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호법님 말씀대로면 만유인력에 대해 혼자 곰곰이 잠사(潛思)를 하다 불현듯 떠오른 직감에 휩싸여 이기어‘창’술을 깨우치셨다구요?”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아니...이게 무슨 스님이 LA가서 갈비 뜯어먹는 소리야...왜, 과학을 공부했는데 이기어창술이 튀어나와.’
분명 천체의 운행을 바탕으로 천마검술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기초과학을 가르친 게 왜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단 말인가. 더 웃긴 건 유웅 호법의 깨달음을 전해 들은 나머지 세분께서도 별차이 없이 유웅 호법처럼 각자 쓰는 무기에 맞춰 어검술 혹은 어창술을 익힐 수 있으셨단다.
‘이기어검술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소설에서 보면 진짜 엄청난 거라 아무나 못 익히는 거라고 그랬는데.’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이라든가 창 혹은 도끼와 같은 무기에 강기를 씌우기 위해선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인 화경이란 경지가 필수적이라고 하는데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무기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손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을 함으로써 비로소 강기를 발현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허공섭물이 초절정고수만 되어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검이나 물체를 내공을 이용해 강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면 이기어검술은 손에서 멀리 떨어진 검을 마치 자신의 손으로 잡고 운용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검강을 만들어내고 검술을 시전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 둘의 차이점이었다.
물론 손에서 멀리 떨어진 채로 강기를 피어올리는 이기어검술은 손에 검을 쥔 채로 강기를 만들어 내는 수준보다 더 높은 경지를 필요로 하는 기술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이기어검술은 보통 화경의 중급 내지는 상급에 다다른 이들이나 사용가능한 기술이라는 것이 무림의 통념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호법이 이 통념을 가볍게 즈려밟은 것이다. 화경의 초입에 올라선 것이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이들이 이기어검술을 쓰는 것은 무림의 상리에 크게 어긋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허허허, 그간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교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너무 허무맹랑한 것 같아 솔직히 배우면서도 진정으로 믿지는 못했는데 가르치시는 내용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니 가르치시는 내용이 모두 이치에 맞고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진심으로 믿고 이해한 뒤 받아들였더니 이렇게 무공의 경지가 오르게 되더군요. 이런 귀중한 지식을 가르쳐주신 교주님께 저희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주님, 이것 보세요! 내가 이기어창술을 익혔습니다! 이 장두팔이! 하하하하하.”
“이게 왜 되는 거냐?...아직 화경 초입 맞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장비처럼 생긴 양반이 창에 강기를 띄워 하늘에 날리면서 드론을 날려대는 아이처럼 신나서 자랑하며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그 옆에선 막내 호법은 옆에서 혼자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이 되긴 되는데 이러면 안된다면서 중얼거리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두팔 호법님...이기어창술을 쓰는 고수면 좀 진중한 느낌이 들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자룡 호법님은 쓸 수 있게 되면 그걸로 된 거지...왜 되면 안된다고...?’
무슨 연날리기 싸움도 아니고 장두팔 호법과 관자룡 호법의 창 두자루가 전투기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며 하늘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이어 다른 호법들의 손을 떠난 두 개의 무기도 떠오르자 네 개의 검과 창에서 강기가 덧씌워진 채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 어질어질하네.’
드론처럼 얽히고설키며 날아다니는 검과 창을 보고 있자니 팟하고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현경에 올라 강환을 만들어내면 나중에 저기에서 미사일처럼 응축된 강기가 발사되고 그런 건가? 오우야.’
지금 사호법이 사용하는 이기어검술&창술의 시연을 보고 있으면 그저 인파이팅하는 복싱선수처럼 검과 창이 서로 맞부딪히며 대결을 하고 있었지만 이들의 경지가 더 오르고 나면 언젠가 미군이 운용하는 리퍼’라든가 ‘그레이 이글’같은 공격용 드론으로 헬파이어같은 정밀유도폭탄처럼 발사하여 살상을 하는 것처럼 원거리에서 강환을 날려 적을 손쉽게 타격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이 아이디어는 되도록 알려주지 말아야겠다...혹시라도 사호법이 미쳐서 무림맹주를 이걸로 암살했다간 일월신교를 부흥 시키긴커녕 마교 부활했다면서 온 중원이 쳐들어올라.’
강환을 쓸 수 있는 현경에 아직 오른 이도 없건만 괜한 마음에 미리 스스로를 단속했다.
아무튼 유웅 호법의 발견(?) 덕분에 노하우를 전수받은 나 또한 완벽한 이기어검술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막대한 내공을 바탕으로 짝퉁 이기어검술을 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호법들의 과학 학습에 열기가 붙었다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었다. 정작 가르치는 당사자인 나로선 그저 천체의 운행만 가르치고 그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이 살짝 들긴 했지만.
너튜버로서 좋았던 것은 유웅 호법의 발견 덕분에 영상 컨텐츠가 하나 제대로 뽑혔다는 것이었다. 【무림고수에게 만유인력을 가르치면 이기어검(창)술을 씁니다.】라는 어그로 강하게 끌릴 제목의 영상으로 사호법이 현란하게 검과 창을 하늘에 날리는 모습이 내가 운용하는 이기어‘폰’술에 의해 기깔나게 찍혔다. 찍은 소스를 편집자에게 보내주니 그녀의 손을 거쳐 BGM까지 깔렸고 이 모든 영상 컷 하나하나가 마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나 볼 법한 클라이막스처럼 박진감 넘치는 영상으로 완성되었다.
-아...교주님의 큰 뜻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걸 위해서 그동안 지루한 과학공부를...
-난 그래도 공부는 좀... 편하게 집에서 너튜브 보려고 했다가 과학공부라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캬아, 내가 만유인력을 제대로 공부 안했던 거였나...아직까지 내 손에선 강기가 안 생기는 거 보면?
-앞으로 이기어검술 못 익히면 만유인력을 제대로 못 배운 게 국룰이다.
-이게 그 바람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건가?
-어허, 윗분 그거 여기 아닙니다.
-무림에 과학을 풀면 무림세계가 스팀펑크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무림고수가 진화하는 거였????
-마벨~ 뭐하냐고 영상 연출 교주님한테 배우라고~아시안 고수는 검과 창을 미사일처럼 날리면서 싸운다니까? 고작 화살 날리고 끈 날려서 서로 묶는 걸 싸운다고 하지 않는다 이 말이야!
-크크큭,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맙소사!!
그 밖에도 별별 반응이 넘쳐나는 걸 보니 30만을 넘긴 조회수도 그렇고 사람들이 무림고수들의 현란한 이기어검(창)술이 담긴 영상을 보며 즐거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많은 댓글들 하나 하나 일다가 좋아요가 잔뜩 찍힌 댓글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위에 사람이 올라타면 검선 여동빈이 사용했다는 어검비행술 아니냐? 다음 영상은 어검비행하는 각?
“어검비행술?”
어릴 적 TV에서 봤던 스케이트 보드 혹은 근두운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손오공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괜히 나도 미스타 손처럼 스케이트 보드가 타고 싶어 부모님을 졸라 스케이트 보드를 사달라고 해서 한동안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연습을 무던히도 했었다.
어검비행술은 검을 이용해 스케이트 보드나 근두운처럼 검 위에 올라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술이었다.
‘미스타 손이 타고 다니던 건 일종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자동주행 기능이 있는 탈 것이었으니 이거랑 경우는 살짝 다르겠지만...’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검은 사람의 몸을 위에 얹고 날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인공지능이라든가 에고같은 기능따위 기대해선 안되는 그냥 철검이었다. 그러나 나도 피가 끓는 청소년기의 남자인지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무럭무럭 끓어 올랐다.
“좋아!~”
인터넷에 올라온 게시물들 중에는 간혹 전기코드를 꼽아놓은 콘센트를 물 위에 띄워놓고 풀장 안에서 맥주를 즐긴다거나 높은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등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무모한 짓을 일삼는 남자들을 다룬 영상들이 있었다. 보통 게시물의 제목은 ‘남자들이 죽기 전 많이 한 유언 순위’였고 ‘괜찮아, 안 죽어.’라든가 ‘설마 죽을까봐?’라는 내용이 댓글로 올라와 좋아요를 받곤 했다.
모두 호기를 부리는 남자들이 생명을 담보하면서 철없이 위험한 짓을 한다는 걸 우습게 표현한 댓글이었다. 지금 내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놓는다면 딱 그런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설마~ 죽겠어?”
잡고 있던 검에서 손을 떼고 이기어검술을 시전한 나는 검의 위치를 내려 마치 보드를 타는 것처럼 검 위에 올라탔다.
“어어? 되나? 된다! 된다!”
서서히 검을 지면으로부터 점점 높이 띄우자 비행기를 타는 것과는 다른 부유감이 몸을 감쌌다. 대충 내 키보다 살짝 높이 띄워놓은 검 위에 서 있던 나는 살짝 심호흡을 하고 검을 전방으로 가속시켰다. 이어지는 결과는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이어졌다.
“엌.”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처럼 위 아래로 상하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중력의 영향을 받기에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딱히 잡을 것이 없는 공중에서 철 막대기나 다름 없는 검 위에 서 있는 채로 검이 휙하고 앞으로 움직인 순간 검 위에 얹혀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나는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초절정 고수에 오른 신체 밸런스 능력 덕분에 바닥을 나뒹구는 사태는 발생하진 않았다. 내가 만약 호기를 부려 처음부터 쓸데없이 너무 높은 곳 위에서 검을 출발시켰다면 낙법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가차 없이 낙상(落傷)을 당하고 말았을 거다.
“흐음...맞아. 안전벨트도 없는데 검만 가속해서 빠져 나가면 당연히 난 떨어지겠지. 생각해, 용운아.”
몇 번이고 검 위에서 떨어지며 연습을 하고 나자 대충의 감을 익힐 수 있었다.
“스노우 보드나 스케이트 보드 타는 거랑 비슷하네.”
속도를 점차 가속하면서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검을 젖혀 기울기를 바꾸면 검이 날 받아줘서 떨어지지 않았다.
보드를 탈 때 어느 정도 중급자 이상이 되면 닫힌 자세가 아니라 살짝 열린 자세로 포지션을 바꾸는데 이 포지션을 적용하여 슬라이딩턴을 하듯 체중이동을 했더니 공중에서 좌회전을 하거나 우회전을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미끄러지듯이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공중을 날아다녀 보니 어검비행술이 보드를 타는 것과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체중을 실어 압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압하여 속도가 더해지는 보드와 다르게 어검비행술은 오로지 내가 어느 정도로 내공을 부여하느냐가 속도를 높이고 낮추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자유로이 검을 타고 하늘을 날며 그 감각에 취한 나는 어느 영화의 주인공의 대사를 내뱉으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I’m king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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