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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32화 (32/132)

32화

스스로가 잘생겼다고 착각하던 두팔 호법과의 약간의 해프닝이 있고난 후 이로써 신교에 4명의 화경에 오른 고수가 있다는 것이 결국 신교 내에 알려졌다.

천수 호법이 예방 주사가 된 덕분에 화경의 고수가 늘어났다는 사실에 사람들의 반응이 약할 것만 같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저 간단한 호신기공만 익히거나 건강체조 수준 정도만 익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신교에 화경이란 대단한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 늘어났다는 것보다는 노인들이 회춘했다는 점에 더욱 열광했다.

“하이고, 저번에 수가네 할아버지가 회춘을 하더만 장가네고 유가네고 관가네고 다 늙어서 오늘 내일 하던 할아범들이 회춘을 하다니 이게 뭔 일이래?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네.”

“그..뭐라더라? 우리집 아 말로는 화경이라고 무공고수가 되어서 그렇다카든데?”

“하늘을 날아다니고 산도 쪼개는 무공고수가 되면 그렇게 회춘도 한다는 겨? 우리집 아들내미도 무공수련 좀 열심히 하라고 해야되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무공수련 좀 열심히 할 걸 그랬어.”

“무공을 익힌다고 아무나 다 그런 건 아니고. 3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일이라드만.”

“그런 일이 우리 신교에는 4번이나 일어났다니. 일월신이 우릴 보우하시나보구만.”

“이번 교주님 치세(治世)에는 크게 흥할 거라고 하더니. 심상치가 않은 것 같어.”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소릴 듣자니 이거 무슨 비밀이라고 조심해야 한다면서 떠들던 다진이네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너무 우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절대 밖에 알려지면 안된다더니. 무슨 비밀이 없네. 비밀이. 뭐만 하면 다 퍼져요.”

“교주님, 이 조그만 산골동네에 뭐 대단한 비밀같은 게 있을 것 같아요?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고 누구네 집에 양이 새끼를 쳤네 마네하는 이야기까지 다 돌고 도는 판인데.”

“그건...경수 말이 맞지.”

준보와 경수는 간만에 쉬는 동안 화경이란 경지에 오른 원로원의 할아버지들 구경하러 가자면서 나를 꼬시러 왔다.

“뭐하러 가는 거야?”

“그냥 신기하잖아요. 한 세대에 몇 명 안나오는 화경의 고수가 4명이나 우리 신교에서 나왔다니까. 화경의 고수가 얼마만큼 대단한가 싶기도 하고.”

“그래?”

“어떻게 교주님이 명을 내려서 사호법님들의 비무대련같은 거 보여주면 또 알아요? 우리도 보고서 언젠가 화경에 오르게 될지 말이죠.”

“경수, 니가? 화경이 무슨 니네 집 개 이름이야? 본다고 다 되게?”

묵묵히 곰처럼 옆에서 걷고 있던 준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불쑥 입을 열었다.

“준보야. 남자로 태어나서 내가 꿈이라도 크게 가지면 안되냐? 나도 그 정도 꿈은 가지고 싶다. 지금은 고작 일류검수 수준도 거대한 벽으로 느끼면서 힘들어하고 있지만. 언젠가 화경의 경지에 올라 무림을 호령하는 고수가 되어 예쁜 여고수와 알콩달콩하면서 중원을 여행하는 날이 오기를.”

“...이룰 수 있든 없든 꿈꾸는 건 니 자유가 맞지. 근데 고수가 하는 거 옆에서 보기만 한다고 다 화경되면 사람들이 뭐하러 수련을 하고 신공절학을 찾고 영약을 찾아다니겠어. 그냥 화경 고수 옆에서 수련하는 것만 보면 되는데. 그러니까 하는 소리지.”

“뭐, 인마?”

“화경이란 건 가진 바 재능에 뼈를 깎는 노력이 섞이고 운이 닿았을 때 오르는 경지라는 거지. 호법님들도 평생을 수련하고 고난을 돌파한 끝에 70대가 되어 하늘이 감명받아 화경이 되신 거잖아. 너 앞으로 50년 넘게 무공수련 매일같이 열심히 할 자신 있어?”

“어...그렇게 말하면 좀...50년은 좀 길다. 아니, 많이 기네...”

“그치?”

‘얘들아, 하늘이 감명받은 거랑 아무 상관 없이 내가 가르쳐드린 비법때문이다만.’

이제 19살이 되었는데도 철이 들 생각이 없는 경수에게 준보는 고3이 되어도 자기 성적은 생각 않고 S.K.Y를 노리는 친구를 본 것처럼 정신차리라고 권했다. 순간 발끈했던 경수도 준보의 말이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혼자 ‘치, 누가 그걸 모르나. 이런 사회성 없는 자식.’ 이라고 중얼거리며 넘어갔다.

화경이 되어 기뻐하는 것은 본인들인 호법 할아버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행히도 원로원에 있는 연무장에선 젊어진 몸을 제대로 확인해보기 위한 호법 할아버지들 간의 비무가 한창이었다.

“우와...”

창과 창이 부딪히는데 마치 종이 울리는 것만 같은 소리가 퍼져 나가고 주먹과 주먹이 그리고 다리와 다리가 오가는 권장을 주고 받는데 쿵쿵거리는 소리가 퍼지면서 비무 과정에서 오가는 충격이 얼마나 클지 그들의 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장난 아니네, 할아버지들.’

자신의 조상인 장비를 본 받아 장팔사모를 주무기로 하는 두팔의 창술은 빠르다기보다는 산처럼 무거운 기세를 풍기며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상대를 하고 있는 관자룡의 창술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현묘하기 그지없어 현기가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인 관자룡의 창은 무겁게 찍어내리는 두팔의 창에 담긴 거력을 비스듬히 흘려버리며 방어를 함과 동시에 창을 돌려 두팔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두팔 할배는 알고도 못 막게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타입이고 자룡 할배는 상대방의 수를 읽고 거기에 맞춰 대응하는 타입인가?’

두 사람의 창의 날에는 누가 봐도 화경임을 알 수 있도록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강기가 덧씌워져 있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소통하며 기운의 한계가 없어지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천지교태(天地交泰)의 경지인 화경인 둘 사이에선 한식경(30분)이 넘도록 그 기운이 줄어들지 않고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뜨지 않는 해는 없고 지지 않는 해가 없듯 서로 공수를 주고 받던 둘의 대련도 결국 끝이 났다.

“허허, 이거 이렇게까지 움직여도 몸이 기름칠을 칠한 것처럼 잘 움직이는군.”

“왕년의 형님이 보여줬던 창술보다 지금이 더 대단하구려.”

“그러는 동생의 창술은 오히려 날카로워졌어. 자칫 잘못해서 들어갔다간 내가 몇 번이고 당했을 거야. 그동안 서로 대련을 한 덕분에 자네의 창술에 익숙했기에 망정이지.”

서로를 추켜세우는 공치사를 주고받고선 포권을 주고받고 연무장 밖으로 나오는 둘을 향해 우리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우리 후배님들과 교주님께서 보시기에 괜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보기에 괜찮았냐구요? 전혀 괜찮지 않았죠.”

“아...”

당연히 자신들에 대한 칭찬이 나올줄 알았건만 진지한 표정을 한 용운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은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이어진 용운의 말에 활짝 펴지며 만면에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들 중에 최고였어요.”

“밀고 당기는 화술은 저희들이 감히 교주님을 당해낼 수가 없겠군요.”

“그래도 아직은 여러분들이 저보다 강하시죠.”

“언젠가는 교주님과 후배님들이 저희들을 앞지르지 않겠습니까?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했듯이요. 허허.”

방금 전까지 엄청난 무를 보여주던 이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용운에게 저자세인 것만 같은 두 사람의 자세가 준보와 경수에겐 낯설었다.

아무리 용운이 신교의 교주이긴 하지만 화경이란 고수는 한 성에 한명이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대단한 경지가 아닌가.

‘우리가 교주님을 너무 쉽게 대하는 건가...’

준보가 그렇게 생각에 잠긴 사이 경수는 촉새같은 입을 열어 두 사람에게 말을 편하게 해주시는 게 자기들이 편하다고 했다.

“호법 님들께서 저희들을 이토록 존중해주시다니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무림말학인 저희들을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후배님들이라니 너무 과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주님?”

“어? 어...그런가?”

“그동안 뜨고 다닌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눈이 크게 개안하는 것 같은 비무였습니다. 화경의 경지에 오르신 네 분 모두 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워...무공실력은 몰라도 아부가 경지에 올랐구나. 경수야 하도 비벼서 손에서 오징어 냄새 나겠다.’

뭔가 바라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란하게 싸바를 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운은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준보는 이같은 모습을 본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는지 평온해보였다.

“허허허, 목가네 손자가 벌써 커서 호위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토록 예의가 바르게 컸는지는 모르고 있었구나..”

“그러게 말이야. 자네 이름이 목경수라고 했던가?”

‘이 할아버지들 금방 넘어갔네. 경수 이 자식은 영업직으로 나갔으면 잘 살았겠어.’

경수의 과하지 않은 아부와 부드러운 화술 덕분에 제대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처음임에도 분위기가 경직되지 않았다. 더 대단했던 것은 그다지 오래 지나지 않아 나중에 헤어질 때는 마치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낸 사이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경수가...말솜씨가 대단하구나.”

“사람은 다 각자 하늘에서 받은 재능이 있는 법이지. 흠흠.”

“물에 빠지면 경수 주둥이는 하도 가벼워서 물에 동동 뜰거야.”

“야, 내가 얼마나 사람이 진중한데. 아까 두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이야기 못 들었어? 예의가 넘친다잖아, 나보고.”

“그래그래. 누가 보면 두팔 호법님이 너랑 손주와 할아버지 사이인 줄 알겠더라.”

두 사람의 만담은 헤어지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아, 얘들아. 나 한동안 폐관수련 들어갈거야. 나오기 전까진 나 찾으러 다니지 마라.”

“그러십니까? 저번에 걱정 많이 했는데 다시 마음 잡았나 봅니다. 좋은 결과 가지고 나오십시오.”

인사를 하면서 헤어지기 전에 폐관수련 때문에 한동안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하자 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생각했다고 했다.

“저번처럼 또 너무 과하게 수련해서 쓰러지지 마시구요.”

“신경써줘서 고맙다. 준보.”

“그리고”

“응?”

“마니한테 제대로 이야기하고 들어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번에 마니가 많이 힘들어하던데. 잘 좀 대해주십쇼.”

“인마, 교주님께서 알아서 잘하겠지. 너 저번에 만난다는 영숙이랑은 어떻게 됐냐? 교주님,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어.”

준보는 우리 둘 사이가 요새 살짝 어색해진 것을 느꼈는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둘과 헤어진 용운은 준보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진에게 가서 잠시 폐관수련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다진을 집 밖으로 불러냈다.

“왜 불렀어요.”

다진은 용운에게 잘해주겠다고 마음 먹은 게 방금 전이었는데도 괜히 퉁명스럽게 툴툴거리는 자신의 입이 원망스러웠다.

“그게...한동안 내가 안보여도 걱정하지 말라고.”

‘입대 하기 전에 여자친구한테 말하는 느낌이네...’

묘한 감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다진이 아무런 말이 없어 다진의 눈을 쳐다봤을 때 다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뭐야, 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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