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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65화 (65/132)

65화

우리는 포도농장을 사는 건 포기하고 일단 투루판의 여러 포도농장을 돌면서 포도주를 만들기에 적합한 포도품종을 찾기 시작했다.

술을 만들기 위한 양조용 포도와 그냥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 먹기에 좋은 포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분의 많고 적음과 이에 따른 당도의 차이가 그것인데 만약 생으로 먹기에 적합한 포도를 와인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당도가 부족해 발효를 충분히 시킬 수 없다.

당도가 낮아 발효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 적정 수준의 알코올 도수에 도달할 수 없고 적정 수준을 맞추려면 당도를 높이기 위해 설탕을 추가로 첨가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설탕을 첨가해서 만들어지는 와인은 당도가 높고 수분이 적은 포도로 만든 와인과 비교했을 때 인위적인 단맛의 추가로 인해그 맛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 포도의 품종이 중요한 이유지. 주변 토양이라든가 기후도 중요하지만 결국 맛있는 와인의 시작이자 끝은 포도니까.’

“교주님, 이거 엄청 달아요. 껍질도 얇고. 츄릅. 어우, 설탕이 줄줄 흐를 정도인게. 이걸로 하면 안돼요? 얘로 포도주를 담그면 엄청 달달한 술이 나올 것 같은데.”

“흐음, 이건 맛은 있는데 내가 찾는 게 아니야. 포도주를 만들기에 적합하지도 않고.”

‘다진이는 워낙 당분 섭취하고 거리가 먼 삶이었으니까 이 정도만 되어도 달다고 느끼겠지.  당도는 좋은데 이렇게 즙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포도주를 만들기에는 수분이 너무 많다.’

〔신기하군. 이 포도라는 과일을 으깨서 발효라는 과정을 거치면 술이라는 게 된다니.〕

‘너희들 세상에는 술같은 거 없어?’

〔우리 세상에서도 가진 게 적은 하위소득자들의 일부가 즐긴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대부분은 이제 마시지 않네. 굳이 술이라는 것 같은 약물에 취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유희말고도 즐길 수 있는 유희가 워낙 많으니까. 도리어 그런 약물에 취하는 유희를 하는 이들은 약간 한심하게 보지. 당연히 술에 대해 따로 관심을 갖지 않다보니 술이라는 약물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그에 대한 방법을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네.〕

‘우리 세상에선 부자들일수록 와인같은 고급술에 돈을 쓰는데?’

〔인류는 이성적인 개체라고 하기엔 아직은 감정적인 부분이 강한 존재들이니까.〕

‘어허, 듣는 인류 입장에선 점점 미개하다고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살짝 별론데?’

〔흠, 악의는 전혀 없었네. 인류를 미개하다고 차별할 의지도 없었고. 혹시라도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하지.〕

‘그렇다면 그 사과 받아들이겠어.’

〔사과를 받아줘서 고맙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양조에 적합한 양조용 포도의 당도는 못해도 식용 포도의 당도보다 3배 정도는 높아야 했다. 이런 식용 포도와 다르게 양조에 적합한 포도는 껍질도 두꺼워 먹기에는 불편해야 하고 알맹이도 작되 수분도 많으면 안됐다.

“다른 곳으로 가지.”

“에이...아깝다. 이 포도, 진짜 맛있는데.”

우리는 한동안 매일같이 포도가 질린다 싶을 정도로 양조에 적합한 포도의 품종을 찾기 위해 발품을 찾아야 했고 그 중에서 양조용 포도로 쓰기에 괜찮다 싶은 몇 곳을 결국 찾아냈다.

“여기하고 여기. 그리고 여기. 어제 마지막으로 갔던 포도농장의 포도로 하지.”

“포도농장을 구매하시겠다는 생각은 이제 아예 버리셨습니까?”

“이곳 사람들이 정 포도농장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걸 강제로 빼앗아 가질 수는 없잖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굳이 농장을 살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일월신교가 나중에 중원에 발을 들이밀 때 적이 많아선 곤란해. 최대한 많은 이들이 우리를 지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이들에게 이익을 줘야 해. 사람은 불의보다 불이익에 민감한 존재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선 무림인이 아닌 이들에게 일월신교는 주변의 인력을 고용하여 임금을 지불하고 과실을 나누는 호의로운 대기업의 느낌으로 다가가는 게 좋을 거야.’

〔보여지는 모습이야 나중에 그럴 듯하게 여론조작을 한다든가 해서 무마하면 그만 아닌가? 힘으로 빼앗고 사람들에겐 그럴 듯한 외형만 보여주는 게 편할텐데?〕

‘떠보는 거야? 힘으로 찍어 눌러봐야 그보다 더 큰 힘에 의해 무너질 뿐이야. 내가 원하는 길은 피와 폭력으로 점철된 길이 아니라고.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죽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이들을 핍박하고 찍어 눌러야 해. 그렇게 한다면 수없이 많은 이들의 원망도 함께 짊어져야겠지. 그 대가로 신교는 중원으로부터 영원히 받아들여질 수 없을 거야. 무엇보다 강제로 얻은 고혈(膏血)에 난 관심 없거든. 언제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거야. 스스로 원하게끔. 자신도 있고.’

〔쉽지 않은 길을 택했군.〕

‘치트키 치고 이기는 게임은 재미없잖아?’

내가 비아헤로스와 의사교환을 하느라 말을 하다말고 멈추자 이를 오해했는지 삼대주는 한번 더 내게 의향을 물어왔다.

“교주님게서 말씀만 하시면 저희 은월이 어떻게든 일월의 땅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삼대주의 말에 나는 삼대주를 쳐다보며 제지했다.

“자네가 뭔가 오해하는 게 있는 것 같아. 방금 이야기한 건 못 들은 걸로 하겠네. 삼대주, 신교에 충성을 다하는 건 좋지만 우리 일월신교를 동네 건달패들과 같은 급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앞으로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고 말로 내뱉지도 말게.”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네가 신교를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네. 하지만 힘으로 찍어눌렀던 신교의 과거가 어떤지는 알고 있지 않나? 그건 중원의 분노와 반발만 불러왔을 뿐이야. 난 그런 식으로 또 다른 실패를 만들고 싶지 않아. 신교는 이미 과거에 그렇게 해서 실패했네.”

“속하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교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교주님께선 어떻게 앞으로 일을 진행하실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안이 없고 힘이 없는 주장은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법이기에 나는 삼대주에게 내가 떠올린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쉽게 얻은 것은 값어치가 없는 법이지. 배불난(排不難)이라고 들어봤나?”

"그런 것도 있습니까? 속하, 처음 듣습니다만..."

투르판에서는 용운의 포도 매입 건이 일부 농장주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통해 퍼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앞으로 자네 농장에서 생산되는 모든 포도를 전량 선문상단(善們商團)이라는 곳에 매입하겠다고 하면서 장기계약을 맺었다고? 그게 참 말인가?”

하사드는 친구네 포도농장에 잠시 들렀다가 친구놈이 포도수확을 하고 한창 건포도를 만드느라 건조장에서 포도를 말리느라 바빠야 할 시기에 늘어져라 쉬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해서 물었다가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하나.”

“허허...”

자기네 농장에도 선문상단에서 나온 이가 조심스럽게 농장을 팔지 않겠냐고 하길래 조상의 얼이 깊게 스며든 이 터전을 어찌 함부로 팔 수 있겠냐면서 내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달 모양을 가슴패기에 달고 다니는 그 놈들은 선친께서 물려주신 우리 농장을 팔라고 했던 놈들인데...”

“그랬지. 나도 그 소문을 듣고 있던 차에 단단히 벼르고 있었지. 근데 딱 봐도 소문의 그놈들이 나타났더군.”

“그런데 자네가 그걸 가만히 뒀단 말인가? 투르판의 황소인 자네가?”

“나도 안 그래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댈 것이 뻔한 그놈들을 작대기로 흠씬 두들겨 패서 보내려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다음에 집에 들어가 작대기를 찾았다네.”

“그런데?”

친구가 씩씩거리면서 집에 들어와 튼튼한 몽둥이를 가져오라며 소리를 질러대자 친구의 어머니께서 뭐 때문에 그리 화가 났느냐며 연유를 물으셨단다. 친구는 어머니께 소상하게 설명해드렸는데 친구의 어머니께선 설명해드리는 과정에서 선문상단에서 나온 이들이 입은 복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히려 친구를 말리셨다고 했다.

“아니 왜? 자네의 모친께서라면 선대인(先大人)께서 평생을 일궈오신 이 포도밭을 팔라고 하는 놈들이 찾아왔다면 자네보다 더 화를 내셨을 분이 아닌가?”

“훗.”

친구의 어머니의 말은 이러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친구의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꿈에 나와 조만간 멀리서 가슴에 달을 품은 귀인들이 올 터이니 절대로 감정에 취해 경거망동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을 끝까지 참고 들으면 커다란 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는 말이었다.

잠에서 깬 뒤에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긴 했으나 너무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인데다 나이가 이제 꽤나 먹어 밭농사를 하는 게 힘에 부쳤던 모친은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들이 지쳐 있는 모습을 보고 괜히 아들이 신경을 쓸까 그동안 선뜻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께서 나와 함께 밖으로 나오셔서 그 분들을 보더니 어찌하여 아버지가 그렇게 표현을 하셨느지 이해할 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안으로 들여 수확한지 얼마 안된 포도를 대접하셨지.”

포도를 먹은 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더욱 더 계약을 하자고 열을 올렸으나 포도농장을 파는 것은 불가하다고 선을 그으며 계약을 거부할 것처럼 보이자 선문상단의 직원이라는 자들은 자신들은 포도농장을 구매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영구히 이 포도농장에서 나오는 모든 포도들을 자신들이 전량 매입하는 계약을 맺고 싶다는 제안을 꺼냈다.

포도농장에서 나오는 포도들은 결국 투르판 사람들이 식량 대신으로 먹거나 우루무치로 가져가 팔기 위해 건포도로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만약 이들이 자신의 포도농장에서 나오는 포도를 모두 매입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굳이 말리느라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우루무치로 힘들게 운반을 하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턴 도리어 내가 적극적으로 계약에 나섰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여유로운 겐가?”

“이건 자네한테만 내가 해주는 말인데 선금으로 우리가 1년치 먹을 식량을 가져와준 대다 잔금은 며칠 뒤에 직접 은으로 가져다 주겠다고 하더군.”

“1년치 식량에다 은까지? 수지 맞았군?”

“그렇고 말고.”

친구의 말을 여기까지 듣자 하사드는 자신은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 모르고 제 발로 힘껏 걷어찬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기...선문상단에선 추가로 포도농장과 계약할 생각이 없다고 하던가?”

“왜 이제는 관심이 생겼나?”

“아무렴. 농장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포도를 수확하기만 하면 포도를 사준다는데 이런 땅 짚고 헤엄치는 계약이 어디에 있겠는가!”

“근데 이제는 원한다고 해도 계약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아니, 뭐 때문에?”

“듣자하니 그들이 농장들과 원하는 계약 건수는 얼추 다 채웠다고 하는 것 같더군.”

“정말인가? 내가 병신 짓을 했구나! 내가 미련한 짓을 했어! 미련한 놈 같으니라구.”

친구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크게 한탄을 하자 세브기는 선문상단의 직원이 예견했던 것이 눈 앞에서 현실로 벌어지자 속으로 살짝 놀라면서 그가 알려준 대로 어색하지만 연기를 시작했다.

“하하, 스읍...흐음...이걸 자네한테 말.해.줘.도 되려나?”

자신의 친구 세브기가 자신이 탄식을 토하는 걸 보고 뭔가를 알려줄 것처럼 고민하는 것 같자 하사드는 아직 자신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뭔가? 뭔 방법이 있는 거지? 세브기! 우리가 도대체 몇 년동안 맺어온 우정인가. 나도 좀 알려주시게.”

“하아...이건 진짜 자네에게만 주는 걸세. 기다리게. 자네에게 줄 물건이 있네. 혹시 그걸 가지고 가면 자네가 바라는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무렴. 그런 일이라면 내 기다리겠네. 내 이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기다릴 터이니 어서 갔다오시게.”

“그럼, 조금만 기다리게.”

세브기는 집 안으로 들어가며 슬쩍 친구가 두 손을 마주 잡고 한시름 놓은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그때 선문상단과 계약을 맺으면서 이런 좋은 계약이라면 자신의 친구에게도 알려주면 안되겠냐고 했던 때를.

선문상단의 직원은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고는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명함이라는 종이 한 장을 꺼내며 자신이 어찌하면 될지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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