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술이라면 환장하는 녀석이 기껏 손님이 준 술을 마시고선 트림을 하더니 삐지는 게 분명한 표정을 짓기에 함둘라는 손님들만 아니면 뒷통수를 한대 때려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손님들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물었다.
“아닙니다. 저희들은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맛이 어떠십니까? 저희들의 맥주(麥酒)가?”
“이게 보리로 만든 술입니까?”
묘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의 동생 메메트 함둘라를 쳐다본 하지 함둘라는 고개를 돌려 수호진을 바라봤다.
“네. 보리에 이런 저런 저희 마을의 비전을 섞어 만든 술이지요.”
“그래요? 이 맥주란 술의 맛이 어떠냐. 메메트. 니가 먼저 마셨으니 한번 대답해보거라.”
“신기합니다. 신기해요. 생전 처음 맛보는 술입니다.”
나이가 든 자신을 대신해 술자리가 있을 때 나섰던 동생이 아니었던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술은 다 마셔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녀석이 바로 메메트였다.
“니가 처음 맛보는 술이 있다고?”
“예. 가볍고 시원하고 청량한데 보리향과 섞인 처음 맡는 향도 그렇고 마셨을 때 목구멍을 자극하는 아주 독특한 느낌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만족감을 줍니다.”
“그래? 호진님 저에게도 한잔 따라주시겠습니까?”
“아무렴요.”
호진은 준비해둔 주석잔을 하나 더 꺼내 거품과 술의 비율을 맞춰 따라내고 함둘라 상단주의 앞에 내려놓았다.
“한모금씩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 술은 벌컥벌컥 마시는 것도 즐기는 한 방법입니다.”
“벌컥벌컥?”
“예.”
잔을 들어 마시려고 하는 찰나 옆에서 홀짝홀짝 맥주라는 술을 마시고 있던 동생이 살짝 제지를 해왔다.
“왜 그러느냐.”
“형님, 마셨을 때 목구멍을 타타탓하고 때려주는 느낌이 나는데 그렇다고 절대 놀라거나 하지 마십시오.”
“원 녀석두. 난 또 뭔가 했구나. 내가 그런 것에 놀랄 나이더냐? 그리고 독도 아니고 목구멍을 때린다니 농이 심하구나.”
“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꺼억. 어우...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재차 말을 하더니 손님을 모신 자리에서 예의없이 더럽게 트림을 한 동생은 입을 다물더니 잔을 든 채로 자리에 있는 다른 쿠야시아이 사람들과 같은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자신을 쳐다봤다.
‘싱거운 녀석.’
수호진이 권한 방법대로 동생과 다르게 호쾌하게 들이켠 함둘라는 동생이 말한 대로 목구멍을 연신 두드려대는 처음 맛보는 감각에 놀라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가 이내 내려가면서 입안을 헹궈주는 느낌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런 자신의 표정을 본 메메트가 옆에서 웃어댔다.
“하하하, 말씀드렸잖습니까. 목구멍을 때리는 느낌이 생소하고 기묘하다구요.”
“니 말이 맞았구나...꺼억. 끄어억. 어이쿠. 이거 손님들 앞에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실 그건 이 술을 마시면 으레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입니다.”
“끄윽, 이게요?”
“저희가 비전으로 만든 맥주에는 아주 작은 공기방울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평소에는 술에 잘 녹아 있다가 잔에 따라놓은 뒤부터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합니다. 보고 계신 하얀 거품이 바로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지요.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이 공기방울들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전부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이 트림의 이유입니까? 꺼억.”
“그렇습니다.”
예를 차리는 자리에서 마시기엔 트림때문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술일 수도 있겠지만 사내들끼리 고기를 잔뜩 먹으면서 끊기지 않고 들이켜기엔 제격인 술이라는 걸 맥주를 마셔본 둘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기한 술입니다. 목젖을 탁하고 때리는 느낌도 그렇고.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그렇지요?”
이제 쿠야시아이의 사람들이 가져온 이 맥주라는 물건의 값어치를 따져볼 때였다. 매입가가 너무 높으면 자신들이 남길 이윤이 박해지고 그렇다고 매입가가 너무 낮으면 저들에게 불만이 생길 것이었다.
“보아하니 이 맥주는 관리에도 주의가 필요한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술에서 김이 빠지면 원래의 맛보다 못하니까요. 목구멍을 때리는 느낌도 사라지고 말이죠.”
“흐음...”
‘맥주란 술은 마시자마자 확 취하는 그런 독주는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좋은 것 같다. 취하려면 많이 마셔야 된다는 거고 많이 마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더 많은 판매를 의미하니까. 그리고 기름을 많이 쓰는 요리들에 탁월하게 어울릴거야. 굳이 식사한 뒤 차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주 매력적이야. 무엇보다 술을 빚는데 쌀이나 밀이 아니라 보리를 쓴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군.’
보리는 어디에서나 생산이 가능한 작물인데다 흉년이 들어 쌀이나 밀의 수확량이 줄어드는 경우 간혹 나라에선 쌀과 밀의 낭비를 막기 위해 금주령을 내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금주령에 보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보리로 술을 빚을 생각을 하다니...기발하군. 보리와 섞인 약재의 향이 계속 끌리는 점도 좋아.’
매입가를 얼마로 부르면 좋을지 생각하기 위해 함둘라는 술을 한모금 더 들이켜곤 장단점을 따져보았다.
“가격은 생각해보셨습니까?”
“흐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술은 유통하는데 쉬운 물건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유통과정에서 술통이 깨져 손실되기도 하고 상하기도 합니다. 또, 술의 특성상 부피도 매우 크지요. 다른 고급 상품을 한 수레 가득 실었을 때와 비교한다면 판매 수익도 그렇게 높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자꾸만 단가를 후려치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아 구석에 앉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이를 지켜보는 용운의 눈초리가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쓰읍. 양심있는 상인이라고 해서 그동안 해온 거래의 정도 있고 해서 기회를 주려고 한 건데...’
형님이 주저리주저리 떠들면서 마지막까지 계산을 해보면서 떠들고 있는데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한 청년이 뭐 씹은 표정을 하고선 형님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 메메트는 심장이 덜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뭐지?...내가 놓치는 것이 있어. 분명. 저 자는 누구인데 저렇게 쳐다본단 말인가.’
메메트는 용운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용운을 인식하고 나자 수호진이 용운을 슬쩍 슬쩍 보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예전의 우루무치에서 자신의 경험이 맞다면 대리인을 내세운 뒤 현장을 살피는 거대상단의 실질적인 주인들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다.
이성적 거래는 형님이 잘하는 편이었지만 큰 거래일 때 발동하는 메메트만의 촉은 가끔이지만 괜찮은 결과를 낳았는데 지금 자신의 촉이 말하고 있었다. 형님이 내뱉으려는 말을 막아야 한다고.
‘호진님이 지금의 거래를 이끄는 이가 아니란 말인가?’
메메트의 표정이 옆에서 시시각각 바뀌는 것을 보면서 함둘라는 동생 녀석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구는구나 싶어하면서 혼자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리 주변으로부터 마음 좋은 상인으로 인정받고 있다곤 하지만 함둘라는 상단을 이끄는 상단의 주인이었다. 이들이 가져온 물건이 잘 팔릴지 안 팔리지 함둘라 입장에선 확신할 수 없었다.
때론 기가 막힌 상품이라고 생각해서 매입했다가 손해를 본 적도 있었고, 때론 기대한 적 없었던 상품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의외의 소득을 올린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 맥주란 물건처럼 처음 매입하는 물건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는 경험이 많은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건 신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앞에서 벌고 뒤에서 깨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이지.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갖다 바치는 건 안 될 일이야.’
심사숙고를 거쳐 얼마나 이윤을 가져갈지 말을 하려는 함둘라를 메메트가 말렸다.
“잠시만...잠시만 형님과 둘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응? 메메트...그렇게 중요한 일이냐?”
“편한 대로 하십시오. 서로 걸리는 거래를 해선 안될 일이니까요.”
“감사합니다. 형님, 나와 따로 이야기 좀 합시다. ”
“허어...너 이녀석! 지금 무슨 짓을...”
메메트는 쿠야시아이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겠다 싶어 형님을 끌고 나온 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형님,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새로운 상품이고 우리가 위험부담을 가져가는 조건으로 매출의 4할 정도면 충분하지 싶구나.”
“이 물건만 볼 겁니까?”
“이 물건만 보는 게 아니면? 뭘...아!”
함둘라는 메메트가 뭘 지적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설마 쿠야시아이의 4인을 말하고 싶은 게냐?”
“그렇습니다. 형님. 우리 함둘라 상단이 카슈가르 제일의 상단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우루무치까지 영향력을 뻗치지 못하고 머무르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무력 아닙니까?”
청해의 곤륜이라든가 감숙의 공동, 서장의 포달랍궁처럼 호랑이 역할을 해줄 절대적 강자가 고창회골이 망한 뒤의 이 땅엔 없었다. 덕분에 흑도무리라든가 정파를 표명하곤 있으나 자잘한 군소문파들의 힘을 등에 업은 우루무치 상인들의 텃새에 밀려 함둘라 상단은 카슈가르 지역만 먹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쿠야시아이가 뭐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무려 화경의 고수가 무려 4명이라는 겁니다. 하나의 성에서 몇 명 있을까 말까한 강자가 무려 4명이나요. 그것도 하나의 집단에 속해 있다는 거죠. 만약 그들이 우리를 도와준다면 어떻겠습니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저 존재감을 드러내고 우리의 뒤를 지켜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우루무치에 들어갈 초석을 쉽게 쌓을 수 있습니다.”
“적당히 보호세라고 치고 조금만 이윤을 챙겨라?”
“아니요, 우리는 이 거래에서 그저 손해만 안 보면 되는 겁니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이 나름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어 가져왔어요. 고맙게도 함둘라의 신용을 믿고 온 무력집단에게 상인들의 잣대로 계산을 하려고 들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형님에게 굳이 촉이 어떻다느니 말하는 것보단 이것이 나을 것이다. 내 직감이 말하고 있다. 이 건은 생각보다 큰 건이라고. 하지만 형님이 그런 말에 넘어오실 분은 아니지...’
메메트의 말은 조목조목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함둘라는 자신의 나이가 들었는지 시야가 너무 좁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내 생각이 짧았다. 꼭 돈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겨야 하는 법인데...내가 악수(惡手)를 둘 뻔했어...고맙구나. 메메트.”
“아닙니다. 형님. 이렇게 제 말을 들어주셔서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술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둘째 녀석이 어느새...이만큼 컸구나. 허어...
둘이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자 수호진은 용운에게 물었다.
“교주님, 어떠십니까? 저들이 좋은 값을 쳐줄 것 같습니까?”
“네.”
용운의 표정이 좋지 않아 탐탁지 않아하는가 싶었는데 용운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수호진의 예상과 달랐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용운은 시장을 돌면서 함둘라 상단의 현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이미 상인들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동생이 눈치가 좀 빠른 것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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