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 * *
“어때요?”
“이젠 좀 어떻게 나는지도 알고 비행에 익숙해진 것 같은데. 이젠 그 삼각비익은 네가 가져도 되겠어.”
“휴우……. 비행하는 것보다 교주님 평가가 더 떨렸어요.”
삼각비익(행글라이더)을 만든 이후 다진이는 비행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나는 다진이가 원하는 대로 삼각비익을 통해 비행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다진아, 왜 그렇게까지 하늘을 나는 것에 관심이 많은 거야? 네가 원하면 네 할아버지가 하늘을 날게도 해줄 수 있고, 나 역시 얼마든지 어검비행술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데.”
“그건… 나 아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거잖아요. 하지만 삼각비익은 다르죠. 교주님의 도움이 없어도,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어도 나 혼자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누군가의 도움이 없어도 날 수 있어도 좋다…….”
다진이의 말이 일견 이해는 갔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유를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자신이 직접 주도권을 쥐고 싶어지는 것.
하다못해 게임을 해도 친구나 형제가 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즐겁지만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의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지 않던가.
“그리고 삼각비익을 제가 문제없이 타게 되면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요.”
“뭔데?”
“교주님이 중원에 갈 때 저도 이 삼각비익으로 같이 따라가고 싶어요.”
“응?”
‘다진이한테는 이야기하거나 그럴 분위기를 풍겼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얘가 어떻게 알았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나? 더구나 여자란 여자만의 육감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 사내들은 모르는.]
양을 치고 바느질을 하며 그저 살림만 하면 되는 이 시대 여성의 평범한 삶에 길들여져 있었던 다진이의 눈빛에는 어느새 이전에 없던 의지가 박혀 있었다.
“다진이 넌 이 마을에 머물러 있고 싶어 했잖아.”
“그랬죠. 제가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듣기 전에는요.”
다진이는 나를 따라다니며 바라본 넓은 세상과 드넓은 하늘을 만끽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무언가 갈망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여기엔 제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도 있죠. 교주님 덕분에 우리 마을에서 굳이 나가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모든 것을 다 가진 지금의 나는 왜 마음 한구석이 공허한 것만 같은지.”
다진이는 삼각비익을 탈 때 쓸 수 있게 만들어진 방풍안경(防風眼鏡)을 만지작거리면서 머뭇거리더니 자신의 진심을 털어놨다.
“하지만 교주님을 따라다닌 이후, 그런 삶은 발전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밥 먹을 때면 양치기들이 인도하는 대로 움직여 풀밭으로 가 풀을 뜯고, 양치기의 보호 아래 풍족하지만 진정한 자유가 없는 저 양들의 삶과 내 삶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마 이 마을에 있으면 대충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며 살다가 나이가 들어 죽겠죠. 물론, 그런 삶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제 부모님도 저를 그렇게 키우셨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대가 다진 양의 삶과 미래를 바꿨군. 용운, 네가 없었다면 그녀는 이 동네의 다른 처자들처럼 평범한 삶을 꿈꾸며 살았을 텐데……. 너에겐 그녀의 꿈을 응원할 책임이 있네.]
‘그런 것 같네……. 나의 행동으로 누군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이토록 실감한 적은 처음인 것 같아.’
“알았다. 이번 겨울이 끝이 나고 봄이 찾아오면 너도 같이 가자. 중원으로.”
“고마워요, 교주님.”
“고맙긴…….”
* * *
다진이와의 중원행이 결정되고 난 이후에도 내 삶은 한겨울이었지만 매일 바빴다. 처음 내가 너튜브를 찍기 시작했을 때처럼.
“태 이사, 유리온실은 얼마나 더 걸릴 것 같나?”
“예… 그게 저기… 생산 시설의 완공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소다회(탄산나트륨)를 구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유리 정원을 완성하는 것에는 좀 차질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이미 자네에게 내가 유리의 생산방법에 대해 알려 줄 때도 말하지 않았나? 규사나 생석회를 구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테지만 이곳은 내륙이라 소다회를 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소다회란 미역 같은 나트륨이 많이 포함된 식물을 태운 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분인데, 아무래도 바다가 멀리 있는 이곳에선 미역을 태운 재를 이곳까지 운반해오는 데 많은 애로 사항이 있었다.
“그래도 하오문을 통해 보낸 소다회가 부지런히 오고 있다고 하니 한 7주야만 지나면 유리온실을 만들기 위한 유리를 생산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오문이 이래저래 쓸모가 많아.”
“전 사실 교주님이 그런 건 왜 만들어서 중원에 퍼뜨리려고 애를 쓰시는지 그 큰 뜻을 잘 몰랐는데, 지금에서야 교주님의 혜안을 일부나마 깨닫습니다.”
“하하하, 처음에 하오문을 만들어 중원 전체에 지부를 만들겠다고 할 때 들어가는 자금이 너무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돼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대들의 반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야.”
돈이 든다고 포기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위구르 전역에서 객잔, 건설, 주점, 음식점 등 다양한 사업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선문 기업을 통해 막대한 금액이 수혈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중원에 들어가기 전 우선 물류사업을 선점하기로 작정했다. 그 시작이 바로 하오문이었다.
하류층의 전문가들을 돕고 그들을 통해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면 나는 중원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천산에 앉아서도 각지의 정보를 취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별로 편차가 큰 물자를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또, 중원으로부터 일월신교의 정체를 숨기면서 몰래 들어가는 데 있어 하오문은 매우 좋은 가림막이 되어 주고 있었다.
“아직은 중원 전체에 하오문이 퍼진 게 아니라는 게 아쉬울 정도입니다.”
“하오문을 통해 중원 전역에 지부가 설립되면 우리 신교가 중원으로부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또 무궁무진해진다네.”
“그렇습니까?”
유통업의 어마 무시함을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배송이 가능한 이유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을 모두 잇는 유통망 덕분이 아니었던가.
물류 거점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유통산업에선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누구나 먼저 선점하기만 하면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유통업의 단점이라면 유통망을 완성시키기까지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돈을 벌어들이기에 충분한 캐시카우를 이미 위구르의 땅에 퍼뜨려 놨지.’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비아와 함께 지켜보며 나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용운, 그대는 중원을 무력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것보다 그대가 말했던 그 ‘재벌’이 되어 지배하겠다고 했었지.]
‘그래, 막대한 금력은 그 자체로 나라조차 뒤흔들 수 있는 힘이 된다. 나에게 무력은 그 금력을 내 손에 쥐기까지 필요한 일종의 통과 수단일 뿐이야. 내가 너에게 부탁한 ‘그것’이 확인만 된다면.’
[난 자네가 왜 꼭 그걸 확인하고 싶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네만 아직은 물리적인 힘이 더 가까운 이 야만의 세계에서 금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지켜봐.’
내가 유리를 만들고자 한 근본적인 목적은 유리로 된 상품이 지금 이 시대에선 매우 고가의 상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고가의 상품에 와인을 담아 팔면 어떻겠는가.
돈을 많이 가진 이들이 자연히 와인을 비싼 술이라고 인식하기에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와인을 만들어 병입을 할 때 사용했던 것은 자기로 된 병이었지만 자기 병은 생각보다 생산 단가가 높았다.
그리고 색이 있는 유리로 된 와인 병이 내부에 침전물이라든가 하는 불순물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자기 병은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아 모두 따라 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유리병에 담긴 와인과 이 와인을 따라 마실 크리스털 잔이 내가 중원의 부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선택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유리는 차후 화학물질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 굉장히 필수적인 물건이기도 하지.]
내가 괜히 유리 생산을 다음 먹거리 산업으로 고른 것이 아니었다. 유리를 만들 수 있게 되면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됨으로써 차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물건들의 품목이 다양해진다.
“지금은 동물의 기름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이 쓸 정도만 재래적인 방법으로 비누를 만들지만 유리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면 지금처럼 재래식 비누를 만들 필요 없이 화학 비누를 대량생산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지지. 그렇게 되면 위구르 전역으로 비누를 팔 수 있게 될 거야. 하지만 비누를 대량생산하기 전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모순적이게도 유리가 필요하지.”
유리를 생산하여 유리 기구인 유리 막대, 플라스크, 비커, 실린더. 스포이트 같은 초자를 만들고 나서, 그 초자를 이용하여 르블랑 공법이라고 알려진 방법대로 염화나트륨(NaCl)에 황산(H2SO4)을 섞으면 반응 과정을 통해 황산나트륨(Na2SO4)과 염화수소(염산, HCl)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얻은 황산나트륨에 목탄과 석회석(CaCO3)을 첨가하면 마침내 탄산나트륨(Na2CO3)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럼 지금처럼 소다회(탄산나트륨)를 구하겠다고 멀리서 미역을 태운 재를 해안가에서 구해 오며 돈을 길바닥에 뿌리는 짓을 그만해도 된다는 점에서도 이득이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힘들게 화학 실험을 진행함으로써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굳이 번거로운 과정을 참고 인내하면서 진행하고 있는 거였다.
[자네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때 포인트를 주는데 이런 식으로 화학을 발전시키면 얼마나 큰 포인트를 주겠는가? 그러니 자네는 포인트로 쉽게 현대에서 화학물질을 구해 오는 것보다는 직접 이렇게 일을 진행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
‘그래,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아무리 포인트가 중하다고 해도 못 참고 그냥 포인트로 질렀을 거야.’
[현대의 물질을 이 세상에 소환해 내는 포인트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도 생각해야지.]
아마도 현대인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수십 일을 넘게 기다리고 인내해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는 상황과 최대한 편하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상황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 세상의 택배라든가, 음식 배달 사업이 호황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너무도 뻔하다.
[쉽게 얻은 것은 그만큼 가치가 없는 법이라네.]
‘예이예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기대는 하고 있었다. 인구가 폭증할 수 있었던 건 위생 의식과 의약품의 발달 그리고 식량의 대량생산을 이유로 드는데, 그중 위생이 발달하기 위해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비누’ 아니겠는가.
그래서 조만간 그 비누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는데, 이로 인해 내가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얼마나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