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우루무치에서 150km 정도 동남쪽으로 가면 ‘투르판’이라고 불리는 넓디 넓은 분지가 있었다. 이 곳은 기이하게도 해발고도가 무려 마이너스인 지역인데 사막이라 건조한데다 해발고도까지 낮아 여름이면 열기가 고여 기온이 무려 영상 40도를 넘어서고 겨울엔 영하 20도 이하까지 떨어지는 험지였다.
투르크어로 투르판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풍요로운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혹시라도 먼 옛날에는 녹지가 형성되어 있고 사막이 아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나 싶을 수도 있지만 그런 적이 없었던 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르판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이걸 가능하게 하는 이유는 투르판의 특산물인 과일들 때문이었다.
“도대체 뭐 이런 만화 설정같은 땅이 있지? 사람이 살 곳은 못 되는 것 같은데 과일이 풍부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도시를 이루며 살고 있다고?”
“그건 카레즈 때문에 그렇습니다.”
“카레즈?”
경수의 설명에 따르면 카레즈란 사막 저지대에서 이용하는 지하 수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투르판은 지표면이 워낙 건조해 지표면에 수로를 건설하면 모두 증발해버리기 때문에 긴 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고지대의 수원(水源)에서 물을 끌어서 지하를 파고 들어가 무려 약 5000km에 걸친 긴 수로를 건설하여 사람들이 물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든 집념과 지혜의 산물이었다.
“사막의 땅에서 인간이 과일 농사를 짓게 되다니...”
“지금 교주님께서 드시는 건포도가 바로 투르판 산(産) 건포도죠.”
“이게?”
“예.”
“포도라...”
‘이걸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어 팔면 안되려나?’
“혹시 이걸로 술은 만들지는 않고?”
“아! 그건 말입니다.”
투르판에선 이런 건포도 말고도 과거에 포도주를 담가서 팔았는데 당시엔 투르판의 명물이자 특산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5세기 중반 위구르의 땅이 이슬람화되면서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투르판에서 생산되던 포도주의 명맥이 끊겼던 것이었다.
“그래? 근데 지금은 왜 다시 만들지 않지?”
“한번 알아볼까요?”
“이미 이슬람의 지배력이 사라진 이 땅에서 지금까지 포도주를 다시 만들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지.”
“명을 따르겠습니다.”
천산에서 녹아 흘러내리는 백년설로 담근 신교의 맥주는 현대의 맥주와 비교해도 수준이 결코 떨어진다고 할 수 없는 기가 막힌 맛을 자랑하지만 맥주는 기본적으로 고급술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술이었다.
‘와인만큼 부호들과 귀족들을 사로잡은 술이 없잖아?’
설탕이 넘쳐나는 세상이 아니라 단맛이 귀한 지금. 내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건포도가 주는 달달함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근데 아무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도 괜찮을까? 한번 알아봐야겠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포인트를 소모하여 검색을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된 정보는 투르판의 기후가 1년 중 300일 이상이 맑은 날이고 사막답게 강렬한 태양이 내리쬘 뿐만 아니라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이 무려 200~240일에 달해 포도의 성장과 발육에 매우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괜히 여기 사람들이 포도를 키우는 게 아니라는 거군.”
투르판 포도주를 부활시키기로 마음먹은 나는 은월의 삼대주를 불러 투르판을 직접 둘러봐야겠으니 준비를 하라고 명을 내렸다. 경수가 확인한 정보를 듣고나서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
흑도와 사파를 모두 밀어내고 난 이후 우루무치는 위구르 전역뿐만 아니라 중원에서도 많은 상인들에게 점차 매력적인 삶의 터전으로 소문이 번지고 있었다. 가격을 치르는 과정에서 흥정은 있을지언정 서로 신뢰하고 거래할 수 있다는 점과 특별히 횡포를 부리는 집단이 없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우루무치를 다녀온 상단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루무치의 상인들이 자의건 타의건 관계 없이 우루무치에 나타난 신인에 의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로 인해 위구르의 상인들 중 이미 발빠른 이들은 우선 분점을 설치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우루무치의 부동산을 뒤적거리고 다녔다.
우루무치의 상인들은 비록 계기는 자신들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지언정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상인으로 인정받는 것과 미리 우루무치에 터전을 잡으신 선조들에 대한 고마움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들처럼 우루무치에서 장사하는 것에 만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루무치가 상인에게 있어 꽤나 좋은 동네긴 하지...우리도 객잔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선문객잔을 경험한 손님들은 하나같이 주변의 다른 객잔의 접객태도라든가 청결함 그리고 시설의 상태 등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으음, 선문객잔은 서비수가 좋았는데 여기는 서비수가 별로네. 선문객잔 탁자는 반들반들해서 광이 나는데 여기는 탁자도 지저분하고 끈적거리기까지 하고 말이야...”
“그렇지?”
“선문객잔에서 마시는 것처럼 여기도 같은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그거 빼곤 다 별로다.”
“진짜 선문객잔에선 화롯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구워먹을 수 있어서 재밌기도 하고 그랬는데 말이지. 여기는 노래도 없고 좀 지루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안 오는가 봐. 괜히 왔다.”
“다음부턴 좀 기다리더라도 우리 선문객잔으로 가자.”
“그래, 그러자.”
소면이나 먹으러 오는 나이든 손님들을 제외하곤 오는 손님들마다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객잔의 주인들은 딱히 성질을 낼 수도 없었다. 한번이라도 선문객잔을 갔다와본 객잔 주인이라면 모두 이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언제부터 객잔에서 고기 구워먹고 노래를 들었다고 그러는 거야. 우리도 돈만 있으면 크게 투자해서 다 뜯어 고치고 싶지. 진짜...”
이킨치 객잔의 장남 이즈더쉬는 겨우 온 손님들을 보고 환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나가버리는 손님들을 보며 중얼거리는 아버지의 축 늘어지는 어깨를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아버지...”
갑갑한 마음에 객잔을 나왔건만 텅 비어서 휑한 느낌마저 드는 자기네 객잔과 다르게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선문객잔의 대기줄을 보니 더욱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더 지켜보고 있다간 뭔 일이라도 저지를 것만 같아 선문객잔을 피해 한참을 멍하게 걷다 카라호자 기루 옆에 있는 공터에서 가림막을 만드는 인부들을 보게 되었다.
“뭐야, 여기도 뭐가 생기나? 원래 건물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싹 없어졌네.”
호기심이 생긴 이즈더쉬는 인부답지 않게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인부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저기,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흐음...”
남자는 이즈더쉬의 질문에 선뜻 답하지 않고 다른 인부들과 시선을 나눈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예, 제가 답변할 수 있는 거라면 성실하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오!...말씀하시는 게 목수같지 않고 엄청 점잖으시네요. 보통 건물을 짓는 분들은 입도 좀 험하고 그러던데...”
대수롭지 않게 이즈더쉬가 꺼낸 말에 선문구락부를 짓기 위해 나온 은월 소속 지원대원은 흠칫 놀랐다.
‘헛!...이 놈 뭘 알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 그래요? 근데 묻고 싶다고 하신 게 어떤 것인지...?”
“아! 맞다. 다름이 아니라 여기 뭘 새로 짓는 것 같은데 꼭 선문객잔 지을 때랑 비슷해 보여서요. 여기 세워지는 건물은 뭐죠?”
자신의 신분을 의심받는 건가 싶어 화제를 돌린 자신의 한 수가 능숙했던 것 같다고 속으로 자화자찬한 대원은 남자의 질문에 답변해도 괜찮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이번에 새롭게 지어지는 이 건물의 이름은 선문구락부(俱樂部)라고 합니다.”
“선문...구락부요? 구락부가 뭐죠? 이름만 들어보면 음악을 즐기는 곳 같은데...선문? 여기도 선문객잔하고 관련이 있는데인가요?”
“예,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남자의 설명에 따르면 선문객잔은 좀 더 객잔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특화하여 식사와 숙박공간으로 변화되고 선문구락부가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 새롭게 이곳에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이게 그 선문구락부라는 거군요...”
가림막이 가린 공간을 보아하니 보통 거대한 것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객잔 몇 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부지였다. 5층의 거대한 건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것인지 이즈더쉬의 상상력으론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5층씩이나 되는 건물 전부가요?”
‘이만한 건물에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소화할 수가 있는건가?’
“아! 그건 아닙니다.”
“예? 역시 그렇죠?”
1, 2층은 손님들이 대기하면서 이국의 차를 즐길 수 있는 선문다루가 들어설 것이고 3, 4층은 술을 마시며 음악과 춤을 즐기는 공간. 5층에는 수탄두파(受嘆頭破)라는 곳이 생기고 마지막으로 옥상에선 야경을 즐기면서 맥주와 양꼬치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어마어마하다. 근데 수탄두파가 뭐지?’
“저기...한가지 이해가 잘 안되는 게 있는데 수탄두파가 뭡니까? 이름만 보면 근심을 깨트려서 거두어 간다는 뭐 그런 의미인 것 같은데...”
“아! 선문객잔의 사장님이기도 하신 화운님께서 고안하신 건데요. 커다란 나무 뒤에서 파탄두(破嘆頭)라고 하는 이들이 손님들과 대화도 해주면서 각자의 고민을 상담해준다거나 혼자 조용히 술을 즐기고 싶은 분들을 모셔서 운영하시는 방식의 가게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사람마다 그런 날이 있다. 모두가 함께 어울려서 신나게 술을 마시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면서 차분하게 술 한잔을 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날들이. 특히나 돈이 오가는 일을 하는 상인들의 경우, 섣불리 누구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을 수 없기에 더욱 그러했다.
화운이라는 상인의 구상안이 담긴 이 건물은 앞으로 우루무치뿐만 아니라 중원을 아우르는 새로운 사업방식이 될 것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이건 돈이 되겠어.’
객잔의 아들인 이즈더쉬도 바보는 아닌지라 선문구락부라는 이 거대한 건물에 담긴 화운이라는 상인의 자신감을 아주 깊게 느끼고 있었다.
넓고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에서 일할 많은 사람들을 고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지속적인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손님을 유치하지 하든 못하든 그것과 별개로 이 공간은 그 자체로 돈을 집어삼키는 괴수가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화운이라는 상인은 자신이 만든 공간이 성공할 거란 자신감을 가진 게 분명했다.
‘어마어마하구나.’
아직 건물은 지어지지도 않았건만 여기에 들어설 선문구락부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것인지 벌써부터 이즈더쉬의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헤벌어지는 기분이었다.
“궁금증은 모두 해소가 되셨는지...?”
인부치고 꽤나 점잖고 차분한 남자는 이제 자신도 일을 하러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 선문 구락부에 올 손님이 되실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 하지요.”
“의뢰를 받고 건물을 짓는 목수가 아니셨습니까?”
“저도 선문기업(善們企業)에 속한 직원입니다. 정확히는 선문객잔과 선문구락부가 속한 부서와는 좀 다르지만 건설 쪽에 속해있죠. 이제는 유명해진 선문객잔도 저희가 지은 겁니다.”
남자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가슴 쪽을 가리켰는데 거기엔 선문건설(善們建設)이라고 적혀 있었다.
“선문객잔을 그쪽에서 지으신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도 아무 삐걱거림 없이 튼튼한 그 건물을요?”
“하하하, 이거 이렇게 선문객잔이 튼튼한 걸 알아주시는 분이 계시니 건물을 지었던 일원으로서 정말 기분이 좋네요.”
“아닙니다. 마음 같아선 저희 객잔도 선문객잔처럼 튼튼하게 새로 짓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 객잔 주인이셨습니까?”
“제가 주인인건 아니고 제 아버지께서 객잔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으음....”
남자는 이즈더쉬의 말에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선문건설이라고 새겨진 자수 밑에 있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자신에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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