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41화 (41/132)

41화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알았으니 이젠 해결책을 구해야 할 때였다.

“아무래도 한번 시장을 둘러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신교의 재산을 보면 가을이 되면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것이었지 지금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은 투자여력이 아직은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정확한 투자대상을 골라내기 위해선 어떤 종목이 좋을지 현장에 나가서 실사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재산목록을 들춰보며 뭘 가지고 투자를 해볼지 뒤적거리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수호진 장군이 나를 찾아왔다.

“수장군님이 무슨 일이세요?”

대련의 상대가 사호법으로 바뀐 요즘은 수호진 장군이랑 딱히 대련할 일도 없었다.

“바쁘십니까?”

“아뇨, 그렇게 급하진 않아요.”

“그게...다름이 아니라...”

어렵사리 입을 연 수호진 장군의 말은 이러했다. 그동안 자신들과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대의 일원들은 날이 풀리면 암염을 채취하러 가거나 사냥을 하면서 자신들의 가족을 먹여 살릴 것을 벌어왔다. 그러나 사호법이 물자를 조달한 이후로 수호진 장군과 수호대는 딱히 할 일이 없어져서 그저 단련을 하는 것 이외에는 휴식을 위해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힘듭니다. 교주님.”

“왜요? 집에서 쉬는 게 좋지 않아요?”

“하하하...교주님, 집안을 이끄는 가장이 집에 오래 있는다는 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쉬면서 마음 편한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같이 처자식과 집에서 부대끼고 있는 저희들을 생각 좀 해주십시오.”

‘바가지 좀 긁히셨나보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무리 가장의 권한이 막대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밖에서 일을 하여 가족을 먹여살리지 않는 가장은 발언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가장들이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탱자 탱자 노는 것처럼 보이는 부인들의 곤두선 화살이 가장들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더구나 토끼같은 자식들이 어미의 뱃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가장이 어디 있겠는가.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임산부의 수발을 들고 있는 가장들이라면 집 안에 있는 게 오히려 가시방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어요?”

“네, 무척.”

수호진 장군의 표정은 진지한 것이 자신의 말대로 궁서체 그 자체였다. 그리고 수호진 장군이 이끄는 수호대의 가장들의 괴로움을 해결해주는 것은 나에게 있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시장을 가려고 외출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겐 도와줄 조력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이기에 절호의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나는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박하게 굴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다.

‘나는 관대하다! 하하하하.’

스스로 굴러들어와 저렴한 인건비로 노동력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박할 경영자는 어디에도 없지 않겠는가. 나는 수장군의 힘겨움을 위로하며 수호대의 일원들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한번 방안을 강구해보겠다고 한 뒤 수장군을 돌려보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구나!”

매번 구방기사 일을 하는 사호법은 마을을 지키게 하면 될 일이고 겨울동안 수련을 해서 몸이 근질근질한 수호대를 인부로 삼아 맥주통을 짊어지게 하고 카슈가르 외출행을 결정지었다.

투르키들이 주로 거주하고 후에 청나라가 세워지면서 신강이라고 불리게 될 이 동네는 현재 내가 있는 시점에선 명나라라고 볼 수 없는 지역이었다. 남만이라든가 북해라든가 불리는 새외 중 한곳이었으니까. 흔히 회회(回回)족이라고 불리는 투르크계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사람들의 생김새를 봐도 명나라 사람의 외모라기보다는 유럽과 아시안의 혼혈이라 동서양의 외모가 섞인 유라시안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고 문화 자체도 명나라의 문화와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교역이 활발했던 실크로드의 한 축을 담당했기도 했고 유목을 주로 하는 민족이 모인 지역이라서 그런지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우리들이 도시 안을 돌아다녀도 딱히 배타적으로 대하는 분위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온 지역은 북경의 100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로 후일 생겨나는 중국의 6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넓은 이 땅에서도 서쪽에 위치한 카슈가르라는 곳이었다.

카슈가르에 들어와 주위를 구경하면서 보이는 흙벽돌로 짓고 흙을 바른 가옥이나 상점들은 한족의 문화가 느껴지는 신교의 마을과 다르게 무척이나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길에선 사람들이 모여 이곳의 전통현악기인 두타르를 연주하기도 하고 투르크족 특유의 노래를 불러서인지 더욱 그러했다.

“교주님. 사람들이 뭔가 우리랑 비슷한데 또 다르고 그러네요.”

“저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가 그럴걸?”

“그래요?”

“왜?”

“사람들이 좀 쳐다보는 것 같아서요...제가 너무 예뻐서 그런듯”

“그건 아니고.”

“무슨 의미죠? 제가 예쁘지 않다는 건가요? 아니면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게 아니란 거야?”

“야야, 다진아, 얘 또 눈깔 뒤집혔네.”

옆에서 함께 걷던 준보와 경수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는지 슬쩍 뒤로 물러선다. 무표정한 상태로 나를 쳐다보며 묻는 다진이의 질문에선 한기가 느껴졌다.

‘왜 평범했던 대화의 장르가 갑자기 스릴러 내지 호러로 바뀌는 거니?’

다진이는 아버지가 이끄는 수호대와 내가 상인들을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따라오겠다고 떼 아닌 떼를 써 쫓아왔다.

모스크가 여기 저기 있는데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여성들이 두르고 있는 히잡을 보아하니 이 곳은 이슬람이 퍼져 있는 곳이라는 게 강하게 느껴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성임에도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다진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슬람 문화의 특징에 대해 정확한 상황을 설명해주고서야 우리의 대화는 다시 일상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얼굴을 천으로 감쌌던 거구나...난 또 여기 여자들은 추위를 많이 타는가보다 했지.”

‘뭐, 다진이가 예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준보와 경수는 이렇게 큰 시장은 처음 보는 것이라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느라 눈이 바빴다.

“교주님, 여기 봐요.”

다진이는 박처럼 생긴 것을 보고선 투르크어를 할줄 아는 경수를 통해 이게 뭐냐고 물었다.

“아, 이거 하미과라는 과일이래.”

“하미과?”

약간의 흥정을 하고 사자 상인은 하미과라는 것을 처음 본 우리에게 어떻게 먹는지를 알려주겠다면서 반으로 쓰윽 잘라냈다. 그리곤 한번 더 잘라 4조각 정도로 크게 자른 뒤 먹기 편하게 다듬어서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반으로 잘라낸 순간 안에 씨앗이 가득한 게 자주 먹던 참외인가 싶었는데 상인은 다듬으면서 씨앗을 걷어냈다. 코로 냄새를 맡아보자 향기는 내 코에도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이건?’

안의 과육을 한입 베어물자 입 안에 멜론 향기가 가득 퍼졌다.

‘멜론이 왜 여기 있어?’

나중에 검색해서 알았지만 하미과는 황도(皇都)에 있는 황제에게 진상할 정도로 귀한 과일이지만 여기에선 일종의 특산품같은 것으로 우리가 아는 멜론의 한 종류가 맞았다.

“이야, 이거 달달한 게 맛있다.”

입에 잘 맞았는지 경수가 하미과를 먹다가 어느새 딱딱한 껍질까지 씹어먹으려고 하자 우리가 하미과를 맛있게 먹는 걸 지켜보던 상인은 손을 저으며 경수가 껍질을 먹으려는 것을 말렸다.

“껍질은 먹는 거 아니랍니다. 교주님. 얘들아, 먹지마라.”

“경수야, 그걸 굳이 들어야 아니? 딱 보면 아는 거지. 봐, 누가 먹고 있냐?”

“뭐?”

멜론 정도는 먹어본 적이 있는 나는 당연히 껍질을 먹지 않았고 내가 먹는 것을 쳐다보던 다진이도 눈치껏 껍질이 먹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 먹지 않았다. 준보 또한 뒤에서 다른 상인에게 이 과일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묻느라 천천히 먹고 있어 껍질을 먹을 일이 없었다.

아무튼 분위기 메이커인 경수가 만든 해프닝 덕분에 순간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퍼져 나왔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이 동네가 실크로드의 한 축이라 교역으로 활발할 줄 알았는데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고 나서 육로를 통해 오가는 과거의 영광이 가득했던 땅 실크로드는 이제 메리트가 없어져서 예전만 못한 교역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육로로 물자를 옮기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해로를 통해 다니는 것과 비교했을 때 물류비용 측면에서 육로는 저렴하지 않았기에 실크로드는 예전만 못해졌다는 것이 시장상인들의 일반적인 평이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시장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바자르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시끌벅적했다.

카슈가르의 시장을 한바퀴 돌아보자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유목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지역이라 그런지 양이라든가 염소, 야크, 낙타같은 가축들을 사고파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길가에 평상을 펴고 이곳 사람들의 주식인 난이라든가 말린 과일이라든가 하는 것을 파는 이들도 있었다.

‘나쁘지 않은데?’

우리 입장에선 양과 염소와 같은 가축의 털만 필요한 상황이라 이를 키우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생산원료를 수급하기가 매우 수월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물론 모직물을 팔거나 옷을 파는 가게들이 시장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 부분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수력을 이용하여 모직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다 수동이긴 하지만 재봉틀이 있었다. 그러니 이 점은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세상에 어디를 가더라도 모직물과 이를 이용한 옷 제작에서 똑같은 수준 혹은 우리보다 저렴한 수준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이들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한가지 염려되는 것은 이곳이 이슬람 문화권이라 우리가 짊어지고 온 맥주를 팔 수 있을까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시장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술집들을 보고 괜한 고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수호진 장군이라든가 다른 어르신들이 맥주를 가져올 때 딱히 말리지 않았잖아?’

수호진 장군에게 이 점을 묻자 수장군은 웃으며 말했다.

“이들이 알라라는 신을 믿는 것은 맞지만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선 그렇게 교리를 따르지 않는 편입니다. 오히려 매우 술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다행이네요.”

“아마 맥주라는 것을 맛보면 이들도 금방 빠져들 것입니다.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교주님.”

시장을 둘러보며 어떤 물건이 사고 팔리는지 단가는 어떠한지 등에 대해 면밀하게 시장조사를 마친 우리는 신교의 사람들이 물건을 교역할 때 주로 찾아간다는 상인을 찾아갔다. 카슈가르에서 가장 큰 상단을 이끈다는 상단주 함둘라는 우리들을 보자 은은한 미소를 띠고 맞이해주었다.

“호진님,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함둘라 상단주님이야말로 그동안 건강하게 잘 계셨습니까?”

“나야. 보시다시피 호진님처럼 내 가게들을 찾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수장군을 맞이하여 팔을 벌려 안아주는 함둘라 상단주는 카슈가르에서 가장 큰 상단의 주인답지 않게 굉장히 온화하여 거만한 기색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신기하네. 저렇게 부자면 거만이 흘러 넘치고 그러지 않나?’

“식사들은 하셨습니까?”

“하하, 함둘라 상단주를 뵐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밥 먹는 것도 깜빡했지 뭡니까.”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내가 손님들에게 우리 식당의 자랑인 음식들을 선보일 기회를 빼앗겼으면 어떻게 하나 했습니다. 메메트? 손님들이 드실 음식을 내오라고 하거라.”

“네, 형님.”

상단주의 말에 그제서야 옆에서 시종인 것처럼 서 있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확실히 함둘라 상단주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시종인줄 알았는데?’

메메트라는 남자가 방에서 나가 준비한 걸 가져오라고 하자 사람들이 줄줄이 음식접시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함둘라 상단주가 있는 식당에선 고기가 듬뿍 들어간 라그만이라고 하는 볶음국수라든가 플로프라는 볶음밥같은 음식들을 팔고 있었는데 그 음식들인 것 같았다.

“차린 것은 얼마 없지만 맛있게들 드셨으면 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많이 준비하실줄 알았으면 죄송해서라도 식사를 하고 올 걸 그랬습니다.”

“허어~호진님 말씀이 참으로 섭섭하게 들립니다.”

“무엇이 섭섭하신지...?”

“이 함둘라가 그동안 먼 곳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들에게 식사대접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비추진 않았을까 걱정되는군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상단주님, 상단주님의 후의에 너무 감사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호진님이 이렇게 농담도 하시고 제 대접이 그렇게 박하진 않았나봅니다. 하하”

“감사히 먹겠습니다.”

“혹여 부족하신 게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해주십시오. 저를 찾아오신 손님이 배가 고파서 나가는 모습은 제가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이거 오늘은 허리띠를 풀고 먹어봐야겠습니다.하하하”

서로 공치사가 오가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평소 묵직한 모습의 수호진 장군과는 퍽이나 다른 비즈니스맨의 자세에 새삼 놀라웠고 손님들에게 진담처럼 농담을 건네는 함둘라 상단주 특유의 유머감각도 신기했다.

혹시라도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느라 불편하진 않은지 함둘라의 동생인 메메트라는 남자는 상단주의 형제답지 않게 우리들 옆을 오가며 시종일관 세심하게 살폈다..

덕분에 수호진 장군과 함둘라 상단주가 주도하는 시끌벅적한 식사는 식사자리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게 하면서 끝이 났다.

식사를 마치자 사람들이 들어와 다 먹은 접시들을 치우고 차를 내놓았다. 한모금씩 차를 들이켜고 차향을 만끽하고 있을 때쯤 함둘라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호진님, 이제 무슨 일로 오셨는지 이야기를 해볼까요? 오늘은 무슨 거래를 하러 이렇게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