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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40화 (40/132)

40화

“호법 할아버지들 오셨어요?”

다진이도 아이들이 외치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었는지 밖에 나와 있었다.

“들었어?”

“구방기사~구방기사~ 애들이 시끄럽게 외치는 소리가 워낙 커야죠.”

“가져오신 거 보니까 이번엔 소금 많이 구해오셨더라.”

“그래요? 다행이다.”

소금이란 소리에 다진의 얼굴이 환해진다. 다진이와 다진이 어머님은 매번 다진이 아버지께서 사람을 이끌고 수호진 장군이 위험한 산길을 떠나 며칠동안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이 많으셨다.

아무리 육체적 단련을 했다곤 하지만 운 나쁘게 지반이 약해진 곳을 밟아 대처할 새도 없이 떨어져서 육체도 온전히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호법들이 외부에서 물자를 조달해오면서 소금도 추가되었다. 그로 인해 굳이 험한 산길을 나가서 암염을 채취해야 하는 인원들이 있는 집들의 가족들은 무척이나 좋아했고 다진이와 다진이 어머님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산지대는 아무래도 고도가 높아 기압이 낮은 덕분에 전반적으로 미각이 둔해지는데 그 중 단맛과 짠맛을 잘 못 느끼게 된다. 그러니 저지대에서 소금을 쓰는 수준으론 음식 맛이 밍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치즈같은 일부의 음식에 한해서나 소금을 많이 써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염분만 섭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져 사람들의 식단에도 많은 변화가 발생하는 중이었다. 그 변화들 중 하나가 이전보다 늘어난 소금 사용량이었고 이로 인해 수장군과 다른 인원들이 소금을 구하러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회의가 있었으나 이번부터 사호법이 구해오게 되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었지.’

반대로 고산지대에 위치한 이곳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맛도 있는데 그게 바로 ‘감칠맛’이다. 이곳에서 만들어 먹은 피자에 깜짝 놀랐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기압이 낮은 높은 곳에 갈수록 감칠맛이 더욱 명확하게 느껴지는 특성 때문에 토마토 소스 특유의 감칠맛이 마치 폭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생긴 일이었다. 감칠맛을 느낄 만한 기회가 적었던 신교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음식임에도 피자가 환영받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토마토는 처음 보면 색깔 때문에 피가 연상되서 자칫 싫어할 수도 있는데 무척이나 맛있게들 먹었지. 난 내가 피자를 꽤나 잘 만들어서 그러는 줄 착각했던 거였고.’

“이게 이번에 새로 적용시키기로 한 보고서인가요?”

“예, 처음에는 회계를 담당하는 아이들이 다소 적응을 못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욱 편하고 자기들이 보기에도 좋아하더군요.”

“그래요?”

사호법이 물자를 조달하게 되면서 우리가 다루는 품목이 다양해지고 수량도 풍부해지게 되었는데 여기서 촉발된 문제가 하나 있었다. 호법들이 가져오는 보고서가 현대인의 눈인 내게는 산만한데다 깔끔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일개 편의점의 창고 장부보다도 못한 수준이었으니 어떠했겠는가.

‘학교 다닐 때 기초적인 수준으로 배워놓은 회계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배워서 남 주는 거 아니라는 말이 이래서 맞는 건가. 여기 있으면서 몇 번이나 다시 느끼네.’

숫자로 쓰면 될 걸 한자로 적게 되면 쓸데없이 길게 적어야 하는데다 숫자의 단위가 커지고 적어야 하는 숫자가 많아지면 가독성이 무척이나 떨어져 한눈에 명확하게 인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아라비아 숫자를 가르치고 간단한 복식부기 개념을 가르쳐서 물자의 사용량과 매입량 그리고 판매량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로 표현하게 된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한 장짜리 보고서였다.

‘아직은 살짝 미흡하네...근데 이대로면...안되겠는데? 사호법이 물자를 조달한만큼 사람들의 소비도 늘어서 그런 건가. 나름 풍족해졌는데 왜 가을이 되면 먹을 게 부족해지지? 그냥 사람들이 이전보다 많어서 그런 것 같다고?’

이전보다 나아진 보고서를 보아하니 한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수확을 하는 가을까지 지금 있는 재고량을 활용하여 판매도 하고 매입도 해야 하는데 현재 준비된 재고량으로는 추세상 가을이 되면 다시 예전 수준으로 먹을 걸 줄여야 식량난을 버틸 수 있을 걸로 보였다.

“아유, 이제 몇주면 애가 나오겠네. 나오겠어. 배를 보아하니 옆으로 퍼지고 둥글둥글 넓적한 게 아들 배겠어.”

“그래요? 배가 생긴 것만 봐도 알 수 있나요?”

“그럼~. 볼록하니 위로만 솟고 작으면 딸배고 옆으로 퍼져서 동그랗고 크면 아들배야~”

“에이, 희연이 엄마, 그게 뭐 백이면 백 다 맞는 이야긴가? 몇 달 전에 딸배라고 했던 집은 엊그제 아들 낳았어.”

“경험상 그렇다는 거야. 경험상. 여태까지 보통 대부분 맞았잖아?”

“그렇긴 하지.”

날이 풀려 나물을 캐러 나온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초음파 검사가 없는 이곳에선 저런 식으로 아들인지 딸인지 성별을 감별하나 싶었다.

“휴우...그나저나 걱정이네.”

이대로 가면 고난의 가을이 되게 생겼는데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고 그렇게 될 거라는 건 너무 나이브한 예측인 것 같았다.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며칠 머리를 굴렸더니 가슴이 갑갑해져 환기도 할 겸 산책하러 나왔다가 들은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머리에서 잘 떠나질 않았다. 주변 여기저기에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어 재잘재잘 시끄러워 산책 장소를 잘못 고른 건가 싶을 때 수호법이 찾아왔다.

용운이 뭔가 고민 중이라는 걸 다진을 통해 전해 들은 수천수는 며칠 지켜보다가 용운이 밖으로 나온 걸 보고 이때다 싶어 찾아갔다.

“교주님, 무슨 고민이 있습니까?”

“아니...그게 아니고...”

“허허, 이 태상호법에게 한번 털어놔보시지요.”

‘혹시 어르신이라면 아시려나?’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둘이 고민하면 뭔 수가 나오지 싶어 머뭇거리던 나는 입을 열엇다.

“이대로 가면 사람들이 예전처럼 먹을 거리가 없어질 것 같아요. 누가 훔쳐 먹는 것도 아니고 쥐가 들어서 파먹는 것도 아닌데 보고서 상으로 식량이 확확 줄어드는 게 보이니까 난감하네요..”

“허~ 우리 교주님께서 마을 사람들의 먹거리를 걱정해주시고 계셨구려.”

반로환동 후 사람들이 자기를 너무 어리게 보는 것 같다며 얼마 전부터 다시 기르기 시작한 짧은 수염을 예전 버릇대로 긴수염처럼 쓰다듬던 태상호법은 내 고민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지는가 싶더니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네? 어떻게 아세요?”

“허허, 교주님은 내 나이가 어디 뒷구멍으로 먹은 줄 아나 봅니다.”

“에이, 그런 건 아니구요.”

“교주님, 주변을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태상호법 할아버지의 말에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봄이 되어 파릇파릇 삐져나온 나물을 캐러 나온 아주머니들과 아직 양을 치러 다니기엔 어린 아이들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니 공원에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을 보는 것처럼 평화로워보였다.

“평화로운 장면이네요.”

“맞습니다. 정말 평화롭지요?”

“네.”

“그겁니다.”

이 선문답처럼 느껴지는 대화를 계속해야 하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며 용운이 태상호법을 쳐다보자 수천수는 아무리 교주가 신교를 이끌 신인(神人)으로 예지된 사람이라곤 하지만 19살이라는 나이에 맞는 모습을 보이자 그 어리숙함에 웃음이 나왔다.

“교주님, 작년만 해도 임신한 부인들이 이렇게 많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지금 교주님께서 보고 계시는 풍경처럼 시끌벅적한 일상같은 건 없었지요.”

“임산부가 많이 없었다?”

“말 못하는 미물조차도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새끼를 낳으려고 하지 않는 법이지요. 하지만 생명이 생동하는 계절이 찾아오고 먹을 것이 주변에 풍족해지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 스스로 새끼를 낳습니다. 그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아!”

경제성장기나 전쟁 이후에 사람들은 이전보다 나아진 형편을 실감하고 희망을 꿈꾸며 아이를 더욱 많이 낳는다는 건 이미 통계적으로 입증된 명백한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베이비 붐 세대들이 그렇게 등장하지 않았던가.

‘멍청이.’

마을에 물자가 풍족해지고 이전보다 따뜻한 공간이 생긴 이들이 뭘 했겠는가. 인간 본연의 생식활동에 나섰던 것이었다. 겨울은 밤이 길고 할 것은 많지 않은 시기이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제 알겠네요.”

“다 교주님의 덕입니다.”

“제 덕은요. 사호법님들처럼 신교를 위해 애쓰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 걸요.”

“그렇습니까?”

가던 걸음을 멈춘 태상호법이 내 눈을 지그시 쳐다봤다.

‘응?’

“그런데 왜 힘이 들 땐 혼자 끙끙거리면서 고민하시는 겝니까? 교주님에겐 저희들이 있고 신교의 교도들이 있습니다.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저희는 언제든지 교주님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알죠...”

사람들이 보내는 무한의 신뢰를 받는 사이 나도 모르게 마을 사람들에게 책임감이 생겨버렸다. 처음엔 지겹고 지루하고 보기 싫었던 산의 풍경은 마음에 자리를 잡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나도 여기에 익숙해지는 걸까?’

낯설었던 군에 입대했을 때도, 새로 들어간 알바 자리에서도 언제나 처음은 새로웠으며 힘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적응하고 나면 적응의 동물이라는 인간인 나도 거기에 익숙해지는 걸 발견하곤 했다.

상념에 빠진 교주에게 태상호법이 다시 말을 걸었다.

“교주님, 양치기 생활을 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네, 저도 어릴 땐 친구들하고 양치러 많이 다녔죠.”

준보랑 경수 그리고 다진이랑 하루가 멀다하고 숱하게 뛰어다녔던 때가 용운에겐 있었다. 처음엔 양을 쫓느라 바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론 빠른 양을 앞으로 보내 나머지를 이끌게 만들고 뒤에서 세월아 네월아 걷는 법을 배우게 된다. 가끔 말을 안 듣는 양에겐 채찍질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저 조용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교주님은 신교를 이끄는 양치기입니다. 신교의 일원인 저희들은 그런 양치기의 인도를 받는 양이지요.”

태상호법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릴 적에 몇 번 가봤던 교회에서나 들었던 누구 누구님은 나의 목자시니, 뭐 그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법 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수천수는 손자뻘인 용운과의 대화가 퍽 즐거웠다. 말귀가 어두워 가르침을 전해도 제대로 못 알아먹는 아해들과 다르게 용운은 척하면 착하고 잘 알아듣는 아이였다. 언젠가 용운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거인이 되어 버리고 나면 지금 용운이 보이는 어리숙함이 추억으로 보이는 때가 올 것이었다.

‘그리고 난 이 때를 교주의 앞에서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는 날이 오겠지.’

따사로운 봄볕이 산 아래의 넓은 들판을 적시며 봄놀이를 나온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온기를 전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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