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다진이에게 왜 우리 둘이 끌어안고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해명이 끝난 뒤에야 오해를 풀고 다진이의 눈빛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번에 구상하셨다는 비행지를 가지고 삼각비익이라는 도구를 구현할 수 있게 되어서 벅찬 감정에 그러고 있었다는 거죠?”
“벅찬까지는 아닌데… 말하자면 뭐, 그런 거지.”
“에이, 난 또 순간 오해할 뻔했잖아요.”
“오, 오해? 그렇지. 오해였지.”
[그러니까 자다가도 내 말을 들으면 떡이 생기는 법이라 생각하고. 앞으론 내가 하라는 대로 하게!]
‘예이예이.’
다진이가 툭, 하고 팔뚝을 치는데 묘하게 체중이 실린 것 같았지만, 나는 굳이 이미 소화(消火)된 화재(話在)를 다시 되살리고 싶지 않아 뻘쭘하게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 * *
며칠간 태걸욱 이사가 자신의 도깨비방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부하들을 데리고 힘을 써 준 덕분에 우리들 앞에선 부품들이 차근차근 설계도대로 조립되며 행글라이더의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아니아니, 거기선 50번에 49번 부품을 서로 교차해서 끼워 넣어야지! 교주님께서 만들어 두신 설계도대로만 하란 말이야! 정신을 어디다 팔아 먹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네놈 기술자 인생이 끝나나?”
“아닙니다.”
‘전생에서 있었던 일인데도 묘하게 PTSD를 자극하는데? 기분이 막 나빠지려고 하네.’
“교주님, 표정이 왜 그래요?”
“내 표정이 뭐가?”
“지금 표정이 막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고 해야 할까… 뭐, 그랬어요.”
“아니야. 내가 왜 짜증이 나. 내가 구상한 삼각비익의 완성이 코앞인데.”
“이상하다~ 어릴 때 엄청 짜증 내기 전의 표정이랑 비슷했는데.”
‘얘는 묘하게 사람 심리를 잘 읽는단 말야.’
[그보단 자네의 표정에 감정이 너무 잘 묻어 나오는 게 아니고?]
‘이래 봬도 편돌이 생활 3년에, 피돌이 생활 5년의 경력자라고. 사람들 앞에서 기분 나빠도 숨기는 데는 진작에 도가 텄단 말이지.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는데 그런 식으로 감정을 다 드러내면 이쪽 일은 못 한다고.’
[편돌이와 피돌이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사람의 심리를 읽어야 하는 전문직인가 보구만.]
PC방 알바와 편의점 알바는 노동 자체는 강도가 세다고도 할 수 없고, 복잡하다기보단 단순한 쪽에 가깝지만 해야 하는 업무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PC방 알바의 경우에는 컴퓨터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매뉴얼에 따라 시간에 맞춰 업장의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책임감 있는 청결 의식과 함께 고객들이 주문하는 각종 음식과 음료 메뉴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조리하여 손님이 계신 자리에 전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예전의 PC방 알바와 비교하면 현재의 PC방 알바는 요구하는 능력치가 훨씬 레벨업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편의점 알바는 또 어떠한가. 매장 청소와 함께 매장의 물건을 정리함과 동시에 예정된 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물건들을 받아서 창고에 넣어 두어야 하는데 동시에 손님까지 상대해야 했다.
편의점에선 이제 택배를 붙이고 받는 업무까지 해야 하는데, 그 종류가 칵테일 종류만큼 다양한 각종 담배의 이름과 별칭을 외워 그 어떤 손님이 찾아와도 손님이 원하는 담배를 빠르게 찾아서 내줘야만 했다.
착한 손님이야 담배를 찾는답시고 버벅거려도 자신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친절하게 알려 주었지만, 성격이 나쁜 손님들은 대번 툴툴대며 짜증을 내고 ‘역시 알바나 하는 것들은 말귀도 못 알아 처먹는다.’느니 같은 폭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밤에는 술에 취한 취객들부터 별의별 진상들이 나타나는데 어쩔 땐 며칠이고 안 보이다가도 재수가 없는 날이면 무슨 레이드가 있는 것마냥 진상들이 몰아치곤 했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는 택배 상하차에 비하면 육체적 피로는 없는 수준이었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진상들로 인해 정신적으로 꽤나 지치는 알바였다.
‘거기다 사장까지 이상한 사람이면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봐야 하는 거였지. 군대는 까짓것, 전역하면 안 보고 살아도 되는 인간들이니까 사회에 비하면 군대는 튜토리얼밖에 안 되는 거였고.’
부하를 닦달하다가 자기 성격을 못 참고 본인이 하겠다고 달려드는 태걸욱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나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네도 꽤나 힘든 나날을 보냈나 보군.]
‘돈 없고 백 없고 정직원 자리를 못 구하면 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나름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다시 태어나고 보니 치열하고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삶조차도 행복한 세상이었다.
돈 몇 푼에 다른 사람을 찔러 죽이고 지 기분이 상했다고 죽이는 놈들이 허다한 데다, 먹고살 게 없어 굶어 죽고 치료비가 없어서 아파서 죽고, 치료비가 있어도 치료할 수 있는 의료 수준이 안 돼서 죽고, 자기 자식을 팔아서 그 돈으로 먹을 걸 사 먹는 세상이 바로 여기였다.
‘씨……. 이거 생각해 보니 여긴 지옥이나 다름없네.’
전생의 대한민국이 돈 없고 백 없어도 몸만 튼튼하면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곳이었다면, 이 세상은 몸이 암만 튼튼해도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쉽게 죽어 나가는 세상이라는 점을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태 이사가 내게 삼각비익이 완성되었다고 알려 왔다.
“……? 교주님?”
“응?”
“태걸욱 아저씨가 드디어 완성되었대요.”
“아…….”
눈앞에는 어느새 삼각형의 날개를 단 행글라이더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만 고생하면 저렇게 자네가 원하는 물건이 뚝딱, 하고 만들어지지 않는가? 어찌 보면 지금이 더 나은 걸 수도 있네. 지옥에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지옥의 후계자 자리면 속이 편한 법이고, 천국에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최말단에 있으면 힘든 것처럼 말이지.]
‘어쩌면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완성된 삼각비익을 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장 이 자리에 나 말고 없었다. 다시 말해, ‘삼각비익 mk. 1’을 시험해야 할 사람은 나라는 소리였다.
“교주님, 혹시라도…….”
“어허, 부정 타는 소리! 다진아, 우리가 만든 이 삼각비익이 그리도 허술할 것 같으냐?”
“아니요.”
“그럼, 교주님께서 고안하신 이 삼각비익이 하늘을 날다가 또각, 하고 부러져서 바닥으로 꼬꾸라질 것처럼 엉망진창인 것 같으냐?”
“아니요.”
“설계상에서도 문제가 없고 우리가 만드는 동안에도 확실했으니 문제가 될 것이 뭐가 있겠느냐? 설마 우리 교주님께서 삼각비익을 타다가 실수라도 해서 떨어질까 싶어서 그런 게야?”
‘아예 떨어지라고 고사를 지내라.’
[저 인간, 자네가 행글라이더 만든다고 연구소에 중간 시찰 가서 태걸욱과 부하들이 기껏 만든 알루미늄 봉이 너무 무르다고 하면서 몇 번 분질러 먹어서 앙심 품은 거 아닌가?]
‘나도 긴가민가해…….’
“아니요.”
“그럼 뭐가 걱정이 돼서 그래? 이 물건은 저기 북경에 있는 황실에도 없고 이 세상에 만들어진 적 없는 귀물(貴物)이야. 들어간 돈이 얼마이고 우리가 들인 수고가 얼마인데? 실패할 리도 없지만 실패해서도 안 되는 물건이라, 이 말이네. 나는 결코 교주님이 그렇게 허무하게 망칠 거라고 생각 안 하네.”
‘마음 편하게 타라고 해도 긴장될 판에 부담감 팍팍 주네.’
[저번에 구상만 하고 말았던 ‘유리온실’, 어떤가?]
‘흐음…….’
초 치는 소리 한다고 다진이를 다그치는 태걸욱의 등을 쳐다보는데 우리 둘이 음모(?)를 꾸미는 걸 느꼈는지 태걸욱은 순간 움찔하더니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동의를 구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주님?”
“어……. 뭐… 그렇지.”
“지금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에 있는 게 아닙니까? 누구나 자유롭게 세상을 날 수 있게 되는 시작의 순간 말입니다.”
“그런가?”
이거 만든다고 이래저래 들어간 돈이 태걸욱과 부하들의 인건비와 설계비 빼고 재료비로만 한화로 치면 자그마치 5억 원 정도는 될 것인데, 어떤 미친놈이 이 시대에 이런 걸 자유롭게 만들까 싶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고. 나 말고 저걸 5억이나 들여서 만들어 타겠다고 하는 인간이 있으려나……?’
[세상이 넓은 만큼 어떤 인간이 튀어나올지는 모르는 거지.]
잠시간의 태걸욱의 훈시 말씀 아닌 훈시 말씀이 있고 나서 난 봉우리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마쳤다.
“교주님…….”
태걸욱의 다그침에도 내가 걱정이 되는지 다진이 내게 다가와 손을 붙잡았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여차하면 어검비행술로 빠져나와도 되고, 혹시 몰라서 이렇게 등에 낙하산도 멨잖아.”
[다진 양도 참 순진한 구석이 있구만. 이토록 자네를 걱정해 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머리에는 혹시 몰라 쇠로 된 헬멧, 그러니까 둥근 핸드메이드 철모(鐵帽)까지 쓰고 있었으니 내가 추락해서 다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교주님…….”
“걱정하지 말래두?”
“그게 아니라… 삼각비익 망가지지 않게 잘 타고 오시라구요. 저도 꼭 타고 싶으니까.”
“잉?”
[크크크큭. 걱정은 걱정인데, 큽……. 자네 걱정이 아니라 행글라이더 걱정을 하고 있었구만.]
“알았죠? 혹시라도 삼각비익이 망가지겠다 싶으면 얼른 이기어검술로 갈아타고 삼각비익은 허공섭물로 잘 챙겨서 돌아오세요.”
“아……. 그래.”
“전… 이 삼각비익이 태 아저씨 말처럼 그렇게 비싼 건 줄 몰랐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알았다~”
헬멧의 끈을 고쳐 맨 나는 심호흡을 살짝 한 뒤 산비탈에서 경공으로 발을 굴렀다. 점차, 날개에 바람이 실리는 느낌이 든 나는 주저 없이 다리에 힘을 줘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휘유~”
용운이 날아오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 다진은 분명 안전할 거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음에도 자신의 두 손을 꼭 맞잡을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이기어검술로 날아올랐던 용운을 지켜봤지만 삼각비익이라는 장비를 가지고 하늘을 날아 보겠다는 용운을 지켜보고 있는 감상은 또 달랐다.
괜스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용운에 대한 자신의 걱정을 숨긴 다진은 무사히 용운이 돌아오기를 마음속으로 일월신께 빌었다.
“거봐라. 내가 말한 대로 잘만 날지 않느냐.”
“그러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다진은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 아래에서 용운이 삼각비익에 몸을 싣고 구름 위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며 오랫동안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교주님이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 장면이었기에.
‘기물로 교주님을 좀 찍어드릴 걸……. 히잉.’
다진이 감동을 받고 있는 동안 태걸욱과 부하들도 삼각비익의 비행을 관찰하며 감상을 토했다.
“사람이 진짜 무공을 배우지 않고도 날 수가 있는 거군요.”
“참으로 대단한 교주님이 아니냐. 저 중원에 자리 잡고 있다는 천자(天子)도, 무림맹주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교주님께선 이렇게 몸소 나서서 실현하고 계시는 걸 보면.”
“그렇다기엔 태 이사님께선 저번에 엄청 구시렁거렸던 것 같습니다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솔직히 교주님 앞에서 장담한 것치곤 만드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혹시라도 고장이 발생할까 싶어 조마조마했단 말이다. 하아…….”
“교주님이 타신다고 했으니 더 심혈을 기울이긴 했죠.”
하늘을 나는 용운을 쳐다보며 태걸욱은 처음 설계도를 본 순간을 떠올렸다.
“네놈들, 교주님께서 만드신 설계도를 처음 본 순간의 전율을 기억하느냐?”
“예.”
“저는 감히 사람이 경외의 대상이어야만 할 하늘을 아무 능력도 가지지 않고 날 수도 있다는 걸 꿈도 꿔 본 적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주님께서 만드셨다는 설계도를 태 이사님께서 가져오셨을 때만 해도 무슨 상상 속의 기물을 그림으로 그린 건가 싶었지요. 하지만 우리 앞에서 본인이 증명하시는군요. 일월신교의 교주님은 하늘조차 지배하는 분이시라는 걸.”
“하하하하, 너희들은 고생문이 훤하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땅 위에 있는 교주님을 쫓는 것만으로도 벅찼건만 앞으로 네놈들은 하늘을 나는 것도 우습게 여기시는 분을 우화등선(羽化登仙)하실 때까지 쫓아야 할 것 아니냐? 나야 몇 년 하다가 은퇴를 할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니 그리 고생문이 길 것 같지는 않은데, 네놈들은 교주님이 그리고 계신 미래를 위해 아주 오래 피똥 쌀 게 보이거든. 아주 용을 써야 할 것이다, 이놈들아! 크하하하하.”
“아…….”
하늘조차 지배하신 교주님을 쫓아야 한다는 태걸욱의 말은 부하들의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언젠가 교주님께서 그저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게 아니라 말보다 빠르게 배를 움직이고 싶다고 하실지. 아니면 우화등선조차 하지 아니하고 저 하늘 위의 하늘로 날아야겠다고 하시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에이, 태 이사님. 아무리 교주님이 대단한 분이라도 그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네놈들은 그러니까 아직 날 따라오기엔 먼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나를 따라잡아도 그렇게 꽉 막힌 네놈들 머리통으로는 하늘 위의 교주님을 보필하기엔 한참 멀었어.”
자신의 허리에 두 손을 얹고 호언장담하는 태걸욱의 뒤에서 부하들은 속닥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로… 태 이사님 말대로 교주님께서 배를 타고 말보다 빨리 달리고 저 하늘보다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겠다고 하시는 날이 오는 건 아니겠지요?”
“쓰읍, 나는 반댄데… 그건 좀 선 넘는 거 아니냐?”
“만약 그런 날이 오면 우리는 죽었다고 생각해야지.”
“이번에 삼각비익 만드느라 며칠간 집에 못 들어가서 마누라한테 박박 긁혔는데, 바다 위에서 말보다 빨리 달리게 하는 배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더 걸릴지 상상도 안 갑니다.”
“휴우…….”
“우리 대에는 그런 일을 하겠다고 교주님이 나서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저는 기대도 됩니다. 우리가 그런 물건을 만드는 날이 오는 순간이 오는 게. 안 그래?”
“사실 조금?”
“나 솔직히 지금도 바지에 지릴 것 같아요.”
“큭, 네놈들도 태 이사님이 나한테 말했던 것처럼 평생 다른 길로 가긴 틀렸구나.”
“그런가 봅니다.”
자신들이 이룬 결과물에 뭔가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어깨에 커다란 짐이 얹어진 것만 같은 연구원들의 두 눈과 마음에 하늘을 날고 있는 교주의 모습이 콱 박혀 들었다.
“비아, 근데 시험비행은 얼마나 하고 내려가야 되지?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쳐다보고 있으니까 금방 내려가기는 좀 그런데.”
[흐음…….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말이지.]
“에이, 적당히 한 30분 타다가 내려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