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36화 (36/132)

36화

-뭐지? 채널 잘못 들어온 건가? 이상하다. 채널명은 맞는데요...

-하하하, 그러니까 천동설을 믿고 있던 중세의 중원인에게 지동설을 가르치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건가?

-이건 천문학 컨텐츠인가요? 아니면 역사 컨텐츠인가요? 갑자기 졸음이...

-전 수포자였습니다. 교주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저희들이 그동안 교주님의 은혜도 모르고 너무 나댄 것 같습니다. 선녀님 영상 올려달라는 댓글 더 이상 달지 않겠습니다. 그냥 편하게 올리고 싶은 영상 올리셔도 됩니다.

-왜 퇴근을 해서 집에서 쉬질 못하고 갑자기 인강을 보는 느낌이지...

-아, PTSD 온다~

-어질어질하네.

-문과 놈들! 이까짓게 뭐 어렵다고!

-그러는 이과 놈들도 중국 역사는 무지하죠?

영상을 본 사람들의 댓글 반응이 이렇게 줄줄이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겨울 내내 매번 나무를 깎아서 뭘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계절이 풀리고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돈이 좀 늘어나야 새로운 일을 진행해볼 가닥이 설 상황에서 딱히 찍을 영상 컨텐츠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가운데 편집자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러다간 찍어놓은 영상을 우려먹게 생겼다면서 날 압박했다. 무엇이든 영상을 찍어서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지속적으로 갉아먹기 시작했다.

고민의 끝에서 하루하루의 초조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결국 천마검법을 개량하기 위해 공부를 하기로 약속한 사호법에게 물리학이니 천체학이니하는 학문을 가르치기에 앞서 기초를 다질 겸 중고등학생들이 배울 법한 과학과 수학을 가르치는 것을 컨텐츠로 삼기로 했다.

강의 시작 전 이들에게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도록 숨겨놓고 영상을 찍기로 마음 먹었는데 영상을 찍기 시작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아 과연 내가 이 컨텐츠를 밀고 가는 것이 맞는지 당시의 회의감이 들었다.

처음 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암담할 뿐이다.

“쉽지 않았지...다시 하라고 하면 그땐 안하고 만다. 나 혼자 무공을 만들고 말지. 에휴. 그나저나 할아버지들 낼모레 시험인데 공부들은 잘 하고 계시나?”

“....그러니까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元地方)이 아예 틀렸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하늘은 둥글지 않고 땅은 네모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땅이 둥글면 둥글었지 네모난 것과도 거리가 멉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말씀이신지? 땅이 둥글다니요? 교주님도 참. 재밌는 농담입니다.”

“농담 아닌데요?”

하늘에서 내린 천자(天子)가 있어 하늘의 권위를 지닌 천자만이 하늘의 이치와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천자관이 상식인 이들에게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는 천동설이 틀렸다는 강의는 그렇게 반발로 시작되었다.

태양이 우주 혹은 태양계의 중심에 있고 나머지 행성들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는 지동설은 그 자체로 천자관을 반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단순한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이들의 입장에선 지동설이 엄청나게 충격적인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 어찌 보면 정상이었다.

엄밀하게 현대 우주론에선 우주의 중심같은 것 없이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라 천체들이 운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어 지동설조차 정확하다고 보지 않고 있긴 했지만 이들에게 그 정돌 깊게 설명할 필요가 당장 없었다. 중학생에게 대학 물리를 가르칠 순 없는 법이 아닌가.

한자를 쓰는 이들이 천동설을 기본적 개념으로 익힐 수 밖에 없는 것은 한자를 처음 익힐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한문 습자교본인 천자문이 원인이었다.

천자문은 4언절구의 한시(漢詩)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이 시대의 인간들이 익혀야할 기본적인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과 우주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는 서적으로 천원지방이라고 표현되는 천동설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생겼죠.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별을 곤여(坤輿) 혹은 대괴(大塊)라고 부르셨겠지만 앞으로는 지구(地球)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봐요, 구형으로 생겼죠?”

근대 일본에서 서양의 서적을 번역하면서 생겨난 일본식 한자어 지구(地球)라는 단어 대신 다른 표현을 쓸까도 했지만 지구라는 단어만큼 우리가 사는 이 땅을 한자로 표현한 것도 없어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지구의 형태를 그리자 자신들이 서 있는 땅이 거대하고 네모난 판의 형태가 아니라 둥글게 생겼다는 사실을 사호법은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특히 나름 학자티를 풍기는 유웅 호법은 배운 것이 더 있어서인지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 말이 틀린 이유가 있다면서 반례를 들었다.

“교주님...대괴..가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땅이 교주님의 말씀대로 둥근 ‘지구’라면 말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점이죠?”

“만약 이 세상이 둥글게 생겼다면 저희는 땅에 붙어있지 못하고 진작에 미끄러져 떨어졌을 것 아닙니까?”

“둘째 말이 일리가 있어! 이상하군요. 교주님.”

나는 이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했었다.

흔히들 인간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현대인은 사실은 아니지만 사과나무썰과 함께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리며 중력을 이야기할 것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중력은 만유인력과 함께 자전에 의한 원심력을 합한 힘을 말하므로 중력과 만유인력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표현이었다.

하지만 당장 지동설을 처음 들은 이들에게 거기까지 풀어서 말하면 너무 어려울 것이기에 나는 대충 만유인력을 중력과 동의어로 설명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끼리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우주에 있는 두 개의 물체들은 그들의 질량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때문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접하고 있는 가장 크고 무거운 존재인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에 의해 땅에 붙어있는 겁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네 가지 힘 중 하나인 중력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해폭포나 비는 왜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지는지와 같은 예시들을 비롯하여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실제사례를 가지고 설명하자 사호법은 비로소 자신들의 세상이 결코 네모나지 않으며 하늘은 둥글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유웅 호법은 실로 반역도당이나 할 법한 무도한 소리를 교주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렸다. 하늘은 이 세상을 중심으로 돌지 않으며 중원이 이름 그대로 정확히 세상의 중앙에 있지 않다는 말은 자신들도 오랑캐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다. 교주가 그린 둥근 별 지구는 둥글기에 특별히 중심이 되는 곳이 없었다. 교주로부터 상식을 무너뜨리는 지식을 접한 유웅은 마치 알아선 안될 세상의 비밀을 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유인력이라...”

유웅은 배운 것을 확인하기 위해 중간고사를 보겠다는 교주의 말에 수업이 끝나고 저녁에 혼자 복습을 하다가 만유인력에 대해 기이한 직감이 떠올랐다. 해서 몸도 풀 겸 밖으로 나와 창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만유인력을 떠올리자 창과 자신이 연결되는 것 또한 만유인력이 적용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기묘하군. 기묘해.’

지구는 만유인력을 통해 창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었지만 교주의 말대로면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기에 아무리 만유인력이 강대한 힘이라고 하더라도 그 힘의 크기는 자신의 의지와 내공을 합친 의념으로 창을 끌어당기는 힘보다 작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창의 존재를 의념으로 인지한 유웅이 내공을 부려 사용하는 허공섭물을 사용하지 않고 창을 손에서 떼었음에도 창은 놀랍게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허업!”

유웅은 자신이 이룬 것에 기겁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다면 자신이 방금 해낸 것은 ‘그것’의 시작이기도 했다.

“웅이 니가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형제들을 부르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나도 형님이 이렇게 방정맞게 우릴 찾아온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소.”

“형님, 뭔데 그리 놀라서 부른게요? 교주님이 가르쳐 준 것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공부를 했는지 확인하시겠다면서 이번주 금요일에 시험보겠다고 하시지 않았소. 소제는 아직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빨리 복습해야 합니다.”

“막내야...공부하고 있었느냐?”

“셋째 형님도 내일 망신당하기 싫으면 공부하는 게 좋을 거요. 저번에도 50점밖에 못 받지 않았소?”

“하아...이 나이에 공부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구나. 영 생뚱맞은 소리나 계속하시는데...(허숙희 여사~ 미안하오.)”

유웅은 심호흡을 하며 다소 진정이 되었는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의형제들을 조용히 둘러보았다.

“둘째 형님은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보시오. 말을. 할 말 없으면 가게.”

“그래, 둘째야. 이제 한번 말해보거라.”

“형님 그리고 아우들.”

오늘따라 유난히 분위기를 잡는 둘째에게 수천수도 동생들처럼 살짝 갑갑함과 함께 의문을 느낄 지경이었다.

‘얘가 왜 이래...교주님이 가르치는 걸 영 마음에 안들어하는 것 같더니...설마, 우리를 부른 이유가!’

“교주님께서 일전에 가르쳐주신 만유인력 있지 않습니까?”

수천수는 혹시라도 둘째가 교주님께 불경한 발언을 하지 않을까 싶어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야...”

자신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첫째 형님의 앞에서 유웅은 자신의 등에 있던 창을 꺼내 들었다.

“혀, 형님?”

“왜 창을?”

“내가 오늘 형제들에게 긴히 보여줄 것이 있어. 이렇게 여러분들을 불렀습니다.”

“흐음.”

수천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왼쪽 허리춤에 메인 검에 오른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동생인 유웅이 의형제들에게 해를 입히려고 한다면 빨리 제압을 하는 것이 상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서 빨리 형제들에게 자신이 깨우친 바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유웅의 눈에는 수천수가 검으로 손을 가져가는 모습 따윈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것 보시오!”

수천수의 예상(?)과 다르게 유웅이 창으로부터 손을 뗀 순간, 창은 공중에 떠 있었다.

“하...형님, 고작 허공섭물을 보여주고자 바쁜 이 소제를 불렀던 것이오? 아니!”

“형님....술 취하셨소?”

“웅아? 공부하다 미친 게냐?”

화경이 아니라 초절정 고수만 되어도 누구나 다 하고 남는 허공섭물이 뭐 대수라고 이 오밤중에 그 호들갑을 떨며 형제들을 모두 부른 것인지 세 사람은 유웅이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혹시 노망나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수천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토해내는 유웅을 보며 자신이 걱정하던 상황은 아니구나 싶어 검에서 손을 떼면서도 맛이 간(?)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들었다.

“둘째야...”

“형님 그리고 아우들. 난 고작 허공섭물같은 걸 자랑하고자 여러분들을 부른 게 아닙니다!”

“그럼?”

“보시오. 이게 내가 형제들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라오!”

유웅의 말과 함께 손도 대지 않고 공중에 떠 있던 창에서 강기가 솟아나왔다. 모든 검수들이 꿈에 그리는 기술.

검을 다루는 이들이 했다면 이기어검술이요. 창수인 유웅의 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니 이는 이기어창술이라 불러 마땅한 그것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삼호법들은 둘째가 노망난 건가 싶었다가 갑자기 보인 한수에 너무나도 놀라 비명을 토했다.

“웅아?”

“형님!”

“이게 무슨!”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