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 *
“이 정도씩이나 되는 영상을… 왜 고작 너튜브 채널에 무료로 푸는 거지?”
영상에 나오는 출연진들은 한국에 등재된 배우협회에서는 도무지 그 비슷한 인물들을 찾을 수가 없는지라 정식 배우가 아닌 듯싶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는 대사라든가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연기는 매우 진정성이 흘러넘쳐서 기성 배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딘가에 실존하는 사람들의 다큐처럼 느껴졌다.
이 채널을 알게 된 건 사실 순전히 우연이었다. 휴게실에 들러 냉장고에서 음료 한 캔을 챙겨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다가 부하 직원이 자기가 온 줄도 모르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에 집중해서 무언가를 보고 있던 것이 시작이었다.
“헤이, 제이! 뭔데 그렇게 집중해서 보는 거야? 이번에 신규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야?”
“헛, 존슨 이사님. 언제 오셨어요?”
“목이 말라서 음료수나 마실까 해서 왔는데 제이가 엄청 뭘 뚫어져라 보고 있더라고. 뭐야? 이번에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찍은 영상이 그렇게 잘 나왔어?”
“아니요. 우리 프로젝트는 아닌데…….”
“그럼?”
“으음……. 한번 보세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시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제이라는 직원은 자신이 보고 있던 영상의 다시 보기 버튼을 눌러 처음부터 영상을 재생하였다.
영상 속에선 스위스 같은 자연 풍경을 높은 고도에서 잡으며 시작하고 있었는데, 거리의 풍경이라든가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서히 엔딩이 다가올 때 보게 된 장면은 자신이 지금까지 봤던 영상이 무슨 다큐 영상 같은 게 아니라 잘 만들어진 하나의 영화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반전이었다.
“이 영상의 연출 의도가 그러니까… 슈퍼히어로의 시각에서 본 세상이다. 뭐 이런 건가?”
“예,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엔 그냥 드론으로 찍은 평범한 영상인가 싶었는데 풍경도 익숙하면서 이상하게 처음 보는 느낌이고, 사람들의 복식이라든가 건물도 굉장히 새로운데 하나하나가 그냥 찍은 것 같지 않은 느낌? 그래서 그래픽으로 만든 건가 했는데…….”
“일반인들은 몰라도 우리는 알지. 이 영상에 그래픽 따윈 하나도 안 들어갔다는 거 정도는.”
“예, 그래서 저도 이해가 안 돼서 몇 번이나 돌려 봤습니다만 도무지 납득이 안 되더라구요.”
“CG가 아니면 세트를 만들고 배우들을 동원해서 하나하나 찍었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보기엔 또 세트장 규모가… 무슨 미니어처를 확대해서 찍은 것마냥 어마어마한 것 같습니다.”
“중간에 편집점이 없었지. 처음부터 주욱 길게 이어져서 전체를 조망하는 장면부터 세세히 훑고 지나가서.”
“또 이해가 안 가는 게 영상 전부를 보면 보통 대하드라마라고 해서 한국의 사극 드라마들은 가끔 전쟁 신이 들어갈 때가 있는데, 그때 보면 엑스트라를 몇 번 재활용해서 쓰니까 앞에서 죽은 배우가 뒤에서 또 죽기도 하고 뭐 그런 식으로 업계 사람들 눈에 보이는 옥에 티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아무래도 대규모 전투 신이라고 해도 엑스트라를 그 정도로 많이 쓰긴 어려우니까 파트를 나눠 찍고 나중에 전체 장면에서 합성을 하는 방법을 쓰다 보면 전체 장면에선 어색하게 반복되는 부분이 보인다든가 하는데…….”
“예, 그런데 여기는 그런 식의 장면들이 없어요. 나오는 사람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비슷한가 싶어서 다시 천천히 배속을 낮춰 돌려 봐도 다른 사람이더라구요.”
“그러니까 자네 말은 이 영상에 동원된 엑스트라들이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이다?”
“예. 그래서 이상합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해서 영상을 찍는다? 제작 단가가 상상이 가십니까?”
“흐음…….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네.”
“혹시, 이번에 경쟁업체에서 새로 만든 시리즈물의 홍보 영상은 아닐까요?”
“홍보용으로 찍어서 이렇게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거다?”
“예, 일종의 맛보기용으로 말이죠.”
그 직원과 대화를 한 뒤 서둘러 자기 방으로 돌아온 존슨이 이리저리 정보를 얻어 봤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슬쩍 떠봤다가 자신에게 도리어 넷플렉스에서 새로 진행하는 시리즈물의 프로모션이냐고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도대체 이런 영상을 찍는 집단은 누구지?”
천마 TV라는 채널에 올라온 영상들을 모두 본 앤디 존슨은 어딘가 아마추어 냄새가 나는 말도 안 되는 영상을 찍은 이 채널의 주인이 무척이나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몇 년이 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다양한 방식으로 슈퍼히어로의 VLOG 같은 영상들을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찍어 온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 * *
“아……. 갑갑하구만.”
[10억 포인트를 벌려면 그만 고민하고 어서 움직이게.]
“가만히 있어 봐. 나도 고민 중이니까.”
[고민만 해선 어느 것도 해결이 안 된다는 걸 모르나?]
“아! 거참! 아저씨? 내가 안 한대? 할 거긴 한데 뭘 먼저 할 건지는 정해야지.”
내 손이 ‘포도주 만들기 영상’이라고 적힌 종이를 향해 가자 비아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 영상은 저번에 올렸네.]
“그랬나? 포인트 번다고 이것저것 막 찍어 올렸더니 헷갈리네.”
[접어서 치워 버리게.]
“예이예이.”
고된 두뇌 노동으로 머리가 과열이 된 난 멍하니 비아의 말을 따라 ‘포도주 만들기 영상’이라는 내용이 적힌 종이를 비행기로 접어서 창문 밖으로 휙 하니 날려 버렸다.
“이야, 누가 접어서 날렸는지 잘 날아간다.”
[기를 그런 데다 사용하지 말게나.]
“기를 담으니까 매끄럽게 잘 날아가는 것 같지 않아? 보통 종이비행기는 주욱 날아가다 바람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데.”
[그렇긴 하구만. 잡소리는 그만하고 어서 뭘 할지 다른 걸로 골라 보게.]
둘이 창밖으로 날아간 종이비행기를 쳐다보고 잡담을 하다가 다시 등을 돌려 책상 위에 적혀진 종이를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무척이나 귀에 익은 목소리.
“아!”
“어?”
빠르게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봤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뒤통수를 비비며 종이비행기를 집어 드는 다진이의 뒷모습이었다.
“아니… 그게 왜…….”
다진이가 누가 종이비행기를 던졌는지 찾으려고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기 전 다행히도 나는 창 아래로 내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쯧쯧,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자네가 그랬던가?]
“다진이는 남자가 아니고, 맞은 것도 코가 아니라 뒤통수니까 그 말은 이 경우에는 정확히 맞지 않아.”
[난 다진 양에게 한 말이 아니었네만?]
“그럼?”
[자네를 보고 한 소리였네. 내가 왜 다진 양에게 그런 소리를 하겠는가?]
“무슨 소리야, 그게?”
[나비의 날갯짓이 어딘가에선 태풍이 되기도 하는 법이라지.]
비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주님이죠?”
“뭐가?”
“이거요! 이거 던져서 제 뒤통수에 날린 사람! 교주님, 맞잖아요!”
당연히 다진이가 들고 온 것은 구겨진 흔적 따위 없이 날린 모습 그대로 예쁘게 각이 살아 있는 종이비행기였다.
“내가? 내가 이걸 날렸다고?”
[끝까지 속이지 못할 거라면 그냥 바로 인정하게.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이야.]
‘다진이 뒤통수에 혹 났더라… 어떻게 인정하냐.’
“이 동네에서 견지를 접어서 이렇게 날릴 만한 사람이 교주님 말고 또 누가 있는데요?”
다진이는 말을 하면서 지금도 한 손으론 종이비행기를 들고서 다른 한 손으론 자신의 뒤통수를 비비고 있었다.
“왜 생사람을 잡고 그래. 나, 아니야.”
명나라에서 질기고 두꺼우며 광택이 나고 지면이 매끄러운 것이 명주와 비슷하다고 해서 견지(繭紙)라고 불리는 질 좋은 이 종이는 나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신교의 마을이 부유해지고 들여온 종이, 그러니까 조선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는 최고급 종이 한지(韓紙)였다.
“나라는 증거 있어? 없지.”
“증거가 왜 없다고 생각하시는데요? 당연히 있는데.”
“뭐?”
[자네는 사기는 잘도 치면서 다진 양 앞에선 더럽게 거짓말을 못 하는구만. 거기서 그렇게 반응하면 내가 바로 범인입네, 하고 인정하는 꼴이지 않는가.]
회심의 미소를 지은 다진이는 내게 이 종이가 내가 날린 것임을 증명할 수 있는 이유가 무려 세 가지나 된다고 했다.
“세, 세 가지나 된다고?”
“첫째, 아무리 우리 마을이 부유해졌다고는 하지만 견지를 사용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죠. 특히나 가장 많이 견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바로 교주님이잖아요?”
“에헤이, 나만 쓰는 건 아니잖아. 나라는 확실한 증거를 가져와. 이건 기각.”
“으흥? 그렇게 나오시겠다? 둘째, 귀하디귀한 종이를 가지고 이런 생소한 물건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 사람은 누구? 바로 교주님! 교주님밖에 없죠.”
[이건 잘 지적했군. 종이로 구현된 비행기라는 개념은 이 시대에선 너무나 미래적이지. 따라서 이토록 생소한 장난감을 만들 사람이 자네라는 주장은 매우 납득이 가는군.]
‘넌 누구 편이야.’
“에이, 애들이 만들어서 가지고 놀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애들은 원래 그런 신기한 물건 잘 만들고 그러잖아.”
“아~ 애들이 이렇게 비싼 종이를 가지고 접어서 가지고 놀았구나~ 퍽이나요.”
아니라고 딱 잡아떼자 다진이는 자신의 양쪽 허리에 손을 얹더니 한 손을 내 쪽으로 뻗으며 외쳤다.
“마지막 결정적인 이유가 남아 있어요!”
“그, 그래, 한번 말해 봐.”
“이 장난감 밑쪽에 적혀 있는 범인의 필체가 바로 증거입니다.”
“뭐?”
다진이 자세를 풀고 내 앞으로 종이비행기의 아래쪽을 뒤집어 보였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아까 내가 적어 뒀던 ‘포도주 만들기 영상’이라고 적힌 한글이었다.
“우리 마을에서 이런 이상하게 생긴 글자를 쓰는 사람은 교주님뿐이죠.”
“이, 이런.”
[외통수군.]
내가 날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였다. 사실 누가 봐도 내가 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는 증거들은 다진이가 말한 것들 말고도 많이 있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기를 실어 날릴 수 있을 만한 실력자이며 종이비행기 같은 괴상한 물건을 만들어 놀 사람.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봐도 알아먹질 못하도록 나만이 사용하는 한글이 종이비행기에 적힌 증거를 합하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동네 아이들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아낼 수 있었다.
“다진아,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네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어.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이 종이비행기를 날린 건 맞아. 맞는데, 이건 그러니까…….”
‘비아, 뭐라고 둘러대지? 좀 도와줘!’
[흐음,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는 이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안 드는군.]
‘뭐야, 날릴 땐 같이 잘 날아간다고 봐 놓고선! 이 경우엔 너, 너도 공범 아니야?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공범……? 크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긴 하구만. 재수가 없는 놈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을 때만 해도 깨진 코가 그대의 코인 줄 알았는데, 내 코도 포함된 거였나……?]
‘그래, 공범. 어서 지금 상황을 넘어갈 타개책을 말해 봐. 나 혼자 독박 쓰고 있는데 그 정도는 해 줄 수는 있잖아.’
[그럼 이렇게 말해 보게.]
나의 장자방인 비아의 해결책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진작 좀 알려 주지.’
“왜 말이 없이 고개만 끄덕이세요? 이게 얼마나 비싼 종이인데 이렇게 애들 장난감을 만들어 가지고 놀아요? 심지어 기까지 실어서 누굴 다치게 하려고.”
“무슨 소리야? 누가 장난감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았다고?”
“그럼, 뭐 하다가 그랬는데요!”
다진이는 내가 잘못을 인정하면서 고개까지 끄덕여 놓곤 뻔뻔하게 구는 모습에 혈압이 올랐는지 화를 내기 직전이었다.
“내가 이 ‘비행지(飛行紙)’라는 걸 만든 건 다 실험을 위해서 한 거였어!”
[내가 알려 주긴 했지만 참 뻔뻔하게 잘도 떠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