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여기가 우루무치인가?”
“교주님, 카슈가르도 엄청 큰 도시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는 비교도 안되네요...”
“확실히 카슈가르보다 더 크고 번화하네.”
우루무치는 카슈가르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로 고창회골이 있던 이 땅의 중부지역에 있으며 겨울이 매우 추운 사막기후를 띠고 있는 곳이었다.
여름이라고 해도 사막이라고 하면 더울 것 같지만 이곳의 여름은 습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 그늘진 곳만 들어간다면 그렇게 덥다는 느낌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그렇지만 여름 한낮에는 최대 40도 이상까지 치솟아 오르지만 밤이 되면 반대로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져 간혹 동사하는 이들이 나오기도 하는 곳이 바로 카슈가르였다. 겨울에는 반대로 또 습해져서 한국의 겨울처럼 추위가 뼛속 깊이 파고드는 지역이기도 했다.
도무지 왜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법한 기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루무치는 목초지가 주변에 드넓게 펼쳐져 있어 유목민들의 입장에선 먹일 풀이 많아 이 주변의 유목민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다.
‘그저 양을 키우기 위해서 사람이 불편한 걸 감수하고 산다니...참.’
아무튼 이런 이유때문에 이 주변에선 가장 거대한 도시가 바로 우루무치였다. 우루무치에서 약 190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분지가 있는데 투루판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투르판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맛이 꽤나 일품인지라 투르판의 사람들 중에선 과일을 말려 우루무치에 가져와 파는 이들도 많았다.
처음엔 사막에 과일을 가져와 파는 사람들이 있길래 냉장 시설도 없는 세상에서 저걸 무슨 수로 여기까지 운반해오나 싶었다.
지난 계약을 통한 함둘라 상단과 일월신교의 결합은 엄청난 시너지를 낳았고 덕분에 2년도 지나지 않아 일월신교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정도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카슈가르는 이제 함둘라 상단과 우리 일월신교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마을 먹거리가 아주 풍성해졌지. 밥 상에 고기가 오르지 않는 날이 없게 되었으니.’
함둘라 상단은 그동안 우리와의 거래를 통해 쌓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교에서 만드는 모직물과 맥주를 주력상품으로 하여 우루무치에 진출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루무치를 주름잡고 있던 천산 상단의 입장에선 변방의 상단인 함둘라 상단의 시장 진출에 대해 심사가 단단히 꼬일 수밖에 없었다.
천산 상단의 상인들은 저렴하면서도 값이 좋은 모직물을 무기로 우루무치로 밀고 들어오는 함둘라 상단을 배제하고자 우무루치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문파인 ‘노수호(盧水胡)’에게 도움을 청해 사사건건 우리를 방해하고 나섰다.
“경쟁을 할 거면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이것들이. 상도의가 없어.”
그 방해란 함둘라 상단이 물건을 가져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습격을 해서 물건을 빼앗고 물건을 배송하던 표사와 쟁자수들을 죽이거나 상처입히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수차례에 걸쳐 같은 방식으로 습격이 계속되자 함둘라는 용병들을 그러모아 증원을 해보았지만 번번이 배송실패라는 똑같은 결과만 반복되었다.
결국 함둘라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최강의 무인인 사호법에게 의뢰를 했고 우리가 먼저 우루무치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쪽으로 가면 경수가 있는 거 맞지? 여기 달 문양 있다.”
“그런 것 같네요.”
하오문이 아직 없다는 것에 착안해 나는 남는 자본력을 활용하여 이 땅에 시범적으로 정보단체의 성격을 띤 하오문을 만들어냈다.
결집하지 못하는 하층민들에게는 일종의 투잡 개념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개인들이 가진 나름의 귀한 정보를 가져오면 일정한 수준의 수당을 대가로 지불하였다. 그러자 점소이나 기녀처럼 객잔에서 일하거나 기루에서 일하는 이들은 처음엔 용돈벌이의 목적으로 정보를 팔았는데 그 와중에 도움을 청하는 일부의 이들에게 돈을 받고 하오문이 아닌 ‘은월(隱月)’이란 이름으로 복수를 해준다거나 무력적 해결을 해주는 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점차 이렇게 스며드는 거지.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였던 것처럼. 인내심 있게.’
그러자 그때부터 하층민들 사이에서 은월은 억울함을 해결해주는 해결사로 알려지며 그들 스스로가 나서서 은월의 정체를 감춰 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은월과 하오문은 본질적으론 하나였지만 외부에는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독자적 단체들로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누구십니까?”
“구름 뒤에 숨은 자.”
‘암어가 이게 뭐야...에이. 나중에 바꾸라고 하든가 해야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달의 주인이시여.”
우리를 안내한 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대답을 하곤 자신의 뒤쪽에 있는 검붉은 줄을 슬쩍 잡아 흔들었다. 그러자 우리가 있던 곳의 우측에 있던 문이 열렸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기관이 움직이는지 기계 장치 소리가 들려왔다. 길을 따라 이동한 그곳은 꽤나 그럴듯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와...초를 피워놨네. 분위기 있네요. 그쵸?”
“그, 그래?”
‘이럼 사람들이 좋아하려나? 좀 밝고 따스한 느낌으로 바꾸라고 해야겠는데...사람들이 와서 겁 먹겠다.’
어둑한 가운데 몇 개의 초가 밝히고 있는 공간이 주는 감상에 대해 나와 다진이가 느끼는 바가 다른 것 같았지만 이내 나타난 경수 때문에 이에 대해 깊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오셨습니까?”
“경수야! 너 멋있어졌다.”
“그렇습니까? 하하하.”
내가 고안한 흑색의 양가죽 롱코트를 입고 나타난 경수의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위축되기에 충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목 양쪽으로 빳빳하게 세워 올린 카라를 잠근다면 복면을 한 것처럼 코 아래쪽이 전부 가려지는 디자인이었다.
“잘 어울리네.”
“교주님께서 만들어주신 옷이라 그런지 진짜 효과 장난 아닙니다.”
“왜?”
“교주님이 알러주셨던 대로 검은색 그, 중절모(中折帽)? 그거까지 딱 쓰고 이거 잠그고 목소리 깔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덜덜 떱니다. 교주님이 말버릇처럼 이야기하시는 사람들을 다스리도록 잡아끄는 포수(捕帥)가 있다고나 할까요?”
‘포스겠지.’
“그 정도야?”
“예. 목소리 딱 깔고 ‘당신이 무슨 이유로 왔는지는 잘 알고 있소. 어떻게 해주길 원하오?’ 하고 물으면 그걸로 완전 끝이라 이 말입니다.”
“칫, 니가 그런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떤다고? 못 믿겠는데. 그리고 떨면 안된다고.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을 떨게 하면 어떻게 하냐...이건 좀 고쳐야겠다.”
“네? 고친다구요?”
“됐고. 부탁한 건 준비됐지?”
나는 더 늘어질 것만 같은 경수의 입을 틀어막고 미리 준비해놓으라고 했던 거나 달라고 했다.
“여기 있습니다.”
“조사는 잘 해놓은 거겠지? 신빙성 있는 정보로다가.”
“예. 이 근방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다 들어가 있는데다 아직은 훈련 받은지 얼마 안된 은월대를 투입했다가 괜히 걸릴까봐 혹시 몰라서 제가 직접 나서서 정찰까지 하고 왔습니다.”
“잘했다.”
경수가 준 책자에는 노수호를 이루고 있는 핵심인원들에 대한 용모파기와 함께 개인들이 사용하는 무공의 특징이라든가 성향같은 것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 중 제일 앞장에는 노수호의 대장이 있었다.
“팽가독((彭苛禿)? 팽 씨네? 이 놈 혹시 하북팽가랑 관련 있는 놈이야?”
벌써부터 중원의 무림문파와 엮이는 것은 좋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튀어나온 팽 씨란 성에 신경이 쓰였다.“아닙니다. 저도 팽가라길래 하북팽가랑 연관이 있나 싶어 뒤를 파봤는데 그쪽이랑은 전혀 관련 없는 놈이었습니다. 자기 말로는 안정 팽씨인 팽탕중의 후예라는데 딱히 명가에서 키워진 느낌같은 건 전혀 없는데다 길바닥에서 굴러먹는 왈패였다가 사람 죽이고 관(官)에 쫓겨서 도망쳤답니다. 그러던 중 산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굴러떨어진 곳에 사파 고수가 남긴 무공비급이 있어서 그걸 익혀서 지금의 경지에 올라 노수호를 만든 거라고 하더군요.”
“하필이면 기연이 쓰레기에게 닿았군.”
책자를 읽어보자 거기에는 머리가 벗겨져 민머리의 꽤나 사나운 인상을 한 남자의 얼굴 그림과 함께 신상정보들이 적혀 있었고, 팽가독이 주로 사용하는 무공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독혈겸(毒血鎌)? 무기로 낫을 쓴다고? 검이라든가 창이라든가 도가 아니고?”
“예, 근거리에선 낫으로 싸우고 원거리에선 낫과 연결된 사슬에 달린 무거운 추를 기괴하게 날려서 공격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모양입니다. 이런 식으로”
경수는 대강의 흉내를 내면서 직접 보기라도 했는지 무기를 사용하는 방식을 몸으로 보였다.
“기형무기라...”
만약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지를 상상하고 있는데 옆에서 경수가 첨언을 하며 설명을 해줬다.
“한쪽 손에는 낫을 들고 다른 손으론 쇠사슬에 달린 추를 흔들고 있는데 낫과 추 사이에 있는 쇠사슬로 상대방의 무기를 묶어버린다거나 쇠사슬을 발로 밟아서 추의 진행방향을 틀어서 예상 못한 방향에서 사각을 노리는 식으로 싸우더군요.”
“걔가 싸우는 걸 직접 봤어? 걸린 거 아니야?”
“말했잖습니까. 직접 나서서 봤다고. 안 걸렸습니다. 가르쳐주신 대로 최대한 위장과 미행을 해서.”
“경수야, 그러다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위험하잖아!”
“다진아, 다 위험하지 않게 숨어서 봤지. 이걸로 요렇게~”
경수의 허벅지에는 쌍안경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함둘라 상단을 멀찍이 따라가면서 추적하던 중 함둘라 상단의 물건을 배송하는 이들이 습격당할 때 내가 만들어준 쌍안경을 가지고 독혈겸 팽가독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를 상세히 지켜봤다고 했다.
“에이 뭐야~ 난 또 가까운 곳에서 들킬 각오하고 몰래 봤다는 줄.”
“다진아, 추적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멀리 있다고 해도 조심해야 하고 만약 걸리면 빨리 튀어야 한다고. 다 이 몸이니까 교주님에게 배운 걸 토대로 활동이 가능한 거지.”
“뭐래~ 교주님이였으면 바로 칼 타고 날아가서 슉슉슉 해버렸을걸~”
“나도 마음같아선 가서 도와주고 싶었거든?”
“경수야, 넌 그러면 안돼. 알잖아.”
“알지 알지. 난 나서면 안되는 거...”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암중에서 최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경수와 은월이 맡은 임무였다. 경수가 나섰다고 해도 옆에 적힌 팽가독을 비롯해 노수호의 다른 인물들의 무공 수위로 봐선 구제할 수도 없을 터였다.
이제 일류 수준인 경수의 무공 수준으로 나섰다면 우리는 오늘 경수를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최근에 물건을 옮기기 전에 우리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함둘라 상단에 물건을 좀 늦게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였다. 우리의 보호 없이 출발한다면 물건을 제대로 옮기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둘라 상단에선 우루무치에서 팔 물건이 이미 다 떨어진지 오래인 상황이라 만약 이대로 더 늦는다면 상단에 대한 상인들의 신용을 지킬 수 없을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더 늦기 전에 출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많은 용병을 끌어모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지만 결국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함둘라 상단은 이번 실패로 인해 우리 마을에서 급하게 물건을 추가로 준비해줄 것을 원했다.
우리 입장에서도 이번 물량까지 우루무치로 옮기는 걸 실패한다면 한동안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인지라 함둘라 상단주의 절실한 부탁을 들어줄 겸 현재 두팔 호법과 자룡 호법이 물건과 함께 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 녀석들,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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