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그렇게 좋아요?”
“그럼~”
바텐더로 일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뭐하러 그런 일을 하는가 했다. 돈을 벌려고 했던 이유가 알고보니 나에게 줄 생일선물떄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진이가 그동안 힘들게 번 돈을 모아서 준 금목걸이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난 특별히 악세사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보석이라든가 명품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닌데 선물로 받아서일까 아니면 푸른 청아한 비취색의 옥의 빛깔이 매우 신비로워서일까 아무튼 목걸이를 자꾸만 꺼내보고 싶어졌다.
“근데 왜 옥으로 된 구슬을 금으로 이은 목걸이야? 전부 금으로 해도 되잖아.”
“이유는 비밀~”
“그게 뭐야.”
“비밀이니까 묻지 마세요.”
마차 안에서 마주 보고 가던 다진은 그 말을 하곤 마차 밖으로 보여지는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 마차 되게 편하네요. 제가 마차를 그렇게 많이 타본 건 아니지만.”
“그치?”
방금 전까지 옥구슬 목걸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용운은 다진의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했다.
기존의 마차는 충격을 완충하는 장치라고 할만한 것이 없어 장기간 타고 가기가 무척이나 힘든 이동수단이었지만 이번에 개조한 마차는 여러 겹의 판을 겹쳐 만든 판스프링을 밑에 끼우고 저 멀리서 구해온 고무를 이용해 바퀴에 덧씌웠다. 그러니 기존의 마차와는 다른 안락함을 다진이도 느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돈의 맛이지. 이 푹신푹신한 내장재도 좋고.’
내부는 푹신푹신한 솜을 꾹꾹 눌러 담고 양가죽으로 감싸고 최대한 편안할 수 있도록 돈을 아낌없이 쓴 덕분에 다른 마차들과 별반 차이 없이 보이는 평범한 마차의 외관과 다르게 내장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마차가 되었다.
“처음에 우루무치로 이동할 때 생각해서 마차로 투르판 갈 때도 똑같을 것 같아 현기증이 날 것 같았는데 이런 마차라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아니, 너무 편해서 졸음이 올 것 같아요. 하암.”
다진이의 이런 반응은 이 신형마차를 설계한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와 같았다.
“그래? 졸리면 한숨 자.”
“그럴까요? 아, 아니에요.”
“졸리면 그냥 편하게 자.”
“아니요. 안 졸려요.”
다진은 용운의 꼬임에 넘어가 순간 잠이 들뻔했지만 혹시라도 용운의 앞에서 코를 곤다거나 침을 흘리는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달리는 마차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마차 안의 뜨거운 공기를 식혀준 덕분에 햇볕이 가려진 내부는 푹푹 찌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막의 땅 투르판으로 가는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낮에는 뜨거운 열기가 내리쬐는 길인지라 때때로 말이 지쳐 쉬어가야 했으니까.
또, 밤에는 언제 그렇게 뜨거웠냐 싶게 순식간에 식어버려 낮에 더웠던 지역이 맞나 싶을 정을 정도로 추운 밤을 맞이해야만 했다.
‘일교차가 뭐 이러냐.여름엔 무지하게 덥고 겨울엔 무지하게 추웠던 강원도같네.’
고통스럽기만한 여행이라면 괴로울 법도 하지만 해가 지면 가던 길을 멈추고 모닥불을 피운 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기라도 할 것처럼 별들이 가득한 밤을 보는 것은 매우 운치 있었다. 몽골여행을 가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될 정도로.
“어! 어! 저기 별이 쏟아져요. 교주님, 저기 봐요.”
“어디?”
“저기 저쪽이요!”
어지간한 크기의 유성(流星)이 아니라면 순식간에 빛을 내고 사라지고 마는 것이 별똥별이었기에 용운이 다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땐 그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보일 뿐이었다.
“없는데?”
“방금 지나갔단 말이에요. 히잉.”
“근데 너 소원 빌었어?”
“소원이요?”
“별똥별이 떨어질 때 빛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소원 빌면 이루어진다잖아.”
“진짜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알았으면 소원 빌었을 건데.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요.”
“난 알고 있는 줄 알았지.”
'별이 떨어질 때 소원비는 게 이 당시 중국에선 생소한 이야기일까?'
삼국지연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제갈량의 죽음을 이야기하거나 별이 떨어지면 나라를 이끌 인재가 태어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았던 걸 생각해보면 다진이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을 모르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에 떨어질 땐 꼭 소원 빌어야지.”
“그래라.”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막의 하늘을 이불 삼아 모포를 깔고 나란히 누워 있으니 용운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러고 있으니 세상에 꼭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치곤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냐?”
용운이 상체를 살짝 일으켜 세워 주변을 둘러보자 모닥불 주변으론 함께 투르판으로 이동하는 은월의 부하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교주님,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근데 이즈더쉬라는 사람을 데리고 하겠다는 그 채인점이라는 게 뭔지 언제 말해줄 거에요?”
“아, 그거?”
선문구락부를 짓고 오픈을 하기 전 은월의 명함을 들고 이킨치 객잔의 장남이라는 이즈더쉬라는 남자가 자신을 찾아오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선문객잔이 너무 화려하게 손님들을 잡아끄는 덕분에 이대로 가다간 우루무치의 객잔들은 다 망할 것 같다면서 이즈더쉬는 어떻게 하면 선문객잔이라든가 선문구락부같은 사업을 자신도 함께 할 수 없을지를 문의해왔다.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한 업체의 압도적인 성장이 시장을 잠식하다 못해 상권을 죽여버린다면 내가 구상하고 있는 우루무치 장악에 있어서 그다지 좋을 것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우루무치의 중심가 부동산을 나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거리로 만들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재산을 증식시키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신당동 떡볶이 타운이라든가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라든가 하는 거리들처럼 동종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여 상권을 형성한다든가 아니면 사람들로 하여금 선문객잔 이외에도 위구르인들의 관심을 끌어모아 함께 이 중심가를 성장시킬 협력업체들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 그런 시점에 시의적절하게 알아서 제 발로 선문객잔 바로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이킨치 객잔의 후계자가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를 찾아온 그에게 나는 체인점. 정확히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했다. 자고로 프랜차이즈라 함은 판매·경영 기법을 개발한 체인 본부. 여기서는 내가 대표로 있는 선문기업이 상호·판매 방법·매장 운영 방법 등을 결정하여, 가맹점으로 하여금 그 결정과 지도에 따라 운영하도록 하는 형태의 체인사업을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제대로만 성공하면 확장성도 높고 말이지.'
그의 업장에 ‘선문’이라는 브랜드를 빌려주고 선문의 이름을 바탕으로 미래의 영업방식들 중 이 시대에 잘 맞을만한 경영기법과 적절한 판매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이 앞으로 그와 함께 할 체인점 아니 채인점(棌引店)의 골자였다. 물론 이킨치라는 이름을 떼고 선문의 이름을 다는데 있어 내가 그들에게 제공한 혜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킨치 객잔을 시작으로 그렇게 점차 하나둘 나의 밑으로 들어온다면 앞으로 우루무치의 중심가는 선문의 이름을 내걸고 장사하는 이들이 모인 이른바 선문거리가 되겠지.”
“와아...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물론 그렇게 일을 진행하기 위해선 장자인 이즈더쉬의 말만 듣고 진행할 수 없어서 객잔의 주인인 그의 아버지와 긴밀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었지.”
채인점을 비롯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나 팔베개를 한 채로 이렇게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고 누워 있으니 아등바등하면서 투르판에 가려는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은 것만 같은 상념에 잠기려고 할 때 다진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다진이 벌떡 일어나 방방 뛰면서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 교주님, 별똥별. 별똥별! 저쪽!”
“어?”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팔을 잡고 흔들고 있는 다진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눈에도 훤히 길게 꼬리를 그리면서 떨어지는 유성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어찌된 일인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치고 금세 타버리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자신들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며 빛이 커다래지는 것만 같았다.
“교주님?, 이상해요...별똥별이 왜 점점 커지는 것 같죠?”
다진의 말을 듣고 자신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용운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용운은 서둘러 다진을 옆구리에 끼고 경공을 사용해서 재빨리 피했다.
“어? 모두 대피해라! 대피해! 별똥별이 떨어진다!”
방금 전까지 누워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던 유성이 마침내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먼지로 된 버섯구름은 작은 핵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용운은 잠시 멍해있다 먼지를 기로 가라 앉히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누구 다친 사람 없나?”
나의 질문에 은월의 대원들이 각자 생사를 확인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전해왔다.
“다행이군.”
먼지가 가라앉고 나자 모닥불이 있던 중심에 대략 지름 10m 정도의 크레이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교주님, 저기 봐요.”
“응?”
용운에게 붙잡혀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다진은 뭔가를 봤는지 살짝 파여 있는 크레이터의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용운은 뒤늦게 다진이 지상으로 떨어진 유성을 잡으려고 하는 걸 보고 말리려고 손을 뻗었다.
“다진아! 만지지마! 아직 뜨거울 ㄱ...”
자신이 말릴 새도 없이 지상에 떨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작은 구체를 다진이 집어들었다. 용운은 다진이 아직 달궈져 있는 유성에 손을 다쳤을까봐 서둘러 다진에게 경공을 사용해서 날아갔다.
“웃차. 교주님, 이거 전혀 안 뜨거운데요?”
“안 뜨겁다구?”
다진이 들고 있는 유성의 잔해는 크레이터의 크기에 비해 생각보다 작았다.
‘대충 타조알보다 살짝 큰가?’
“그게 안 뜨거우면 안되는데? 하늘에서 불타면서 떨어진 거잖아.”
“아니에요, 만져봐요. 뜨겁기는커녕 오히려 약간 시원해요.”
다진은 무겁지도 않은지 잘도 들어 올렸다. 다진에게서 건네받은 구체는 다진의 말대로 전혀 뜨겁지 않았다.
‘왜 살짝 차갑지? 이거 금속이 아닌가? 금속같은데?’
유성이 떨어져 내리면서 공기와 마찰해서 당연히 달궈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밤바람처럼 시원했다.
‘통짜 금속이라 이만한 쇳덩이라면 원래는 다진이가 들기엔 무거웠을 거야. 근데 이건 엄청 가볍네.’
유성이 떨어짐으로 인해서 대피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잠깐의 소란이 일어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소강상태가 되자 사람들은 크레이터 안쪽에 여러 개의 천막을 세웠다. 적당한 깊이로 파인 크레이터는 기존의 평탄한 지형과 다르게 주변의 바람을 막아주기에 충분한 구덩이가 되어주었다.
야전침대 위에 모포를 올려놓고 양털 침낭 안에 들어가 있으니 포근한 기분이 든 다진은 마치 어미닭처럼 유성구(流星球)를 품어 안았다. 외계에서 떨어진 물건이니 방사능같은 게 흘러 나오진 않을까 싶었지만 기감을 통해서 느낀 바에 따르면 인체에 유해한 기운이 풍겨나오진 않아서 다진의 행동을 막진 않았다.
“너 그러고 있으니 꼭 달걀 품은 닭 같다.”
“그래요? 히히. 아깐 시원한 느낌이었는데 또 이렇게 품고 있으니 약간 온기가 돈다고 해야 되나 그러네요.”
“응?”
다진의 말이 너무나 의아해 야전침대에서 일어나 다진의 침낭을 들췄다. 다진은 남사스럽게 뭐하는 거냐고 입으로는 거부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막지 않았다.
"어? 어? 왜 그래요!"
용운의 행동을 뭘로 오해한 것인지 다진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용운의 눈에는 다진이 품고 있던 유성구만 보고 있어 들어오지 않았다.
“그거 이리 줘봐.”
“네?”
다진의 어딘가 실망하는 소리를 귓등으로 넘긴 용운은 유성구를 집어 들어 만져보았다.
“진짜로 미지근해졌네?”
“제가 품고 있어서 그런가봐요. 내 품이 너무 따스해서?”
“그건 아니고.”
우주에서 떨어진 유성이다. 대기를 뚫고 추락하며 공기의 마찰에도 달궈지지 않았던 유성이 사람이 조금 품고 있었다고 해서 체온으로 따뜻해진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요. 내가 어미처럼 품고 있으니까 따뜻해진거지. 그럴 거면 이리 줘요.”
용운이 순간 진짜인가 생각하면서 다진을 잠시 쳐다봤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사람이 품고 있으니까 온기를 품었다? 온기? 기(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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