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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52화 (52/132)

52화

이크벌은 순간적으로 혈기가 치솟아 올라 참을 수가 없어 손을 높이 들어 익숙한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그러자 지 애비도 모르는 후레자식같은 아들 놈은 애비에게 욕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자신의 정체를 확인함과 동시에 보이는 분노, 놀람, 절망 등의 복잡한 감정이 한데 섞인 아들 놈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다. 저 표정은 오랫동안 이크벌의 뇌리에 남을 것만 같았다.

“아, 아부지...?”

“이 후레자식같은 놈이 술만 처먹고 여자에 환장해서 다녀도 아직은 내가 아버지로 보이긴 하는 게로구나. 감히 이 애비보고 개자식이라고 하다니....너 오늘 잘 걸렸다. 이놈!”

“아부지, 제가 아버지인 걸 알고 욕한 게 아니고...아부지가 개자식이면 제가 뭐가 되겠습니까...갑자기 누가 뒤에서 뒤통수를 세게 팍 치니까...저도 모르게 순간...”

“아니고는 뭐가 아니냐. 이킨치 객잔의 장남이라는 놈이 어떻게 하면 우리 객잔을 선문객잔처럼 흥하게 할까 고민하기 바빠야 하는데. 여기서 뭐한다고 이렇게 줄을 서 있어? 니 놈이 내 아들이 맞긴 하냐? 안되겠다. 호적을 파자. 이 자식아!”

“아니~ 아부지~ 소자의 말 좀 들어보십시오.”

이킨치는 억울했다. 물론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에는 아리따운 처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선문객잔의 소문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매우 크긴 했지만 경쟁업체의 전략과 운영방식에서 배울 점이 없는지 객잔 주인의 아들로서 확인하려는 생각도 아주 약간이지만 존재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저도 이킨치 객잔을 물려받을 장남으로서 경쟁업체의 전략을 확인해 보고자...”

“니 놈이 퍽이나 그러겠다. 내가 니 놈을 모르냐? 그저 여자라면 침을 질질 흘리는 놈이! 따라와! 이 놈아!”

“아, 아부지~ 여기서 3각(45분)이나 기다렸는데...이제 1각만 더 기다리면 들어간단 말이에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언능 안 와! 내가 오늘 아주 날을 잡아야겠구나.”

“아, 아! 아파요! 아부지!”

이크벌은 정신 못차리는 아들 놈의 귀를 세게 잡고 들어올려 자신의 객잔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이거 아주 재밌는 구경이 따로 없구만.”

“이킨치 객잔 주인께서 아주 고민이 많으시겠어, 안 그래요, 여러분들? 으하하하하.”

주변 사람들은 줄을 서며 지루함을 못 참겠던 상황에서 한편의 희극과 비극이 잘 버무려진 단막극을 본듯하자 박수를 치며 웃어댔다. 자기가 만든 상황이긴 하지만 이크벌은 더욱 화가 났다. 조용히 자신을 따라오면 될 것을 소리를 높여 아들놈이 반항을 하며 소리를 내는 통에 주변 사람들이 다 자신들을 보고 웃어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 놈의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버르장머리를 고쳐 놔야겠구나.’

선문객잔의 많은 손님들은 처음 방문하는 순간부터 선문객잔의 친절하면서도 깍듯한 접객에 넘어간다. 각 탁자를 맡은 점원은 손님 하나 하나를 마치 귀빈을 대우하듯 옆에 시동처럼 서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술이 부족하지 않도록 지켜보며 도와준다. 주문을 받음과 동시에 손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주문기록장에 주문한 음식과 술의 양을 정확하게 기록하는데 이는 선문객잔에선 사기를 치지 않고 주문한 음식과 음료에 대해서만 값을 받을 것이라며 정정당당하게 장사할 의지를 모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술을 많이 마시다 보면 간혹 주문하지도 않은 음식이나 술로 과도하게 청구하는 객잔들이 있는 걸 생각하면 선문객잔의 운영은 너무나도 공정한 것이었기에 손님들로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런 접객을 받는 것이 공짜는 아니었다. 앉아서 모든 것을 제공받는 왕의 대우를 받는 조건으로 점원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손님이 주문한 음식들의 모든 값의 3할을 접객료로 받았다. 이렇게 접객료로 점원이 가져가는 대가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배가 부르고 술에 취한 손님들은 주변의 여자들의 시선까지 어우러지는 순간 아주 호기롭게 계산하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되어 자연스럽게 지불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선문객잔의 점원들이 제공하는 접객을 받아본 이들이라면 사기당했다는 느낌은커녕 접객부터 모든 것에 만족해서 몇 번이고 방문하게 되었다.

“허허허, 선문객잔에 가면 내가 마치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이 대접해줘서 정말 좋아.”

“아무렴.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똑같이 왕후장상처럼 대하니 얼마나 좋은가.”

우루무치의 객잔에선 비싼 음식을 주문할 때가 아니면 점소이가 그렇게 극진한 자세를 보이지도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니, 점소이들은 주문한 음식만 틱하고 갖다주고 다른 일을 하기 바빴다. 하지만 선문객잔은 그런 예사 객잔들과 차원이 달랐다.

주문한 금액이 크든 적든 오는 손님에겐 만면에 미소를 띠고 항상 똑같이 극진하게 대접을 했다. 그러니 손님들은 선문객잔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좋은 걸 경험하고도 똥같은 생각은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문객잔을 노리고 있는 흑도의 무리 중 하나인 키르를 이끄는 브락은 계산해야할 금액이 적힌 주문기록장을 보고 별로 비싼 걸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쓸데없이 추가로 돈을 받아가는 선문객잔의 접객료에 대해 시비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어이, ‘칼란다르’? 자네 이름이 칼란다르야?”

“예, 손님. 제가 ‘칼란다르’입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여기 금액이 좀 이상해서 말이야.”

“어떤 부분이 이상한지 말씀해주시면 확인해드리겠습니다.”

‘확인? 점소이 주제에 건방지게 확인? 이 자식 정신이 나간 건가?’

브락은 시커먼 남자들이 잔뜩 앉아 있는데도 전혀 쪼는 기색이 없는 점원에게 위압을 행사하고자 위아래로 훑었다.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을 가진 브락이 목소리를 으르렁거리며 내뱉자 주변에 앉은 다른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이봐, 자네가 나한테 뭐 그리 대단한 걸 해줬다고 자네에게 3할이나 그 ‘접객료’인지 뭔지를 추가로 지불해야 되지? 여자를 불러주길 했나 아니면 나한테 ‘유희’를 제공했나? 별 같잖은 접객을 받고서 딱히 그만큼의 돈은 주고 싶지 않은데?”

신기하게도 누가봐도 명백히 위협을 가하는 브락 앞에 있는 점원은 쫄기는커녕 희미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대했다.

“아! 손님, 혹시 오늘 처음 오셨나요? 접객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선문객잔만이 제공하는 서비수(叙飛羞 베풀 서, 빠를 비, 맛있는 음식 수)에 대한 대가입니다. 각 탁자별로 대기하고 있는 직원들이 선문객잔에 계신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심혈을 기울여 제공하는 접객에 대한 대가인 것이죠.”

“내가 만족을 하든 만족을 하지 않든 상관없이 지불해라 이 말인가?”

주변의 점원들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슬슬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브락은 이런 일을 해본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에 부하들에게 같이 소리를 지르라고 눈짓을 했다.

“여기는 무슨 흑도새끼들이 장사하는데야? 감히 손님에게 이따위걸 내라 마라 강요해? 너 내가 누군줄 알고 이따위로 장사해?”

“맞아! 기껏해야 떨어진 수저나 가져다주고 비어있는 물병이나 채워주는 게 뭐가 대단하다고 그런 돈을 강탈해가려고 한단 말이냐!”

“객잔 주인 나오라 그래! 객잔 주인!”

“지금 이 자리에선 제가 객잔의 얼굴입니다. 손님.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이 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말장난이냐! 말장난이!”

주변의 손님들 중 하나는 브락의 무리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점원을 불러 저들이 흑도의 왈패임을 조용히 알려주며 조심하라고 경고를 해주었다. 하지만 점원은 움찔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따윈 하나 없이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니 편하게 계시면 된다고 했다.

“괜찮겠나?”

“예. 저희 선문객잔은 저런 이들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능력이 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란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아니...내가 사과를 듣겠다는 건 아니고..자네 동료가 걱정이 돼서 그러네.”

우루무치의 흑도 중 하나인 ‘키르’의 대장 브락은 말로 해서 못 알아먹고 자신들을 쳐다보는 점원들 중 처음부터 자신들을 상대한 칼란다르를 칼로 위협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곱게 말해줄 때 너희 주인 불러 와. 칼 꺼내서 니 배때지를 확 쑤셔버리기 전에.”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손님의 탁자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저입니다. 제게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여기서 주먹을 쓰신다거나 하시면 이는 선문객잔의 원칙에 위배되어 흑명단에 등록되고 앞으로 저희 선문객잔과 관련된 업장에는 영원히 입장하실 수 없게 되십니다.”

점소이 놈을 향해 위협이 섞인 경고를 했더니 오히려 점원이 타이르듯 자신에게 경고하는 게 아닌가. 말도 안되는 형세에 이 몸의 꼴이 우습게 되었다 싶은 브락은 부하들을 향해 신호를 주듯이 소리를 지르며 옆구리에 있던 박도를 꺼내 들어 내질렀다.

“점소이 주제에! 어딜 감히! 이 브락에게 협박이야 협박이! 얘들아!”

“예!”

“오늘 니들 칼에 피 좀 먹여야 쓰겠다.”

“좋습니다.”

보통 머리를 향해 박도를 내려치는 자세만 취해도 점소이나 객잔 주인 놈들은 엎드려 벌벌 떨건만 어찌된 일인지 선문객잔의 점원은 자신의 박도가 향하는 방향을 끝까지 보고서 고개만 슬쩍 움직여선 피해버렸다.

‘뭐야, 이 놈...뭔가 한 수가 있는 놈인가? 크음... 보통 이 정도 하면 알아서 쪼는데.’

흑도의 무리로서 오래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상대의 강약을 구분하는 눈이었다. 항상 부하들에게 자신이 강조했던 것도 바로 상대방이 무림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도를 휘두른 상태로 멈춰있는 가운데 옆 좌석을 담당하던 점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괜찮으십니까? 칼란다르님, 제가 알아서 처리할까요?”

이상하게 같은 점원인데도 존댓말을 하는데 칼란다르라는 놈은 손바닥을 내보이며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온 놈에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뒤를 본 놈의 얼굴에선 방금 전까지 지우지 않던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니들 밖에서 힘 좀 쓰던 흑도인 것 같은데 적당히 여기서 그만하고 이제 나가주지? 돈도 없는 너희들한테 적선했다치고 돈 안 받을테니까 앞으로 여긴 다시 오지 마라. 알았지?”

“이게 누굴 거지로 아나? 우리가 지금 돈이 없어서 이러는 줄 알아?”

브락은 오히려 자신과 부하들을 거지 취급하는 칼란다르의 대접에 혈기가 치솟아 올랐다. 부하들도 일제히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오늘 선문객잔에서 피를 좀 봐야겠구나. 안 그래도 선문객잔의 주인이란 놈이 우리 키르에 성의를 표시하라고 해도 어찌된 일인지 통 말을 들어먹질 않고 말이야. 집주인이 나오질 않으니 개라도 패서 주인을 좀 불러야겠구나.”

“그 쓰레기들이 너희였구나. 딱히 우리가 피를 볼 것 같진 않은데.”

“뭣! 이런 건방진 놈을 봤나! 죽어!”

브락이 결국 참지 못하고 박도를 회수해 죽일 각오로 목을 향해 베어 나가자 점소이 놈은 방금 전까지 이죽거리던 것과 다르게 바짝 얼었는지 대응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선 술 마시러 왔다가 사람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여기 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훗, 그럼 그렇지. 일개 점소이 주제에 제법 곳꼿하게 굴었지만 목이 날아갈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가능하겠느냐? 그게 가능하면 점소이가 아니라 무림고수지.’

브락의 그런 생각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무언가를 보면서 그쳐야 했다.

‘뭐, 뭣?’

“크억!”

방금 전까지 칼을 내지르던 것은 브락이었는데 어느새 무언가에 맞았는지 브락이 오히려 공중에서 몇바퀴를 돌고는 땅바닥에 엎어졌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주변 사람들은 쥐가 고양이를 후려 패는 희귀한 광경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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