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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44화 (44/132)

44화

정보를 얻기 위해 시장을 돌면서 아쉬웠던 것은 흔히들 말하는 정보단체인 ‘하오문’이라든가 ‘개방’의 거지들을 길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굳이 이렇게 수고롭게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할 필요 없이 바로 하오문의 지부라든가 개방의 지부에 방문해서 돈 주고 정보 사는 게 원래 무협세상의 국룰 아닌가?’

고창회골이었던 이 땅은 중원에서도 꽤나 변방에 위치하고 있어 개방의 힘이 닿지 않다보니 개방의 거지들이 없는 점은 그리 이상하진 않았다. 그러나 하오문 비스무리한 흔적조차도 볼 수 없다는 것은 이상했다. 그래서 수장군에게 하오문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수장군은 그런 건 처음 듣는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말씀하신 하오문(下汚門)이라는 게 뭡니까? 처음 듣는 문파입니다만.”

“왜 있잖아요. 점소이라든가 도둑이라든가 소매치기, 도박꾼, 기녀, 마부같이 하류잡배들이 모여서 만든 문파인데...”

“에이...교주님 그런 이들이 굳이 모여 가지고 문파를 만들겠습니까? 다 자기도 먹고 살기 바쁜 이들일텐데 문파라니요. 아니면 어느 문파가 그런 이들을 받아줍니까? 말도 안됩니다.”

“그...그래요?”

이 세상에 실제로 하오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크든 작든 그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문파가 존재하기 위해선 무력이 필수적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문파 구성원의 보호가 기본이다. 그러나 소설 속의 하오문은 무림문파임에도 다른 문파와 다르게 점조직으로 되어 있어 중앙집권화가 되어 있지 않는 데다 돈이라든가 개인의 재능을 기부하길 원하는데 정작 구성원에 대한 보호 기능은 없었다.

이는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용은 나가는데 이익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다못해 노동 조합도 가입한 노조원을 보호해주니까 들어가는 거지...복수도 안해주고 보호도 안해주는 집단에 다달이 회비를 납부하면서 뭐하러 들어가. 나라도 안 들어가겠다. ’

하오문이 이 세상에 아직 없다는 점에 대해선 충분히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나중에 일월신교가 중원에 무림문파로 자리잡으려고 할 때 하오문을 방법으로 써먹어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정보단체 하나 정도 내 손에 있으면 좋잖아? 여론전을 할 때도 써먹을 수 있고.’

모두에게 차별 없이 대한다는 교의 교리는 신분이 낮을수록 잘 먹히는 것이었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명분상 무림맹이라든가 정파의 공격을 받을 여지도 없었다. 더구나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구성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약자들의 연대를 구하고 정보를 구하고 전달할 네트워크까지 조직할 수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하오문이라는 패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생각할수록 괜찮은데...그래도 하오문을 만들려면 자본력과 함께 힘을 지금보다 더 키워야겠지. 처음엔 무조건 가입을 요구하기보다는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려면 돈으로 유혹을 해야 할 테니까.’

아무튼 정보 상인같은 존재가 없는 덕분에 정보 수집을 위해 시장을 몇바퀴나 돌아야 했다. 다행히 시장의 상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하거나 은근슬쩍 물건을 구매하면서 물어본 결과 함둘라 상단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함둘라 상단주인 맏형은 사람이 좋고 거래해도 뒤탈이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때때로 감이 좋아 간혹 대박을 친다는 이야기였다. 삼형제 중 막내는 두 형의 지원 아래 중원에서 유학 중이라고 했다.

‘엄청난 고급 정보는 아니고...이 동네 사람들이면 다 아는 정보 수준이네. 하오문이라...’

“둘째가 감이 좋다고 해도 만약 함둘라 상단주가 이를 거부하고 우리가 생각한 상한선보다 더 큰 이윤을 원한다고 나서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거래를 진행합니까?”

“네. 뭐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해야죠.”

“한다구요?”

이 주변에서 믿고 거래할 만한 거대한 자본을 가진 집단이 없다는 게 거래를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상대방이 인정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이익만 보고 달려드는 것이 내 입장에선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이익이 줄면서까지 거래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손해만 보지 않으면 됩니다. 재료비 빼고 사람들의 수고비만 벌 수 있으면 괜찮은 장사가 될 거에요.”

맥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비에 마을 사람들의 인건비만 건져도 손해볼 것은 없었다. 이번 거래의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이 사업의 첫 번째 목적은 자본투자를 얻어내기 위함이고 두 번째 목적은 상단운영에 관한  노하우를 빨아들이기 위해서지.’

아무리 내가 미래의 최신 마케팅 기법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먹힐 아이템 선정과 아이템을 파는 적합한 세일즈 방법은 국가별, 지역별로 상이한 탓에 현지의 전문가와 협업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인 점은 우리가 상품 제작에 대한 전반적인 노하우를 갖고 있고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무력(武力)’을 지니고 있는 집단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거대 상단도 흔하게 갖고 있는 경쟁력이 아니지.’

물론 우리의 무력이 9파1방의 무력에 비하면야 아직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남만, 서장,몽고까지 4곳의 새외 중 겨우 하나에 불과한 이곳에서 써먹기에는 충분했다.

‘혹시라도 함둘라 상단에서 우리 뒤통수를 치는 것도 상관없어. 나쁜 놈들 뚝배기 깨고 정의구현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고. 차라리 흑심을 드러낼 거면 일찍 드러내라.’

두 형제가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려 나의 상념은 거기서 끝이 났다.

“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동생 녀석이 사내답지 못하고 나이에 안 맞게 걱정만 많아져선. 쯧.”

“아니, 형님! 제가 어디가 사내답지 못하다고! 섬세한 겁니다. 섬세! 하아, 너무 세상에 일찍 태어나서 이런 모함을.”

“에휴, 니 놈이 그러니까 제수씨랑 사이가 안 좋지. 남자는 바깥일만 잘 하면 되는 거야. 집안 일은 안사람한테 맡겨두고.”

“눈에 거슬리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걸 어쩝니까? 그리고 제가 마누라랑 사이가 안 좋긴 뭐가 안 좋아요? 사이가 안 좋았으면 4남 1녀씩이나 애를 낳았겠습니까? 형님보다 내가 애를 더 낳았으니 형님 부부 사이가 우리 부부 사이보다 안 좋은 거죠.”

“뭐 인마?”

“형님, 앉읍시다. 손님들도 계시는데.”

“너, 이놈. 나중에 봐~”

“크흠.”

둘은 머쓱해하면서 슬쩍 만담을 하며 분위기를 풀고는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수호진은 괜찮다면서 함둘라에게 거래를 어찌할 것인지 물었다.

“흐음...동생과 협의한 결과 저희들은 딱 매출의 2할만 받기로 하겠습니다.”

“2할이요?”

‘4할은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2할? 그거면 손해만 안보면 된다는 수준 아닌가?’

함둘라의 의외의 대답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조건이었다.

“2할이면 함둘라 상단에서 부담해야할 비용만 처리하고 겨우 잔돈 정도 남는 수준 아닙니까?”

수호진은 혹시라도 이들이 자신들과의 거래에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저희가 받아가는 게 너무 적어서 오히려 신경 쓰이십니까?”

“예...뭐,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동안 저희들이 거래해온 정이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호인처럼 상인답지 않게 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크흠, 믿지 않으시는군요. 사실 저희가 달고 싶은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요즘 쿠야시아이에서 만들어 오는 모직물을 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만들 모직물을 함둘라 상단에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조건으로 2할을 받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까진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직물이 함둘라 상단에서 판매하는 물량을 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다른 상단에는 판매하지 못했지만 만약 재료수급이 원활해져서 우리의 생산량이 폭증하면 다른 상단과도 거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걸 어떻게 알아챈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운인 것인지 맥주 거래를 하겠다면서 독점 조건을 넣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상인은 확실히 상인이야.’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들 입장에선 안정적인 유통사를 얻는 셈이었고 저들 입장에선 안정적인 거래처를 얻는 것이었으니 서로에게 손해가 될 거래는 아니었기에 확인차 슬쩍 내 쪽을 보는 수호진에게 거래를 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좋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모직물의 ‘독점적’ 거래를 위해선 저희도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뭔가요?”

“원하시는 물량은 얼마든지 원하시는 만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재료만 수급할 수 있다면. 그런데 저희가 그렇게 자금이 풍족하지 않아서 당장 원하시는 수준으로 물건을 제작할 만큼의 원재료를 구매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함둘라는 이들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면서 자신만만해 하는 것이 꽤나 신기했다. 지금 이들이 제작해서 가져오는 양도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지금 생산해오는 양이 최대치가 아니었단 말인가?’

“이대로면 여름이 오기 전에 재료가 부족해서 생산이 중단됩니다. 마을 내에서 키우는 양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함둘라는 궁금해졌다. 얼마나 이들이 생산할 수 있을지. 쿠야시아이에서 만드는 모직물은 품질이 좋아 인기가 많았다. 없어서 못 파는 것이었지 구하는 족족 팔려가는 물건이었다.

만약 이들이 말하는 대로 대량의 모직물을 생산해낼 능력이 있다면 우루무치 놈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칠 수 있었다. 막대한 물량으로 시장을 지배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카슈가르에만 갇힌 함둘라 상단은 날개를 얻은 용처럼 카슈가르 제1의 상단이 아니라 고창회골 제1의 상단으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나이를 먹고 이제 잘 안 돌아가는 것만 같았던 함둘라의 머리가 오늘따라 팽팽 돌아갔다. 양털을 먼저 구해다 주고 재료값을 나중에 받는다면 함둘라 상단이 크게 손해볼 일도 없다. 촌구석 상인이라면서 자신을 무시했던 우루무치의 천산상단이 자신의 앞에 와서 허리를 굽혀 조아리는 날이 그려졌다.

‘이거 이거, 동생의 말을 들었더니 복이 절로 굴러 들어오는구나.’

사람 좋은 얼굴을 한 함둘라는 이들과의 거래를 위해 추가로 계약서를 쓰고선 일사천리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교주님께서 저들이 얼마든지 투자할 거라고 할 때까지만 해도 함둘라 상단에서 이렇게까지 투자해줄 것 같지 않아 긴가민가 했는데 일이 이렇게도 풀리는군요.”

거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자리에서 수호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득이 있을 것이 훤히 보이는데 장사꾼이 이를 외면할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아까 원재료 구해달라고 이야기 꺼낸 건 잘 하셨어요.”

시장 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계약이 함둘라 상단이 큰 이익을 본 것은 맞지만 용운이 그리는 빅픽처로 보면 신교가 벌어들일 장기적 이익이 더 큰 거래였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3년 이내에 여길 모두 먹어 치워주겠다. ’

용운이 생각하는 대로면 함둘라 상단은 미래에 일월신교를 가리는 위장막이 되어 후에 중원으로 들어가 자리잡을 때 마교에 적대적인 중원의 반감으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었다. 그렇게 함둘라 상단주와 용운이 서로 다른 꿈을 그리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밤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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