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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68화 (68/132)

68화

“다음부턴 그런 장난은 치지 말라고. 정말 놀랐다니까!”

[하하하, 놀랐나? 보통 이런 상황에선 이런 식으로 서프라이즈를 하는 거라고 자네가 나한테 장난치면서 그랬지 않았나. 걱정하게 했다면 미안하네.]

‘좀팽이 같으니라구.’

“그랬긴 하지만 난 지금처럼 중요한 상황에서 그런 게 아니었잖아. 딱히 널 걱정했다기보다는 내 스마트폰이 고장 날까 봐 걱정한 거라고. 큼.”

[훗, 대충 그렇다고 쳐주지.]

“하아……. 네 멋대로 생각하든지 말든지. 근데 뭐 때문에 놀란 거야? 그냥 장난치려고 그런 거야?”

여기 중세의 세상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쉽게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점에서 비아헤로스와의 우정은 나에게 있어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껄껄껄 웃으면서 그저 장난은 아니라고 해명을 했다.

[자네의 말을 듣고 이 단말기가 이 세상의 평행 세계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

“그건 그래. 전반적으로 비슷한 역사의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여기는 기라든가 무공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세상에서 과거에는 그런 게 존재했다는 기록 같은 건 없었으니까.”

비아의 설명에 따르면 내 스마트폰의 수준 때문에 미래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을 한다거나 너튜브 영상을 보고 영상 파일 같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바타가 담긴 단말기와 연동을 해서 결합을 할 수 있다면 현재의 제한된 성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록이 걸린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 좀 더 확장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야? 록이 걸려 있었는데 그걸 풀었다고?”

[간단하게 이전에는 겨우 정보상의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자네가 존재하던 세상의 물질을 소환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소리지. 정보는 곧 에너지고. 물질도 에너지의 다른 발현일 뿐이니.]

“응? 무슨 말이야, 그게?”

여기까지 듣고 나는 순간 벙쪄서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듣기는 들었는데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소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메커니즘은 잊어버리고 간단하게 생각하게. 다음 레벨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물질을 소환해 낼 수 있게 되었다고. 이쯤에서 놀라면 곤란한데. 아직 전부 말하진 않았단 말이지.]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다고?”

[그렇네. 물질을 소환해 냈다면 반대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지도 물어야지. 자네 세상에 존재한다던 택배는 일방통행이었나?]

“아니지… 반품을 하기도 하고……. 뭐? 물질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진짜야? 이쪽에서 저쪽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말이지?”

[뭐… 자네가 그동안 벌어 놓은 포인트라는 걸 대가로 해야 하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포인트 따위 어차피 구독자 수가 100만에 도달하면서 이제는 남아돌아! 포인트가 대수겠어?”

지금 현재 채널에 올린 영상들의 누적 조회수만 합쳐도 수천만 회가 넘다 보니 필요한 정보를 더 이상 검색함에 있어서 포인트의 부족함 같은 건 느끼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포인트로 현대에 있는 물질을 소환해 내고 전송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흐음……. 저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굳이 듣지 않아도 알겠네. 자네가 그 세계로 넘어가는 것 말인가? 포인트만 확보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가능하다고? 진짜로?”

내 심정을 이해했는지 곧바로 짚어 내고 답해 주는 그의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몇 년을 고생한 덕분에 이제 이 세상에서의 삶은 매우 풍족해졌고 나의 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인원들만 약 10만 명에 달하고 있다.

하나의 작은 도시를 운영하고 있는 영주나 다름없다고 보면 될 정도로 나의 지위와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항상 만족스럽기만 하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다.

현대인으로서의 삶에 절여져 있던 시간이 무려 30년이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30년을 성장한 나의 사고방식은 철저히 한국인이었기에 때때로 이곳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언행에서 갑갑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설령 이곳에서 앞으로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더 산다고 해도 내 정체성의 뿌리가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외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내고 온 친구들을 봐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모국(母國)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나는 용운으로서 가진 지식과 기억들 덕분에 언어적인 측면에선 중세 중국어를 쓰는 데 있어 딱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사유(思惟)의 근본은 아직도 언어적으론 한국어이며, 문화적으론 한국인으로서 배웠던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이곳에서 나는 항상 나 스스로 이방인임을 느끼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살던 세상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아의 말이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겠는가. 마치, 그의 말이 나에겐 6·25 한국전쟁으로 실향민이 된 어르신들에게 나중에 북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날이 찾아온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다면 이해가 될까.

웹소설에서 흔히들 수백 년을 이세계에서 살아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다 끝내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가는 인물들의 심정을 나는 이해한다.

아니, 이해의 수준 정도가 아니라 가슴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나는 그들과 다른 게 하나 있다. 나는 이미 내가 이곳에서 쌓아 올린 것에 대한 충족감과 책임감 또한 존재한다.

현대에선 느껴 보지 못했던 경영자로서,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나를 성장시켰고, 그 과정에서 갖게 된 이곳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한 책임감은 소설 속 인물들처럼 모두 버리고 떠나는 것을 선택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쉽게 버리고 떠날 수 있는 터전이 아니었다.

“하나 확실히 하고 싶은 게 있어. 다시 돌아올 수 있었으면 해.”

[자네가 자꾸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은데. 몇 번이고 말해 주지. 갈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네. 단, 오고 가는 데 있어 충분한 포인트만 확보할 수 있다면. 포인트가 ‘부족’하면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고. 제대로 자네가 원하는 시공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지. 시간대가 틀어지거나 도착하는 공간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그제야 나는 비아의 말 중 TV의 보험상품 광고에서 끝부분에 중얼중얼대며 나오는 약관 설명처럼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야 넘치잖아. 설마 부족하다고? 내가 지금 가진 포인트가 8천만이 넘어.”

[자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포인트론 겨우 수십 기가 정도의 데이터를 주고받는 정도로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지. 하지만 자네가 원하는 건 자네의 기억을 가진 자네의 육체를 가지고 이동하는 거잖나? 기껏해야 현재 자네가 가지고 있는 1억조차 안 되는 89,091,712포인트로는 편도 티켓조차 끊을 수 없네. 아, 지금 10포인트가 증가했군. 뭐, 편도 티켓을 구매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비아의 말은 나름 열심히 살아서 돈을 저축한 끝에 좀 더 좋은 전세방으로 이사를 가려고 했을 때 부동산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느껴야만 했던 좌절감과 비슷한 느낌을 전해 주었다.

“그럼 내 육체를 가지고 미래로 넘어갈 수 있는 포인트는 얼마나 필요한데? 얼마면 되는데?”

[어디 보자. 손실분 없이 현재 자네가 지닌 육체의 수준을 그대로 옮기려면… 그래, 5억 포인트 정도는 필요하겠군. 이것도 왕복이 아니라 편도일세.]

“5억이나 필요하다고? 왕복도 아니고 편도로?”

포인트는 한도에서 모자란 경우 구매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 말은 카드처럼 미리 물건부터 받고 대가는 나중에 치르는 방법은 쓸 수 없다는 의미였다.

[자네가 현재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생각해 보게. 초절정 고수가 가지는 육체와 영혼을 전송하는 데에 있어서 5억 포인트면 그렇게 엄청난 것도 아닐세. 고작일세. 고작 5억 포인트로 이게 가능하다는 것에 난 놀랍기만 하군. 오히려 엄청난 효율을 보이고 있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내가 초절정 고수라는 무위에 올라서 그렇게 높은 포인트가 필요한 거라, 이 말이지?”

[이제 좀 확실히 이해하는 것 같군. 자네가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충분히 왕복 티켓 정도는 얻을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자네는 평범한 일반인 따위는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초절정 고수잖나. 그것도 이제 화경으로 넘어가기까지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벽에 다다른 초절정.]

“저기 그러면… 만약 내가 내 내공을 제한해서 초절정 고수가 아니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인 거지?”

[지금 자네가 생각하는 방법은 권하고 싶지 않아. 내공을 제한하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지 않나? 말 그대로 일반인이 되어야 하네. 단순히 내공을 봉인하고, 말고는 상관없이 자네가 지닌 모든 내공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지. 자네가 쌓아 올린 경지를 모두 잃어버려도 좋은가? 경지를 버린다는 것은 계약을 했다가 취소하고 그런 것처럼 다시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불가역적 행위란 말이네.]

그건 안 될 말이다. 아직까지 신교를 데리고 중원에 섣불리 진출하고 있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설령 주원장의 음모와 동창의 수작으로 인해 무림이 예전에 비해 몰락했다곤 하지만 지금도 무림에는 각 성(城)마다 화경 고수가 한둘씩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혹여 그들이 예전처럼 뭉쳐서 우리 신교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내가 최소 화경에 올라야만 했다. 화경의 경지조차 부족할지도 몰랐다.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무림의 기인이사들이 언제,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신교의 권토중래를 막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교주인 내가 스스로 무공을 폐하고 일반인이 되어 버린다면 현재 존재하는 4호법과 지금 키우고 있는 고수 양성을 위한 기관의 일원들만으로 그 기인이사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발생할 정마 대전 때 일월신교는 다시금 중원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쫓겨나겠지. 아니, 쫓겨나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만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뿌리를 뽑겠다고 달려들면 말 그대로 멸문이야. 물론 중원과 싸우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외부에서 밀고 들어온 집단이 자리를 잡기 위해선 첫 번째로 기득권들에게 유해한 존재가 아님을 인식시켜야 하고, 두 번째로 유해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이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강력한 자본력으로 그들을 똘똘 휘어 감아야 한다.

‘우리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뇌물이라면 얼마든지 배가 터져라 밀어 넣어 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자본력이 필요해. 아마 고창회골을 모두 집어삼키고 난 뒤 중원으로 진출한 선문 기업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마지막으로 중원에 자리를 잡고 부득이하게 신교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거대한 금력(金力)을 지키기 위해선 이 야만의 중세에서 필수적인 것이 바로 ‘무력(武力)’이었다.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비아의 설명은 나에게 딜레마를 전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네 말대로면 내가 만약 화경이 되면 필요한 포인트는 지금보다 더욱 증가한다는 말이겠네.”

[그래, 자네가 화경에 올랐을 때 지니게 될 에너지의 총량과 깨달음의 수준을 내가 정확히 가늠할 수 없긴 하지만, 대략적으로 계산했을 때 못 해도 50억 포인트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

“그렇게 가파르게 증가해?”

[초절정과 화경은 양적으로도 내공에서 차이가 존재하지만 질적으로도 다른 경지이지 않는가? 그러니 화경이 된다면 필요한 포인트의 양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네. 아무리 화경에 가까운 초절정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화경이라는 의미는 아니니까.]

* * *

비아 덕분에 가일층(加一層) 업그레이드한 내 스마트폰은 나에게 많은 번뇌를 안겨다 주었다. 무공 경지를 올리면 올릴수록 떠나기가 어렵다는 것과 언제든 현재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면 떠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선택의 고민들 말이다.

무엇보다 날 고민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커진 액정 화면을 통해 비아가 보여 주는 유혹이었다.

[허허. 자네, 매번 콜라와 양념치킨이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나? 겨우 4만 포인트면 뜨끈뜨끈한 양념치킨과 시원한 콜라를 세트로 즐길 수 있다네.]

‘비아헤로스 너, 사실 본업이 악마인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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