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현대로 넘어갔다 돌아오기 위해 당장 더 필요한 포인트가 약 9억 2천만 포인트 정도였다. 1포인트가 아쉽게 된 이 상황에서 치킨 세트가 무려 4만 포인트라니…….
“이거 할인은 안 되나? 내가 치킨을 배달 앱으로 시켜 먹을 때도 치킨 한 마리에 콜라 한 페트면 배달비까지 다 해서 3만 원도 안 했다고. 근데 4만 포인트라니! 2만 포인트만 되어도 눈 딱 감고 시켜 먹겠는데 포인트랑 원화가 같은 건 아니지만 느낌적으로 내가 사 먹던 가격보다 더 비싼 것 같다니까?”
[이 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네. 4만일세. 자네가 그동안 그리워했던 음식을 자네의 눈앞에 가져오는 대가가 고작 4만이야! 안 먹고 싶나?]
“2만 포인트도 아니고 4만 포인트면 두 배야! 3만 포인트면 한 번 도전해 볼 법도 한데?”
[4만.]
‘지가 무슨 김두환이야, 뭐야…….’
비아헤로스는 날 꼬드기겠다고 너튜브를 틀더니 콜라와 치킨을 먹는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영상에선 탄산이 톡톡 튀면서 콜라의 상쾌함을 한껏 표현하고 있었고, 치킨을 뜯어 먹는 남자의 표정에선 커다란 닭 다리를 맛있게 뜯어 넘기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어 누가 봐도 행복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비아, 말 좀 해 봐.”
[자네가 말하는 걸 보면 이 음식이 무척이나 맛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무슨 맛인지 모르니까 너무 궁금하거든. 내가 이렇게 아바타로 유희를 하는 이유가 뭐겠나?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의 것들을 경험하기 위함이거든. 그러니 도대체 그 양념치킨이라는 것과 콜라가 주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미치겠네.]
“휴우…….”
애초에 이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1:1도 아니고 내 안의 악마까지 편을 먹으면 2:1이지 않는가. 난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오케이! 4만! 더 이상은 안 돼. 이번 한 번만 먹고 10억 포인트 모을 때까진 절대 안 먹을 거니까 다신 유혹하지 마…….”
[하하하, 덕분에 나도 이전에 자네가 몇 번이고 말했던 그 양념치킨이라는 것과 콜라를 자네의 육체를 통해 느낄 수 있겠군. 고맙네. 고마워! 진심으로 궁금했단 말이지. 그리고 나도 더 권하지는 않을걸세. 흐흠.]
“진짜 이번 한 번만이야.”
분명 말은 비아에게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게 다짐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내가 결정을 내리자 나보다 더 좋아하는 비아에 의해 어느새 나의 앞에는 배달을 시키면 으레 배달의 기사분들이 가져다주는 것과 똑같은 배달 용기에 담긴 치킨과 페트병에 담긴 빨간색 콜라병이 놓여져 있었다.
“이게 4만 포인트라니. 허어…….”
[이미 쓴 포인트는 앞으로 열심히 영상을 찍어 올리고 이 세상을 변화시켜 벌면 되는 걸세. 어서 먹어 보게. 츄라이. 츄라이! 다 행복하게 살려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거 아닌가?]
“그, 그런가?”
업그레이드된 단말기 덕분에 홀로그램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된 비아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치킨을 먹으라고 한껏 권했다.
나는 유혹에 넘어간 스스로를 반성하며 호쾌하게 빨간 양념이 잔뜩 묻은 닭 다리와 뚜껑을 딴 콜라 페트병을 들고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흐음. 이 냄새… 이 탄산. 그리웠다. 크아아아, 이 맛이지. 이건 이 세상에 없는 맛이거든. 진정한 자본주의의 맛.”
눈을 감고 음미하는 치킨의 맛은 역시나 감탄스러웠고 이 세상의 어느 음료도 대리만족을 줄 수 없는 폭발적인 쾌락의 콜라 맛은 이곳에서 만들어 마시던 맥주와는 다르게 향수를 자극하고 만족감을 주는 맛이었다.
“이거지, 이거야. 음음. 내가 그리워했던 자본주의의 참맛. 죽인다! 꺼억.”
[이게 바로 자네가 말하던 치킨과 콜라의 맛인가! 으어어어. 좋구만, 좋아! 왜 그렇게 침을 삼키며 그리워했는지 확실히 알겠네.]
두 존재가 치킨을 영접하고 쾌락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허업! 누구?”
“교주님,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그 빨간 거랑 검은색 물은 뭔가요?”
“어? 다진아? 니가 갑자기… 여긴 왜?”
‘뭐야, 비아, 다진이가 오고 있다는 거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잖아.’
[무슨 맛인지 알고도 먹는 자네도 정신 못 차리는 판에 나라고 별수 있었을 것 같은가? 난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분명 난 그저 치킨과 콜라를 먹으며 나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는데 다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괜스레 들키지 말아야 할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움찔하며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말이야. 그러니까… 음.”
‘뭐라고 둘러대지? 나 지금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모르겠어. 포인트로 배달시켰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잖아?’
[뭐라고 해야 하냐고? 지금 나한테 그걸 묻는 건가? 음, 어? 잠깐만 시간을 주게. 잠시만. 나도 지금 매우 당황스럽다네.]
평소의 청산유수와 같은 비아는 어디로 가 버리고 그까지 당황해서 어물거리는 사이 다진이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다가와 내가 들고 있던 닭 다리를 보곤 자신도 닭 다리 조각을 집어 들었다.
“이건 무슨 음식이에요? 닭튀김이 이렇게 빨갛게 된 건 처음 보네? 저도 한 입 먹어 봐도 되죠?”
“어? …어.”
당황에서 이어진 방심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닭 다리의 강탈로 이어졌고, 다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닭 다리를 보면서 나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거인들이 소인들을 집어삼킨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소개 글이 떠올랐다.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아, 이게 절망인가?’
“와! 이거 진짜 맛있네요.”
“그, 그래? 맵지는 않고? 매워서 좀 익숙하지 않으면 안 먹는 게 좋을 거야.”
“아니~ 전혀요. 맵다기보다는 저한테는 딱 칼칼한 느낌인데요? 좋아요! 처음 먹어 보는 맛인데도 입에 착착 감긴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맛이에요.”
“그렇구나. 음식이 다진이 입에 잘 맞는구나. 정말 다.행.이.다.”
[자네… 말에서 영혼이 전혀 느껴지지 않네만?]
분명 나에겐 약 8천만의 포인트가 남아 있기에 언젠가 포인트를 모아서 한 번 더 큰맘 먹고 한 마리를 추가로 시키면 될 일이었지만, 다진이가 닭 다리를 먹고 뼈만 남기고선 자연스럽게 닭 날개를 집어 올렸을 땐 이상한 감정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이러다간 다 뺏기겠다. 얘 먹성이면 한 마리도 순삭이야.’
내 손에 들린 채로 식어 가고 있던 닭 다리를 서둘러 먹어 치운 나는 그때부터 다진이와 경쟁적으로 양념치킨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다진이보다 살짝 빠른 속도로 양념치킨을 먹던 나는 다시금 생각하지 못했던 전개를 마주해야만 했다.
“켁켁. 교주님, 목 막히는데 그거 좀 줘 봐요.”
“뭘?”
“그거요, 거기 새롭게 생긴 용기에 들어 있는 검은 물. 그거 마시는 거 맞죠? 나 목 막혀요. 어서요, 켁.”
“이건 마시는 게 아니라…….”
[되지도 않는 소리는 하지도 마시게.]
“마시지도 않을 걸 왜 잔에 따라 놨어요? 설마 내가 먹는 게 아까워서 그래요?”
‘어, 엄청.’
“에이,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그런 사람 맞지 않나. 지금 자네 눈이 풀린 것 같네만.]
나는 영혼을 빼앗기고 세뇌된 사람마냥 봉지 안에서 치킨과 함께 온 종이컵을 꺼내 다진이에게 콜라를 따라서 건네주었다. 다진이는 처음 보는 검은 음료인 콜라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도 없는지 잘도 벌컥벌컥 들이켰다.
“…꼴깍꼴깍……. 응? 교주님, 끕, 이거, 어억, 꼭 맥주처럼 톡톡 쏘는데 묘하게 단맛이 느껴지네요…….”
“그치? 역시 이상하지? 내가 물 갖다 줄까?”
“끄어억. 미안해요. 됐다, 물은 안 가져다줘도 될 것 같아요. 이 검은색 음료 마시니까 목에 걸린 게 쑤욱, 하고 내려갔어요. 와, 진짜 신기하다. 색깔은 맥주처럼 안 생겨선 맥주 마실 때처럼 목을 때리는 게 정말 좋네요. 달달한 게 자꾸만 마시고 싶은 맛이라고 할까요? 한 잔 더 마셔도 되죠?”
“한 잔 더?”
“네.”
“아, 물론 되지… 이 돼지…….”
“네?”
“아, 아니야.”
다진이는 콜라 한 잔을 시원하게 더 원샷하더니 다시 양념치킨에 집중했다.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보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가 만든 음식을 다진이가 맛있게 먹어 줄 때완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다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치킨과 콜라들을 보면서 나 또한 비장한 각오로 다시금 입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자네는 더 잘할 수 있어! 더! 더 빠르게! 어어, 지금 다진 양 입속으로 부들부들한 살이 들어갔네. 아까 저 부위 먹었을 때 좋았는데! 뭐 하는 건가? 어서 빨리 움직이게.]
어느새 봉지에는 닭의 뼈가 쌓여 잔해를 이루고 있었고 고작 치킨 조각 하나만이 용기 안에서 처량하게 놓여 있었다. 또 처음 내 손에 들려 있을 때만 해도 가득 채워져 있던 페트병은 어느새 비워져 이제 한 잔 정도 더 먹을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
꿀꺽.
다진이도 알고, 나도 알았다. 남은 한 조각의 치킨과 한 잔의 콜라에 가지는 둘의 감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교주님, 나 이거 처음 먹어 보는데 남은 건 내가 다 먹어도 되지요?”
‘아니, 이 돼지가? 아아, 이러면 안 되지. 용운아, 니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진이야. 다진이라고.’
“다진아, 배부르지 않아? 이미 충분히 많이 먹은 것 같은데… 우리 아까 저녁도 맛있게 먹었잖아.”
언제나 다진이에게 한없이 자애롭던 나였건만 이전에 먹었던 닭튀김과는 다른 현대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양념치킨과 콜라는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네, 제가 이걸 다 먹은 것도 아닌데요? 많이 먹기는요. 저 몇 개 안 먹었어요. 진짜예요!”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린 시민처럼 다진이는 결백한 표정으로 남은 콜라와 치킨에 대한 명분은 자신에게 있음을 공고히 하려고 했다.
“아니야, 저기서 먹은 것의 절반은 네가 먹은 거야, 다진아.”
“교주님, 혹시 제가 먹어서 아까워요? 그래서 이러는 건가요?”
다진이는 아직 배가 다 차지 않았는지 암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악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잘못됐다.’
[솔직히 말해 버리게! 아깝다고! 어서! 남은 치킨과 콜라가 내 것이다. 왜 말을 못 하는 겐가! 용운! 저 치킨과 콜라가 내 것이다, 라고 어서 말을 하게!!]
비아는 대체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날 부채질했지만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진 나에겐 딱 그만큼의 이성이 돌아왔기에 나는 날 자극하는 위기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니… 내 말은 다진이 네가 먹는 게 아깝다는 게 아니라…….”
“그렇죠? 그럼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바보 같으니라고! 자네에겐 양념치킨과 콜라가 이렇게 허무하게 넘겨도 괜찮은 그런 쉬운 존재였나? 내가 자네를 잘못 봤구만! 다 틀렸군, 다 틀렸어.]
다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치킨과 콜라를 나는 어찌하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했다.
[결국 자네도 평범한 겁쟁이 남자였군. 허허허.]
‘시끄러워. 너 도대체 왜 그렇게 눈이 뒤집혀서 그러는 거야.’
남은 콜라 한 방울까지 먹어 치운 뒤 손가락까지 쪽쪽 빨고는 치킨 무에 있는 국물을 들이켜더니 마지막 하나 남은 치킨 무를 가지고 입가심까지 한 다진이는 나를 한차례 보더니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러고 보니 빨래 개야 하는 걸 까먹고 있었어요. 내 정신 좀 봐. 뒤처리 좀 부탁할게요.”
다진이는 그렇게 소독을 하고 수술실로 입장하는 의사처럼 양팔을 위로 세운 채 손부터 씻어야겠다며 일어선 뒤 들어올 때처럼 홀연히 빠져나갔다.
“허겁지겁 먹느라고 무슨 맛인지도 제대로 못 느낀 것 같다. 아, 음미하면서 먹고 싶었는데…….”
살이 발린 채 쌓여 있는 닭 뼈 조각들과 까맣게 자신을 채우고 있었지만 이제는 투명해져 버린 콜라 페트병만이 지금의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패잔병처럼 축 늘어진 채 의자에 앉아 그 잔해를 지켜보았다.
[자네는 처음부터 선을 그었어야 했네. 이 양념치킨은 내 것이다! 이 콜라가 내 거다! 라고 했어야 했단 말일세.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구.]
“비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을 거 같아? 그랬다간 후폭풍은 누가 감당하지? 순간의 분노를 감당해야 하는 건 너도, 지금의 나도 아닌 미래의 나라고. 그리고 고작해야 치킨하고 콜라잖아. 다진이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것도 아니고.”
[비겁한 변명일세. 그런 식으로 합리화를 할 거면 치킨을 주문하기 전에 자네가 한 치열했던 고뇌는 무엇이었나?]
“너는 제삼자로서 말만 하는 거니까 쉽지. 뒷감당은 내가 한다고.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네가 왜 그렇게 광분을 하는 거야. 아무리 내가 먹은 치킨 맛과 콜라 맛을 통해 대리만족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흥분할 필요는 없잖아. 왜 그러는 건데?”
[…그건 말하고 싶지 않군.]
방금 전까지 열변을 토하던 비아는 어디로 가 버리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닫았다.
며칠 뒤 다시 물어보고 알게 된 것이었지만 비아에게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며칠 전의 나와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고 했다.
[꼭 내가 야식을 먹으려고 할 때 분명 먹을 거면 함께 먹을 만큼 준비할 테니까 미리 말하라고 했건만, 내 반려는 그 순간에는 안 먹겠다고 해 놓고 정작 음식이 준비되어 먹는 순간이 되면 ‘한 입만.’을 외쳤다네. 그리고 다진 양처럼 못해도 절반을 먹어 치우고선 유유히 잔해만 남겨 놓고 떠났지. 하, 그 현장을 홀로 감당해야만 했던 내 심정이 어땠을지. 그걸 또 치우면서 느껴야 하는 감정이 어떤 건지 자네도 이젠 알지 않나?]
“힘들게 살았구나, 너도.”
[그렇게 잘 먹어 놓고선 꼭 뭐라고 하는지 아나? ‘그땐 안 먹고 싶었는데 당신이 막상 먹으려고 하니까 먹고 싶어지는 걸 어떻게 해.’ 그게 사람을 얼마나 열받게 하는 줄 아는가! 그리고 자기 입으로 한 입만이라고 했으면 딱 한 입만 먹어야지. 왜 더 먹는 게야! 그렇다고 처음부터 뺏어 먹을 걸 예상하고 둘이 먹을 양을 준비하면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아! 오늘은 별로 안 먹고 싶네~’라고 하고 휙 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린단 말일세. 그럼 나는 그렇게까지 많이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도 잔뜩 만들어 놓은 음식을 꾸역꾸역 다 먹어 치워야 하지……. 그럼, 소화기관을 가득 채운 음식물에 내 육신은 원치 않았던 먹부림의 대가를 감당해야만 한단 말이야. 하아……. 이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데이션으로 고조되는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비아의 말을 들어 주며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자기도 못 하는 걸 나보고 하라고 한 거였어?’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면 기껏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비아가 크게 급발진할 것 같아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크흡……. 솔직히 좀팽이 같다는 소리 들을까 봐 내가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네. 나도 말이야. 누가 해 주는 야식을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데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 반려는 절대. 결코! 움직일 생각조차 안 한다네. 마치 내 속을 훤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자신의 반려에 대한 뒷담을 시원하게 털어놓는 비아의 한탄을 들어 줘야만 했다.
‘이 양반, 쌓인 게 많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