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아오, 진작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뒤늦게 열심히 공부할 때면 어른들이 으레 하는 소리를 이곳에서 내가 하게 될 줄 몰랐다.
언젠가 사용해 먹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증기기관을 찾아보는 걸로 시작해서 물리학이라든가 화학과 같은 학문들까지 틈나는 대로 공부하고 있자니 다시 수험생이 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띵동”
스마트폰에 알람이 떠서 뭔가 싶어 봤더니 편집자의 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교주님. 다름이 아니라 여태까지 업로드하신 영상소스를 이제 2편 정도 올리고 나면 모두 소진할 것 같습니다....』
형식은 무척이나 정중한 방식으로 적혀 있었지만 거추장스러운 형식을 걷어내고 나면 기실 내용의 골자는 하나였다.
“사장놈아, 편집해서 올려줄테니 어서 빨리 일해서 편집할 영상들 더 찍어서 내놔라.”
이전의 삶보다 더 바쁜 요즘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잠자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비는 시간이 없다. 공부도 해야 하는데 무공수련도 해야 하고 너튜브에 올릴 영상도 찍어야 했다. 그 때문에 현자타임이 올 때가 있었다.
“아니...자연인처럼 산에만 사는데 왜 바쁘냐고! 이러다 전생에도 안 왔던 번아웃 오겠어.”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던데 겨울이라 딱히 무슨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교주라 누구도 나에게 노동을 강요할 수 없건만 내가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할 줄은 몰랐다.
바쁜 날을 보내고 있던 중 잠자기 직전까지 엔진의 구조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잤던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이한 직감에 휩싸였다.
전날 공부한 바에 따르면 가솔린이든 디젤이든 엔진은 기본적으로 4행정 내연기관으로서 흡기행정>압축행정>폭발행정(팽창행정)>배기행정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만 디젤엔진이 가솔린 엔진과 다른점은 압축과 폭발의 과정에서 가솔린 엔진이 점화플러그를 이용해서 불꽃점화를 하는 것과 달리 디젤엔진은 압축착화를 한다는 점이었다.
내공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힘을 발산하게 되는데 내공은 흡기를 하여 압축 비슷한 것을 하고 폭발과정 없이 배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경락이 그렇게 튼튼하지 않으니 만약 기를 압축해서 폭발을 시켰다간 지금 가진 경락으론 못 버티고 너덜너덜해지겠지.’
경맥과 낙맥을 줄여서 말하는 경락은 직행(直行)하는 간선(幹線)을 모두 경맥이라 하고, 경맥에서 나와 신체의 각 부분으로 그물처럼 연결된 것을 락맥이라 한다. 이해하기 쉽게 보자면 베틀에서 날줄과 씨줄이 서로 얽혀 옷감이 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경락은 실존한다기보단 인체에 덧씌워진 가상기관에 가깝지. 이걸 어떻게 손 보면 될 것도 같은데.”
한가지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은 기는 인체에 존재하는 혈관을 통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기를 하는 중에 집중해서 기가 흐르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자면 혈관을 본뜬 가상의 기관을 따라 흐르지 혈관과는 별개로 존재한다.
만약 기가 경락이 아니라 혈관을 따라 흐르는 게 정석이었다면 고수들 간에 내공대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보통 내공대결을 할 정도의 고수들은 노인들인데 노인의 얇디 얇고 좁은 혈관으로 내공을 주고 받는 미친 짓을 할 리가 있을까. 기가 혈관을 따라 흐른다면 분명 기의 운용 과정에 영향을 받은 혈류 속도의 증가로 심박수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고 따라서 혈압 또한 미친 듯이 증가해서 문제가 생겨도 진작 생겼을 거였다.
물론 사람이 100명이 있으면 모두 생각이 다른 것처럼 혈관으로 내공을 순환시키려고 생각한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마공들 중에는 이를 혼용하여 혈관을 통해 기를 운용하려고 하는 경우가 그러했다. 그러나 혈관벽이란 것은 나이가 들면서 탄력이 떨어지고 경화되기 때문에 혈관으로 내공을 순환시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내공 운용하다 고혈압에 의한 합병증으로 죽을라...”
현대인들은 혈압이 높아져서 고혈압 상태가 되었을 때라든가 동맥경화가 생겨 혈관벽이 터져 생기는 질병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뇌졸중,뇌출혈,심근경색 등등 모두 심혈관이나 뇌혈관이 콜레스테롤이라든가 혈압에 의해 막혔다 터지면서 생기는 질환이었다.
혈관을 통해 기를 순환시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떤 무공으로 노력을 강구하더라도 근육과 다르게 혈관은 강화시킬 수가 없다는 거였다.
“괜히 정파의 무공이 혈관이 아니라 경락을 파고든 게 아니지.”
그렇기 때문에 고수가 될수록 기경팔맥은 넓고 튼튼해야 했다. 강력한 내공을 다루는데 경락이 고속도로처럼 넓고 튼튼하지 못하다면 어떤 강한 힘을 내공으로 축적하더라도 축적된 내공으로 발경을 한다거나 검강을 만들어 내뿜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락은 가상기관이지만 동시에 가상기관인 경락을 통해 기를 운용하는 것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이 현대인들로 하여금 기가 혈관을 통해 흐른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무공고수가 반로환동을 한다던가 상대적으로 노화 속도가 느리다거나 하는 특수한 사례들을 비롯하여 기를 끌어올렸을 때 얼굴이 붉어진다거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주화입마의 경우는 기가 혈관이 아니라 가상기관인 경락을 통해 움직여 기가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하는 예시였다.
“낙수효과라고 봐야할까?”
이런 가상기관임에도 어린 나이부터 무공을 시작하여 입문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살다 보면 무공을 익혔든 익히지 않았든 자연스럽게 기가 소통하며 경락이 형성되는데 한번 형성된 경락을 통해 흐르기 시작한 기는 경로 의존성이 강력하여 원래의 흐름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성을 갖기 때문이었다.
“키보드도 기존의 타자기에서 시작된 qwerty 자판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잖아?”
따라서 나이를 먹은 촌부가 뒤늦게 무공을 배워 무공고수가 되려고 할 때 기존의 경락이 고수가 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환골탈태를 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기를 축적하고 운용법을 익히는 게 우선인데 그게 쉬운 것이 아니니 나이를 먹어서 경락이 고정되어버린 이후에는 새로운 경락을 익힐 방법이 없었다.
문파별로 존재하는 내공심법들은 각자 다른 특유의 흐름을 형성하게 되는데 경락의 경로 의존성이 바로 타문파의 무공을 익혀 배우기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흐름이 충돌하게 되면 효율이 감소하게 되고 심한 경우 충돌의 결과로 내상을 입기도 하기 때문에 무림에선 이미 익힌 내공심법이 있는 상태에서 타문파의 내공을 익히는 걸 금기로 여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경락은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만 체내에 존재하는 실존의 인체기관이 아니라 가상의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쉽지는 않지만 리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거지. 재형성이 어렵다는 거지 불가능은 아니라는 거니까.”
현재 무림에서는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경락의 형성 과정을 인체의 혈관에서 본뜬 덕분에 경락을 이미지화하여 형성하는 것 자체는 수월했지만 인체를 소우주라고 말할 정도로 거창한 것에 비해 경락의 발전 가능성이 인체의 혈관과 동일한 형태에 갇혀 있었다. 그러니 초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을 가르고 바다를 가를 정도의 무공을 발현하기 위해선 기존의 체계로는 어려웠을 것이다.
“화경에 오르면서 고수들이 반로환동이니 환골탈태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겠지. 기존의 체계로는 답이 없으니 그동안 쌓아올린 내공으로 싹 밀어내버리고 다시 재설계 및 시공을 하는 게 환골탈태일거야.”
고속도로를 생각해보면 차선을 늘릴수록 통행할 수 있는 차량이 증가하며 동시에 통행흐름의 압력은 감소한다. 물론 4차선에서 8차선으로 늘릴 때 일시적으로 차량의 흐름은 감소하며 교통체증 발생은 증가하는 부작용은 존재한다. 그러나 기존의 도로만으로 교통체증이 극심한 경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차선을 늘린다.
“흐음..경락에 고속도로처럼 확장성을 부여하고 단전은 12기통 엔진의 구조를 모방해서 변화를 시킨다면 어떨까? 이럼 발전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월신교의 교주를 통해 대대로 전승되어 내려온 천마심공(天魔心功)은 소설 속의 강력함과 다르게 민초들이 모여 만든 일월신교의 무공답게 신공(神功)이라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격체전력을 통해 내공을 전해온 덕분에 봉인되어 있는 내공의 크기는 어떤 고수들과 견줘도 작다고 하기 뭐라고 할 정도로 거대했지만 이를 활용할 방법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저 부동산 부자마냥 물려받은 걸 잘 지켰다가 자기가 모은 걸 얹어서 후대에 물려주는 성격이 강하지.’
마음 속 한편에선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얼마 전에 마공에 대해 태상호법인 수천수 할아버지를 통해 들었던 경고가 살짝 걸리긴 했다.
‘흐음....일단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하나...내가 하려는 건 극단적인 흡기가 목적인 마공과는 근본적인 방향성부터 다르긴 한데...내공이라는 게 워낙 섣불리 건들면 안된다고 하니까. 좀 더 고민해보자.’
이때부터 용운의 머릿속은 ‘실행해? 하지마?’ 이 두가지가 가득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게 됐다.
‘교주님이 요즘 이상한데...’
평소에는 자신이 말을 걸면 대답도 잘하고 음식도 만들어주고 그러던 용운은 저번에 정강이를 걷어찬 것때문인지 아니면 방 안에서 있던 일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여러 일들로 자신이 싫어진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대충 건성으로 대답하는 용운을 떠봤다.
“교주님, 혹시 저한테 기분 나빴던 일 있었나요?”
“응? 아니. 그런 적 없는데.”
“그래요?”
‘없다고? 이상하다~’
용운이 폐관수련에 들어가 천마심공을 싹 뜯어고치고 싶은 번뇌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모르는 다진으로선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용운의 태도에 걱정이 됐다.
‘이젠 내가 정말 귀찮아진걸까?’
다진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평소와 같이 다진과 함께 고민을 하면서 산책을 하고 있던 용운은 참다 참다 더 이상 혼자 고민할 게 아니라 신교 내에서 가장 무공이 강력하고 무공을 잘 아는 태상호법을 찾아가서 상담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안되겠다. 전문가와 상의를 해봐야지.’
“안되겠다. 나 가볼 데가 있어. 다진아.”
“어디? 어디 가려구요?”
“태상호법님 좀 만나뵈려고.”
“뭐! 제 할아버지는 왜요.”
다진은 갑자기 경각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과 다르게 자신과 있을 때도 마음이 어디로 가 있는 것인지 건성건성인 용운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할아버지를 보러가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불안해졌다.
“안돼! 할아버지 보러 가는 건 안돼!”
“안돼? 안돼는 반말인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것인지, 위험하다 생각한 것인지 나는 필사적이다 싶을 정도로 말리는 다진에게 당황했다.
“아니...태상호법님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교주님! 사람이요 갑작스럽게 든 생각대로 바로 행동하면 안되는 거예요. 좀 더 천천히 기회를 갖고 고민을 하는 건 어때요?”
‘뭐야...진짜 내가 폐관수련해서 천마심공 뜯어고치려고 하는 걸 안 건가? 말한 적 없는 걸 어떻게 알았지? 여자들은 특유의 육감이 있다더니 그건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용운은 다진의 말을 듣고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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