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무공이란 체내에 기(氣)를 축적함으로써 내공으로 변환시켜 초인같은 힘을 발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는 말은 각종 심법을 비롯하여 많은 문파에서 나름의 체계를 통해 지향하는 점을 달리하여 좀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최신의 결과가 현재의 무공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하여 소우주와 닮아 있는 체내에서 각 문파 나름의 비전을 따라 완성된 심법을 통해 기를 순환시켜 이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수가 되어 강해지려면 심법의 중요성은 말하면 입만 아프다고 할 수 있죠. 또, 물어보신 점에 대해 설명 드리자면 외부에 존재하는 기운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통상적으로 마공이라고 하는 것들은 극단적인 흡기에 중점을 두고 단시간 내에 기운을 축적하는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극단적인 것들은 위험성을 품고 있는 법이죠.”
‘이 할아버지...약간 TMI 넘치는 캐릭터네. 그냥 머쓱해서 물어봤는데...적당히 장단만 맞춰줘야겠다.’
“마공을 익히는 이들의 품성이 악한 경우가 많은 이유가 극단적인 흡기에서 오는 부작용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교주님. 흔히 명문이라고 하는 문파들은 마공이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에 주목해서 어떤 식으로 체계를 완성했는지에 대해 마인 척살 이후에 분석을 하는 과정을 가지기에 마공의 문제점에 대해 다 알고 있습니다. 이는 굳이 정파의 것들이 마공의 특성을 자신들의 무공에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간혹 후기지수들 중에서 현재의 더딘 성장을 참지 못하고 금서로 지정된 마공서를 몰래 빼돌려 마공을 익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의 말로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것은 이제는 정파 내에 모르는 이들이 없지요. 긴 시간 수련을 하여 40대쯤부터 가파르게 성장하는 정파의 고수를 꿈꾸는 이들은 그런 모험을 이제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그런 이야기를 하신 거군요.”
원로원에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던 중 태상호법이신 검괴(劍怪) 수천수 할아버지에게 서고에서 정해진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비치되어 있던 마공서에 대해 물었더니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위험한 마공서를 우리는 굳이 없애지 않고 서고에 비치해둔 것인가요?”
“마공의 위험성과 별개로 저 마공서들이 저희 일월신교의 시작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을 숭상하는 종교인 일월신교는 지금은 중원에서 밀려 마교로 불리고 있지만 그 시작은 민초들이 모여 서로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무슨 무공이고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다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교인들을 지키기 위해라면 자신의 한 몸을 거리낌 없이 희생하려는 이들은 마공을 익히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정파에서 마공서의 위험성에 대해 어릴 적부터 그 위험성을 교육시키는 것과 다르게 저희들은 마공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이유도 컸습니다.”
신교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 중 일부가 어느 순간부터 신교를 지키기 위한 수단인 힘과 신교를 지킨다는 목적이 뒤바껴 힘에 취하기 시작했다. 힘만 있으면 신교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면 쉽사리 신교를 건드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힘을 나눠주겠다는 말로 포교를 하여 급격히 사람들을 불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화가 되었습니다. 온갖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데 태양처럼 세상을 밝혀 모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신교의 가르침보다는 그들 중 인간말종이라고 하는 부류들이 힘을 준다는 말에 혹해 모여들었던 겁니다.”
본성부터 틀려먹은 인간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마공을 나눠 배우는 과정에서 힘이 집단 내부에 쌓이게 되자 집단 내에서 대세를 이루었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갖게된 힘을 외부로 발산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인 문파들과 엮이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 처음엔 일개 문파와의 분쟁으로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지역과 신교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오랜시간동안 불화와 분쟁의 역사가 쌓여 불이 번지듯 커져버렸을 땐 이미 중원과 신교의 척살대전이 두차례 벌어져 어느 한쪽이 멸망에 이르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수 없는 원수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커진 상황에서 서로의 집단 내부에는 첩자들이 돌아다니며 분탕질을 쳤는데 이 때문에 기존의 교리를 숭상하여 척살대전에서 비켜나 평화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종전(終戰)을 주장하던 이들이 불행히도 정파를 따르는 회색분자로 몰려버리는 일이 있었다.
“신교에서 원리를 지키고자 하던 이들이 같은 신교의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배척당하고 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마교라고 불리는 우리의 외부에서는 우리를 도와줄 이들이 없었다는 겁니다. 정파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저희들 중에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건 개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반대하던 신교의 사람들이 봐도 마인들이라고 해야할 미친 무리에게서 겨우 도망쳐 나와 산으로 산으로 도망쳤다. 기나긴 시간이 흘러 천산에 자리잡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마인들이 모두 척살되었고 마침내 중원이 승리했다는 소식이었다고 했다.
“기껏해야 초절정 고수 몇 명밖에 없는 이들까지 잡자고 이미 한참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 이 머나먼 땅인 천산으로 추적해올 이들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정확히는 그들도 그럴 여력이 많지 않았었죠. 남은 이들을 추슬러 모아 자신들의 영역 내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야 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도망친 집단이 바로 우리 마을의 시작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참으로 혹독한 겨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아 체온으로 버티면서 겨우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고 하더군요.”
“마교가 힘에 취한 이들 때문에 얻은 오명이 맞다면 어째서 주원장이 우리의 적인가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교의 내부인이 아닌 현대인이란 3자의 시각으로 보면 마교로 몰릴 짓을 한 게 맞았기 때문이었는데 어떻게 뜬금없이 주원장이 신교의 불구대천지원수가 된단 말인가?
“산골로 도망친 저희들 중 일부는 혹시라도 외부에서 쳐들어오진 않을까 하여 계속 정찰을 이어왔고 마교와 정파가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적대하며 싸우게 되었는지도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조작이 있었던 건가요?”
“예.”
명나라를 만든 주원장은 중원이라는 땅을 무림과 관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특히나 무림문파들이라는 것들의 특성상 스스로 생산을 하지 못하는 집단인만큼 소비를 위해선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자금조달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현대의 시각에선 조폭이 자릿세를 걷는 것과 별다를 바 없어서 상인들과 지역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말로 갖가지 명목의 돈을 거둬들였다는 것이었다.
나라가 있고 관이 있어 나라에서 세금을 걷으려고 해도 사람들은 코앞에 있는 무력에 두려움을 느껴 문파들에게 돈은 꼬박꼬박 내면서 정작 멀리 있는 황제에겐 무서움을 느끼지 않아 막연하게 생각하여 세금을 잘 내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주원장은 무림문파를 몰아낼 방법이 없을까 고심했다.
주원장은 고심 끝에 문파들끼리 힘을 소진하게 만들어 자멸하게 하고 그 힘의 투사 과정에서 민초들로 하여금 문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드는 음모를 꾸몄다. 주원장의 빅픽처대로 하면 백성들은 문파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키고자 하는 나라에 기대서 스스로 명의 백성으로 자각하게 될 것이라는 주원장이 세운 음모의 가장 큰 줄기였다. 뿌리부터 박살내지 않으면 무림문파가 다시 좀버섯처럼 자라나 주원장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명나라를 좀 먹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주원장이 생각한 대로 서로를 적대시하여 죽일 듯이 싸우게 만드려면 누가 봐도 악당이 필요했는데 다른 문파들에 비해 종교집단이라기보단 무림문파 집단으로 역사적 뿌리가 약했던 신교가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비췄던 것 같다. 주원장의 명을 받은 이들이 당시의 신교에 잠입을 하는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었고 이 배신자들이 마두들을 뒤에서 사주하여 일을 키운 것이었다..
“유난히도 무림문파들하고 엮여서 사고를 치고 다닌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 중 일부가 어찌된 일인지 척살대전이 끝나고도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름을 바꿔 관의 일원이 되어 떵떵거리고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오랫동안 추적한 끝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시대에도 친일파 같은 놈들이 있었군.’
“3대 황제로 올라선 영락제가 만든 현재의 동창도 기실 그때 주원장이 만들었던 정보조작 집단의 후신입니다.”
명의 황권은 마교를 제물로 삼아 공고해졌고 문파들은 예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라고 했다.
“중원의 문파들은 전투해선 승리했을지 모르나 전쟁에서 패한 것이고, 저희들은 그저 고래 등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일뿐인 거군요.”
“허허, 정확한 정리입니다...”
씁쓸해하던 수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말을 마무리지었다.
“아무튼 도망친 우리들은 주원장의 협잡이 만든 불씨로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신교에서도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인 결과 정마대전을 일으킨 것에 대해 일정부분 책임을 느껴 반성하는 의미로 그때의 오점들을 지우지 않고 남기기로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공서를 시작으로 신교의 역사에 대해 듣던 중 한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신교가 그렇게 긴 역사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제가 벌써 28대 천마인 겁니까?”
하다못해 임기가 5년인 한국의 대통령도 중간에 독재기간이 섞여 있긴 하지만 2020년에 19대였다. 그러니 한 세대는 해먹었을 신교의 교주가 벌써 28대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용운의 기억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자세한 기억이 없었다. 그저 아버지께서 물려주셨다는 기억뿐.
“힘이 없던 신교에선 참으로 많은 이들이 스러져 갔습니다. 초대 천마님 이후로 누군가는 며칠만에 죽기도 했고 누군가는 겨우 몇 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척살대전이 벌어진지 100년밖에 안되었음에도 현재의 천마께서 28대인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28대의 교주가 되신 용운님께선 그동안 스러진 이들의 모든 한과 염원을 품어 안으셔야 합니다.”
“아...”
힘이 약했던 일월신교는 힘을 축적하기 위해 대대로 천마의 지위를 넘길 때마다 다음 대 천마에게 그동안 모아온 내공을 넘겨왔다. 약자들이 연대하여 강해지려고 한 노력 끝에 만들어낸 방법이었다.
당장은 봉인되어 있어 겨우 절정공수밖에 되지 않는 나의 중단전에는 그렇게 그들이 쌓아올린 내공이 담겨 있었다.
‘용운의 아버지는 초절정고수의 벽에서 다음 벽을 넘으려다가 실패하여 주화입마에 이르렀고 죽기 전에 용운에게 내공을 남기고 떠났지.’
아직은 어린 나이에 용운이 아버지가 없이 천마에 올랐던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원로원에서 나온 먹먹해진 심정을 느끼면서 용운은 터벅터벅 자신의 집으로 향하다 저번의 일로 살짝 서먹해진 다진을 길에서 만났다.
“어!...”
“교주님, 할아버지 보러 가서 하려고 하셨던 일은 잘 마무리 했어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까먹은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거는 다진 덕분에 살짝 머뭇거렸던 용운은 평소처럼 대했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안 하셨어요?”
“응? 천수 호법님이랑 신교의 역사라든가 무공에 대해서만 이야기 나눴는데?”
“할아버지랑 그 이야기밖에 안했다구요? 진짜로?”
“어.”
밝은 귀의 소유자인 내 귀에도 안 들릴 정도로 다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씨이...할아버지는 슬쩍 물어보라니깐...손녀가 XX을 가길 바라는 거야, 마는 거야?)”
“너 어디 가?”
“네???”
잘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듣고 물었더니 다진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교주님, 지금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 들었어요?”
“아니...엿들을려고 하는 건 아닌데...방금 호법 할아버지가 니가 어딜 가길 바라는 거냐고...그러지 않았나?”
“아니요, 못 들었으면 됐어요. 밥 먹으러 가자고 그런 거에요. 아,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죠. 벌써 저녁이잖아요.”
“그래? 이상하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가죠!”
‘살짝 속는 느낌인데...’
다진이 용운의 팔짱을 끼고 끌고 가자 담벼락 뒤에서 이를 숨어서 모르는 척 지켜보던 동네 아주머니들은 둘이 가고 나서 입을 열었다.
“하아...우리 교주님이 연애쪽으론 퍽 눈치가 없네.”
“다진이가 많이 갑갑하겠어.”
“그러게...옆에서 보는 3자인 우리들도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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