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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58화 (58/132)

58화

“안에 있다 나와서 그런가. 으으. 춥다 추워.”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우루무치에서 가장 이름 높은 카라호자 기루에 있는 기녀의 기둥서방인 라마치는 살짝 큰소리를 치고 손찌검을 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덕분에 연인에게서 두둑하게 갈취한 돈으로 부하 몇과 함께 도박장과 술집을 돌아다니며 밤새 놀수 있었다. 더구나 오늘따라 운이 따라주는지 나올 때가 되었을 때 술값 정도는 챙길 수 있어 나름 기분이 좋은 아침이었다. 겨드랑이로 양 손을 밀어넣고 추위에 떨긴 했지만.

라마치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도박장에서 빠져나와 부하들과 헤어진 뒤 자신의 연인이 머무는 공간으로 기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어슴프레하게 안개가 낀데다 해도 뜨기 전이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쌀쌀해서 옷깃을 여기며 걸어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응? 잘못 들었나? 이 새벽에 무슨 발소리가 들리냐.”

어기적 어기적 발을 끌면서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급하게 돌아보았을 때 라마치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휑한 시장거리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앞으로 몸을 돌리자 보이는 것에 라마치는 순간 놀라 욕을 내뱉었다.

“어우 씹. 뭐, 뭔데!”

라마치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을 땐 생전 처음 보는 복장을 한 남자가 눈만 보이는 복면을 하고 있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길을 막는 거냐! 길을! 나, 흑곰파야! 비켜.”

자신의 정체를 숨긴 남자의 모습에 속으로 움찔했지만 라마치는 일부러 허장성세를 피우며 덩치를 부풀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복면을 한 남자는 자신이 흑곰파임을 밝혔음에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라마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래, 흑곰파 행동대원 라마치. 맞나?”

자신을 알고 찾아온 복면의 남자에게 위협을 느낀 라마치는 허리 뒤춤에 꼽혀 있는 칼 쪽으로 오른손을 가져가며 대답했다.

“아닌데?”

“건달치곤 나름 남자답게 생긴 인상. 키는 6척은 조금 못 되고 볼에 길게 베인 적이 있는 칼자국. 카라호자 기루에 속한 기녀 늘루파르의 기둥서방.”

남자가 줄줄이 읊는 신상명세는 정확히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간만에 돈 따서 기분 좋았는데, 젠장! 저승길 노잣돈이 되게 생겼잖아!’

“흠,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사람 잘못 봤수다.”

길보다 흉이 많다고 생각하며 결심을 한 라마치는 남자를 제치듯 옆으로 지나갈 것처럼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왼쪽 어깨를 남자에게 부딪혀 갔다. 동시에 오른손에 쥔 칼을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남자의 복부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헛!’

분명 회심의 한수였음에도 라마치는 전혀 손에 걸리는 감각이 없어 칼을 회수하며 재차 찔러댔다. 그러나 번번히 라마치의 칼질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라마치는 마치 유령을 상대하는 것만 같았다.

“후읍!”

검은 장포를 입고 복면을 입은 남자는 라마치가 어디로 칼을 찔러들어갈 것인지 알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라마치의 칼질을 아주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럼에도 들리는 소리는 오직 자신 혼자 내뱉는 거친 호흡소리와 칼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뿐이었다.

“허억...허억.”

“사람을 향해 칼을 찌르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네. 라마치, 넌 구제할 가치가 없다. 지옥행.”

“지옥행, 확인하였습니다.”

“뭐, 뭣!”

자신의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리고 검은색의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순간 라마치는 의식을 잃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몸풀기도 안되는걸. 그리고 매번 그렇게 무릎 꿇지 말라니까.”

“은월의 군주를 뵙는데 어찌 예를 지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군주님께서 이까짓 쓰레기를 상대하셨는데 몸풀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이놈은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부복한 남자가 피리를 꺼내 불었으나 피리는 고장나기라도 한 것인지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둘 중 어느 하나 웃지 않았다. 분명 피리 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마치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건물 위에 대기하던 대원 둘이 경공을 통해 용운의 앞에 나타났다.

용운의 앞에 부복해 있던 남자는 나타난 부하들에게 라마치가 지옥광산행이라고 전해주었다.조용히 나타난 둘은 양쪽에서 쓰러진 라마치를 챙겨 어딘가로 이동했다.

“이걸로 끝인가?”

“예.”

“쓰레기같은 놈들이 바퀴벌레처럼 참 많기도 하군. 후...”

용운은 백운에게서 사연을 듣고난 뒤 은월을 통해 우루무치 내에 모든 건달패들의 위치와 행선지를 파악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렇게 모든 건달패가 며칠에 걸쳐 어디 있는지 확인을 한 용운은 일거에 일망타진할 것을 명령했고 마지막 놈은 특별히 백운의 친구와 관련되어 있어 자신이 나섰다.

“이제 우루무치에 흑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루무치의 뒷골목이 은월에 의해 모두 청소가 되는 순간이었지만 용운은 부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남은 놈들은 없습니다.”

“일거에 우리가 쓰레기를 치웠다고 해서 그 자리에 쓰레기가 다시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야. 계속 지켜보면서 다시 거리가 지저분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청소를 계속 해야 하지. 거리의 청결은 그렇게 유지되는 거니까.”

“아...”

용운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함인지 이해한 은월의 대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우루무치의 흑도가 은월에 의해 모두 사라진 것을 모르는 우루무치의 사람들은 도박장에서도, 술집에서도, 거리에서도 보이지 않는 건달패들에 대해 궁금해했다.

“요즘 그놈들이 안 보이네.”

“그러게요. 수금은 이제 더 안하는 것 같은데 어째선지 눈꼽만치도 안 보인단 말이지.”

“똥개가 똥을 끊으면 끊었지.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으면 이상한 놈들이 조용하니까 오히려 더 걱정된다니까.”

“그건 그래.”

상인들이 건달패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거리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음, 무슨 소리지?”

“저기 우루무치의 건달패들이다!”

“그럼 그렇지. 웬일로 오랫동안 조용한가 했다. 개버릇 남 줄 리가 있나!”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상인 중 한명은 혀를 끌끌 차면서 다시 거리가 시끄러워질 것에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를 비롯해 점심 장사를 준비하던 상인들이 막상 길거리에 나와서 본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매우 달랐다.

“...저게 뭔 일이래?”

“그러게...”

길가에는 우무루치에서 침 꽤나 뱉었다고 하는 건달패들이 두 줄로 끈에 줄줄이 묶여서 우무루치의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해!”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작다. 니놈들 아직 교육을 덜 받았나보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동안 우무루치의 시민 여러분들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계속해!”

우루무치의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며 지나가는 건달패들을 보았다.

“이거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살다 살다 저 개잡놈들이 질질 짜면서 사과하는 모습을 다 볼 줄이야.”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던 이의 목소리가 살짤 컸는지 줄에 매인 채로 걸어가던 우무루치의 건달패 중 하나가 가던 길을 멈추고 상인을 향해 쳐다보며 이죽거렸다.

“니 얼굴, 기억했다.”

“히이익! 죄, 죄송ㅎ”

건달패와 눈이 마주친 상인이 순간 놀라서 기겁을 하며 사과하는 소리가 들리자 어디선가 주먹만한 돌멩이가 날아와 상인을 협박한 건달패의 얼굴을 가격했다.

“으윽!”

“뭘 기억해? 뭘! 니가 아직 덜 맞았나보구나. 니 얼굴은 내가 기억했다.”

“아, 아닙니다.자, 잘못 했습니다. 제발.”

방금 전까지 자신을 위협하던 건달이 검은 장포를 입은 사내에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겁에 질리는 모습을 본 상인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 멍해졌다.

“사과하는 방향이 틀렸다. 니놈이 사과드려야 할 방향은 저쪽이다.”

복면을 한 남자의 손이 자신을 향하자 멍이 잔뜩 든 얼굴을 한 건달은 멈칫하다가 복면을 한 남자가 손을 스윽 올리자 서둘러 자신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를 했다.

“아, 아닙니다.”

“상인께선 이 쓰레기들에게 존댓말을 쓰실 필요 없습니다. 가던 길 가라! 이 쓰레기 놈아.”

복면을 한 남자는 쓰레기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서 상인에게 사과를 한 뒤 멈춰있는 걸음을 계속 가도록 했다.

건달패들이 사과를 하면서 우루무치의 시내를 순회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거리가 한산해질 즈음 건달패들을 호송하던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 네명이 10척은 될 법한 아주 커다란 비석을 선문객잔 앞에 가지고 왔다. 비석을 가지고 온 남자들은 천천히 비석을 바닥에 내려놓고 경공을 사용하며 지붕 위로 이동하며 사라졌다.

“저게 뭐래?”

“비석인가?”

“저기 봐! 사, 사람이 날아온다!”

“새가 아니라?”

“사람이네?”

“커업!”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어디선가 검을 타고 날아온 남자를 보고 더욱 심해졌다. 신선이 나타났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까지 그 반응은 다양했다. 진귀한 광경에 놀란 군중들의 반응은 검을 타고 날아온 남자가 눕혀져 있는 비석을 손도 대지 않고 그저 손짓으로 일으켜 세우고 공중에 떠 있는 검에서 비석 위에 올라타 비석을 천천히 박아넣음으로써 더욱 극대화되었다.

커다란 비석이 땅으로 3분의 1쯤 박혀 들어가자 남자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타고 온 검을 들어 뭔가를 조각해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아주 단단한 비석임에도 남자가 글을 새기는 모습은 마치 무른 점토에라도 쓰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새겨진 글씨체는 누가 봐도 명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웅혼한 기운이 느껴졌다.

글을 모두 새긴 남자가 다시 검을 내려놓으며 검 위에 올라탄 뒤 우무루치에 모인 군중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허공에 떠 있는 남자에게 압도당한 우루무치의 사람들은 어린 아이조차 입도 뻥긋하지 않고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남자는 우무루치 상공을 몇바퀴 빙빙 돌며 순회를 하고 나선 천산산맥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검에 올라탄 남자가 아주 작은 점이 되다 못해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때까지 숨을 참고 있었던 것처럼 긴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옴마야...우리가 지금 뭘 본 거지?”

“신선님이 지상에 내려온 순간을 본 거야. 우리는!”

“천지신명이시여!”

각자가 방금 전까지 자신들이 본 것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토해내며 떠들던 중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신선님이 비, 비석에는 뭐라고 쓰신 거지?”

선문객잔 앞에 박힌 검은 비석 앞으로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들었다. 검은 비석의 상단에는 달이 구름에 가린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모두가 글을 아는 것은 아닌지라 글을 아는 사람에게 누군가 읽어달라고 하자 한 사내가 목소리를 키워 비석에 적힌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큼큼, 내가 읽어드리겠소.”

남자가 읽어나가는 비석에 담긴 내용은 앞으로 은월의 주인의 이름 아래 우루무치 내에서 선한 이들을 괴롭히거나 그들로부터 금전을 강탈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면 은월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것과 함께 그동안 우루무치에서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 살아왔던 모든 건달패의 목숨은 자신이 거둬 갈거라는 내용이었다.

“... 고로 우루무치에 흑도는 앞으로 허락하지 않는다. 은월의 주인 白”“참말로 그렇게 써 있소?”

“그렇소.”

누군가 재차 맞냐고 물었고 다른 글을 아는 사람들이 맞다고 확인을 해주자 이킨치 객잔의 이크벌은 두 팔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외쳤다.

“그렇다면 마, 만세! 은월 만세다! 이젠 상납금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

“아부지, 용돈 주는 겁니까?”

“용돈 인상이다. 이놈아!”

“은월 만세!”

“만세!”

긴 세월동안 거리에 흑도패들이 돌아다니기만 해도 젊은 처자들은 겁탈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숨기 바빴고 아이의 부모들은 혹여 아이가 흑도의 무리와 부딪히거나 울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단속해야만 했다. 상인들은 혹여라도 물건을 가져가진 않을까 싶어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숨겨야만 했다.

우루무치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 다시 그런 불안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자 사람들은 은월에 대해 만세를 하며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건달패 때문에 겪어야만 치욕의 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었고, 누군가는 가족 혹은 친인의 복수를 해준 은월에 대한 깊은 감사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우루무치 사람들 눈에는 각자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로 북받친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왜 울어? 슬퍼서 그래?”

“아니. 안 슬퍼.”

“근데 왜 울어?”

“행복해서.”

"행복해서 운다구? 엄마, 지금 되게 이상해. 눈은 웃고 있는데 막 눈물이 나와."

"우리 애기도 크면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올 거야. 행복해도 눈물이 나오는 때가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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