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환생한 이후론 전생(?)의 사람들과 연락해본 적이 없는데 천마 TV와 연결된 이메일 주소로 뜬금없이 메일이 하나 날라왔다.
“응? 귀 채널의 영상들이 잘 찍히긴 했는데 편집이 너무 아쉬워서 자기도 한 손 거들고 싶다고? 뭐하는 사람이지. 어디 보자.”
공중파 채널의 PD출신이라면서 자신이 연출했던 프로그램을 올려놨는데 그 중에 내가 관심 있게 보던 채널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그 프로그램이 이 사람이 만든 거라고? 흐음. 이거 재밌게 봤었는데. 편집도 깔끔했고.”
스스로 김PD라고 밝힌 사람이 책임졌다는 프로그램은 현실감이 높으면서도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 체험하는 것만 착각하게 해주는 영상편집과 더불어 긴장감을 주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는 배경음악이 묘미인 프로그램이었다.
“자기가 한번 올라온 내 채널의 영상을 가지고 편집을 해봤으니 마음에 드는지 봐달라? 정성이 대단한데...어디 보자.”
메일과 함께 첨부되어 온 영상을 다운받아 실행시키자 가장 영상 조회수가 높아 포인트 벌이에 크게 한몫해준 다진의 영상이 마치 인기 드라마의 여주를 표현하는 것처럼 연출되어 퀄리티가 훨씬 높아져 있었다.
“와...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까 확 달라지네. 정말 다르긴 다르구나. 음악도 잘 어울리고.”
그 날의 다진은 참 아름다웠지만 영상 속에서 재편집된 다진의 모습은 색감과 보정이 들어갔는지 S급 여배우같은 느낌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보니깐 다진이도 이쁘긴 하네. 한번 이 사람한테 맡겨 볼까?”
몇 번의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영상을 편집할 수 있게 영상파일을 클라우드에 올려놓으면 편집자가 편집을 한 뒤 나에게 컨펌을 받고 업로드를 하는 걸로 정리가 되었다.
“페이는 어떻게...줘야 하나 했는데 저번에 영상 조회 수익 넣어준다는 계좌를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갑자기 시스템이 쓸모도 없는 걸 뭐하러 주나 했는데...쓸 데가 생기는구나.”
어차피 따로 쓸 곳도 없는 돈이라 실력 있는 편집자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업로드 되는 영상 한 건당 고정적으로 수입을 지불하고 부가적으로 조회수에 따른 인센티브도 후하게 제공하기로 계약을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페이로는 넉넉하겠지? 어차피 쓰지도 못할 거 이 사람한테 넉넉히 주고 영상이나 잘 다듬어달라고 해야겠다.”
“와아...앞으로 뭐해먹고 살아야 하나 싶어서 막막했는데...어떻게든 구명줄은 열리는구나. 보통 이렇게까지 잘 안 주는데.”
김PD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국장에게 참다 참다 못하고 치고박는 수준으로 싸우고 나오는 바람에 다른 방송사로 이직하는 길도 막혀버렸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집에 처박혀서 컴퓨터를 하다가 우연히 영상 하나 보고서 삘이 꽂혀 버렸다.
어차피 남는 시간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영상편집까지 해놓은 걸 이메일을 보낼까 말까 갈등을 하다 혼술하고 취해서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하면서 컨택을 했었다. 사람이 될 일은 되는 법인지 어찌 저찌해서 영상편집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업계의 평균 보수보다 훨씬 후한 보수를 받고서.
“내가 한 편집이 좀 괜찮았나? 이렇게 돈을 잘 줄만큼?”
슬쩍 자신감이 피어 올랐지만 본인도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후하게 받는 건 살짝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는 건.
“그래, 돈 받은 만큼 열심히 해드려야지. 영상 편집에 대해선 크게 터치하지 않겠다는 게 참 마음에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런 영상이 이따위로 대충 올라오는 건 참을 수 없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장님은 눈에 안 보이고 돈은 잘 주면서 크게 터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천마TV의 채널장이라고 밝힌 분은 그런 좋은 사장님이 분명했다.
“띠링 띠링”
계약을 맺은 이후로 그동안 찍어놓은 영상 소스들을 모두 공유해놓자 아침이고 밤이고 쉴 새 없이 김PD가 영상을 편집했다면서 컨펌 부탁드린다고 메일을 날려댔다.
“아니...이 사람은 잠도 안 자고 편집만 하는 거야? 혹시 생활이 많이 궁핍한가? 아니면 내가 준 게 업계 평균보다 부족해서 시위하는 건가?”
하도 수시로 뭘 보내오는 통에 걱정되기도 하고 너무 광적인 느낌까지 들어서 1주일에 2회만 업로드하면 되는 거니까 너무 과로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쉬엄쉬엄 일하시라고 연락을 보냈더니 도리어 더 열심히 일하겠다면서 감동 받았다는 이모티콘이 가득한 메일을 받아버렸다.
“내가 좀 쉬고 싶다구요. 편집자님.”
재능있는 자가 즐기면서 노력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 걸까 싶을 정도로 이전에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던 영상 퀄리티가 훨씬 좋아졌다. 이왕 만든 영상을 버리기가 아까워 기존의 영상들을 편집해서 재업로드 하자 사람들은 조회수로 반응했다.
“워...장인의 손이 닿으면 뭐가 달라도 달라지는구나.”
구독자들은 이전과 동일한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들이 처음 올라왔을 때 채널 주인이 잘못 업로드한 건가 싶어 클릭을 했다가 기존의 밋밋했던 영상들이 상황에 맞는 배경음악과 함께 재편집되어 작품이 되어 있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집자를 구했나? 이게 이렇게 바뀜?
-공중파 뭐하냐고! 너튜브 채널도 이렇게 퀄리티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도네 마렵네.
-주인장은 뭐하는 사람일까? 기껏해야 영상 볼 때 들어간 중간광고라든가 처음에 시작하는 광고 수입이 영상으로 얻는 모든 수익일거잖아...이건 뭐 어지간한 한국영화들보다 퀄이 좋고.
-극장 뭐하러 가냐. 그냥 천마 TV보면 되는데. 심지어 주 2회라고~
-처음에 구독자수 1000명대였는데 워...이젠 50만이네...조만간 머기업으로 갈 듯. 성장속도 미쳤다!
“사람들도 좋아하네. 다행이다.”
댓글 반응을 보아하니 사람들이 김PD가 편집한 영상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오늘 먹을 음식은 뭐죠, 교주님?”
“떡국”
“떡국? 떡을 국에 넣어 먹는다구요? 에이, 농담하지 마세요. 귀한 떡을 왜 국에 넣어 먹어요. 농담이죠? 네?”
나이를 먹는 떡이라 하여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불린 떡국은 새해가 되면 먹는 음식으로 한국에서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먹는 동아시아 음식이다.
한국에서 떡국은 새해를 맞이하여 길게 뽑은 가래떡처럼 오래오래 장수하라는 의미와 함께 엽전모양으로 잘라낸 떡처럼 부자되라는 의미를 담아 먹는 음식이었다.
중국에서도 떡국을 먹는 지역이 있긴 하지만 쌀을 많이 생산하는 동쪽 지방이면 모를까 밀가루를 많이 생산하는 중원의 서북쪽에선 떡국이 아니라 만둣국을 먹어서 그런지 다진은 떡국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헤에...쌀가루로는 부(餢)[빵]나 만들어 먹을 줄 알았는데...”
물에 불려둔 쌀을 가루로 만든 뒤에 여기에 소금을 섞어 몇 번 더 곱게 갈아준 다음 이를 찜통에 넣고 시루떡을 찌듯이 찌면 쌀떡이 된다. 김이 폴폴 나는 쌀떡을 가지고 틀에 맞춰 꾸욱 눌러주면 길게 뽑혀져 나오는데 이를 찬물에 바로 담가 굳혀주면 우리가 익히 아는 가래떡이었다.
“와, 하얗다. 하얘. 교주님, 이거 봐요.”
찬물에 넣어 굳히긴 했지만 이는 떡의 형태를 잡아주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라 아직 말랑말랑했다.
“먹어볼래?”
고개를 끄덕이는 다진에게 한덩이 짤라 소시지처럼 입에 물려주자 떡을 다 씹어먹고 난 뒤 가래떡에 대해 평했다.
“부에 비해서 엄청 맛있다고 하기는 그런데 그냥저냥 심심한 맛이네요....이걸로 국을 끓인다고 맛있을까요?”
고개를 갸웃하는 다진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러 찬 곳에 두어 떡이 썰기 좋게 굳어지도록 해둔 나는 솥에 손질해둔 닭을 넣고 푹푹 삶았다.
닭떡국을 만들기 위해 닭이 어느 정도 익고 나면 물 위로 뜬 불순물은 제거해주고 닭은 건져 한입에 먹기 좋게 살을 잘게 찢어준다. 이후, 굳은 떡을 우리가 익히 하는 엽전 모양으로 비스듬히 썰어 닭으로 낸 육수에 찢어둔 고기와 함께 넣어 푹 익히면 우리가 익히 아는 떡국이 아니겠는가.
“후아아...국물이 뽀얗다. 새하얀 게 정말 마음에 들어요.”
“혹시 싱거우면 소금을 살짝 넣어 먹어.”
소금을 넣은 닭떡국은 그 자체로도 육수에서 나오는 감칠맛이 좋았지만 떡국의 맛을 완성시켜주기엔 아직 하나가 부족했다.
“호초(胡椒)는 왜요? 그 비싼 걸 어디다 쓰려구요?”
신농씨의 후예라는 의약당 당주 강유업(姜遺業)에게 얻어온 호초(胡椒), 즉, 후추였다. 내가 주머니에 담겨 있던 후추를 꺼내 손바닥으로 곱게 으깨서 다진의 떡국 위에 뿌려주자 다진은 미간을 찌부렸다.
“내 하얀 떡국이...하얀 떡국에...하얘서 좋았는데 말하지도 않고 시꺼멓게 잿가루같이 뿌려놓으면 어떻게 해요!”
“...다진아?”
“왜요!”
“먹어봐. 먹고 이야기 해.”
“맛없기만 해봐요! 에이...”
찌푸린 미간을 피지 않고서 살짝 짜증난 얼굴을 숨기지 않던 다진은 떡과 함께 국물을 입에 머금었다.
“아우, 배불러.”
‘혼자 5인분은 될 양을 다 퍼먹으니 배부르지. 닭고기도 많이 줬구만.’
옷이 살짝 갑갑한지 3번째 퍼먹을 땐 허리를 중간에 살짝 푸는 모습을 보았지만 일부러 못본 척 해주었다. 좀 전까지 짜증을 부린 것치곤 너무나 잘 먹어서 배불러하는 다진의 모습에 살짝 장난기가 동한 나는 떡국을 먹는 것의 의미에 대해 알려줬다.
“우리 다진이 이제 5살 더 먹었네.”
“무슨 소리죠?”
“저 동쪽에 있다는 조선이란 나라에선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데. 떡국 한그릇을 먹을 때마다 한 살이 늘어난다고 하거든. 떡국의 다른 이름이 나이를 먹는 떡이라 첨세병(添歲餠)이라고 하기도 하고.”
“뭐라구요! 그럼 내가 23살이라는 건가요?”
순간 그럼 자기도 5살을 먹은 것으로 쳐야 하나 싶어 용운의 말을 믿고 진지해졌던 다진은 용운도 3그릇을 먹은 것을 떠올렸다.
“그럼 교주님도 3살 더 먹은 거죠?”
“어우, 나보다 다진이가 2살 더 먹었으니 다진이가 이제 누나네 그럼. 크큭”
용운의 웃음을 보고서야 다진은 용운이 자신을 놀리려고 그런 것임을 깨달았다.
“어디 시집도 안 간 소녀의 나이를 가지고 감히 장난을 쳐요? 이리 와봐요, 교주님!”
“아 왜!”
‘여기가 골목음식점이냐고.’
용운은 주먹을 들고 쫓아오려는 다진의 양팔을 잡았다.
“교주님, 손 좀 놔봐요?”
“빨리 놓으면 나 때리려고 그러지?”
“제가 어떻게 감히 교주님을 때리겠어요.”
“누가 그걸 믿겠니? 어허, 힘 빼~”
양 팔을 붙잡고 요동치는 다진을 막으려고 용운은 다진을 벽으로 몰아붙였다,
“...놓으라고 했죠. 이익”
서로의 숨결이 너무 가까워져 있음을 깨달은 다진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런 다진의 마음도 모르는 용운은 다진이 밥을 먹고 힘을 써서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이어지는 다진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자신의 장난이 너무 했나 싶어 당황해서 다진의 두 손을 놓았다.
“다진아, 많이 아팠던 건 아니지?”
“안 아팠어요...이 바보 교주님아!”
자신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는 다진에게 용운은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했다.
‘아오, 기지배. 지가 먼저 장난 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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