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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47화 (47/132)

47화

어금니를 깨물고 마음을 다잡은 백운은 천천히 칠흑같이 깜깜한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마치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처럼 스르륵 문이 닫혔다. 뒤를 돌아보자 마지막으로 본 하오문의 접수담당자는 처음 백운이 왔을 때와 같은 자세로 돌아가 다음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백운이 들어간 안쪽의 길은 어떻게 한 것인지 신기하게도 밖에서 본 것과 다르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간접적으로 들어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은은한 빛이 감싼 좁은 길을 따라 이동하는 가운데 무언가 덜컹덜컹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멈칫하긴 했지만 백운은 마침내 길의 끝에 도착했다.

“정빙화 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어진 길의 끝에 있는 것은 하오문과는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밝게 꾸며진 하오문의 접수공간과 다르게 이곳은 밤처럼 어두웠다. 그러나 구조는 하오문과 같았는데 검붉은 색의 나무 뒤에는 보름달의 모양을 한 쇠로 된 형상의 앞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저기...”

심호흡을 한 백운은 품 속에 챙겨온 자신의 전재산을 꺼내들며 입을 열었다.

“은월에 의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드리길 원하시나요?”

무표정하다기보다는 진지한 얼굴을 한 그녀에게선 전문가의 느낌이 풍겨졌다.

‘누굴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주길 바라냐고?

“대상부터 물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해주길 바라냐는 건 그 다음이죠.”

“노수호에 대한 원한 때문에 오신 걸로 아는데 저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을까요? 서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그걸 어떻게?”

“저희는 은월입니다.”

가타부타 더 자세한 설명도 없이 여자의 말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백운은 그녀의 짧디 짧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오히려 기대감이 생겨났다.

‘우루무치에서 악명 높은 노수호를 전부 죽여달라고 해도 이들이 들어줄까? 이 돈으론 부족하지 싶은데...’

생각은 짧았다. 우루무치의 시내를 함께 걸어다니며 웃고 떠들던 그녀들의 명복을 빌어줄 방법은 이것밖에 없으리라. 이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마땅히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노수호의 멸문(滅門)을 원합니다.”

백운이 의뢰와 함께 들고 있던 돈주머니를 대가로 내밀자 돈주머니를 쳐다본 여자는 돈주머니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세어보지도 않고선 받아들였다.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혹시 추가적으로 원하시는 내용이나 조건이 있을까요?”

“네?”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그 노수호였다. 반면 은월은 고작해야 그동안 알려진 바로는 왈패 몇이나 잡아죽인 것이 전부였다.

노수호의 부하 몇 명도 아니고 자신의 요구가 무려 멸문인데도 이뤄낼 수 있을지 따져보지도 않고선 의뢰를 접수한다는 말에 방금 전까지 생겨나던 신뢰는 사라지고 불신의 씨앗이 생겨났다. 자신이 얼마를 지불했는지 세어보지도 않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런 이유로 당황한 자신의 모습을 여자는 추가사항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했는지 접수대에 서 있던 여자는 다시 한번 질문을 했다.

“추가적으로 원하시는 내용이 있으시면 일단 가감없이 말씀해주세요. 이행의 가능, 불가능은 신경쓰지 마시구요. 그 부분에 대해선 저희가 듣고서 판단해드리겠습니다.”

기루를 떠나서 살기 위해 그동안 모아온 자신의 전재산이었다. 백운은 은월이 자신의 돈을 먹고 튀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좋은 것은 일의 성패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노수호를 전부 죽인 뒤 마지막으로 노수호의 대장인 독혈겸 팽가독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직접 보게 해주세요. 아니, 팽가독의 목은 제가 베게 해주세요.”

‘은월이 내 의뢰를 받아들여서 이행할 각오가 있다면 이 정도야 어렵지 않게 해줄 수 있겠지. 안 그래? 돈만 먹고 입을 닦을 게 아니라면 말이지.’

“흐음...”

돈을 받아들고 접수를 받았다고 할 때는 일사천리였던 여자가 머뭇거리자 백운은 만약 이들이 자신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돈을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씀하신 추가사항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백운은 돈만 받고 입을 닦으려는 것은 아닌가 싶어 의심이 더욱 강해져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왜죠? 이유가 알고 싶네요!”

“사람을 죽이는 순간부터 당신은 절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순간의 감각은 영원히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서 오랫동안 당신을 헤집을 것입니다. 그래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인간만도 못한 망종에게 손을 직접 쓰는 것보단 그저 팽가독이 죽는 걸 지켜보시는 건 어떨까요? 만약 제 조언을 듣고서 원하시는 조건을 바꾸지 않는다 할지라도 저희는 도와드릴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르게 여자는 아주 담담하게 자신을 배려하는 내용을 늘어놓았다.

“제 조건은 바뀌지 않아요.”

“예, 그럼 잠시 앞에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여자가 자신이 접수한 내용을 받아 적고는 접수대의 뒤에서 뭔가를 조작하자 푸슉하고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응?’

자신에게 준 차가 식을 때쯤 하오문에서처럼 벽이 스르륵 열리고선 검은색의 길다란 가죽 옷을 입은 남자가 검은색 원통을 들고 나타났다.

‘처음 보는 옷이네...’

접수대의 여자는 남자의 등장에 살짝 움찔했는데 그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자신의 앞에서 보인 표정과 목소리라면 생전 긴장을 해보거나 당황해본 적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여자도 당황이란 걸 하는구나. 근데 왜 당황한거지?’

남자는 여자가 마치 고관대작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숙이려고 하자 남자는 손바닥을 들어 막고선 나지막하게 여자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직접 담당하겠습니다.”

“네! 존ㅁ”

“쉿!”

여자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남자는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시키고선 자신의 앞으로 움직였다.

“정빙화...아니 백운 님, 저를 따라 오시겠습니까?”

남자의 목소리에선 차분하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기루에서 많은 남자들을 본 백운이기에 알 수 있었다.

허세가 넘치는 남자, 잔인한 남자, 대인배인 척 하는 남자 등등 각양각색의 남자를 봐왔다. 겉으로만 그럴 듯하고 속은 썪어 있는 인간들은 목소리부터 소름끼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남자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일까...’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한쪽 손을 내밀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가리키며 천천히 움직였다. 자신은 남자의 등만 따라보고 걸으면 되었다. 이동하는 중에 밖으로 나오자 오랜만에 햇빛을 봐서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자 낮인데도 달이 떠 있었다.

‘대낮에도 달이 뜨는구나.’

잠깐 시선을 돌리다 보니 걸음이 멈췄던 것 같았다. 남자는 그런 자신을 재촉하지 않고 방해하지도 않고 오롯이 대낮에 뜬 달을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황도에 있다는 공주님은 이런 느낌일까?’

촌동네에서 자라 먹고 살 것이 부족해 어릴 때 팔려와 이 먼 타지까지 흘러 들어온 자신으로선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며 배려해주는 건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다. 괜스레 머쓱해져서 정적을 깨고자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밝은 날에도 달이 뜨네요.”

“달은 항상 하늘에 떠 있습니다. 너무나 강한 태양 빛에 가려지면 보이지 않기도 하고 위치가 잘 맞지 않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가요?”

남자의 말은 퍽이나 이상했다. 천한 기녀인 자신에게 존대를 해주는 것도 기이했고 하는 말에 담긴 내용은 생전 처음 듣는 소리인데도 사기꾼이 떠드는 것과는 다르게 진짜처럼 들렸다.

짧은 대화를 나눠서일까 처음보다는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다시 남자의 등을 따라 이동한 곳에는 고즈넉한 가옥이 한 채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시면 2시진 뒤에 제가 당신을 찾아오겠습니다. 혹시라도 배가 고프시거나 필요한 게 있다면 옆에 있는 이 줄을 당기세요.  종소리를 듣고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인원이 찾아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도와드릴 겁니다.”

“네...”

남자는 간단하게 설명을 마치곤 문을 닫고 저벅저벅 떠나갔다.

“휴우.”

방 안에는 가죽으로 둘러싸인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백운은 자신도 모르게 그 앞으로 가선 앉았다.

“와...푹신푹신해...”

백운은 마치 구름 위에 올라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몸을 온전하게 받아주는 이 의자에 앉으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알게 모르게 하고 있던 긴장이 풀려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이들이 내가 원하는 의뢰를 도와줄 수 있을까?”

이어지던 백운의 상념은 의자가 주는 포근함 때문인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님? ....운님? 백운 님? 이동하시려면 이제는 준비하셔야 합니다.”

“스읍. 네? 네...나갈게요. 나갑니다.”

백운은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방문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깼다.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 구분을 못하다가 푹신한 의자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자각하게 해줬다.

“아, 맞다. 은월에 의뢰를 하고 여기에 왔었지...벌써 2시진이 흐른 거야?”

자신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밖에 있던 여자가 들어가도 되는지를 물었다.

“네? 네.”

백운이 대답을 하자 문이 열리고 들어온 여자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자신이 흠칫하는 것을 느껴서였을까 여자는 의자 앞에 있는 커다랗고 낮은 탁자 위에 검은색 옷을 올려놓고는 설명을 했다.

“이 가면은 저희 은월에 속한 이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니 불쾌해하시거나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밤에 이동하면 추울 수 있으니 저희가 준비한 옷을 입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옷이요? 그리고 밤이요?”

“네, 백운 님이 하신 의뢰를 오늘 밤에 이행할 예정입니다.”

“오늘 밤이라구요?”

분명 자신이 의뢰를 접수한 것이 오늘인데 오늘 바로 실행을 하겠다니 이 은월이란 집단이 도대체 자신을 두고 사기를 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여자는 대답을 하고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네. 오늘 밤입니다. 그런데 소파(沼把)가 많이 편하셨나 봅니다.”

“소파(沼把)요? 그게 뭔가요?”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킨 여자는 늪처럼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魔力)이 있는지 저 의자에 앉으면 앉은 이들 대부분 수마(睡魔)를 견디지 못하고 잠들곤 한다고 했다.

“그, 그런 것 같네요. 소파라...누가 이름 붙였는지 잘 붙였네요.”

“그 분이죠.”

여자의 대답과 표정에서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강력한 존경의 염(念)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분이요?”

“아까 만나셨잖아요. 어땠나요?”

“목소리는 따뜻했던 것 같은데...모자에 얼굴이 가려져서 얼굴은 잘 모르겠고...검은 색 장포(長袍)는 처음 보는 옷이었던 것 같네요.”

“역시 멋있죠? 저도 실물로 뵙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손님이 참 부럽네요.”

“제가 부러워요?”

“그럼요! 그분이 어떤 분인데요. 저희들에겐!...”

“뭐하고 있는 게야!”

아쉽게도 남자에 대한 여자의 설명은 더 들을 수 없었다. 다른 여자가 나타나선 자신에게 옷을 가져다 준 여자에게 그분이 기다리고 계신데 뭐하고 있냐면서 꾸지람을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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