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 *
다빈치가 스케치로나마 상상하고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라이트형제에 이르러 두 형제가 오랜 시간에 걸쳐 노력한 결과 실현해 낸 인류의 꿈, 비행.
그 이후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 끊임없이 발전한 덕분에 현대에 와선 누구나 돈만 있다면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되어 버린 비행기.
이렇게 단순했던 인류의 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위해선 네 가지의 힘이 작용한다. 바로 추력(thrust), 항력(drag), 중력(weight), 양력(lift).
추력이란 앞으로 가속하는 힘. 그러니까 내가 날린 종이비행기에선 나의 힘과 기를 말하고, 항력은 비행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유체의 저항력. 쉽게 표현하면 공기의 저항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중력은 아무리 가볍다고는 하지만 종이비행기가 가진 질량에 작용하여 아래로 잡아끄는 힘.
마지막으로 비행기가 공중에서 떠 있을 수 있도록 비행기의 날개에 작용하는 힘. 그것이 바로 양력이다.
‘아, 진짜 공부해 놓길 잘했다.’
“그래서 이렇게 생긴 형태의 물체에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받쳐 주면 짜잔~ 이렇게 공중에 뜰 수가 있는 거지.”
기를 이용해 바람을 형성하자 종이비행기는 다진이의 눈앞에서 헬리콥터처럼 그 자리에서 정지비행 하는 형태로 날았다.
“이게 무슨 이기어검술이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니까. 높은 곳에서 아래로 이렇게 각도를 잘 맞춰서 던지면?”
“날아가네요. 아까도 저렇게 해서 날아가다 제 머리에 맞은 거죠?”
“그렇지.”
다진이는 창문에 턱을 받치고 밖으로 날아갔다 드론처럼 기로 반응시켜 다시 돌아오는 종이비행기를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멍하니 지켜보았다.
착.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데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기에 먼저 나서서 날아오는 종이비행기를 차분하게 잡아챘다.
“뭐야, 왜 안 피하고.”
“당연히 교주님이 잡아 줄 거라고 믿었죠.”
“그래?”
다진이는 내 손에 있던 종이비행기를 조심스럽게 건네받더니 한참을 쳐다보다 나를 향해 시선을 바꾸며 물었다.
“그래서 이 실험의 목적이 뭐죠?”
“이렇게 형태를 잡으면 과연 날 수 있을까, 하는 거?”
“아니요, 교주님이 왜 이런 물건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선 설명해 주셔서 잘 알았어요. 제가 말하는 목적은 그런 게 아니라 이런 물건을 만들어 실험하는 목적이요.”
맞다. 우리가 실험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든 실험엔 근본적인 목적이 존재한다.
‘그래, 비아.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을 뭐라고 해야 하지?’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네.]
‘아니~ 여태까지 상황을 잘 풀어냈으면 마무리까지 잘해야지. 이제 뭐라고 둘러대?’
[밥상을 차려서 수저까지 챙겨 줬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내가 밥을 떠서 입에까지 넣어 주길 바라는 건가? 이래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면 보따리까지 건져 주는 거라고 하는 속담이 있는 거였군. 저번에 자네가 말할 때는 확 와닿질 않았는데. 갑자기 그 속담이 와닿아.]
‘에이씨……. 알았다. 비행기… 비행기의 목적을 뭐라고 하……. 비행기의 목적이 뭐긴 뭐야 날기 위해서지. 화용운, 이젠 바보가 된 거냐?’
“당연히 이런 식으로 기구를 만들어 무공이 없는 사람도 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지. 큼.”
[오호, 잘도 둘러대는구만.]
“역시! 그렇죠? 저도 딱 이걸 보자마자 그 생각부터 했어요. 교주님이 저처럼 이기어검술을 쓰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계셨구나, 하고.”
“그, 그렇지.”
[입만 벌리면 아주 구라가…….]
‘뭐, 어때. 세상의 모든 발견과 발명은 우연히 시작되는 법이라고.’
“우리 교주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그럼 그럼.”
“아까 이걸 비행지라고 하셨나? 그러면 언제쯤 사람이 탈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의 비행지를 만들게 되는 건가요? 그리고 종이로 만든 걸로 사람이 날 수는 있을까요?”
“어? 그, 그건 말이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거짓말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 * *
나는 내가 한 작은 실수와 거짓말로 인해 인터넷에서 글라이더의 설계도부터 구해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찾은 이는 이제 선문 기업에서 C.T.O(Chief Technical Officer, 최고 기술 책임자)를 맡고 있는 태걸욱이었다.
“하하, 다진이에게 이야기는 다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 말인가?”
“이번에 교주님께서 무림 고수가 아닌 사람들도 하늘을 날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을 고안해 내셨다고 하더군요.”
“자네에게 벌써 거기까지 이야기했나?”
“저도 기대가 큽니다. 가져오신 종이가 이번에 만들 물건의 설계도입니까?”
태걸욱은 아주 자연스럽게 돌돌 말려 있는 종이를 내게서 받아 커다란 탁자 위에 펼쳐서 다시 말리지 않도록 고정을 시켰다.
설계도를 모두 펼친 태걸욱은 미술관에 걸린 화가들의 대작을 보듯 한참을 입을 벌리고 감상에 빠져 버렸다.
“놀랍군요. 새의 날개에서 그 형태를 모방하여 그 아래에 사람이 몸을 받칠 수 있는 형태의 도구라니……. 먼 과거에 커다란 연을 만들어 거기에 사람을 매달아 적지를 염탐하는 것에 썼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이건 그런 수동적인 방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도구에 올라탄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동적인 방식이군요. 몇 단계를 뛰어넘으신 겁니까?”
[꽤나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군.]
‘아무렴. 태걸욱은 우리 선문 기업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 고문이라고. 뭐든 만들어 달라고 하면 착착이지.’
“역시 태걸욱 이사답군. 한 번만 쓱 봐도 바로 이해해 버리는 걸 보니.”
“하하, 교주님께서 편찬하신 과학 교과서를 마르고 닳도록 공부한 접니다. 대장장이로 산 세월이 있고, 교주님께서 툭하면 이거 만들어 달라, 저거 만들어 달라 하신 덕분에 저도 예전의 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교주님의 덕 아니겠습니까?”
태걸욱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선 갑자기 먼 곳을 쳐다보고 굉장히 애달픈 표정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사람이 말을 하다가 표정을 그렇게 지으면… 내가 꼭 직원들 심하게 부려 먹는 악덕 업주가 된 것 같잖아.’
[자네에겐 양심이란 건 넣었다, 뺐다 하는 건가? 이 시대의 사람 같지 않게 왜 이렇게 똑똑한가 했더니 자네에게 갈리고 갈려서 강제로 능력이 개발된 사람이었군.]
‘이왕이면 갈렸다고 하기보다는 부하의 발전을 위한 상사의 애정 어린 마음이었다고 이야기해 주면 좋겠어. 내가 그렇게 태걸욱을 부려 먹었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괜스레 태걸욱에게 미안해졌다. 그동안 선문 객잔을 짓는다고 하면서 필요한 자재를 만들어 달라고 닦달을 하거나 각종 도구나 물건들을 만들 때면 태걸욱에게 거침없이 의뢰했던 과거의 순간들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아무래도 그동안 우리 태걸욱 이사를 너무 부려 먹은 모양이야……. 이거 미안하게 됐네.”
“아, 아닙니다! 교주님, 저는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그저, 기껏해야 쇠나 좀 만지는 주제에 세상 모든 걸 다 아는 척 거만을 떨던 과거의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그랬던 겁니다. 아마, 교주님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세상에 널리고 널린 대장장이 중 아주 조금 나은 실력을 가진 주제에 그렇게 잘난 줄 착각하고 살았겠지요.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교주님께 아주 감사한 마음뿐이니까요.”
태걸욱이 갑작스레 절을 하는 바람에 나는 당황해서 그를 서둘러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이러지 말고 일어나게, 태걸욱 이사. 나야말로 자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야.”
“교주님!”
사내 둘이 서로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깊은 신뢰와 믿음을 다지고 있음에도 차갑기만 한 비아는 전혀 감동받지 못했는지 주절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남자는 이미 글렀군. 자신이 얼마나 부려 먹히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어. 자발적 노예나 다름없이 말이야. 쯧쯧. 아직 나이도 어린데 참 안됐어.]
‘우리 공밀ㄹ. 아니, 태걸욱 이사가 이리도 날 존경하는데 중상모략은 그쯤 하지? 그리고 나이가 어리다니! 태걸욱 이사는 40대야. 물론 얼굴을 보면 딱 봐도 늙어 보이는 티가 확확 나는 중년이긴 하지만, 그건 안티에이징 화장품 같은 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에서 어릴 적부터 뜨거운 열기와 맞서 싸운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훈장이자 명예 같은 거라고!’
[그래그래. 낼모레 50이 얼마 남지 않은 한 집안의 가장과 그렇게 손 꼭 붙잡고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게나. 퍽이나 훈훈하군.]
‘앗!’
그제야 내가 태걸욱 이사와 흡사 도원결의를 맺는 것처럼 깊은 눈빛을 나누고 있음을 깨달았다.
“큼큼……. 태걸욱 이사. 그래, 어떻게 가능하겠나?”
나의 질문에 태걸욱은 자연스럽게 맞잡고 있던 손을 놓고선 설계도의 한 부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 삼각비익(三角飛翼)의 설계도를 보면 소재에 반소(礬素, 알루미늄)라고 적혀 있는 게 맞습니까?”
“역시 반소는 아직 만들어 내지 못했나? 나도 설계도를 만들면서 그게 가장 걸렸어.”
‘이런… 행글라이더에는 알루미늄이나 탄소섬유로 구조를 짜야 가벼운데…….’
[시작부터 암초를 만났군. 탄소섬유로 만들면야 가장 좋겠지만 이곳의 기술 수준으로는 거의 신검(神劍)을 만드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어려울 터이니 알루미늄으로 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알루미늄 골조에 비해 허술하긴 해도 대나무로 하거나 나무를 가공해서 만든 뒤에 쇠를 덧대는 방식의 플랜 B로 가야 하나 싶은 찰나, 태걸욱이 한숨을 쉬는 나를 향해 웃음 짓는 게 아닌가.
“훗. 교주님, 제가 누굽니까? 16대째 내려져 오는 태 씨 가문의 대장장이, 태걸욱이 아니면 누가 가능하겠습니까!”
“설마?”
“네. 제가 이끄는 기술 연구부가 마침내 해냈습니다! 교주님께서 아예 처음부터 어떻게 만들면 될 것이라고 소상하게 비전(祕傳)을 알려 주셨는데, 그저 보고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걸 못 만들어서야 제 조상님들이 저를 한심하게 여기실 겁니다. 이 태걸욱, 교주님께 목숨을 바쳐서라도 명에 따르겠다고 맹세한 사람입니다! 하하하하.”
“태 이사! 나에겐 역시 태 이사밖에 없어! 크읏.”
믿음에 믿음으로 보답한 태걸욱과 또다시 조그마한 액정을 이리저리 옮겨 가며 새로운 설계도를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나의 동상이몽은 서로에 대한 격한 포옹으로 이어졌다.
[아……. 난 굳이 이런 건 느끼고 싶지 않다고, 용운!]
‘이 설계도를 만드는 데 너도 한 축을 담당했으니 너도 낄 자격이 있어!’
[나에겐 이미 충분히 고귀하면서 아름다운 반려가 있어! 굳이 땀내 나는 사내들의 품을 양쪽에서 느끼고 싶지 않아! 어서 빨리 떨어져 주게. 계약자로서 지금 당장 강력히 요청하네.]
‘진한 이 우정의 맛을 너에게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로, 로그아웃을 요청한다!]
‘어허, 어딜 도망가? 로그아웃 요청을 거절한다!’
그렇게 두 남자와 한 존재가 서로를 향해 뜨거운 마음을 표현하며 격하게 마주하고 있을 때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교주님! 태걸욱 아저…씨하고 둘이 뭐 하고 있어요?”
한서불침에 오른 나였지만 열린 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이상하게도 서늘하게만 느껴졌다.
“다진 양! 왔는가? 이건 사내들의 뜨거운 마음을 교환하기 위한 표현이라네.”
‘그런 해명 하지 마…….’
“뜨거운 마음을 교환하기 위한 표현이요?”
“그렇다네. 남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진한 감정이랄까?”
‘아니야, 난! 그런 거 하고 싶지 않아!’
[어……. 로그아웃 취소.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만.]
“아……. 그렇구나. 제가 이거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했나 보네요.”
‘납득하지 마! 문은 왜 다시 닫는데!’
“다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