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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42화 (42/132)

42화

함둘라 3형제는 가판 음식점으로 시작해 장사를 넓혀왔고 마침내 카슈가르에서 제일 가는 상단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형제가 세운 장사의 원칙을 4글자로 표현하면 ‘견리사의(見利思義)’.

자신들만 이익을 더 크게 봐 상대방으로 하여금 원한을 만들어 후환(後患)을 만들 상황이 오는 것을 피하고 자신들과의 거래가 언제나 쌍방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이해시킴으로써 신용을 쌓는 것이 이들의 거래 원칙이었다.

이들을 지금의 거부(巨富)로 만들어준 것은 다른 상인들처럼 돈만 쫓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쌓아올린 신용이었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거래가 아니라 이익만을 쫓았던 이들은 자신들과 같이 가판 장사를 시작했음에도 잘되어 봐야 기껏 상점 하나를 냈다는 것이 이를 입증했다.

함둘라에게 있어 정확히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수천수와 수호진 부자가 가져오는 물건은 언제나 하자가 없었다. 그것은 이들이 믿을 만한 물건을 팔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였고 자신들처럼 신용이 뭔지 알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예전엔 수천수는 양을 키우는지 양가죽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가져와 팔았다. 그러나 20년 전쯤부터 외부활동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아져 아들인 수호진이 사람들과 함께 물건을 가져오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기이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건 수호진과 많이 닮은 젊은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수천수라고 밝힌 것이었다.

“하지, 이렇게 보니 정말 좋습니다. 함둘라 상단주. 오랜만이군요.”

“....누구신지?”

“접니다. 수천수.”

“지금 수천수라고 했습니까? 장난치는 겁니까?”

자신이 알기로 수천수에겐 아들은 하나뿐이었고 수호진 밖에 없는데 수천수보다 한참 어린 녀석이 나타나 수호진과 닮은 얼굴로 본인을 수천수라고 우기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가. 그러나 오랫동안 자신과 거래하면서 있었던 일화들을 몇가지 꺼내는 수천수의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젊은 사내가 수천수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수천수는 화경의 고수인가?’

그제야 수천수와 함께온 이들을 보니 수천수와 함께 온 3명의 사람들도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수천수의 의형제들과 닮아 있었다.

“그럼 혹시 이분들도?”

“맞습니다. 제 의형제들이지요. 기억하십니까?”

“아무렴요. 기억하고 말구요. 예전에 저희 상단에 물건을 같이 갖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이거 20년이 지났는데도 저희 얼굴을 다 기억해주셨군요! 하하하하. 우리가 그동안 쌓은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 화통한 웃음은 여전하십니다. 감축드립니다. 네분 다...”

‘네명이 다 화경?’

상단을 운영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녹림이라든가 사파라든가 혹은 흑도들과 얽히는 경우가 많아 무력을 필요로 하는 이가 많다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오랫동안 연을 맺어온 이들이 네명이나 무려 화경의 고수가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커흠,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밖에 다시 나오니 좋군요.”

“젊은 육체가 좋은 건 아닙니까?”

“하하, 물론 그게 제일 좋지요.”

“부럽습니다. 저는 이제 무릎도 슬슬 아프고 관절 여기저기가 아픈데...네 분은 회춘을 하셨군요.”

“함둘라 상단주가 그렇게 고생한 결과로 함둘라 상단이 카슈가르에서 제일 가는 상단이 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제대로 쓰지도 못할 돈보다 차라리 앞으로 더 많은 시간동안 누릴 수 있는 당신들의 젊음이 더 부럽군요.”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네명의 고수들은 고정적으로 찾아와 이전에 생전 들고 오지도 않던 균일하고 질 좋은 ‘모직물’들을 가져와서 팔았다.

함둘라는 수천수와 그 형제들이 번갈아가며 올 때마다 술과 식사를 대접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이 사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수천수와 그 형제들이 사는 마을에선 본인들이 태양과 달을 믿는다 하길래 함둘라는 이들의 마을에 태양과 달이라는 의미를 담아 ‘쿠야시아이’ 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이때부터 쿠야시아이라고 불린 마을에서 가져온 양의 털로 만든 모직물의 품질이 너무 좋아  구매해본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너도나도 구하고 싶다고 하는 열기가 붙었다. 덕분에 쿠야시아이 마을의 모직물 판매할 때 그렇게 많은 이윤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함둘라 상단을 찾아오는 이들이 워낙 많아 함둘라 상단은 거래하는 데 있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은 어디서 대거 사람을 모아서 만들기라도 하는지 적지 않은 양인데도 매주 일정하게 가져와서 팔았다. 심지어 저번에 왔을 때는 부드러운 양가죽에 하얀 털이 장식된 생전 보지도 못했던 양식의 옷을 입고 왔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빼어나 시선이 절로 갈 지경이었다.

“한번 구경해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저희들이 입은 옷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구경만입니까? 한번 입어 보세요. 아주 좋습ㄴ다.”

잠시 옷을 벗어뒀을 때 호기심을 숨기지 못해 슬쩍 쳐다봤는데 이를 본 두팔이 한번 입어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못 이기는 척 입어봤을 때 비록 크기가 잘 맞지 않아 대충 걸친 것이긴 했지만 그 부드러운 느낌과 포근한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가.

“흐음...다음에 오실 때는 이런 옷도 가져오실 수 있겠습니까?”

“이 옷은 저희 마을을 이끄시는 분께서 직접 만드신 거라 매우 귀한 물건입니다. 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마을을 이끄는 분? 화경의 고수임에도 존대를 표하는 이라니? 그동안은 수천수가 촌장인 것처럼 보였는데...내가 잘못 본 것인가? 아니야..태양과 달을 믿는다 하였으니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주술사같은 존재를 말하는 걸거야.’

“그렇겠지요. 매우 귀해보입니다. 따뜻한 옷은 대체로 무겁고 거친데 네 분이 입은 이 옷은 가볍기도 매우 가볍고 한없이 부드러운 게 마치 아기 피부같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구하려고 한다고 해서 구할 물건은 아닐 귀한 물건으로 보입니다.”

“한번 제가 조심스레 부탁을 드려보겠습니다. 아마도 제 부탁이라면 들어주실 겁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꼭 좀 부탁드리고 싶군요.”

“우리 인연이 하루 이틀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다음에 올 때 좋은 대답을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거이거. 쿠야시아이의 의형제분들에게 제가 오늘 단단히 대접을 해드려야겠군요.”

그렇게 그들이 말한 다음이 바로 오늘인 것 같았다.

하얀 모자를 쓴 소녀와 함께 그때 그 옷을 입은 수호진과 사람들이 함께 찾아왔을 때 함둘라는 확신했다.

배불리 먹고 차 한모금을 마시면서 좋은 거래를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자꾸만 그 옷이 생각나 들뜨려는 마음을 가라앉힌 함둘라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호진님, 오늘은 무슨 거래를 하러 이렇게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매우 궁금하군요.”

“함둘라 상단주님, 함둘라 상단과 그동안 저희 마을이 거래를 한 이후로 함둘라 상단주께선 저희들에게 후하게 물건 값을 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물건을 판매하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한 상단도 역시 함둘라 상단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그동안 박하게 굴지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약간의 공치사를 나눈 수호진은 준보를 불렀다.

“준보야, 그 물건을 가져오거라.”

“예.”

덩치가 좋은 준보가 밖으로 나가 커다란 나무통을 들고 오자 함둘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이 부탁한 옷은 저렇게 커다란 나무통같은 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옷을 보관하는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기라도 한 건가?’

“이게...무엇입니까?”

“이번에 저희 마을에서 새롭게 만든 것입니다.”

수호진은 쇠로 주변을 꽉 조여놓은 나무통의 아래 부분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꼭지를 돌려 준비해온 주석잔을 꺼내 받았다. 숙성된 맥주에서 나오는 맥주향기를 한번 들이켠 수호진은 쭈욱 들이켜고 싶었지만 거래를 위해 참았다.

“흐음. 잘 숙성되었군요.”

“술입니까?”

‘옷이 아니라 술?’

“한번 드셔보시지요. 드셔보시면 정말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기대했던 물건과 전혀 다른 물건을 꺼낸 수호진이 잔에 받은 액체가 술이라기에 무슨 술이길래 이렇게 자신 있게 들이미는지 함둘라는 궁금해졌다.

‘하얀 거품이 가득한 술이라니...’

쇠로 된 잔도 특이한데 거품이 덮고 있는 술에는 차갑게 식혀진 술이 담겨 있었다. 주위를 슬쩍 보니 자신이 이를 마시길 기다리는 쿠야시아이 사람들의 눈빛에서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런 자신의 형님이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독살에 대한 우려로 오해한 메메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모르는 척 나섰다.

“이거이거. 제가 술을 정말 좋아하는데 형님보다 술을 좋아하는 제가 한번 먼저 맛을 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형님보다 술맛을 더 잘 압니다. 하하”

“상관 없습니다.”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 자신이 마시겠다고 한 메메트는 형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비장한 각오를 하고 한모금 들이켰다.

‘크윽! 역시 독인가!’

목구멍을 따라 흘러들어온 술때문에 처음 경험하는 따끔거림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메메트는 형님이 복수를 해주리라 믿고 눈을 감은 채로 곧 찾아올 죽음을 각오하였다.

‘독치곤 향이 좋군. 쌉싸름하면서도...나쁘지 않은 죽음이야. 형님, 아우, 이렇게 갑니다.’

그러나 메메트에겐 어찌된 일인지 각오한 죽음은 찾아오지 않았고 도리어 기묘한 만족감이 찾아왔다. 분명 독주(毒酒)일 것이 분명함에도 풍미가 느껴지고 마치 차를 마시기라도 한 것처럼 입안에 가득했던 기름기를 씻어내주어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다시 눈을 뜬 메메트는 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눈빛에서 이것이 독주가 아니라 그제야 평범한 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독이라고 생각한 건 내 착각이었나? 아닌데...분명 술이라면 느껴질리 없는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그건 무엇때문이었지?’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었지만 메메트의 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닫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끄으으억. 이런!"

자신도 모르게 시원하게 트림을 해버린 메메트는 화들짝 놀라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죄송합니다...귀한 손님들이 계신 앞에서 제 동생이...이 무슨! 그 정도는 알아서 조절해야지. 이녀석아! 이게 무슨 추태냐! 아이고, 술이라면 아주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이 손님들께서 주신 술도 빼앗아서 마시더니! (손님들 나가고 보자꾸나. 으득)"

"아, 아닙니다. 형님! 제가 그럴려고 그런 게 아니라..."

메메트는 억울했다. 목구멍을 비집고 솟아 오르는 것을 어찌어찌 참아보려 했으나 기어코 트림이 올라와 입 밖으로 삐져 나와버린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형님을 위해 비장한 각오를 했건만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타박만 하는 형님께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 아우는 혀, 형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바치려고 했건만! 이런 아우의 마음은 몰라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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