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기감을 통해 확인했던 선문객잔의 지하공간으로 용운이 마침내 나타났다.
“어후, 드디어 도착했네. 이 먼지나는 것들부터 좀 치워볼까.”
용운이 손을 흔들며 기를 뿌려 나풀거리는 먼지를 잡아 땅으로 살포시 누르자 은월의 대원들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함께하고자 용운의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로 선문객잔과 선문구락부가 이어졌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뭘...나 혼자 만들었나? 다 같이 한 거지.”
용운이 본 뒤에는 커다란 갯지렁이가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동그랗게 생긴 커다란 굴이 끝도 보이지 않게 뚫려 있었다.
선문객잔과 이어진 지하터널 보강공사까지 모두 마친 선문구락부를 오픈하기 전 한층 한층을 둘러보다 기존의 선문객잔의 업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업을 하게 될 스탠드바를 둘러보게 되었다.
스탠드바를 책임질 바텐더. 그러니까 여기에선 파탄두(破嘆頭)라고 불리는 직원들이 깔끔하게 조끼와 바지를 입고 서 있었다.
“보기 좋네요.”
기존의 우루무치의 기녀들은 인신매매로 인해 강제로 기녀가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루에서 더 이상 기녀로 남길 원하지 않는 이들을 백운을 통해 모두 구출했다. 그러나 그녀들을 구해주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으니 보따리까지 챙겨줘야겠지. 이들을 이대로 내보내봐야 다시 기녀가 되도록 방조하는 것밖에 안되니까.’
철이 들 무렵부터 기녀로서 살아온 이들이었다. 보고 배운 것이 별로 없음에도 그녀들 중에는 가족들에게 돈을 많이 보낼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좀 더 적은 돈을 벌더라도 술을 파는 기녀로서의 삶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이들이야 선문기업의 다른 일자리를 배정해줌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는 여자들에게 줄 만한 일자리는 사실 이 시대에 그리 많지 않았다. 고액의 수입을 원하는 일자리를 그녀들에게 줄만한 일자리가 뭐가 없을까 하다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스탠드바였다.
물론, 나도 땅 파서 장사하는 호구가 아니기에 이 사업은 그녀들에게만 이득이라고 할 수 없었다. 스탠드바는 정보수집의 질적인 강화에서도 굉장히 이점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이 시대에서 비싼 돈을 내고 술을 마실 이들이 누구겠는가. 그렇다. 바로 남자들. 그렇다면 이 남자들의 장벽을 녹이기엔 여자가 더 적합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였다.
‘이 시대에선 특이한 성벽을 가진 소수자가 아니라면 말이지.’
아무튼 술을 마셔 취한 남자들은 우리의 바텐더들에게 자신들의 고민들을 좀 더 쉽게 털어놓을 것이고 그녀들은 어디에도 자신들이 들은 내용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오직 우리 은월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전과 다르게 육체적 접촉 없이 길게 놓인 나무판 뒤에서 주류를 제공하고 손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 그녀들의 업이 될 거라고 하자 기녀들이었던 그녀들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나 돈 많은 남자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그녀들은 선문구락부가 오픈하기 전까지 바텐더로서 가져야할 다양한 주류를 다루는 방법과 같은 기본적인 소양과 함께 교양을 쌓기 위해 많은 공부를 매일같이 해야 했다.
선문구락부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끊임없이 공부를 한 결과 지금의 그녀들의 눈빛에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이들이 내가 준 일자리를 그저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해서 얻은 일자리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앞으로도 그녀들에겐 지속적으로 좀 더 많은 소양을 쌓기 위한 학습들이 예정되어 있었다.
“여러분들은 이제 우리 선문구락부에 속한 수탄두파(受嘆頭破)의 파탄두(破嘆頭)로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안전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여러분들은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마십시오. 우리 선문기업의 고위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선문기업의 고위임원의 자리는 여기 계신 파탄두분들 뿐만 아니라 선문기업의 직원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스스로를 입증하세요.”
오픈을 앞두고서 긴장감이 느껴지던 그녀들의 표정에 기대감이 깃드는 것이 보였다. 선문구락부는 그렇게 우루무치 아니.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준비를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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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요즘은 장사하는 마시 너무 안난다 이 마리지. 예전에 내가 점원일 때만 해도 지나가는 손님들이 가게에서 물거늘 사려면 쭈뼛쭈볏 눈치를 보면서 가게에 드러왔눈데! 요주믄 말이야! 사장인 내가! 직접 나와서 손님두룰 모셔야 한다니까? 이게 마리 돼? 돼냐고~~”
“소, 손님...조금만 목소리를...”
“지금 내가 시꾸럽따고 하눈 곤가? 싸구려도 아니고 비싼 돈 내고 수룰 마시눈데 손니민 내가 하눈 마룰 잘 드뤄줘야 할 거 아니야! 내 마리 틀려?”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손님께서 지금 술이 좀 과하신 것 같습니다.”
“허! 누가 취했다고 그래? 나 안취해써! 내가 고작 이거 마셔따고 취하꼬 가타?”
한 남자가 너무 취했는지 혀까지 꼬인 채로 파탄두 앞에서 고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하고 파탄두와 가벼운 대화를 즐기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 수탠두파에선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수탠두파를 지키는 호위는 이 모습을 보고 파탄두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누군가에 의해 제지되고 말았다.
“누구냣!”
어깨를 잡히는 순간 호위는 등을 돌리며 검을 꺼내려고 했으나 그조차도 간단하게 막히고 말았다.
‘젠장! 고수다!’
이를 악물고 살법을 펼치려는 순간 호위의 귀로 전음이 들려왔다.
“(인마, 나야.)”
“나? 나가 누군ㄷ???”
“(니한테 월급 주는 사람.)”
자신을 막은 이가 누구인지 확인한 순간 호위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쉬잇! 이번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쉬고 있어.)”
“(존명!)”
둘의 이같은 행동은 사람들의 이목이 취객에게 끌린 사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다른 손님들은 보질 못했다.
“뭐야...저 사람.”
“적당히 취하지 않게 마실 일이지.”
“쯔쯔쯔.”
다른 손님들까지 웅성거리며 이쪽을 보기 시작하자 이제 파탄두로서 일을 시작한 지 1달밖에 지나지 않은 초짜 파탄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히잉...어쩐지 취할 것 같더라...기분 좋아보여서 달라는대로 줬더니만...’
“손님! 이, 이러시면 안됩니다.”
“놔! 지금 손니만테 어딜 가미! 소늘 대? 너! 지굼 가미 나하테 손 댄 거야? 야! 사장 나오라고 해! 사장! 내가 누군지 아라?”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긴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술잔까지 떨어뜨려 깨뜨릴 것 같자 손님을 잡아 막으려고 했던 파탄두는 도리어 취객에게 팔을 붙잡히고 말았다. 취한 남자가 우악스럽게 팔을 틀어쥐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던 파탄두는 뒤에서 나타난 남자를 보고 얼굴이 밝아졌다.
“우서? 지금 나 보고 우섰어? 너! 너 내가 우껴?”
“아니! 너 보고 웃은 게 아니라 나 보고 웃은 거다. 인마!”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려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히익! 너! 너 뭐야!”
금나수법을 펼쳐 취객의 팔을 비틀어 자연스럽게 파탄두를 풀어주었다.
“뭔데 감히! 아! 아파! 놔!”
남자는 팔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술이 확 깨는지 방금 전까지 혀가 꼬였던 것과 다르게 발음이 명쾌해졌다.
“나? 너 같은 쓰레기 수거해서 우리 파탄두들 일 못하게 하는 일 없도록 업장 관리하는 분.”
“쓰레기? 손님한테 쓰레기라고? 이익!”
“우린 진상은 손님으로 안 받아. 올라올 때 경고문 못 봤냐?”
남자의 말에 팔을 붙잡힌 취객은 그제서야 수탠두파의 입구에 적혀 있던 경고문이 떠올랐다.경고문엔 술에 취해 문제를 일으키거나 난동을 피운 사람에 한해, 즉시 손님으로서 대우를 박탈하고 가게에 일으킨 피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니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켜주실 것을 거듭 당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니가 불렀잖아. 사장 나오라메? 사장 나왔으니까 뭐가 그렇게 불만이라서 나까지 찾는 건지 떠들어 봐. 같잖은 이유면 넌 앞으로 선문의 이름이 붙은 곳에는 영구 출입 불가 처분이다.”
“딸꾹.”
선문구락부에 정기적으로 과일을 납품하는 큰 거래를 성공하고 한잔하고 가려고 했던 상인 마스트는 취기가 확 가시다 못해 누군가 자기 정수리에 차디찬 물을 쏟아부은 것만 같았다.
“그...그게 그러니까...”
“우리는 손님으로서 대우를 받을 예의를 아는 분들만 손님으로 받는다. 돈? 같잖게 우리 직원들 함부로 대하고, 우리 선문의 가게를 찾아오신 다른 손님들께 폐를 끼치는 거까지 봐주면서 돈 벌 생각 없어. 손님은 손님다울 때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내 영업방침이야.”
싸늘한 남자의 목소리는 조용해진 수탠두파에 낮게 깔려 퍼져 나갔다. 눈 앞의 남자가 화운이라는 걸 안 마스트는 혹시라도 오늘 선문구락부와 계약을 맺은 걸 사장인 화운에게 들킬까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취해가지고...술이 과했나봅니다.”
방금 전까지 취해있는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공손해진 남자의 모습에 파탄두, 아니 다진은 어이가 없었다.
‘뭐야 이 인간...취해있던 거 맞아? 재수없어!’
“그리고 사과해야 할 쪽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운이 자신을 가리키자 남자는 자신을 향해 꾸벅이며 성심성의껏 사죄를 하더니 이만 가보겠다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다행히도 자신이 누군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스트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사장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얼음처럼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거기, 마스트라고 했던 것 같은데. 실수는 한, 두 번까지야. 다음부턴 안 봐줘. 난 술 처먹었으니까 봐달라는 그딴 개소리는 안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술 처먹고 개가 되는 놈은 본성이 개인 거야. 술을 마셔서 개가 된 게 아니라. 그걸 알면 알아서 술을 끊던가 취하지 않게 조절을 해야 하는 거고.”
“히이익. 죄, 죄송합니다.”
마스트가 무릎을 꿇려고 하자 용운은 자연스럽게 마스트의 양팔을 붙잡았다.
“에헤이 남자가 무릎이 이렇게 저렴해서야 쓰나. 우리 선문구락부랑 계약해서 기분 좋다고 너무 마신 것 같은데 아무리 우루무치의 밤거리가 안전해졌다고 해도 너무 취해서 돌아다니진 말고. 그리고 다음부터 이러면 그땐 계약 파기야. 오늘은 실수인 걸로 하지.”
“감사합니다. 흐윽”
마스트는 용운의 말에서 계약이 깨질 일은 없을 것 같아 안심하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사죄의 말을 전하고선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용운은 고개를 돌려 다진을 직원들이 쉬는 휴게공간으로 불러냈다.
“다진아, 내가 말했지. 파탄두로 일하기가 쉬운 게 아니라고.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야 되는 직업이야.”
“누가 쉬워서 한다고 했어요? 나도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도 듣고 싶고 직접 일해서 내 스스로 돈을 벌어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니가 돈이 부족해? 내가 어련히 알아서 다 챙겨주잖아.”
“누가 돈이 부족하대요? 나도 내가 직접 돈을 벌고 싶어서 그런 거라니까요. 여러 사람들 구경하면서 이런 저런 공부하는 게 재미도 있고”
“그러니까 왜 니가 굳이 고생을 하면서 돈을 직접 벌어야 하냐고.”
다진도 파탄두로서 일하기로 한 것에 교주님이 자신을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파탄두로 일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용운에게 사주고 싶은 생일선물이 있는데 용운에게서 받은 돈을 가지고 산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왕 주는 선물이라면 몰래 준비해서 깜짝 선물로 주고 싶었다. 이제 며칠만 일하면 모으려고 했던 돈을 다 모을 수 있는데 이제 와서 용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해버리면 깜짤 놀라키면서 선물을 줄 자신의 계획이 모두 어그러지고 만다. 다진은 용운의 관심을 돌릴 필요를 느꼈다.
“그나저나 저번에 이즈더쉬인가 하는 사람한테 자금 빌려주고 선문기업에서 채인점(棌引店)을 만들어주기로 한 건 어떻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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