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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35화 (35/132)

35화

“어...태상호법 님의 말씀은...제가 화경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그, 그게 그러니까...”

“초절정의 끝과 화경의 초입 어딘가에 걸쳐져 있는 듯 하다는 게 화경이 아니라는 말 아닌가요?”

“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주님의 경지는 화경이 아닙니다.”

사호법과 함께 천마검법을 연구하기 위해 찾은 원로원에서 내가 화경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관호법은 혹시라도 내게 미련이 남지 않길 바라는지 칼같이 끊어냈다.

‘내가 화경이 아니라고? 내가 짭이었어? 그럼 내 검 위로 솟아오른 검강은 뭔데? 아니, 세상이 막 달라보이고 그랬다고!’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보자 확실히 사호법의 화경과 내 화경(?)은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그 중 가장 큰 차이라면 사호법의 경우 검강을 만들어낼 때 나처럼 힘을 불어넣는다기보단 의지를 불어넣으면 기운이 자연스럽게 따라와 검강이 형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화경의 경지에선 의지를 불어넣으면 기운이 모이고 그에 따라 이렇게 자연스럽게 검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교주님의 경우는 의지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전의 압도적인 힘의 분출을 이용하여 검강을 만들어내는데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검강인만큼 검강의 경계선을 자세히 보시면 저희의 것처럼 경계가 매끈하게 만들어지지 않고 거칠게 나타납니다.”

태상호법의 검강이 유악을 발라 구워낸 도자기의 표면처럼 매끄러웠다면 내 짭 검강은 종이를 찢어놓은 것처럼 경계선이 거칠었다. 나의 검강이 과연 진짜인지 그리고 내가 진정한 화경인지를 가늠하는 진품 감정(?) 시간은 내가 초절정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는 관호법의 확인사살과 함께 실망스럽게 끝이 났다.

내가 너무 실망스러워하는 것을 숨기지 못한 탓인지 사호법들은 내 주변에서 서성이며 나를 위로하려고 했다.

“교주님, 19세에 초절정이라는 것만으로도 무림 역사에서 어느 후지기수도 도달하지 못한 전무후무한 영역입니다. 심지어 교주님은 초절정의 초입도 아니고 화경을 넘보기 직전의 수준 아니십니까? 전혀 실망할 일이 아닙니다.”

이건 유웅 호법의 위로였고

“하하하하, 이건 우리 신교가 뻗어나갈 징조입니다. 징조. 19세에 초절정의 끝이라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교주님.”

이건 두팔 호법의 위로였고

“형님들...이게 우리가 위로할 일입니까? 우리는 겨우 70이 넘어 이제서야 이룬 걸 교주님은 20대가 되기도 전에 이루려고 하는 상황인데...입장이 뒤바뀐 게 아닌가 싶소. 나는....”

이건 관자룡 호법의 혼잣말이었다.

“교주님. 천천히 수련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화경의 경지에 오르는 날이 있을 겁니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 가짜 화경으로 생각하여 실망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교주님을 생각해보면 교주님은 지금 전 무림에서 가장 강한 19세인 겁니다.”

한 세대는 젊어진 얼굴로 날 위로하고자 하는 네 명의 정성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여러분들의 마음 잘 알겠습니다. 열심히 여러분들과 수련하면 언젠가 그 노력이 빛을 보는 날이 있겠지요.”

“아니...그러니까 이미 빛을 보았다니까...교주님은. 이건 아니지ㅇ. 웁웁. 퉷. 두팔 형님은 어찌 변소 갔다 와서 씻지도 않은 손으로 더럽게 소제(少弟)의 입을 막는 거요. 벱.”

“막내야! 스읍.”

“알았소. 그만하면 될 거 아니우.”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되고 난 뒤 나는 사호법과 원래 하고자 했던 천마검법의 개선을 제안했다.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본따서 만든 천마검법이 초절정 이상의 고수를 만들어 내기에는 상당 부분 부족한 면이 있다는 건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죠.”

“아무래도 지금 우리들만큼 고강한 경지에 올랐던 이들이 신교 내에 많았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가장 강한 이들이 탄생한 지금이야말로 천마검법을 한번 손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후대의 천마가 좀 더 수월하게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허허, 그거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수천수는 일월신교가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꺼낸 용운의 말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동의를 표했다.

천마검법의 근본은 신교의 교리와 닿아 있었다. 종교적 성향이 강한 일월신교에서 만들어진 검법답게 일월신. 그러니까 태양과 달을 신으로 보아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신의 뜻으로 보았고 태양과 달에서 전해지는 햇빛과 달빛이 세상 만물을 가리지 않고 전해지는 것은 일월신의 포용적인 은혜로움을 표현한다고 조상들은 생각했다.

천마는 그런 일월신의 화신체였고 천마검법이라든가 천마심법은 일월신의 화신체가 사용할 법한 무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즉, 신교에선 천마를 천상의 위대한 신인 황천상제(黃天上帝)와 동급으로 보았다.

‘아무래도 이 부분의 교리가 명의 황제가 되려던 주원장의 심기를 크게 거슬렀던 것은 아닐까 싶단 말이지.’

물론 몰락한 지금은 신교의 교인들이 천마를 바라보는 시각이란 권위 있는 촌장(?) 정도의 느낌 내지는 신정 일치의 사회였던 고조선의 단군왕검과 같은 느낌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제가 바꾸고자 하는 방향은 말이죠...”

나는 그동안 천마검법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를 궁리해왔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천마검법에 기하학(幾何學)과 동역학(動力學)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점, 직선, 곡선, 면, 부피 등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 분야인 기하학과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물체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물리학 학문인 동역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검법에 이를 적용시킨다면 꽤나 효율적인 검법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구상한 대로 개선작업을 진행시키기 위해선 사호법에게 물리학을 비롯한 학문적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선행작업이 필요했다.

용운의 설명을 통해 앞의 놓인 서책이 어떤 것인지를 모두 들은 네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서책들을 전부 공부하고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무공이라는 게 결국은 힘을 다루고 공간을 다루는 공부 아닌가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교주의 표정은 웃고 있었으나 사호법에겐 기이하게도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자룡은 용운이 저러는 게 본인이 화경이 아니라고 부정한 것이 기분 나빠 뒤끝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나이 70 넘어서 화경까지 오른 저희들이...천마검법을 탈바꿈시키기 위해 이 많은 서책들을 공부하는 게 맞는지...?’

수천수는 탁자 위를 가득 차지하고 있는 서책들을 보고 문뜩 불경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동생들도 있는 자리에서 입을 열지는 않았다.

“여러분, 배워서 남 주는 거 아닙니다. 공부에 나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옛말에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처음 듣는 말입니다만.”

“어허. 여러분!”

“전...체질적으로...서책은 잘 안 맞는...”

“하하, 두팔 호법. 공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공수련이라고 생각하세요. 일전에 말씀하시길 무공이라고 하면 두팔 호법께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제가 분명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 무덤을 내가 팠구나.’

두팔은 옆에 있던 둘째 형님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평소에 유식한 티를 다 내는 형님이 어떻게 한번 잘 말해보라고 눈치를 줬다.

“커흠, 교주님. 그...저희들끼리 이 많은 서책을 공부한다고 해도 공부를 모두 마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을 거...”

유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운이 두 팔을 벌리며 걱정하지 말라고 퇴로를 차단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할 겁니다.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제가 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고강한 여러분들이 지극정성으로 공부를 하신다면 이까짓 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분명 금방 마칠 것입니다.”

‘대수일 것 같습니다만...’

“교주님께서 저희들을 도와주신다고 하니...참으로 감사하군요.”

둘째의 시도가 단칼에 잘려나가는 것을 본 두팔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낼 모레가 희수(喜壽, 77세)인 자신이 어릴 때도 안했던 공부를 이제 와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인지라 다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 형님도, 둘째 형님도, 자신도 교주님의 의견을 돌려세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제 믿을 건 언제고 자신이 하고자 할 말은 해버리는 툴툴이 막내밖에 없었다.

‘막내야, 너만 믿는다.’

‘알겠소, 형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쉽게 잃지 않는 관자룡이 나서자 삼호법의 눈빛에서  관자룡이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줄 거란 기대감이 가득해졌다. 관자룡은 그런 형님들의 기대를 모두 등에 업고 장판파에서 조자룡이 조조군에게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도 유선과 감부인을 구출하였던 것처럼 사호법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교주를 향해 허리를 곧추 세웠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관호법. 우리 사이에 뭘.”

“천마 교주의 검법은 그 수준이 낮다고 하나 교주님이신 천마에서 천마에게로 이어지는 신교의 비전이었습니다. 저희들이 비록 호법이라고 하지만 감히 천마검법의 허실을 세세히 따지는 것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막내다!’

‘가히 신의 한수가 따로 없구나. 그렇지. 그렇지. 아무리 수준이 낮다고 모든 것을 공개하여 허실을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허허,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하더니. 과연 그 말이 맞구나. 잘한다! 내 동생!’

세 사람은 처음으로 70년이 넘도록 투덜거리는 저 입을 그동안 꿰메지 아니 하고 내버려 두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눈앞의 교주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비전을 함부로 아무에게나 보여선 안될 일이지요. 그러나 여기 계신 사호법이 제게 있어 어디 아무나라고 할 수 있는 분들입니까? 더구나 평생을 신교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 분들을 제가 교주라 하여 의심으로 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진정성과 신교에 대한 충성심을 믿습니다.”

“또한 신교가 영원토록 번성을 하기 위해선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미 화경에 오르신 여러분들이 각자의 시각으로 함께 천마검법을 뿌리부터 튼튼히 다시 쌓아 올린다면 앞으로 일월신교가 이런 산에 틀어박혀 사는 치욕을 다시 겪는 미래가 다시 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

교주는 우선 감성적으로 먼저 접근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합당한 근거를 대서 무참히 자룡의 날카로운 한수를 끊어냈다.

‘끝났구나...이 나이에 공부라니! 공부라니~’

‘허 여사...한동안 자네를 만나러 가기가 어려울 것 같소.’

절체절명의 논검비무에서 패하기라도 한 것처럼 교주의 입이 닫히는 순간 네 사람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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