두피에 만들어 둔 만두 속을 채워 넣어 빠르게 만두의 형태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60개는 되지 싶은 만두를 빚은 나는 아까 고기를 볶을 때 사용한 프라이팬에 미리 따라 놨던 양고기 기름을 살짝 두르고는 요리를 하느라 약해진 장작불을 기로 슬쩍 키웠다. 기름이 달궈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빚어 둔 만두를 하나둘 프라이팬에 올려놓았다.
‘여기서 포인트.’
국물을 우릴 때 쓰는 것으로 보이는 그릇의 뚜껑을 챙긴 나는 물을 슬쩍 집어넣기 전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웃음을 지으며 물을 붓고선 뚜껑을 서둘러 덮었다.
그러자 뚜껑 아래에서 기름과 물이 만나 지글지글 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감으로 만두 속까지 다 익는지를 확인한 뒤 뚜껑을 들어 올리자 안에 차올랐던 수증기가 김이 되어 주변으로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짜잔, 완성!”
프라이팬 안을 들여다보자 아래는 바삭바삭하고 위는 말랑 촉촉한 군만두가 아주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있었다.
완성된 만두 중 일부를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나눠 준 나는 나머지 군만두를 모두 접시 위에 올려 나를 촬영하고 있는 다진이가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다진이가 다가오는 나를 보다 서둘러 촬영을 끄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와아……. 이게 뭐죠?”
“뭐긴 군만두지.”
“저 이런 거 처음 봐요.”
접시 위에는 지방과 탄수화물이 섞여 복합적인 반응을 일으킬 때만 나는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만두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먹어도 되는 거죠?”
“뜨거우니까 살짝 식혀서 먹어. 입천장 다 까진다.”
“알았어요.”
“아! 잠깐!”
“왜, 왜요!”
“기다려 봐.”
요리할 때 분명 간장을 본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조리 공간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의 시선은 테이블에 있는 군만두에서 나를 따라 움직였다.
“주인장, 요것 조금만 가져갈게요.”
알아먹을 리도 없건만 어쨌든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한 나는 간장을 종지에 옮겨서 따라 내고선 만두를 올려놓고 먹을 접시를 챙겨 다시 우리 좌석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찍어서 먹어 봐. 그럼 더 맛이 기가 막힐 거야.”
“츄릅, 진짜 먹어도 되는 거죠?”
더 이상 막았다간 야수화된 다진이를 볼 것 같아 다진이 앞에 접시를 놓아 주며 만두를 잘라서 식혀 먹으라고 설명해 줬다.
먹이 훈련을 받는 강아지처럼 눈앞에 음식을 두고도 먹을 수 없었던 다진이는 나의 허락(?)을 받자마자 만두를 반으로 잘라 입으로 후후, 불어 낸 뒤 간장에 만두를 살짝 찍어서 자신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우와와와!”
음식을 해 주는 보람이 있는 다진이의 리액션에 주변을 슬쩍 둘러보자 가게 주변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침을 꿀떡꿀떡 삼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지.’
다진이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나도 만두 하나를 들어 내 앞접시에 옮겨 반을 갈라 입으로 넣으려는 순간 가게 주인이 내게 다가와 돈을 들이밀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