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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63화 (63/132)

63화

다진의 기와 유성구가 뭔가 교감을 해서 일어난 반응이 아닐까 싶어 유성구에 기운을 불어넣어보았다. 이상했다.

‘뭐지? 이쯤되면 뭔가 느껴져야 하잖아.’

검이라든가 창이라든가 금속으로 된 무기는 모두 일정량 이상의 기를 불어넣으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가 있어 반발한다. 무기에 기를 주입해서 강기를 만들 때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이런 이유들로 인해 무기가 터져 나가거나 강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유성구는 대략적인 감으로 무기에 주입하듯 기운을 불어넣어도 도무지 반발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버틸까 싶어 내공을 계속 주입해보았다. 그러면서 유성구가 더 뜨거워지진 않는지 확인을 해보았지만 기운의 주입 정도에 따라 비례해서 더 온도가 올라가거나 하지도 않았다.

‘기운을 불어넣어서 온도가 올라갔던 게 아닌가?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검강을 만들 정도만큼의 기운을 불어넣어도 반발력이 느껴지지 않아 멈추었다.

“왜 그래요, 교주님? 무슨 문제 있어요?”

내가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 때문에 표정이 바뀌었는지 다진은 꽤나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아니...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일단은 한동안 내가 가지고 있을게. 아무 문제가 없으면 너한테 돌려주고.”

움찔

“어?”

“왜요?”

“이거 방금 움직이지 않았어?”

“모르겠는데요...”

다진이에게 돌려준다는 말을 꺼내자 마치 가기 싫다는 듯 유성구가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스읍...이거 혹시 귀신 들린 물건은 아니겠지? ’

우주에서 떨어진 물건인데 귀신이 들렸을지 모른다는 짐작은 뭔가 세계관이 맞지 않는 것 같아 금방 접었지만 께름칙한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정체가 뭐냐, 너.’

유성구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관찰해보아도 유성구에 관한 정보를 얻을만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뭘 더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여기에 두고 자야겠다.”

캠핑용 탁자 위에 여분의 모포를 올려두고 그 위에 유성구를 올려놓았다.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진처럼 껴안고 자거나 할만한 도전의식같은 건 나에게 없었으니까.

천막 외부에서 불침번을 서는 은월의 대원들이 숯으로 피워놓은 모닥불이 꺼지지 않게 뒤적거리는 인기척만이 들리는 사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유성구는 마치 슬라임처럼 형태를 바꾸어 소리도 내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용운의 야전침대 위로 올라와 용운과 접촉했다.

“뭐지? 이건 꿈인가?”

자각몽인 것 같았다. 백색이 가득한 무한한 공간 안에 나 혼자 있는데 분명 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인식했다. 그러던 중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들리나? 얼추 파장이 맞은 것 같은데〕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뒤를 좀 봐주겠나〕

황급히 몸을 돌렸을 때 내 뒤에 보이는 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사람처럼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이게 그...불쾌한 골짜기 이론인가 하는 그건가? 외모는 귀엽게 생겼는데 정작 귀여운 느낌이 하나도 안 드네.’

“사람 맞나?”

〔음, 사람은 아니고. 하위 차원의 생명체인 그대와 내가 의사교환을 하기엔 아무래도 그대의 뇌에 부담이 적은 꿈으로 부르는 게 적절해서 그대의 무의식이 가장 편하게 느낄만한 형태로 내 모습을 구현한거네. 현실의 내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

꿈 속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아이인데 말투는 어른이라는 점은 이상했고.

‘꺼림칙한데...인셉X에선 외부의 인물이 꿈 속의 인물을 쳐다보거나 말을 걸면 살해당한다고.’

일단 나에게 말을 건 상대방의 정체부터 밝힐 필요가 있었다.

“넌 누구지?”

〔아, 이런 아직 내 소개를 안했군. 그대가 접촉한 구체가 바로 내 ‘아바타’이자 단말기라고 할 수 있지.〕

“아바타? 단말기?”

〔흐음, 그대의 표층기억을 바탕으로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단어 사용에 있어 다소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한 부분이 일부 있을 수는 있네. 그대와 접촉한 구체는 나의 여러 분신체들 중 하나라는 의미였어. 그대의 기억을 보아하니 분신체를 아바타라고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

아이는 마치 어른처럼 자신의 턱뼈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이하게 느껴졌다.

‘얘 도대체 뭐야...무서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넌 이름이 뭐지?”

〔아! 그러고 보니 처음 접촉한 지성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할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군. 나는 여행하는 존재로 그대는 날 편하게 비아헤로스라고 불러주면 좋겠네. 근데 그대는 이름이 두 개군? 마이수라고도 하고, 화용운이라고도 하고. 어느 쪽으로 불러주길 원하나?〕

자신의 이름을 밝힌 아이는 알려준 적도 없었건만 태연하게 내 전생을 읽어냈다.

‘전생도 읽어내?’

〔전생을 읽어내는 건 아니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그대가 사용하는 언어를 다운로딩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곁가지 정보들 중 하나였네. 근데 자네는 신기하게도 자네의 전생을 기억하는가보군. 보통은 육체에서 영혼이 떠난 뒤 ‘모종의’ 과정을 거쳐 전생은 망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대는 그렇지 않았나봐? 오류가 있었던가?〕

“그건 아니고...이 부분에 대해선 나도 말할 수가 없어.”

〔대충 짐작가는 부분이 있긴 한데 그대가 원하는 대로 넘어가도록 하지.〕

인간보다 상위 차원의 존재라는 말에 영혼의 비밀같은 걸 알고 있나 하는 의문과 함께 상위 차원의 존재라 인간을 아래로 봐서 윗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 반토막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오해가 있는 것 같군. 내가 그대보다 상위 차원의 존재라는 것과 나의 말투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그 때문에 이런 식으로 반말을 사용한 건 아니야. 분명 그대의 기억으로 보면 나이가 월등하게 많은 존재는 어린 존재에겐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 그대가 사는 세계의 문화를 존중해서 반말로 말한 거였네. 그대의 전생의 나이를 다 합쳐서 수백배를 곱해도 아직 나보단 어리거든. 어떻게. 혹시라도 불쾌했다면 존중해드릴까요? 그건 여행하는 자인 제겐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만.〕

능수능란하게 하대에서 존대어로 바꾸는 눈앞의 존재가 나보다 엄청나게 나이가 많은 존재라는 점 때문에 존댓말을 듣는 것은 불편했다.

‘난 유교보이니까.’

“편한 대로 하시죠? 편한 대로 할까?”

〔난 어느 쪽을 택해도 상관이 없어. 여행자로서 나는 여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모든 존재를 동등하게 대하는 편이니까.〕

아이의 말투에서 유쾌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나는 그럼 편하게 할게.”

〔나도 그럼 하던 대로 하는 걸로 하지. 그쪽의 내면 깊은 곳에선 이걸 더 편해하는 것 같으니.〕

우리의 하대와 평대가 섞인 기묘한 대화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비아헤로스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들은 대략 이러했다.

비아헤로스의 본체는 하위차원에 직접 강림하기엔 존재 자체가 너무나 거대한데다 현재 내가 존재하고 있는 차원보다 훨씬 높은 상위 차원에 속한 존재라서 하위 차원에 있는 지구가 속한 우주를 제대로 구경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인류가 세포를 보기 위해 현미경 속으로 들여다 보듯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하위 차원들을 직간접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체험하고 싶어 자신의 의식 일부를 연결하여 하위 차원을 여행하고 체험할 수 있는 단말기들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 단말기들 중 하나가 바로 나와 다진이가 만난 유성구였다.

우주를 둘러보며 유영(遊泳)하던 중에 지적 생명체가 있는 행성을 발견하면 운명의 흐름을 타고 지상으로 떨어져서 생명체와 접촉을 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접촉한 생명체를 통해 하위 차원을 경험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나와의 연이 닿은 것이 그대였네. 섭리가 어째서 그대에게로 내 운명의 흐름이 이어져있다고 하는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겠지.〕

“섭리?”

그래, 섭리. 섭리는 삼라만상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거대한 흐름이지. 자네가 그렇듯 나도 섭리의 일부분이니까 거기서 빠져나올 수는 없어.〕

“그럼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필연이었단 말이야?”

〔정확히 그건 아니야.  내 아바타에 입력해둔 취향에 맞춘 세팅에 맞춰 아바타가 자동적으로 ‘매칭’된 흐름을 따라 날아간 거지. 세상에 정해진 필연같은 건 없어. 섭리는 존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니까. 따라서 의사판단이 가능한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필연과 상관 없이 개인의 대응에 따라 모든 관계는 악연(惡緣)이 되기도 하고 선연(善緣)이 되기도 하는 거고. 모두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결과지. 그대 세상에서도 이건 같을 텐데?〕

“흐음, 맞아. 각자의 언행에 따라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고 적이 친구가 되기도 하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는 가까워지려 하고 도움보다는 방해가 되는 사람과는 멀어지려고 하듯.”

〔흐음. 그렇다면 우리가 좀 더 가까운 친구가 되려면 내가 그대에게 도움될 것을 제공해야겠군.〕

“응? 도움될 것?”

비아헤로스는 자신에게 체험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원활한 정보 습득을 위해 대상자의 신체보호와 함께 대상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일정한 혜택을 부여한다고 했다.

〔보아하니 그대는 이 세상에서 ‘무림인’으로 살고 있는 것 같으니 그대의 신체를 지키기 위해 일종의 생체방어가 가능한 자동갑옷 기능과 함께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무기 기능을 내 아바타를 통해 제공하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어떠한가?〕

‘좋은데?’

비아헤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비아헤로스의 아바타이자 단말기가 나에게 무기와 갑옷의 기능을 동시에 제공하는 일종의 무림지보(武林之寶)가 되는 것이었다.

“근데 무기의 형태가 한가지로 고정하는 것은 아니지?”

〔평상시에는 그대의 팔뚝을 감싸는 완갑의 형태로 있다가 형태변환을 원하는 경우에는 그대가 가진 기운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나? 형태변환시 일종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게 원칙인지라.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아바타의 반영구적 사용을 위해선. 대신 그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문신의 형태 혹은 신체 내부를 강화하는 형태로 바꿔 아바타를 감출 수도 있네.〕

“그러면 더 좋지!”

〔내 단말기의 크기라면 그대의 인체를 모두 감싸고도 추가로 무기를 구현하는데 지장은 없을 거야. 〕

‘그건 아이X맨이잖아?’

비아헤로스와의 계약을 진행하는데 있어 나는 한가지 조건을 추가하길 강력하게 원했다.

“계약을 하는 대신 나에게도 한가지 조건이 있어. 단말기가 내 인체와 붙어있게 되는데 언제고 내 정보를 본다면...흠흠...내 사적 정보가 너무 노출되니까 지금처럼 나와 대화를 할 때 내 표층심리만 읽는 것처럼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선 차단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그대의 사생활은 존중하겠네. 그대가 기억하는 동영상대로면 인간의 생식행위같은 건 내 취향은 아니거든...정확히 말하면 거부감이 느껴지는 쪽이야.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

괜히 걱정했나 싶을 정도로 정색하는 비아헤로스의 반응에 머쓱해졌다.

“어...그래...”

〔그리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보는 주변에 알리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대야 계약 당사자라서 어느 정도의 정보 제공이 필요해서 나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제공한 것이지만 인류에게 나와 같은 상위 차원의 지성체와의 접촉이 알려지는 건 별로 좋지 않을 수 있거든. 때론 문제가 되기도 했고.〕

“뭐, 상관은 없는데. 다진이도 그렇고 내 부하들은 니가 지상에 떨어지는 걸 봤는데 뭐라고 하지?”

〔그냥 일어나보니 녹아서 없어졌다고 하게.〕

“그건 너무 대충 넘어가는 거 아니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일세. 그저 하룻밤의 기이한 일로 치부하고 넘어갈테지. 아직 중세 정도에 머무르는 그들에겐 이 정도도 충분히 먹힐걸세.〕

“다진이한테도 그 말이 통했으면 좋겠다.”

서로간의 조율해야할 부분을 마치자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비아헤로스와의 계약에는 마치 스마트폰 구입시 해야 하는 계약서처럼 많은 조항들이 존재했다. 내가 이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비아헤로스의 확인과 함께 몇 번의 동의 의사표시가 있고 나서 우리의 계약은 끝이 났다.

‘많다...’

〔계약 대상을 보호하고 성실한 계약 이행을 통해 상호간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라서 다소 약관이 긴거야. 이건 여행하는 이들이 지적 생명체와 의사교류를 할 때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규율이거든.〕

비아헤로스와는 이밖에도 많은 이야기를 꽤 오랫동안 나누었지만 꿈이라는 형태를 빌린 비아헤로스의 혜안(慧眼)덕분에 꿈속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닌 것처럼 실제로 대화가 끝났을 땐 딱 아침이 되었을 뿐이었다.

“어!”

혹시라도 꿈을 꾼 것은 아닌가 싶어 눈을 뜨자마자 확인을 했을 땐 계약대로 비아헤로스의 아바타는 내 팔뚝을 전체적으로 감싸는 완갑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이건...윈터솔X?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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