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파코바! 백운 님이 이따가 일정에 맞춰 움직이려면 지금 슬슬 움직이셔야 하는데 어이하여 의뢰인께서 오시질 않나 했는데 니가 붙잡고 있었구나.”
“죄, 죄송합니다. 대주님. ”
옆에서 꾸벅이며 파코바라는 여자가 사과를 하는 것도 제대로 듣지 않고선 대주라는 여자는 자신을 위아래로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 옷도 안 입혀드린 거니? 식사가 조금 늦을 수도 있겠다고 전해드려야 하겠구나. 따뜻할 때 먹어야 하는 음식이건만.”
“저기...그게...”
“이 분은 혼내지 마세요. 제가 잠이 좀 깊게 들기도 했고 궁금한 걸 좀 물어봤거든요.”
파코바라는 여자를 감싸기 위해 백운이 나서자 대주라는 여성은 더 이상 시비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나서서 파코바가 가져온 옷을 갈아입도록 했다. 파코바는 옆에서 대주라는 여성을 도와 자신이 옷을 입도록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곤 옆으로 비켜섰다.
“와아...멋있으세요. 백운 님.”
“그런가요?”
“저, 저도 언젠가 꼭 입고 싶은 옷이거든요.”
“파코바,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구나.”
“죄송해요. 대주님.”
어딘가 남자가 입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옷이었다. 고급의 재질인지 부드럽게 무두질이 된 가죽 안에는 양털이 있어서 아까 자신이 잠들었던 소파라는 의자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옷은 처음 입어봐. 항아님들이나 입는 옷이 이럴까? 아니지...이게 은월의 요원들이 입는 옷인가?’
옷을 입고 나서 다시 돌아온 방에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게...뭐죠?”
“이따가 저녁에 외출하게 되면 출출하실 것 같아서 허기도 달랠 겸 준비해드린 거에요.”
“아니...제 말은 이 음식들 전부 다 처음 보는 요리라서요.”
새까만 색이 가득한 요리와 뭔가를 튀긴 듯한 요리에 걸쭉한 양념이 얹어져 있었다. 얇고 동그랗게 썰어진 노란색은 또 무엇인가 싶었다.
“이건 짜장면이고 요건 탕수육 그리고 저 노란 건 단무지구요. 탕수육은 그냥 드셔도 되고 옆에 준비된 간장을 부어서 찍어 드셔도 좋아요. 모두 진짜 맛있는 음식이에요. 츄릅.”
나름 기루에서 괜찮다 싶은 요리들을 먹어본 백운의 입장에서도 생소한 음식이었지만 막상 파코바라는 여자아이가 어떻게 먹는지 옆에서 가르쳐준 덕분에 검은색 양념이 얹어진 면요리부터 적당히 비벼서 먹게 되었다.
‘와아...이런 음식은 생전 처음이야...’
쫄깃한 면발에 얹어진 검은 색의 짜장이라는 양념과 잘 볶아진 고기와 파가 어울려 한껏 입맛을 돋우었다. 계속 먹다 너무 느끼해진다 싶을 즈음에 단무지를 얹어서 한입 깨물면 입안이 개운해졌다. 뿐만 아니라 새콤한 맛이 감도는 불투명한 양념과 함께 먹는 고기 튀김은 식욕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 이후로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허기가 극심해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옆에서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의 그런 모습을 보니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간 동료들이 생각나 음식을 더 삼킬 수가 없었다. 눈물이 울컥거리며 올라오는 걸 꾹 참고 밀어 넣은 백운은 파코바에게 여분으로 준비된 젓가락과 접시를 들어보이며 물었다.
“같이 먹을래요?”
“네? 아니요. 괜찮아요.”
“뭐 좀 먹었어요?”
“...손님께서 식사를 마치시면 이따가 먹을 건데...”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먹어줄래요? 혼자 먹기엔 좀 많은 것 같아요.”
“이러면...안되는데...손님 대접하려고 준비한 음식인데 제가 같이 먹으면 대주님한테 혼나요.”
“만약 뭐라고 하시면 제가 말해줄게요. 혼자 먹기엔 많기도 하고 쓸쓸해서 내가 부탁했다고.”
“감사해요.”
파코바라는 아이는 자기들도 짜장면이랑 탕수육은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닌 특식이라 솔직히 군침이 돌았다면서 조잘거리며 자신과 식사를 함께해줬다. 소녀의 웃음과 함께한 덕분인지 준비된 식사를 전부 깔끔하게 먹어치우자 파코바는 덕분에 특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면서 그릇들을 챙겨 나가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덕분에 외롭지 않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른 저녁을 먹고 달이 떠오르자 파코바는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짧은 만남 후 해맑게 웃으며 언젠가 다음에 보자는 말을 하며 자신을 향해 파코바라는 소녀는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봐요.”
“다음이요?”
‘우리가 또 보는 날이 있을까요?’
“그럼요, 누가 그랬어요. 살아 있는 한 진정으로 바란다면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고.”
“그래요? 그럼 다음에 만나는 걸로 하죠.”
파코바와 헤어진 뒤 대주라는 여성을 따라서 도착한 곳에는 의뢰를 할 때 만났던 그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복장을 하고 서 있었다.
“옷이 잘 어울리시는군요.”
“그런가요?”
남자는 자신을 옆에 세워두고 자신을 대려온 대주라는 여성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한 여사님이 어찌 직접 이렇게 움직이셨습니까? 다른 사람을 시키시지.”
‘한 여사님? 아까 파코바라는 여자애는 대주님이라고 했는데.’
대주라는 여성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자신을 슬쩍 보고선 목소리를 줄였다가 키웠다. 여자가 목소리를 순간 줄인 탓에 남자를 뭐라고 지칭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님이 우루무치에 직접 행차하셨으니까요. 당연히 제가 와 봐야죠.”
“이런...저 때문에 괜히...다진이도 함께 왔으니 두 사람이 좋은 시간 보냈으면 합니다.”
‘다진?’
“감사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옆에 있어서인지 더 말을 잇지 않고선 남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백운님, 식사는 맛있으셨나요?”
“예, 덕분에 감사히 먹었습니다.”
“다행이군요. 밤공기가 차다보니 속이 허하면 많이 추울 수 있거든요.”
‘이렇게 따뜻한 옷을 입었는데 추울 수 있다고?’
백운은 남자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 그러면 이제 슬슬 가볼까요?”
“어디로 간다는 거죠?”
“당신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어느새 남자의 앞에는 양탄자가 바닥에서 살짝 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공중에 떠 있는 거 맞지, 저거? 설마 귀신이야?’
남자는 허공에 떠 있는 양탄자 위에 올라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니 보고 있자 남자는 웃으며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남자의 뒤로 떠 있는 환한 보름달때문인지 검은 옷과 모자를 착용했음에도 남자의 모습 뒤로 달빛이 비쳤는데 그 모습이 꼭 부처님의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자애롭게 보였다.
백운은 거기에 이끌려 남자의 손을 잡고 두둥실 떠 있는 양탄자 위에 올라탔다.
‘귀신이 이런 느낌일 리가 없어. 이 남자는 신선님인 걸까?’
두둥실 떠오른 양탄자에 조심스럽게 앉자 양탄자는 서서히 하늘로 떠올랐고 저절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무서웠지만 환하게 떠오른 보름달 아래로 보이는 달빛이 온누리에 비치는 땅의 풍경은 무척이나 몽환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에 올라타 봤다는 이야기를 하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난 백운이라는 여자와 함께 양탄자에 올라타 작전이 현재 진행 중인 지역으로 이동했다. 보름달인데다 맑은 날이라 구름 한점 끼어 있지 않아 땅 위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일정 거리를 이동하자 저 멀리서 환하게 피어오른 달빛을 조명 삼아 노수호의 인원들과 함둘라 상단이 대치하고 있었다.
‘제 때 딱 맞춰서 온 것 같군.’
인공위성으로 현장을 지켜보는 것처럼 양탄자에 올라타 하늘에서 보고 있자니 두팔 호법과 자룡 호법 둘이 나서서 노수호의 습격대를 하나하나 물리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아...저 아저씨들 뭐야?”
“표두가 갑자기 ‘저분들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돼!’라고 할 때만 해도 어디 귀한 집 자제나 있는 집안 사람인가 했는데...건드리면 안되는 이유가 이거였어?”
“이 주변에서 악명 높은 사파 노수호가 고작 두 사람이 나서니까 쪽도 못 쓰네. 어우야. 저건 좀 아프겠다.”
창을 휘두르는 두 사람의 무력에 추풍낙엽처럼 노수호의 습격대가 하나 둘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부하들을 방패삼아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팽가독과 치가우가 부하들과 함께 둘을 무찌르려고 해봤지만 두 사람의 시도는 각자 한쪽 팔에 크게 상처를 입으며 실패로 끝이 났다.
“으윽, 왠 놈들이냐!”
“어허, 감히 어르신들한테 입이 짧구나!”
“여기 어르신이라고 할 만한 늙은이들이 어디 있다는 거냐? 우리가 우습나!”
“젊게 봐주니 고맙긴 하다만 이 몸이 너희들과 말을 주고 받을 나이는 아니구나, 입이 험한 아해야.”
‘뭐야...이런 괴물같은 인간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말도 안될 정도로 강한 두 남자의 등장에 팽가독은 이 자리가 자칫하면 자신이 죽을 자리가 될지 모른다는 직감에 휩싸였다. 도망칠 기회를 엿보던 팽가독은 부하들의 돌진을 명령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분명 지쳤을 것이다! 힘이 빠졌을 때 공격해야 한다! 돌격해라!”
“옙! 돌격하라!”
팽가독의 말만 믿고 달려나선 이들과 다르게 치가우는 팽가독의 표정을 살피며 팽가독이 부하들을 버릴 생각을 먹었음을 눈치채고 달려나가지 않았다. 결국 예상한 대로 팽가독이 부하들의 돌격과 함께 뒤로 튀는 순간 치가우는 팽가독과 함께 피를 뚝뚝 흘리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함둘라 상단의 쟁자수들이 소리를 질렀다.
“저, 저기! 팽가독과 치가우가 도망친다!”
“뭐, 뭣?”
달려나가던 노수호의 부하들은 자신들과 함께 돌격할 거라고 생각했던 대장과 부대장이 도망친다는 말에 설마하면서 고개를 뒤로 돌리자 자신들의 눈에 비치는 두 사람은 뭐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다.
“이런! 젠장! 개자식들!”
“우릴 버렸어?”
“저딴 걸 문주라고!”
한껏 기세가 올랐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어정쩡하게 멈춘 노수호의 인원들과 두팔과 자룡의 시선이 마주쳤다.
“대충 눈치 다 봤으면 무기를 내려놓든가 아니면 목숨을 내놓으시든가 하시게. 우린 어느 쪽도 상관 없으이. 다만 이쯤에서 항복하면 내 그대들을 죽이진 않겠네. 약속하지.”
두팔의 말을 듣고 정적 속에서 수십 명의 눈빛이 서로 오갔다. 대장과 부대장도 도망친 마당에 더 이상 항전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노수호의 습격대가 내린 결론은 무기를 땅바닥에 버리고 항복하는 것이었다.
함둘라 상단의 인원들이 노수호의 습격대들을 묶기 위해 움직임과 동시에 팽가독과 치가우를 쫓으려고 하자 자룡이 이를 막았다.
“내버려 두시게.”
“이렇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도망친 놈들도 잡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분명 나중에 후환(後患)이 될 놈들입니다.”
“도망쳐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네.”
“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綱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넓디넓어서, 성기면서도 놓치는 것이 없다.)이라고 했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노자의 도덕경을 근엄하게 읊는 두팔의 모습을 옆에 지켜보던 자룡은 두팔이 사람들이 있다고어울리지 않게 멋있는 척을 한다면서 툴툴거렸다.
“저번에 유웅 형님이 말씀하신 걸 그새 써먹는구랴. 형님이 언제부터 도덕경을 공부했다고”
“이 녀석이? 나도 알고 있는 거였다. 나도 봤던 거였어. 형님이 먼저 말해서 그렇지.”
“헤엥, 퍽이나 그렇겠소.”
두 사람은 하늘을 잠시 올려다 보곤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지 말장난을 이어나갔다.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던 양탄자가 피를 흘리면서 도망간 두 사람이 움직인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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