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전 처음에 광산에서 캐낸 쇳덩어리들을 잔뜩 가져다가 검을 만든다거나 무기를 만든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기껏 객잔 만드는데 쓰겠다고 할 땐 솔직하게 교주님이 무공수련하다 드디어 미친 건가 했습니다. 근데 이게 뭐야? 이대로면 투자한 원금 회수하는것도 1년이면 충분하고 남게 생겼습니다! 크크크큭.”
돈이 돈을 부르는 형국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퍽퍽한 감자와 딱딱한 치즈나 먹어대던 가난했던 신교의 마을은 용운의 인도 아래 이제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이 달라지고 있었다.
“흰소리 그만하고. 주변에 여기 선문객잔 노리는 흑도 놈들 얘들 말고도 더 있어?”
“네, 무척 많습니다. 크크큭. 걔들이 보기엔 우리 객잔이 완전 금광으로 보이나 봅니다. 침 흘리는 놈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래?”
이 순간 용운은 광산의 인부도 확인할 겸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쓸데없이 자꾸 선문객잔에서 보호금을 걷어가겠다고 지분거리는 우루무치의 흑도무리들을 모두 걷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우루무치의 더러운 분들을 모두 모아서 내가 아주 좋은 곳에 써 드려야겠구만.”
용운의 한마디를 옆에서 들은 경수는 자기 이야기도 아니건만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다행이지...어우...흑도 녀석들의 명복이나 빌어줘야겠구만.’
며칠 뒤 우루무치의 곳곳에는 은월의 이름과 낙인이 찍힌 방이 여기저기 붙었다.
「우루무치 내에 존재하는 모든 흑도 및 왈패들에게 알린다. 그동안 그대들은 열심히 노동을 하여 건실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로부터 보호세라는 명목으로 누구도 허락한 적 없는 정당하지 않은 수금을 계속해왔다. 그대들의 행동은 고혈(膏血)을 빠는 거머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행위이기에 은월(隱月)은 그대들의 부당하고 불의한 행위를 금일부터 금지한다. 만약 이를 어기고 우루무치의 시민들로부터 계속 보호세를 걷으려고 하거나 보호세를 걷는 경우, 그에 대한 후환은 그대들에게 직접 찾아가 묻겠다.
은월은 그대들의 부당한 행동에 책임을 물을 것이니 혹여 우리가 찾아간다고 하여 뒤늦게 원망하거나 반성하지 말지어다. 하지만 금일부터 일체의 수금행위를 중지한다면 은월이 주는 마지막 기회를 잡은 것으로 이해해줄테니 부디 은월이 그대들에게 주는 기회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기를 바란다. -은월(隱月)의 주인 백 」
고창회골이라고 불렸던 지역의 중심인 우루무치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악명높은 사파 ‘노수호’가 있었고 노수호는 휘하의 흑도무리들을 통해 상납금을 받아왔지만 어찌된 일인지 노수호의 문주와 부문주가 시체로 발견되는 일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노수호의 나머지 무리들은 하늘로 날아가버린 것인지 땅으로 꺼진 것인지 한 명도 남김없이 사라진 터라 흑도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같은 이야기도 잠시 흑도에게 있어 노수호 놈들이 왜 없어졌는지 같은 건 승냥이처럼 아귀다툼만 하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이제 누가 패권을 쥐고 밤의 지배자로 우뚝 설 것인가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 잡것들이 지금 미쳐 가지고.”
“누가 누굴 관리하겠다는 거야?”
자신들을 좌지우지하던 노수호가 사라지면서 흑도 무리들 간에 영역전쟁이 활발하던 터였다. 밤의 전쟁이 연일 계속되던 가운데 마침내 치열한 경쟁의 끝에 승리한 다섯 개의 흑도 무리가 서로 합의를 하였고 5강으로서 우무루치를 지배하는 어둠의 지배자로 결정되었다.
이들은 얼마 전부터 각자 구역을 나눠서 독자적으로 보호세를 걷기 시작했다. 그게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 또다시 갑작스럽게 다섯 개의 무리 중 하나인 집단 키르의 대장과 그 부하들이 선문객잔에서 크게 당하더니 나머지 키르의 잔당들이 일시에 사라지는 일이 발생해버렸다.
“하, 객잔에 당하는 놈들이 있질 않나. 우루무치 흑도 수준도 다 했네 다했어.”
“나 때는 객잔 놈들도 감히 흑도랑은 눈도 못 마주쳤는데.”
“이제는 뭐시기 월? 아주 상전 납셨구만.”
덕분에 현재 우루무치를 지배하는 4개의 흑도 무리들은 유혈경쟁이 끝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에 키르가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기 위해 다른 무리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는 중이었다.
유혈이 낭자한 밤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왈패들을 끌어 모으기도 힘겨운 상황에서 섣불리 누구 하나가 이빨을 먼저 드러낸다면 다른 셋이 힘을 합쳐 이빨을 드러낸 이들을 뜯어 먹고 셋에게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은월? 제깟 것들이 뭔데 우리가 보호세를 걷던 말던 상관을 하고 있어! 안 그래? 우리가 누구냐!”
덩치 꽤나 있어 보이고 험악한 인상을 가진 한 남자가 술잔을 탁자에 내리치며 외치자 주변의 남자들도 일제히 탁자를 두들기며 답했다.
“““붉은 늑대!”””
“그래, 우리는 붉은 늑대다. 피로 흠뻑 젖어 붉게 되는 것따윈 두려워하지 않는 붉은 늑대! 그것이 우리지.”
“““우어어어어어!”””
붉은 늑대라는 흑도를 이끄는 대장 라흐바르는 술잔을 들어올려 부하들과 눈을 마주친 후 시원하게 들이켰다.
“우리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우리의 길을 가지. 그러니 가서 원래대로 우리의 보호를 받는 이들로부터 보호세를 받아와라. 알았나?”
“““명을 따릅니다!”””
라흐바르를 따라 들고 있던 술잔을 모두 호쾌하게 들이켠 붉은 늑대의 흑도 왈패들은 각자 자신들이 수금할 구역으로 흩어져 나갔다.
“이봐! 영감,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지는 않았겠지?”
“아무렴요. 안 그래도 드려야할 금액을 준비해놨습니다.”
이킨치 객잔의 주인인 이크벌은 오늘따라 유달리 눈에 힘을 잔뜩 주면서 위협을 해대는 놈들에게 또 다시 돈을 털리고 말았다. 이킨치 객잔의 직원들한테나 왕처럼 굴었지 도끼나 박도같은 것들을 등이나 허리에 차고 있는 극악무도한 붉은 늑대 놈들에겐 이크벌은 감히 반항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받아든 커다란 돈주머니와 함께 준 작은 돈주머니를 보고서야 만족한 놈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객잔을 스윽 둘러보고는 장사 열심히 잘하라며 희희낙락해선 밖으로 나갔다.
“다음에 올 때까지 또 열심히 벌어두라고! 알았어? 게으른 벌꿀은 꿀을 모을 수가 없는 법이니까. 하하하핫”
‘미친 놈. 꿀벌이겠지.’
놈들이 객잔 문밖으로 나가는 것을 끝까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이크벌은 계산대 뒤에 준비되어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휴우...개자식들 같으니라고. 드디어 갔구만.”
“아부지, 그놈들 또 왔다 갔어요? 이번엔 은월의 경고도 있었으니까 그거 믿고 주지 말지 그랬어요!”
“이 녀석아, 은월인지 만월인지 알게 뭐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인데. 괜히 거기서 은월이 금지했으니 돈을 못 주겠소! 라고 해봤자 그 놈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갈 것 같으냐? 괜히 반항하다 그놈들 기분이 상해서 맞으면 아픈 건 내 몸뚱이요, 망가져서 돈 드는 건 객잔의 물건인 법이다. 그러면 손해보는 건 누구냐? 두말할 필요 없이 객잔의 주인인 나다. 그러니 너도 나중에 객잔을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괜한 호승심에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항상 신중해야 한다. 은월? 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무슨 도움을 주겠느냐. 내가 은월인지 하는 집단에 기대하는 건 딱 그 정도야. ”
이킨치는 아버지 이크벌의 말이 탐탁지는 않았지만 자신조차도 붉은 늑대 놈들이 오면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상황이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우무루치의 상인들이 모두 이크발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붉은늑대 놈들이 방문한 다른 가게에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것들이 미쳤나! 돈을 준비하지 않았다 이거냐!”
“너희들도 보지 않았느냐! 은월의 주인께서 쓴 방(榜)을!”
“그래서! 지금 너희 옆에 있는 게 그 은월인지 세월인지 하는 놈들같으냐 아니면 우리 붉은 늑대 님들 같으냐?”
“그, 그건...”
청과상을 하고 있는 메바도 왈패의 말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자신을 도와주겠다면서 나서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봐라, 허울만 좋은 종이 몇장 붙인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으냐? 우루무치의 밤을 지배하는 이들은 은월이 아니라 우리지. 종이 몇장 붙인다고 우리가 먼지처럼 사라지진 않는단 말이야.”
이죽거리는 붉은 늑대 왈패의 말에 메바는 몇 번 입을 열어볼까 입을 달싹거렸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메바가 우물쭈물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자 옆에 서 있던 메바의 딸 아클리가 나서며 자신의 아비를 대신했다.
“은월은 우루무치에서 악명 높았던 사파 노수호도 일거에 쓸어버린 이들이야. 은월이 우루무치의 질서를 새롭게 구축하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고작 노수호의 하수인에 불과했던 너희들이 버틸 수 있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냥 가지 그래?”
“이 계집애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나불대는구나”
사실 아클리의 말은 내심 붉은늑대의 왈패들도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섣불리 꼬리를 말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클클클, 메바의 딸 ‘아클리’가 아름답고 똑똑하기로 주변에 소문났다더니 얼굴값을 하느라고 주둥이를 잘도 놀리는구나. 하지만 말이다. 그 잘난 주둥이로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것도 우리 붉은 늑대들의 넘치는 양기로 ‘교육’을 받으면 좀 고분고분해질 것 같은데. 어때? 우리랑 같이 좀 가보실까?”
“히익.”
붉은 늑대의 왈패는 허리춤에 찔러 넣어놓은 손도끼를 꺼내며 아클리의 뺨을 훑어내렸다. 자신의 딸이 저 무도한 사내들에게 끌려가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메바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도, 돈을 주겠다! 돈 줄테니까 내 딸은, 내 딸만은 안된다!”
“큭큭큭, 영감탱이. 좋은 말로 곱게 이야기할 때는 못 알아먹더니 꼭 사람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와야 말을 듣는구만?”
메바가 돈주머니를 꺼내 들이밀면서 자신의 딸을 놓아달라고 했지만 왈패들은 돈주머니를 받아 챙기면서도 아클리를 놓아주진 않았다.
“근데 말이야. 이건 보호세지. 당신 딸내미가 저지른 무례에 대한 대가에는 많이 비거든?”
자신의 딸이 시꺼먼 사내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 되자 다급해진 메바는 눈물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애절하게 소리를 쳤다.
“내 딸! 내 딸이 끌려가고 있소! 은월이시여! 부탁드립니다. 제발!!!!!! 그대들이 말했지 않소. 우리 상인들을 지켜주겠노라고! 그리고 이를 어기는 이들이 있다면 징치해주겠다고! 내 딸은 안됩니다. 내 딸만은!”
자식을 향한 아비의 사랑이 담긴 절규가 울려 퍼지자 갑자기 사방에서 웅웅거리는 저음의 목소리가 이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하는 법. 그대들의 권리는 오직 그대들이 진심으로 원할 때만 우리가 지켜줄 수 있다. 그대의 간절한 소망은 우리 은월이 들어주도록 하겠다.】
‘이건! 육합전성(六合傳聲)? 말도 안돼! 은월에 이런 고수가 있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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