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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50화 (50/132)

50화

바닥을 뒹구는 두 사람에겐 시간이 지나자 경련이 시작되면서 생긴 극통(極痛)이 찾아왔다.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지독한 통증때문에 몸이 굳어 혀를 깨물고 자결할 수조차 없었다.

1분 1초가 마치 하루처럼 길게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통증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팽가독과 치가우에게 불행 중 다행인 점이 있었다면 도망치면서 피를 어느 정도 흘렸다는 것과 백운이 복부를 베어버리면서 혈관을 건드린 탓에 출혈이 빨라져 백운이 기대한 것보다 빠르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출혈이 계속되던 두 사람의 동공이 탁 풀리고 몸의 꿈틀거림이 멈췄을 때 비로소 백운은 다시 한번 자신이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월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용운에게 절을 하려고 했지만 다리에 맥이 풀려 일어날 수 없었다.

“은월이 없었다면 평생 오늘 같은 날을 꿈만 꾸며 가슴에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을 겁니다. 크윽....”

원했던 복수를 이룬 탓일까 주저앉아 있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백운의 표정에선 복수를 이룬 개운함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허망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운은 의뢰를 들어줬다고 그녀를 이렇게 내버려두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이제 무얼하면서 살 겁니까?”

용운의 질문에 백운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루 하루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친구들과 웃으며 버텨가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런 삶이 그렇게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식간에 끝이 나버렸다.

가까운 친구들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에 분을 칠하고 돈 몇푼에 웃음을 팔아야 했던 자신이 황도의 공주님이나 입을 법한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던 복수를 이루었다. 이 모든 게 꿈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휘몰아치듯 폭풍처럼 삶의 높은 파도를 타고 넘은 듯한 백운의 마음은 모든 것을 태우고 심지조차 남지 않은 촛불처럼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백운은 용운의 질문에 기녀에게 있어 행복한 미래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었다.

‘이제 행복은 사치겠지...’

자신이 언젠가 퇴기(退妓)가 되어 기루에서 쫓겨날 때를 대비해 돈을 모으긴 했지만 그건 조금이라도 비참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서였지 딱히 다른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사는 평범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꿔서는 아니었다.

용운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오물거리는 백운에게 삶을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대가 우리 은월에게 진 은혜는 의뢰금만으로는 갚을 수 없다고 한 말 기억합니까?”

“네?”

조금 전에 자신이 한 말이었으니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대의 입으로 분명 우리 은월에 갚을 수 없는 빚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그렇습니다.”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버린 백운에게 용운은 본인도 말이 안되는 억지라고 생각했지만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군요. 갚으세요. 본인이 일해서 직접.”

“갚으라구요?”

“네, 스스로 당신이 진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할 때까지 은월에서 갚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처럼 간절하게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는 이들을 위해 당신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십시오. 누군가 당신을 떠올리며 기뻐하고 다시 만나길 바라도록.”

용운의 말에 파코바라는 소녀가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던 순간이 떠올랐다. 눈치로 먹고 살던 백운이었기에 용운이 왜 자신에게 일부러 모질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자신을 일으켜주려는 용운의 손을 마주 잡고 일어서며 백운은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저는 그저 빚을 받을 채권자(債權者)일뿐입니다. 채권자에게 고맙다고 하는 채무자는 없는 법이에요.”

“그런가요? 채권자님. 훗”

스스로 어거지를 피운 것 같아 머쓱해하는 용운이 옆으로 슬쩍 백운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백운은 보름달을 잔뜩 머금고 곤란해하는 그의 모습을 죽을 때까지 평생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

용운은 백운이 팽가독과 치가우가 죽기 전 약속했던 한가지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의 너덜해진 시체를 쓸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마에는 달의 낙인이 찍혔고 우루무치의 상인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카라호자 기루 앞에 버려졌다.

겁에 잔뜩 질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들의 시체 옆에는 팻말이 그들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서 길바닥을 구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우루무치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하던 백해무익한 좀벌레 노수호는 전부 우리 ‘은월(隱月)’에서 처단했다. 그러니 그들에게 상처입고 고통받았던 이들이 이걸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달은 그대들이 의식하지 않아도 항상 그대들을 지켜보고 있다.』

우루무치에서 그 악명이 자자했던 노수호가 멸망했다는 소문이 고창회골이라는 이름이었던 땅 전체로 퍼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혹시나 해서 소문이 진실인가 싶어 노수호의 본거지가 있던 장원을 찾아가 본 이들이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마치 거인이 밟고 지나간 것처럼 박살나고 불에 타 잔해만 남은 모습일 뿐이었다.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그럼!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몰라. 우루무치가 마치 제 것인냥 길거리를 활보하던 놈들이 잔뜩 겁에 질려서 고통으로 일그러져 죽었더라고.”

“그동안 그 개자식들의 패악 때문에 정말 패죽이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남자의 말에 주변 상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수호가 돌아다니는 날이면 재수 없게 눈에 띄었다가 두드려 맞는 것은 예삿일이고, 기껏 팔려고 준비해놓은 물건들을 모두 헤집어 놓거나 망가뜨려 놓는 일은 마치 차를 마시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었다.

“은월이라...무주공산(無主空山)에 가깝던 천산 위구르에 새로운 패자가 등장한 걸까?”

“차라리 확고한 강자가 등장해주면 좋은 일이지. 어설프게 강한 놈들이 많아봐야 우리처럼 아무런 힘도 없는 이들은 괴롭기만 하잖아. 난 부디 은월이 정도라는 걸 아는 이들이었으면 좋겠네.”

누군가는 은월이란 집단의 등장에 환호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환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존처럼 노수호를 통해 이득을 봐왔던 기득권에겐 특히.

“허어...이를 어찌하면 좋소!”

“진짜 노수호가 모두 죽어버린 거요?”

“아주 박살을 내버린 것도 모자라 모두 불에 태워버려 풀 한포기도 남지 않았다더군.”

“큰일이야...설마 노수호에게 우리가 그동안 사주했던 일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겠지?”

“모두 죽고 불에 타버렸는데 그럴 걱정은 안해도 되지 싶은데...”

“그럴려나...그나저나 앞으로 저 카슈 촌놈들이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모직물을 다시 밀고 들어올텐데 어떻게 해야하겠소?”

“흠...”

우루무치의 흑막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사이에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었다.

“이게 노수호가 있던 장원에서 나온 장부야?”

“얼마나 해처먹었는지 모릅니다. 그거 찾느라고 노수호의 간부들을 털었더니 줄줄 불더군요.”

팽가독은 어찌된 일인지 일반적인 사파의 문주답지 않게 노수호가 벌어들인 악행으로 인한 이득을 장부에 친절하게 빠짐없이 기록해놓았다.

“신기하네. 보통 사파놈들이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기록해놓나?”

장부를 훑어보던 용운은 이제는 정보를 수집하는 은월의 수장으로서의 태가 슬슬 나기 시작하는 경수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냥 지멋대로 기분 따라 사는 놈들이 그런 걸 뭐하러 기록하겠습니까? 기록을 한다는 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건데.”

“그럼 이 자식들은 왜 이렇게까지 기록을 했지?”

“그 부분이 현재 의문입니다. 일정 주기로 어딘가로 돈을 상납하는 흔적을 발견하긴 했는데.”

“뭐?”

“여기 보십시오.”

확실히 장부를 뒤적거려보니 분기별로 상(上)이라는 항목 옆에 활동수익의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 빠져나가는 걸로 적혀 있었다.

“상이라고 적힌 게 그냥 팽가독이 혼자 반이나 처먹는 걸 적어놓은 건 아니고?”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노수호의 잔당 놈들을 광산에 보내버리기 전에 심문 과정에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분명 노수호의 뒤를 봐주는 놈들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누구인지 모를 그 놈들이 자신들이 사파 짓을 할 수 있도록 무기들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고 하고.”

“이건 좀 더 파봐야겠네.”

“아! 그리고 장부 잘 보면 우루무치 상인놈들 명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함둘라 상단주가 이야기했던?”

“예.”

용운의 질문에 경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루무치의 상인들이 힘을 합쳐 용병들을 대거 고용해서 대항했다면 아무리 사파인 노수호라고 해도 지금처럼 악명이 높을 수가 없었다.

‘우루무치 상인들이 노수호를 이곳에선 용역같은 걸로 써먹던 게 맞았군.’

“그나저나 노수호의 놈들을 이렇게 쓸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십니다.”

“응?”

팔다리만 다쳐서 무력화시켜놓은 노수호의 잔당들은 모두 포박한 채로 생포되었다. 원래대로면 백운과의 약속을 따라 모두 죽여야 하는 게 맞았지만 용운은 백운에게 죽는 것보다 더 괴롭게 해주겠다고 약조하며 의뢰 내용을 일부 수정하였다.

“노수호 잔당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광산의 인부로 노역을 하게 하는 거 말입니다. 원래대로면 다 죽이는 거였잖습니까? 그런데 그 놈들을 안 그래도 광산 작업을 하는데 쓸 인력으로  이렇게 데려가실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다. 용운이 무림의 방식 중에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비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산적이라든가 강도들을 만나 이들을 처단하면서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선을 가볍게 넘는 이들을 죽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인이었던 시절의 감각이 자신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고 할지라도 살인의 기억은 끈적한 따르처럼 뇌리에 달라붙어 꽤나 오래 잔상으로 남았다. 강호인으로 살다 보면 살인에 대한 감각이 무감각해진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에 팽가독과 치가우만 처단했던 것도 용운 입장에선 나름대로 최대한의 타협이었다.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이 내린 명령과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되 그 아래에 있는 이들에겐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스스로 죽든지 살든지 선택할 권리를 주겠다니...둘끼리 있으니 하는 말인데 전 처음에 교주님께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나 싶었습니다. 노수호같이 세상에 하등 도움 안되는 쓰레기같은 인간들만 잔뜩 있는 사파의 인원들이라면 모두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재활용이라고 하셨나요? 그렇게 다시 쓰자고 하실 줄은...”

“죽이는 것보단 살려서 일을 시키는 게 세상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이왕이면 사람이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높은 일에 투입을 한다면 더더욱 좋을 거고.”

자신의 제안에 노수호의 잔당들은 모두 단전을 폐하는 조건으로 광부가 되어 살아남길 택했다. 어쩌면 무인이었던 이들이 내공을 잃고 광산에 갇혀 땀을 흘리며 매일 일을 하는 것이 그들에겐 죽는 것보다 괴로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괴로워 하든지 말든지는 더 이상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죄 지은 놈들을 일일이 헤아려 배려해주는 건 자신의 한 마지막 제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놈들은 세상에 풀어놓는 것만으로 해악이었다. 범죄자들을 교도소에 넣고 교화한 뒤 밖으로 내보내면 세상이 더 좋아져야 하는 게 이론상 맞았지만 정작 현실은 아니지 않았던가.

사람을 죽이거나 강간했던 중범죄자들의 경우 대부분 출소를 해줘도 원래대로면 잘 살았을 평범한 이들을 피해자로 만들뿐이었다. 나는 여기서 그런 쓰레기들이 세상에 풀려나지 않게 막을 힘이 있었고 의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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