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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46화 (46/132)

46화

“이야, 이거 맛있는데?”

“목구멍이 따끔따끔한 게 죽이네.”

“카슈가르 촌놈들이 뭘 가져와 우루무치에서 판다길래 우습게 여겼는데 생각보다 손재주가 있나보네. 크크큭.”

노수호의 무리들은 이번에도 훔친 함둘라 상단의 모직물을 장물로 넘기는 조건으로 적절한 대가를 받았다. 물론 같이 운반해온 맥주통은 부수입으로 따로 챙겨 지금처럼 기루에 와서 부어라 마셔라하면서 즐기는 중이었다.

“듣자하니 이번에도 또 물건을 보냈다고 하던데?”

“이런 자라같은 놈들을 봤나. 바보도 아니고 계속 물건을 뺏기면서 왜 자꾸 물건을 보내는 거지? 그렇게 물건이 많으면 한번에 보내든가. 이러면 우리가 귀찮아지잖아. 안 그래? 크하하하”

“야! 그런 백치같은 놈들이 있으니까 덕분에 우리는 돈도 벌고 이렇게 술도 마시는 거 아니냐! 안 그래? 마음 같아선 맨날 이랬으면 좋겠구만. 킬킬킬”

노수호를 이끄는 대장인 독혈겸(毒血鎌) 팽가독이 자신의 민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핀잔을 주자 부하들은 눈치를 보다가 팽가독을 따라 웃었다. 우루무치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기루임에도 노수호가 와 손님들을 모두 내쫓은 탓에 현재 카라호자 안에 있는 외부인이라곤 노수호의 인원들뿐이었다.

술과 여자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기루에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 멋대로 술을 가져와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우루무치에서 노수호가 어떤 악명을 펼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오늘은 가져온 그 맥주라는 술 실컷 마시고 진탕 취해도 좋다! 대신 내일 모레가 되면 출정할 거니까 알고들 있고. 알겠나?”

팽가독이 자신의 머리를 소리나게 찰싹 치며 부하들의 시선을 불러모으곤 다음 출정이 언제라고 소리 지르며 알렸다.

“알겠습니다!”

노수호의 부하들은 어차피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며 사는 말종들인지라 팽가독의 말을 듣고선 조금이라도 ᄈᆞᆯ리 진탕 취하기 위해 옆에 앉은 기녀들을 희롱하며 자신들끼리 신나서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팽가독이 앉은 자리에 함께 있던 인물은 부하들이 흥을 올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 걸 지켜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드디어 이번에 크게 한탕하는 겁니까?”

“치가우(治苛愚)! 입 조심해라. ”

팽가독은 맥주를 들이켜며 자신들의 옆에 앉은 기녀들을 슬쩍 쳐다보곤 노수호의 2인자인 치가우에게 위협적인 시선을 보냈다.

“헙!”

“넌 치원다(治元多) 수령의 후손이라는 놈이 왜 이렇게 입이 싸냐? 내가 항상 입을 열 때랑 다물 때랑 구분하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젠장, 기분 좋았는데...안되겠다.”

팽가독이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며 허리 뒤춤에 매어놓은 낫을 꺼내 팽가독과 치가우의 옆에서 오들오들 떨며 술을 따르던 기녀들의 목을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흥겹게 마시고 놀던 술자리에서 노수호의 대장인 팽가독에 의해 피가 튀자 방금 전까지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마시던 술자리라는 걸 의심하게라도 하는 듯 정적으로 가득 찼다.

“혀, 형님?”

“이 여자들은 너 때문에 죽는 거다. 치가우. 알았냐? 알면 안되는 걸 들은 대가로.”

“아...죄송합니다.”

“쯧, 뭘 그렇게들 쳐다보고 있어? 거기 너희 둘 여기 와서 이것들 후딱 치우고 다시 마시고 놀아!”

“네, 넵!”

한 자리 건너서 술을 마시고 있던 부하들이 술잔을 내려놓고 피를 쏟아내고 있는 기녀들을 챙겨서 치우는 걸 지켜보던 팽가독이 부하들에게 무슨 구경거리 났냐고 내뱉자 기루 안은 다시 노수호의 부하들이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는 소리로 가득 찼다. 악명 높은 사파 노수호에게 있어선 사람을 죽이는 일따위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야, 너 뭘 그렇게 떨어? 술맛 떨어지게. 계속 그럴 거냐?”

“죄, 죄송합니다.”

“에이씨, 너 꺼지고 다른 년 오라고 해. 괜히 술자리 망치고 싶지 않으니까 나 열받게 하지 말고.”

“아....알겠습니다.”

힘든 기루 생활 속에서 웃고 울면서도 항상 함께하던 자신들의 동료인 기녀들이 순식간에 죽어나가는 걸 본 기녀 정빙화(頂冰花)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산도적같이 생긴 노수호의 부하가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베어버릴 것만 같은 공포와 함께 친우들을 잃은 슬픔에 눈물이 자꾸만 차올랐다. 겨우 눈물을 참고 뒤로 빠져나오는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지며 참았던 눈물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때 자신들의 친구들을 데리고 나갔던 노수호의 남자들이 자신의 옆을 킬킬거리며 지나갔다.

“에이씨, 대장은 가끔씩 저러더라.”

“간만에 술기운 올라서 재밌었는데 이게 뭐야. 손에서 술냄새가 나도 부족한데...킁킁.”

“뭐야, 얘는 여기서 왜 질질 짜고 있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야, 가자. 추잡하게 생긴 애랑 같이 있지 말고 들어가서 어서 마시자고. 술 마실 시간도 없어. 내일 하루 종일 취해 있으려면 지금 부지런히 마셔야 돼, 인마.”

“아! 맞다. 대장이 모레 출정한다고 했지.”

“크크큭, 맥주로 당장 피 냄새나는 손도 좀 닦고.”

“기발한 새끼, 술로 손을 닦아? 천잰데. 빨리 가자. 히히”

원래라면 카라호자 기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녀인 정빙화를 알아 봤다면 악명이 자자한 노수호의 인물들이 이렇게 취급하고 지나갈 리가 없었지만 하도 울어 화장이 심하게 번지는 바람에 얼굴이 지저분해져 그녀의 미모가 가려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순간 바짝 얼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정빙화는 본능적으로 노수호의 인원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움직였다. 카라호자 기루의 지배인이 겁에 잔뜩 질린 상태로 어딘가로 이동하다 훌쩍거리며 멍해진 채로 울며 걷던 정빙화와 맞닥뜨렸다.

“백운(百熉)아...어찌하면 좋냐...애들이....애들이...”

지배인의 말을 듣고 방금 전까지 정신이 혼미해져 있다가 동공에 중심이 잡힌 정빙화 아니 백운은 지배인을 쳐다보며 눈물도 닦지 못하고 물었다.

“애들은요?”

“...주, 죽었다. 저기 있어...”

백운은 지배인을 따라간 곳에서 자신들의 친우들이 정원에 마치 돌멩이처럼 대충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개자식들이 여기에 이렇게 죽은 아이들을 묻지도 않고 대충 버리고 갔다...큭.”

“나자르...딜레바...마디나...”

한족 출신인 자신은 여기 사람들과 외모가 달라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툭하고 던져진 자신을 살갑게 받아주고 옆에서 도와줬던 친구들이 지금 바닥에 차갑게 식어가는 나자르, 딜레바, 마디나라는 세명의 소녀들이었다.

모두 가난한 집안 때문에 팔려온 신세였지만 기루에서 번 돈을 최대한 많이 집으로 보내기 위해 자신들을 치장하는데 돈을 쓰려하기보다는 아끼고 어지간한 건 스스로 만들어 쓰는 착한 소녀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겁에 잔뜩 질린 채로 목이 베여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백운의 눈에 다시 습기가 차올랐다.

한참을 그들의 얼굴과 손을 쓰다듬던 백운은 기루의 점소이들을 불러 함께 그녀들의 시체를 수습하고선 그동안 기루로부터 벗어날 미래를 위해 자신이 모아온 돈의 일부를 덜어내 그녀들의 장례를 정성껏 치룰 것을 부탁했다.

백운은 그녀들이 자신들의 귀중한 것들을 숨겨놓는 공간에서 그녀들의 돈이 담긴 세 개의 주머니를 챙기곤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기루를 빠져나왔다.

간혹 자신들의 친구들이 하오문과 은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곤 했었다. 하오문에 가서 정보를 종종 팔곤 했던 친구들은 하오문에 가서 정보를 건네주면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일정한 돈을 지불하는 걸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그들은 만약 자신들이 건넨 정보가 괜찮은 경우 나중에 추가로 정산해주기도 해서 한푼이 아쉬운 그녀들에겐 용돈벌이치곤 나쁘지 않은 부수입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의 말로는 하오문에 부탁을 하면 은월이라는 집단이 나서서 복수를 해주거나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때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는.

“하오문에 두가지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카라호자의 정빙화시군요. 저희에게 두가지 부탁이요?”

백운이 처음 들어갔음에도 하오문의 밝게 꾸며진 공간은 다루(茶樓)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의자들과 탁자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고 차향이 은은하게 나고 있어 꽤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가운데에 둥글게 놓여 있는 나무 탁자 뒤에서 접수를 받는 깔끔한 복장을 한 남자의 눈에선 자신이 기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을 향한 시선에서 어떤 사심이나 음심같은 것이 엿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백운은 하오문에 대한 소문을 더 신뢰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이 세 개의 주머니에 담긴 돈으로 이 주머니 위에 새겨진 이름들이 클 때까지 학비와 식비를 지원하도록 해주세요.”

“바라는 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돈이 허투루 쓰일까봐 노파심에 백운은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했다.

“세 명의 소녀가 어렵사리 모은 돈이에요. 그녀들의 가족에게 꼭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에서 흘러나오는 달빛처럼 낮은 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 저희 하오문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다음 부탁은 뭔가요?”

남자의 부드러운 음성때문일까 노수호의 악적들도 남자였지만 이 남자에게는 딱히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백운은 이에 용기를 품고 입을 열었다.

“두번째 부탁은 은월에 드렸으면 하는 것입니다. 하오문에 이야기를 하면 은월에 연결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확인차 묻습니다. 하오문이 아니라 은월입니까?”

“네.”

남자는 잠시 그녀의 눈을 쳐다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선 자신의 등 뒤에 있던 끈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왼쪽에는 벽만 있고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문이 열렸다.

“은월에 대한 의뢰는 이쪽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네?”

“하오문에선 정보를 사고 팔고 간혹 서신이라든가 물건을 전달해드리고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 ‘피’를 흘리길 바라는 분들이 있는 경우, 저희 하오문에서 직접 의뢰를 받지 않고 은월에 연결만 해드립니다. 이 통로를 향해 가시면 은월의 접수처가 나올 것입니다.”

남자의 설명을 들었지만 어두운 공간에 열린 문이 꼭 호랑이굴처럼 느껴져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는 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조언을 건넸다.

“당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관이 나서지 않는 일에 의연하게 나설 집단은 오직 은월 뿐입니다.”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기녀가 죽은 일로 관은 나서지 않는다. 아니, 중원의 어떤 정파도 기녀라든가 점소이가 죽었다고 해서 복수를 해주는 곳은 없다.

백운은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은월이라는 이들이 이 남자의 말대로 자신의 입에서 노수호의 멸망을 원한다는 말이 나오고 나서도 이루어질까 하는 의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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